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1화 〉 682. 영악한 암여우.
"당진설이 왔다고?"
"네에, 지금 귀빈실에 있다고 하십니다."
금적화는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안그래도 언중기의 의중을 몰라 신경쓰이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진설까지 등장하니 골머리가 아팠다.
"........가야겠지?"
선우는 옆에 있는 당서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만나기 꺼려진다하여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선우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가기싫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까닭이었다.
당서윤은 힘없이 걸어가는 선우의 뒷모습을 그대로 따라갔다.
************
"만약 모르겠으면 어떠한 대답도 하지마. 작은 틈이라도 보였다간 위화감을 느낄거야."
당서윤은 선우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당진설과 대화를 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말이다.
머리가 비상한 당진설이라면 틈을 보이는 즉시 위화감을 느끼고 의심을 할 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걱정마, 나도 곤란한 질문을 쥐어짜며 대답할 생각은 없으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신은 당진철의 혈육인 당진설을 완벽히 속여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신중해야하고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었다.
"좋아, 만약 곤란한 질문이 나온다면 내가 끼어들테니까. 그냥 넘기거나 침묵을 해."
"알았어."
선우는 작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서윤이 옆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든든해졌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가자."
선우의 대답을 들은 당서윤은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다음 걸음을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은 귀빈실로 통하는 문 바로 코앞에서 멈춰서게 되었다.
"후우우"
선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덥석
그리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다음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이익
그러자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완전히 열어젖혀졌다.
문이 열리자 실내 전경이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게 되었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두 명의 아리따운 귀부인들이었다.
아름답지만 표독스럽다는듯한 인상이 강한 여인
'당진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단번에 두 사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천무맹에 있을 당시
스쳐가듯 마주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를 뵙습니다."
그때 당진설이 선우에게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간 무탈하였더냐?"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얽히기 시작하였다.
"네에, 소녀는 무탈하게 잘지냈사옵니다."
당진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한번 쯤 찾아뵙어야 하는데...이제와 찾아뵙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다. 찾아뵙지 못한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오라버니께선 당가를 재건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 않으셨습니까?"
"너 또한 후계 경쟁으로 인해 바쁜 날을 보내지 않았더냐? 개의치 말거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오라버니."
두 사람은 훈훈한 덕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당가에 방문한 것이더냐?"
선우는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당가에 온다는 사실은 서신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그 목적에 대해선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그녀가 당가를 방문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야 방문을 하나요? 그냥 오랜만에 친정에 들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나 서윤이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말이에요."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지랄하네.'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당가가 반파되었을 때도 얼굴 한 번 안비추던 당진설이었다.
그런 당진설이 혈육의 정을 느끼고자 당가를 방문했다고 말하니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단순히 그런 이유 뿐이더냐?"
선우는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당진설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선우는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저의를 파악할 심산이었다.
"그나저나 오라버니께서는 분위기가 바뀌었군요."
"........분위기가 바뀌었다니?"
"전보다 좀더 부드러워진듯 합니다."
당진설은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전에는 마치 장인이 만든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던 당진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태도가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날카로움이 살짝 무뎌진 것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아마 그럴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당서윤이 급히 끼어들어 말을 이었다.
"새롭게 들인 육부인께서 무척이나 애교가 많은 성격이거든요, 그 성격에 영향을 받았을 거에요."
"어머, 그러니? 애교가 많다고?"
당진설은 그런 당서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에, 아마 보신다면 단박에 이해하실 수 있을거예요. 벽창호 같은 오라버니께서 이렇게 부드러워진 이유를 말이에요."
"신기하구나. 날카로운 오라버니가 이렇게 부드러워지다니 말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나중에 소개 좀 시켜주세요. 오라버니."
"내 따로 소개할 자리를 마련해주도록 하마."
선우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약속하신 거예요."
당진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나저나 서윤아, 얼굴에 윤기가 가득하네. 혹여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는거니?"
"그럴 리가요."
"어머, 말해보렴. 이 언니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단다."
당진설은 부드럽게 대화를 주도해나가기 시작하였다.
"파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저입니다....새로운 인연을 시작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런.....내가 실수를 했구나....."
"아닙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장선우는 어째서 너와 파혼을 한걸까? 이 언니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인데..."
"그만의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제 놈이 뭐가 잘났다고....우리 어여쁜 서윤이에게 상처를 준다는 말이더냐? "
"충분히 잘나지 않았습니까? 그는 천하제일인이니 말입니다."
"흥, 그래봤자 그 천하제일인으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근본은 당가가 아니겠느냐? 당가의 무공이 없었다면 그가 그렇게 일취월장할 수 있었을 것 같더냐? 그가 집이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조건 맞는 말이다. 오라버니라는 뛰어난 스승이 없었다면 그 또한 그만한 성취를 이룩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놈이 은혜도 모르고 당가를 배신하다니...혹여 그가 다시 찾아온다해도 절대 받아주지 말거라."
