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0화 〉 681.음흉한 너구리
우두두둑
우두두둑
온몸의 뼈가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외견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눈매와 콧날이 날카롭기 그지없게 바뀌었다.
입매에 단호함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입가에 옅은 잔주름이 생겼다.
체형이 좀더 왜소해지기 시작하였다.
근육이 줄어들고 뼈가 압축되었다.
우두두두둑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뒤틀림이 이어졌을까
이내 선우의 외견은 완전히 변모하게 되었다.
이십대의 모습을 갖춘 청년의 모습이 아닌
날카로운 인상의 중장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어때?"
선우는 차분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중장년 특유의 중후함이 묻어있었다.
"똑같아."
그 목소리를 들은 당서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똑같았다.
마치 죽은 오라버니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이정도면 언중기가 아니라 당진설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외견에서 위화감을 느끼진 못할 것이다.
"다행이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안심한듯 말을 이었다.
당진철의 혈육인 당서윤이 인정할 정도라면
쉽사리 들통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연기력 뿐이었다.
"언가주와 당가주는 어떤 사이야?"
선우는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야."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기별도 없이 그냥 찾아올 정도면 꽤나 막역한 사이일 것이라고
어림짐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친하다기 보단 오히려 서로를 견원지간에 가까운 사이였어."
당진철은 언중기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성정을 갖춘 언가주가 절대고수로서의 풍모가 부족한 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중기 또한 당진철을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았다.
주먹을 혹은 검을 맞부딪히는 게 아닌 중독을 시켜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당진철의 모습이 무인답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친하지도 않은데 기별도 없이 웬일이래?"
"나도 그 저의가 궁금하던 참이야."
선우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 또한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별안간 찾아온 언중기의 저의가 말이다.
"물론 예상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왜 온 것 같은데?"
"아마 선발대가 전멸한 일 때문에 오지 않았을까 싶어."
"그게 언중기랑 무슨 상관인데?"
선우는 의아한듯 물었다.
선발대 전멸사건으로 당가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천무맹이었다.
그런데 뜨끔없이 언중기가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선발대의 대주로 있던 이재선이 언중기의 조카거든."
"그렇군."
선우는 납득했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조카와 관련된 일이라면 끼어들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조카의 복수를 하려고 온 걸까?"
"그럴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어."
"무슨 대답이 그렇게 애매해?"
"언가주는 조카가 무슨 짓을 당하든 신경쓸 위인이 아니거든."
"무정한 성격인가?"
"아니, 살짝 미친놈이야."
"미친놈?"
"직접 봐보면 알거야."
당서윤은 질린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마주한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성격이 어떻길래.
무덤덤한 성격을 당서윤이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말인가
선우의 의문이 깊어졌다.
***************
외빈실
언중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겪어던 싸움 중 가장 치열했던 싸움을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철마鐵魔와의 혈전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싸움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등한 전력을 갖춘 이와 생사결을 나눈 적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목숨을 위협을 느꼈던 적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제압을 목적으로 두는 정파의 무인들과 달리 그는 살인을 목적으로 두는 마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서로의 육체를 돌덩이같은 주먹으로 깎아내리며
싸움을 이어갔다.
신체가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철마의 머리통을 터트릴 수 있었고
자신은 권왕拳王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처음 별호를 얻었을 때는 우쭐한 마음이 있었다.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였다는 자부심에 한껏 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천하제일인 또한 멀지 않은 꿈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꿈은 이재원을 만나고 산산히 부숴지게 되었다.
손끝 하나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경에 다다른 이재원에게 말이다.
분명 출발선은 비슷하였다.
그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화경에 불과한 무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마를 한줌의 핏물로 만들어버린 이후
이재원은 지고한 영역에 다다르게 되었다.
손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아득한 경지로 말이다.
노력하였다.
그 손조차 닿지 않을 경지에 다다른 이재원에게 닿기 위해서 말이다.
자는 날보다 자지 않는 날이 더욱더 많아졌다.
주먹이 셀 수도 없이 깨졌다.
그저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다.
최강이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닿지 못하였다.
이재원이라는 천하제일인에게 말이다.
언중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재원에 비하면 자신은 범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절망감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절망하는 와중에도 그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노력으로 그 재능의 간극을 메꿀 심산으로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의 겨울을 보냈을까
어느날 언중기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평소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수련을 이어가던 어느날
언가권의 요체가 온몸에 그대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정체되어있었다고 여겨진 주먹이 더욱더 강맹해졌고
금강불괴에 가깝다고 여겨졌던 신체는 더욱더 단단하게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단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말이다.
범재로서 천재에 다가갈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천무맹으로 향하려고 하였다.
최강이라는 칭호를 탈환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최강의 칭호를 가진 주인이 바뀌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검신劍神 장선우라 남자에 의해서 말이다.
언중기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겨야할 놈이 많아졌다는 생각에 호승심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최종목표였던 이재원은 이제 중간 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최종목표는 검신劍神이었다.
