〈 694화 〉 695. 유구무언有口無言
"왜 그러는거야?"
북궁연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물었다.
별안간 자신을 뜯어말리는 선우의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이면 안돼!"
선우는 다급히 언성을 높였다.
"선우, 이 남자는 무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남자야. 이대로 살려보낸다면 그를 욕보이는 거나 다름없어."
북궁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언중기는 자신과 최선을 다해 자웅을 겨루었다.
서로의 목숨과 명예를 걸고 말이다.
그런 언중기를 살려둔다면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될 것이다.
"욕보여도 되니까. 일단 살리자."
선우는 완고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지금 언중기가 죽으면 상황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귀찮아지는 걸 넘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으로 변질될 것이다.
한 가문의 수장이 다른 가문에서 목숨을 잃다니
어찌 이런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었다.
".......꼭 그래야해?"
"꼭 그래야해."
선우는 확고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북궁연은 그런 선우를 담담한 어조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손을 그대로 내려버렸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연아!"
선우는 자신의 말을 따라준 북궁연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혹시나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걱정했건만
아무래도 괜한 걱정인듯 싶었다.
저벅 저벅 저벅
이내 선우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동상이 된 언중기의 코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심각한데.'
얼음동상을 코앞에서 마주한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몸이 냉동이 되면 세포 내부에 생긴 얼음결정이 세포막을 파괴시켜버린다.
해동한다고 해도 온전한 상태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단 해동부터 시킨다.'
하지만 선우는 행동을 결심하였다.
이대로 죽게 놔둘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언중기의 가슴팍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다음 눈을 감고 천천히 그의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하였다.
'어라?'
그리고 이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내부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진 탓이었다.
'내력으로 내부를 보호하고 있었어!'
선우는 눈에 희망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언중기는 완전히 얼려지기 전 내공으로 신체 내부를 보호하고 있던 듯하였다.
'됐어!'
선우는 쾌재를 불렀다.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건곤대나이의 구결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언중기의 몸에 집약되어 있는 극한의 냉기의 흐름이 그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흐름을 바꾼다.'
선우는 건곤대나이를 이용하여 집약되어있는 냉기들을 전부 흩어버리기 시작하였다.
파스스스
이내 그의 온몸에 붙어있던 얼음 알갱이들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해동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처음 해동된 곳은 가슴이었다.
그리고 가슴을 기점으로 온몸 여기저기에서 얼음 알갱이들이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머리,양팔, 복부, 양 다리 등
모든 신체가 해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얼려져있던 언중기의 신체가 완전히 해동되었다.
"허억...허억...허억...허억.."
그리고 신체가 완전히 해동되자 언중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부족했던 산소를 다급히 흡입하듯이 말이다.
"괜찮은가?"
선우는 거칠게 호흡을 내뿜는 언중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물음을 들은 언중기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당가주."
그리고 선우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나를.....살린게...당신인가?"
"맞소."
선우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음같아선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었으나 당가 내부에서 외인의 피를 보고 싶지는 않더군."
"......그렇군...."
선우의 말을 들은 언중기는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받았다.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충격
무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죽다 살아난 것에 대한 기쁨이 혼재되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맙소."
이내 언중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고마움을 표하였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어찌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되었네. 그저 시체를 보고 싶지 않은 내 변덕일 뿐. 그대를 동정하거나 연민한게 아닐세."
"그래도 목숨을 구해준 것은 엄연히 사실이 아니던가? 내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네."
"마음대로 하게나."
선우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구태여 마음에 빚을 가지고 가겠다는데 말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빙궁주."
선우의 말을 들은 언중기는 이번에는 북궁연을 돌아보며 입을 떼었다.
"완벽한 패배였소."
그는 곧바로 패배를 시인하였다.
변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패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어째서 자신을 봐주면서 싸웠는지 말이다.
이 정도로 수준차이가 나는데 어찌 봐주면서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부끄러웠다.
저 강대한 이와 맞먹으려고 했다는 것자체가 말이다.
"너도 훌륭했어. 권왕拳王"
북궁연은 패배를 인정한 언중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언중기는 강하였다.
온몸이 동결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가 만약 좀더 마음을 갈고 닦았더라면
승패의 행방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언중기는 그런 북궁연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끝까지 배려를 잃지 않는 여인이었다.
멋지기 그지없었다.
"살려주셔서 감사하오."
언중기는 북궁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자신을 해동시킨 것은 당가주였지만
자신을 살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북궁연이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은 승자인 그녀한테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감사를 표하였다.
그녀가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은 반항조차 못해보고 바스라져버렸으리라
"그리고 실망시켜서 미안하오. 무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이 아닌 구차하게 삶을 연장하여서 말이오."
언중기는 사과하였다.
구차한 삶을 택한 스스로에게 말이다.
명예를 아는 무인이라면 제 삼자가 목숨을 살려준 것에 대해 치욕을 느끼고 자진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언중기는 그리 하지 못하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언가의 식솔들에 대한 책임감이
그의 자진을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과를 하였다.
