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3화 〉 684.헤집고 다니다.
"재경각주께서는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입니다."
당혜는 무척이나 공손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출가외인이라고는 하나 당진설은 엄연히 직계의 피를 이어받은 당가의 혈족이었다.
방계혈족에 불과한 자신이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 갔죠?"
"거기까진....저희도....잘.."
"엉망이네요."
당진설은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북풍한설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상사가 어디서 뭘하는 지 파악하는건 부하직원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그런데 모르겠다고요?"
"....죄..죄송합니다."
"이건 기본이잖아요? 기본도 안된 주제에 월봉을 받아먹고 있는 건가요?"
당진설은 타박하듯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녀의 타박을 들은 당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원론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거수일투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상사의 업무를 파악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때에 따라 보조를 하거나 합을 맞춰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죠?"
".......당혜라고 합니다."
"당혜 소저께서는 월봉을 얼마나 받으시죠?"
당진설은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은자 서른 냥 정도 받습니다."
"팔자가 좋네요. 땡볕에서 바깥에서 근무하는 평무사의 월봉은 고작 열 네냥 정도인데 실내에서 근무하면서 그렇게 많이 받다니 말이에요."
당진설은 그녀를 평무사와 비교를 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이는 잘못된 비교였다.
고급인력인 재경각원과 평무사자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재경각원은 기본적으로 상당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만 지원할 수 있는 반면 평무사의 경우 일정수준의 무공 성취만 있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었다.
애초에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기에 다른 업무를 하고 다른 월봉을 받는 것이었다.
당진설 또한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영악하다고 칭할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자랑하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진설은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굳이 평무사와 그녀를 비교하며 깎아내렸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재경각원이나 평무사나 하등 다를 것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녀를 비롯한 재경각원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
그리고 그녀의 의도는 상당히 잘 들어맞게 되었다.
다른 각원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비교적 늦게 들어온 당혜가
그녀의 타박에 무어라 반박도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기 때문이다.
만약 당혜가 아닌 다른 각원이었다면 재경각이 기존의 조직과는 조금 다른 체계로 운영된다는 걸 설명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리있는 설명을 하기엔 당혜는 너무나 어렸고 여렸다.
그렇기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이런 질시에 가득한 타박을 정면으로 받은 적이 없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물은 재경각의 분위기를 한층 더 무겁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잘못했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좀더 쇄기를 박아야겠네.'
기가 눌린 재경각원들을 본 당진설은 생각하였다.
조금만 더 쇄기를 박으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이다.
이미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넘어온 탓이었다.
"당혜 소저는 월봉을 왜 받으시나요?"
당진설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재경각의...업..무를....수행하고..그...댓가를..받습니다."
당혜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기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리고 여린 그녀였지만 눈물을 회피수단으로 이용하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울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꾹 참았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을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울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재경각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럼 재경각에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몇 차례 경고 이후...감봉을 하거나....해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경고예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약 다음에도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하게된다면 감봉을 받게 될거예요."
"................"
그녀의 말을 들은 당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혜는 당신이 무슨 권리로 재경각원의 처우를 결정하냐며 반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침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진설이 비록 출가외인이기는 하나 당가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만약 반발하였다가 수뇌부 측에서 그녀를 싸고돌 경우
정말로 해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 대답이 없죠?"
당진설은 당혜를 서슬퍼런 시선으로 노려보며 대답을 종용하였다.
기를 완전히 눌러버릴 심산이었다.
"......알...알겠.."
그리고 그 시선을 마주한 당혜는 입을 덜덜 떨며 간신히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서슬퍼런 시선에 굴복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부인."
그때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누구인가요?"
당진설은 말을 끊고 등장한 남자를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흐름이 끊겼다는 생각에 짜증이 살짝 치밀어오르듯하였다.
"재경각의 부각주인 당감이라고 합니다."
당감은 담담한 시선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부턴 제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선..선배."
당혜는 글성거리는 눈빛으로 당감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선배가 천군만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부각주인가요?"
"그렇습니다."
"젊군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부각주나 각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상당한 연배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관리 업무가 주를 이루는 부각주난 각주의 자리는 능력위주보단 경력위주로 차지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부각주라고 하기엔 당감은 너무나 젊었으니 말이다.
"부족하지만 운이 좋게 그런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운으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요."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감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리도 노여워하시는 것입니까?"
당감은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으로 당진설에게 물었다.
"이 아이, 기본이 안되어있더군요."
당진설은 손가락을 살짝 뻗어 당혜를 가리켰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감은 정중한 태도로 그녀에게 물었다.
"상사인 재경각주가 사라졌는데 부하된 입장에서 어디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더군요. "
당진설은 질책이 담긴 눈빛으로 당감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찌 기본이 있다고 할 수 있겠나요?"
"당 부인께서 오해가 있으신듯 합니다."
당감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해라뇨? 제가 뭘 오해했다는 말인가요?"
