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4화 〉 685. 야이 개년아!
"당신도 당문의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텐데요? 직계와 방계의 차이를 말이에요."
당진설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당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북풍한설처럼 매서운 눈빛이었다.
"..........당가는 바뀌었습니다."
당감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바뀌었다?"
"그저 직계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휘둘렀던 예전과는 다릅니다....."
당감은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현재 당가는 혈족중심이 아닌 능력중심으로 조직이 개편되었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실적이 있다면 방계 또한 직계 못지 않은 권력과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능력이 없다면 직계라 하여도 가차없이 내쳐지게 바뀐 것입니다."
당감은 올곧은 시선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능력을 인정받아 가주께서 직접 재경각의 부각주에 임명한 사람입니다. 출가외인이 된 당부인께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는 하등 없습니다."
"지금 당가 타고난 피를 부정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초리를 그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부정이 아닙니다. 능력중심으로 조직이 개편되었다고는 하나 직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감은 담담한 표정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격이 되지 않는 직계혈족이 방계를 멋대로 휘두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직계혈족이라고는 하지만 당부인께서는 엄연히 출가외인이십니다. 그런 분께서 재경각에 인사에 관여하시다니요? 어불성설입니다."
"저랑 의견이 다르군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출가외인이긴 하나 저는 이정도 참견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자란 방계 혈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건 직계 혈족이 가진 의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의무를 부정하고 자격이 없다고 말하다니......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자격이 되지 않는다면 직계의 의무 또한 실행할 수 없습니다."
"제 몸에 흐르는 당가의 피가 곧 자격입니다."
"당가는 바뀌었습니다. 피는 더이상 자격이 아닙니다. "
두 사람은 이내 날카로운 눈초리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통할 리 만무하였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진설의 경우
혈족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방계 혈족을 하수인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이는 비단 그녀 뿐 아니라 대다수의 가문들 또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직계와 방계의 경계를 제대로 나누지 않는다면
가문이라는 것 자체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반면 당감의 경우
혈족 중심의 사고방식이 아닌 능력중심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서윤이 가주대리를 맡은 이후 그녀는 혈족 중심에 사고보단 능력 중심의 사고를 권장하였다.
마교의 침공으로 인해 직계의 대다수가 죽음을 맞이한 상황에서 혈족 중심의 위계를 유지한다면 가문의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고방식이 갈릴 수밖에 없었다.
당진설은 방계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원하였고
방계 혈족들은 존중은 하되 복종은 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다른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건방져요."
그렇게 얼마나 눈싸움을 이어갔을까
당진설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짜증이 솟구친 까닭이었다.
고작 방계 따위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당가주도 언가주도 천무맹주도
아닌 고작 하찮은 방계따위가 말이다.
자존심이 상하였고 짜증이 솟구쳤다.
자신이 급이 이렇게까지 떨어졌나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방계 따위가.'
당진설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부웅
짜악
그리고 다시금 당감의 뺨을 후려쳐버렸다.
홱
그러자 당감의 고개가 옆으로 홱하고 돌아가버렸다.
당진설의 장력을 견뎌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분명 제게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당진설은 빨갛게 뺨이 물들어져있는 당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자격없는 제가 당신의 뺨을 때리면 어떻게 되나요?"
당진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부디 가르쳐주세요."
"........가주께....정식으로 제소할 생각입니다."
"가주가 그대의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진설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가주는 누구보다 시시비비가 확실한 분입니다. 올바른 판단을 하실것이라 믿습니다."
짜악
그때 당감의 고개가 다시금 옆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럼 한 번 확인해봐야겠네요."
당감을 후려친 당진설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과연 당주가 제 편을 들지 아니면 당신의 편을 들지 말입니다."
짜아악
당진설은 짙은 호선을 그리며 독사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당감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하였다.
짜악
짜악
짜악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
그리고 당감은 그런 당진설의 손길을 묵묵히 받아내었다.
아무런 비명소리도 내지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당진설을 더욱더 자극하였다.
고작 방계주제에 심지 굳은 척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이 영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다.
짜악
짜악
당진설은 손바닥에 내력을 담았다.
그리고 더욱더 강하게 후려치기 시작하였다.
그가 비명을 내지를 수 있도록 말이다.
짜악
짜악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쿵
이내 꼿꼿히 모가지를 세우고 있던 당감이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기절해버린 것이다.
"선배에에에!"
그가 기절하자 뒤편에 있던 당혜가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의지가 되던 든든한 선배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기 때문이었다.
"선배......정신차리세요...선배.."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당감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감은 완전히 기절해버린 것인지
거친 호흡만 내뱉을 뿐이었다.
"신념에 비해 연약한 몸뚱아리네요."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비웃듯 말을 이었다.
"당부인! 너무 하세요!"
당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모든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와 재경각의 업무에 간섭을 하였다.
아무런 권한도 자격도 없는 출가외인에 신분으로 말이다.
그리고 월권행위를 지적한 당감을 처참한 꼴로 만들어버렸다.
어찌 불합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너무하다라....."
당진설은 그런 당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또각 또각
그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녀의 코앞에 멈춰선 당진설은 그대로 몸을 낮추어
당혜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었다.