"그런..일은.......없을 겁니다."
"그나저나 그는 독공보다 검술에 치중하는 것 같더구나.......혹시 무슨 검술을 익혔는지 알수 있겠더냐?"
"그건 저도 잘.."
"이상하더구나....당가 출신의 무인이 독공을 내보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건 아마...."
당진설은 대화를 주도하였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진지하게 표정을 바꿔가면서 말이다.
'대단하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살짝 감탄하였다.
저 뱀같은 본심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 것이다.
언중기가 너구리였다면 당진설은 여우였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암여우 말이다.
당서윤과 대화를 통해 교묘하게 원하는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파혼을 빌미로 장선우에 대한 화제를 자연스레 꺼내었다.
그리고 선우가 천무맹을 나선뒤 당가를 방문하였는지에 대한 여부
선우의 가족 관계
선우의 본관에 대한 내용 등
개인적인 의문을 슬며시 끼어넣어 대답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더 이상 당진설의 화법에 말려들면 안된다고 말이다.
거짓말이란 하면 할수록 허점이 생기는 법이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의심이 짙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라버니는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생각에 잠겨있던 선우의 귓가에 당진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말이더냐.."
"식솔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장선우라는 걸출한 제자를 키우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더이상 당가의 제자가 아니다."
선우는 곧바로 선을 그어버렸다.
장선우에 대한 화제로 대화를 이어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인연을 끊었다하여 그 무공의 연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당진설은 그런 선우의 의도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라버니 어째서 단전을 깨부수고 근맥을 절단하지 않으셨나요? 당가의 무공은 혈족이 아니라면 허락되지 않을텐데요?"
"그저 유예했을 뿐이다."
"그럼 언제고 그 아이의 무공을 폐할 생각이 있다는 건가요?"
그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선우는 그런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저 안타까워서요. 위대한 당가의 명예를 훼손시킨 그 천둥벌거숭이가 멀쩡히 돌아다니는게 말이에요."
"본 가주가 알아서 할 일이다. 너는 개의치 말도록 하라."
선우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진설의 신분은 엄연한 외인이었다.
필요이상으로 가문에 관여하는 건 주제 넘는 짓이었다
"제가 주제를 넘었네요. 죄송해요 오라버니."
선우의 엄한 태도를 마주한 당진설은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영악한 년.'
치고빠지는 기술이 참으로 과연 암여우다웠다.
궁금을 하되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선을 넘어도 밉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일단 파해야겠어.'
선우는 생각하였다.
해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이다.
"설아."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그녀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밤이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이만 쉬는 게 어떻겠느냐?"
"아직 해우가 풀리지 않았어요. 오라버니."
당진설은 고개를 살며시 좌우로 돌리며 입을 떼었다.
"고작 첫날이지 않더냐? 일단 오늘은 여독부터 풀기로 하거라. 대화는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선우는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일단 자리를 파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도록 하겠어요. 오라버니."
당진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당진설은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다음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끼이이익
이내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고풍스러운 느낌의 실내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벅 저벅
당진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털썩
그리고 이내 침상 위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러자 푹신한 침상의 감촉에 등에 그대로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잠이 올 것 같은 푹신함이었다.
"그대로네."
그녀는 짧은 감상은 내뱉었다.
침상은 그대로였다.
이십여 년 전 시집을 가기 전과 다름없이 말이다.
피식
새삼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당가는 여전히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감상에 빠져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신가요?"
당진설은 표정을 굳힌 채 입을 떼었다.
"언중기."
그러자 바깥에서 중후하기 그지없는 음색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스르르륵
그 목소리를 들은 당진설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들어오세요."
그리고 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끼이이이익
그러자 문이 열리고 칠척 장신의 남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진주언가의 가주이자 정마대전의 영웅
권왕拳王 언중기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를 마주한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랜만이다."
언중기 또한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온건 어떻게 아셨나요?"
"냄새가 나더군. 암여우의 냄새가 말이야."
언중기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례한건 똑같으시군요."
"사람이 변할 때는 죽을 때 뿐이지."
언중기는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네년은 나를 이용해먹을 계획을 짠 장본인이지 않은가? 골통을 빠개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도록 하거라. "
"알고도 당가로 오신 것 아닌가요?"
"미끼가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말이야. 도저히 물지 않고는 배길 수는 없더군."
"미끼가 만족스러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미끼와는 별개로 네년의 행태는 마음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 예의를 바라지 말거라."
"뭐, 마음대로 하세요. 저도 구태여 언가주께 예의를 받고자 한 것은 아니니까요."
당진설은 새침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지? 당장 당가를 들쑤시면 되는가?"
"아뇨. 좀더 참으세요."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군."
언중기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당진철을 만나고 몸이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언중기였다.
그런 자신에게 인내를 요구하다니
어찌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당가 내부 사정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동안은 자중하도록하세요."
당진설은 차가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언중기를 안면을 사정없이 구기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