"재경각주님의 위치는 본래 아무도 모릅니다."
당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매번 몰래 빠져나가는게 일상같으신 분이기 때문이죠."
"지금 저와 장난을 하자는 건가요?"
당감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가 자신을 가지고 농락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난이 아닙니다. 당부인."
그녀의 말에 당감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재경각주께서는 일반적인 재경각원들에 비해 몇 배는 빠른 일처리속도를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비상하고 영리하신 오성을 가지신 덕분이지요. 그렇기에 일처리를 전부 끝내놓는 즉시 외유를 버릇처럼 나가시곤 합니다. 그런 각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저희가 세세하게 알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당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요랑은 일처리를 대충 끝내놓으면 버릇처럼 나가버렸다.
아무도 눈치 못 채도록 은밀하게 말이다.
그런 그녀를 무공이라곤 갓 삼류에서 벗어난 재경각원들이 잡아낼 리 만무하였다.
"......그렇다하더라도 나가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텐데요?"
당진설은 지지않으려는듯 꼬투리를 잡아버렸다.
"무리입니다. 각주께서는 높은 무공을 소유하신 분인지라....저희처럼 간신히 삼류 벗어난 이들이 잡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어이가 없군요."
당진설은 고운 아미를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말같지도 않은 말에 황당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딴 콩가루같은 집단이 있다는 말인가
매번 몰래 외유를 나가는 재경각주와 그를 각주를 방치하는 각원들이라니
'아무리 인재가 없다지만 이딴 운영을.....'
당진설은 골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재경각이 기대이하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후우.....좋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오해가 있는듯 하군요. 경고 건은 없던 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진설은 스스로 오해했던 부분을 인정하였다.
각주부터가 막장인데 각원을 혼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비를 베풀기로 하였다.
"당부인."
그 말을 들은 당감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요."
"한 가지 착각을 하시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뭔가요?"
"당 부인께 재경각원에게 경고를 하거나 처벌을 할 권한은 없습니다."
당감은 부드럽지만 힘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각원의 처벌은 오직 재경각주님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입니다. 이점을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당감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당진설에게 재경각원에게 경고하고 처벌할 권한 따윈 없었다.
재경각원의 인사 관리는 오직 재경각주인 요랑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당감은 그점을 지적하였다.
출가외인인 그녀에게 그런 권한 따위는 없다고 말이다.
"......건방지네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당감을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제가 누구인지 모르시는건가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 없었다.
당진설의 아름다우면서 표독스러운 인상을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 개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아무래도 당신은 절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당진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말 한마디면 당신은 해임될 수 있어요. 당감. 두렵지 않으신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해임을 결정하는 건 각주님입니다. 당부인이 아니지요."
당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건방지네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당감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대답을 하는 당감의 행태가 말이다.
기본적으로 당가는 핏줄에 대한 차별이 확연한 곳이었다.
피의 농도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당감은 고작 방계혈족에 불과하였다.
그런 그가 순혈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모가지를 빳빳하게 세우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이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감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원론적으로 당감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출가 외인 신분으로 당가의 업무에 멋대로 관여하는 건 주제가 넘는 행동이였으니 말이다.
확연히 잘못된 일이었다.
하지만 당가는 원론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혈족에 대한 대우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직계혈족이 잘못을 했다해도 방계 혈족은 함부로 지적할 수 없었다.
지적하는 것자체가 하극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직계혈족들은 방계혈족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한 단계 밑에 존재하는 하층민으로 여기는 것이다.
감히 말조차 섞지 못할 정도로 격차가 나는 하층민 말이다.
그렇기에 아미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말조차 제대로 섞지 못할 하층민 주제에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였으니 말이다.
'개판이네.'
당진설은 생각하였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당가가 개판이 되었다고
방계주제에 직계 혈족에게 반발을 하니 말이다.
"당감, 그대는 직계 혈족인가요?"
당진설은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아닙니다."
"아니면 무언가 믿을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요? 친정이 대부호라던가 뭐 그런거요."
"......아닙니다."
당감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가진 건 부랄 두짝밖에 없는 당감이었다.
믿을 구석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런데 대체 뭘 믿고 이렇게 건방질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고작 방계 주제에 말이에요."
".........핏줄은 관계 없습니다."
당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요. 관계 있어요. 특히 당가처럼 혈족 중심의 세가라면 더더욱 말이에요."
당진설은 당감의 말을 부정하며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제가...."
짜아악
당진설이 손을 들어 당감의 뺨을 후려쳐버렸다.
휘익
그러자 당감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버렸다.
상상이상의 물리력이 그의 뺨을 덮쳐들었기 때문이다.
뚝 뚝 뚝
이내 당감의 입에서 핏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입안에 살짝 터진듯 하였다.
"이렇게 당신의 뺨을 때려도 저는 처벌받지 않아요. 왜 인지 아세요?"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저는 직계의 혈족이지만 당신은 고작 방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랍니다."
당진설은 입가에 길게 호선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