알게 모르게 실망하였을 북궁연에게 말이다.
"실망같은 건 안했어."
북궁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뭘 선택하듟 네 선택이 아닌가? 그걸 뭣하러 비난하지?"
북궁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이 가치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무조건 옳다며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언중기에 대한 실망 따위는 없었다.
"............그리 말해주어..고맙소."
언중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말이라도 저리 해주니
한결 나아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가주."
그녀와 대화를 마친 언중기는 별안간 선우를 불렀다.
"말씀하시오."
"나를.....처벌해주시오."
언중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처벌?"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본 가주는 악의를 품고 당가의 동맹인 빙궁주에게를 상해를 입히려고 하였소.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언중기는 당당한 표정으로 처벌을 종용하였다.
동맹세력 간의 기싸움이라는 명목상의 명분이 있긴하였지만
이대로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간다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천무맹의 지령을 받고 빙궁주를 노골적으로 저격하여
반병신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호승심이라는 마귀에 씌여서 말이다.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었다.
"당가에는 친선 비무 중 일어난 일로 처벌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소."
언중기의 말을 들은 선우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뭐라?!"
언중기는 당황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고작 동맹 세력간의 친목도모가 아니오? 그런데 무슨 처벌을 내린단 말이오?"
선우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빙궁주를 죽이려고 하였소!"
"빙궁주."
선우는 말없이 서있는 북궁연을 불렀다.
"말해."
""혹여 언가주와 비무를 하며 목숨의 위협을 받았은 적이 있었소?"
선우는 무척이나 사무적인 태도로 그녀에게 물었다.
"없었어."
그리고 북궁연은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녀의 말을 진심이었다.
단단한 몸이 거슬린다고 느끼긴 하였지만 딱히 목숨의 위협을 느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언중기는 강하였지만 자신의 명줄을 틀어쥐기엔 너무나 약하였으니 말이다.
"언가주. 피해자가 없는데 어찌 처벌을 한단 말이오?"
선우는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되물었다.
".......아."
그리고 언중기는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당가주가 자신의 잘못을 눈감아주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동맹 세력인 빙궁주에게 악의적으로 손을 대려고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맙소."
꾸벅
언가주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가주 위에 오르고 누구에게 숙여본 적 없는 허리였다.
하지만 그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선우는 그런 언가주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북궁연을 저격했다는 사실이 괘씸하긴 하였지만
충분히 대가를 치른 언가주였다.
저승 문턱에 한 발을 걸치고 나왔으니 말이다.
이번 일은 이정도선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듯 싶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당진설이군.'
선우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당진설에게도 대가를 치르게 해야할듯 싶었다.
악의적인 장난질을 친 당진설에게 말이다.
************
"후우"
당진설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차를 음미하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자리를 뜬 당진철에 의해 당황하긴 하였지만
이내 여유를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짓이 일어나든 자신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중기가 빙궁주를 작살냈을 경우
천무맹은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명예회복를 회복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뒷배로 빙궁을 믿고 있는 우매한 당가주에게 경각심마저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진철이 끼어들어 언중기의 행동을 제지했을 경우
당가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동맹세력 간의 편애를 빌미로 말이다.
어찌 나쁠게 있겠는가
'멍청한 당가주.'
당진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그저 기다리면 된다.
뒤이어 들려올 재밌는 소식을 말이다.
당진설의 악의 가득한 미소가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쿵 쿵 쿵
그때 누군가 당진설의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언뜻 들어도 둔탁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누구신가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나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세요."
끼이이익
당진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칠척 장신에 돌덩이같은 근육이 가득 들어차 있는 남자.
빙궁주를 겁박하기 위해 보냈던 남자.
권왕拳王 언중기였다.
"기별도 없이 어쩐 일이신가요?"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다."
언중기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당진설의 미소가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요?"
"난 언가로 돌아가겠다."
언중기는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축객령이 내려진 건가요?"
당진설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빙궁주에게 상해를 입혀 축객령이 내려진게 아닐까라는
의혹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 의지다."
언중기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떼었다.
"어째서죠?"
당진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언중기는 독왕과의 결투를 기대하고 당가에 찾아온 작자였다.
그런데 어찌 자신의 의지로 되돌아갈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패자敗子가 있을 곳 따윈 어디에도 없는 법이지."
언중기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뭐..뭐라고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스스로 패자를 자칭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돌아가 폐관을 할 것이다. 더욱더 강해지기 위해서."
언중기는 투기 서린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지만
언중기는 이번 회생을 기회라고 여겼다.
더욱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말이다.
"할 말은 끝났다. 가보도록 하지."
말을 마친 언중기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일말의 미련도 없이 말이다.
"잠..잠깐만요!"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다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뭐지?"
언중기는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렸다.
"당신....패한건가요?"
당진설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그녀의 말을 들은 언중기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다음 곧바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이내 방 안에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진설만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