"정말 제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진설은 아찔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해요....선배는....당감..선배는...이런 식의 대우를....받을 만큼...큰 죄를 저지른 적이.. 없어요.."
당혜는 무서움이 미친듯이 치솟았지만
두려움을 꾹 참고 말을 내뱉었다.
자신을 위해 나서준 당감을 변호하고 싶었기 때문이엇다.
"그는 방계의 피를 타고난 주제에 직계 혈족인 제게 반발을 했어요. 저는 그저 올바르게 만들었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숨막힐듯히 무거운 기운으로 당혜를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위압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흐으윽....흐윽.."
당혜는 고통스러운듯 옅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더불어 대답을 까딱 잘못했다간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치솟았다.
당장에라도 잘못했다고 빌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잘못됐다고...생각해요."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 치밀어오른 욕구와는 반대로 행동을 하였다.
당진설의 잘못을 주장한 것이다.
비겁하게 도망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가요? 안타깝네요."
당혜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다음 천천히 손을 위쪽으로 들어올렸다.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말이에요."
당진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부우웅
그리고 거침없이 손을 휘둘렀다.
당혜의 뺨을 노리고 말이다.
'으윽'
당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부디 한 번에 기절하기를.....'
그리고 속으로 빌었다.
한 대만 맞고 뻗어버리기를 말이다.
그렇게 빌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 안아프지?'
그녀는 의아함이 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전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스르륵
궁금증이 든 당혜는 살며시 실눈을 뜨며 앞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지게 되었다.
말도 안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부들 부들
자신의 뺨을 향하던 당진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우악스럽게 붙잡힌 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당혜는 경악을 하였다.
대체 누가 저 콧대 높고 도도한 당가의 직계를 막아설 수 있다는 말인가
"너 누구야?"
그때 귓가에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르르륵
당혜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하였다.
평소에는 한숨만 나오던 목소리가 지금만큼은 천군만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가..각주님!!"
당혜는 고조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내질렀다.
"누군데 우리 애들 괴롭히고 있어?"
재경각주 요랑은 당혜에 울분에 찬 목소리를 사뿐히 무시한 채
당진설에게 정체를 물었다.
무척이나 살벌한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당신이....재경각주인가요?"
당진설은 자신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쥐고 있는 여자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두 여인은 서로를 노려보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
"맞아, 내가 재경각주야. 넌 누구지?"
요랑은 당진설을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재경각주라는 분이 생각보다 젊군요."
당진설은 살짝 놀랐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상상이상으로 젊은 재경각주의 모습에 놀라운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재경각주 정도 되는 관리직은 나이가 지긋한 직계혈족이 맡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선에서 물러나 그저 관리 감독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재경각주는 기존과는 조금 다른 인사였다.
젊디 젊은 여자인 것이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꽈아악
".....!?"
그때 갑자기 잡힌 손목에서 상당한 압력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를 뻔할 정도로 상당한 압력이 말이다.
"물었잖아. 누구냐고.....귀가 들리지 않는거야?"
요랑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단 이 손부터 놔주지 않겠어요? 아프군요."
당진설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우악스러운 손아귀힘에 비명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녀는 여유를 유지하였다.
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품위를 잃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답부터해. 손을 놔주는 건 그다음이야."
꽈아아악
요랑은 더욱더 강하게 힘을 주어 그녀를 압박하였다.
으득
그리고 그 아귀힘에 당진설은 이를 절로 갈았다.
상상이상의 고통이 몰려온 까닭이었다.
"한 번 해보자는 건가요?"
우우우우우웅
당진설은 기운을 흩뿌리며 말을 이었다.
이어지는 압박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까닭이었다.
"그래도 좋고, 대신 너 죽을거야."
요랑은 재밌다는듯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평소처럼 해맑고 헤픈 웃음이 아니었다.
피식자를 앞에 둔 포식자의 살소殺笑를 짓고 있는 것이다.
움찔
그 미소를 마주한 당진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소름끼치도록 저릿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은 까닭이었다.
'......뭐지...이 여자.'
당진설은 속으로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상상이상으로 강력한 재경각주의 기세에 압도당하였기 때문이었다.
'정면승부는.....위험하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만약 정면 승부를 벌였다간 살해를 당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세가원끼리 피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당진설은 한걸음 물러났다.
기싸움을 벌여봤자 좋을 것 없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저는 당진설이라고 합니다. 천무맹주에게 시집 간 현 가주의 동생이지요."
당진설은 설명을 빙자하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밝혔다.
천무맹주 이재원의 부인이라는 위치
독왕毒王 당진철의 동생이라는 위치
당가의 직계혈족이라는 위치까지 전부 말이다.
눈앞에 있는 우악스러운 여자가 신경을 쓰도록 말이다.
당가의 녹을 먹고 사는 이상
직계의 핏줄에 대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당진설? 네가 당진설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요랑은 놀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당진설에게 되물었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네에, 맞아요. 제가 바로 당진설이에요."
그 반응을 본 당진설은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저 우매한 여자, 스스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야이 개년아!"
쿵
그때 갑자기 머리에서 깨질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요랑이 그녀의 머리통을 후려쳐버렸기 때문이었다.
"..............."
순간 당진설은 벙진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너 때문에 장부가 몇 달이나 빵구났는지 알아?"
요랑은 격분한듯한 표정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