그리고 그 검신에게 다가서기 위한 첫번 째 목표는.......
끼이이익
갑자기 외빈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날카롭기 짝이 없는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냉막한 인상의 남자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절로 떨리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씨이익
그 모습을 본 언중기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첫번 째 목표가 도착하였기 때문이었다.
"반갑네. 독왕毒王 이게 몇 년만인지 모르겠군."
언중기는 재밌어죽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반겼다.
"별안간 무슨 일인가. 언가주."
언중기의 물음에 독왕毒王을 연기하는 남자, 선우가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말일세."
언중기는 농후하기 그지없는 투기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대와 내가 그리 친분이 깊었던가?"
선우 또한 지지않을 정도의 투기를 흘리며 입을 떼었다.
이내 외빈실은 두사람의 투기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농밀하고 거대한 절대 고수들의 투기로 말이다.
*********
"친분이 깊어야만 찾아올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언중기는 유쾌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가주의 자리가 그리 가벼운 자리는 아닐텐데?"
선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마주보며 입을 떼었다.
"당가와 달리 언가는 생각보다 규율이 자유로워서 말일세."
"믿을 수 없군."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설마하니 나를 내쫓기라도 할셈인가?"
언중기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못할 것도 없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물론 그를 내쫓게된다면 박정하다며 손가락질을 받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적도 모르는 이 남자를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매정하군."
"당연한 걸세."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입을 떼었다.
"안가겠다면?"
"힘으로 내쫓을 수 밖에 없겠지."
"그럴만한 힘은 된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아무리 봐도 내가 이길 것 같은데?"
언중기는 호승심 가득 서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도발을 하였다.
"눈이 삐었군."
선우는 그 도발에 응수하며 말을 이었다.
이내 두 사람은 숨막힐듯한 투기를 발산하기 시작하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크하하하하하하 농일세...여전히 딱딱하군. 당진철."
이내 언중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쾌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내가 여기 온 건 언가의 대표로서 동맹세력으로서 정마대전에 참전하기 위함일세."
"믿기지 않는군."
선우는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뭐가 말인가?"
"동맹세력으로서 참전하겠다는 작자가 어째서 혼자왔지?"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참전을 선택했다면 적어도 부대급의 전력을 이끌고 오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찌 홀로 당가에 방문한다는 말인가
"다른 이들을 끌고 오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일세."
언중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본 가주 자체가 세가의 최고 전력이자 최대 전력일세. 구태여 다른 이들은 뭣하러 데려온다는 말인가? 거추장거릴 뿐이라네."
언중기는 올곧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언가의 전력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내겐 적어도 그리 느껴진다네."
"가주가 할 법한 말로 들리진 않는군."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크하하하하하"
언중기는 다시금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호감이 절로 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그런 언중기의 호탕함에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꿍꿍이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선우는 그를 떠보기 위해 몇 가지 질의응답을 하였다.
그리고 언중기는 그럴 때마다 여유롭게 대답을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선우는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외골수에 무식하게 생긴 외관과 달리 너구리처럼 음흉하게 속내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각 하나를 내어주도록 하지."
종국에 선우는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영 내키지는 않았지만
정마대전을 참전하기 위해서 왔다는 그를
내쫓을만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네."
언중기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채 감사를 표하였다.
이내 두사람은 짧은 만남을 끝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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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바깥으로 나온 당서윤은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친놈이라는 생각 보단 음흉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음흉하였다.
분명 꿍꿍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탕함으로 그 꿍꿍이를 완전히 감춰버렸다.
쉽사리 드러나지 않도록 말이다.
어찌 음흉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확실히 평소랑은 다른 양상을 보이긴 하더라."
당서윤도 동의하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소에 싸움귀신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거칠기 짝이 없는 언중기였다.
그런 오늘은 그런 거친 면모가 상당수 사라져있었다.
"예의 주시해야겠어."
선우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할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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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 부들 부들
선우와 당서윤이 바깥으로 나간 뒤
언중기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겁을 집어먹거나
추워서가 아니었다.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동등한 강자의 냄새가 말이다.
과연 당가주는 강했다.
현경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에라도 발권發拳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온몸이 떨렸다.
저 강대한 남자를 꺾고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행은 당진설이 당가에 도착한 이후였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내야하는 것이다.
꽈아악
언중기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최대한 진정시키기 시작하였다.
주먹 전체에 전해져오는 떨림을 말이다.
'어서 오거라....당진설....내가 참지 못하기 전에 말이다.'
언중기는 빌고 또 빌었다.
자신의 안에 있는 야수성이 폭발하기 전
당진설이 당가에 도달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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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기 그지없는 사두마차가 성도 중앙을 가로지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말이다.
성도 중앙 주변에 있던 상인들들은 얼른 옆으로 비켜나갔다.
괜스레 엮여봤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성도 상인들의 배려덕분일까
마차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서 거대한 사천당문이라고 쓰여진 현판이 달린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워어...워어......"
그 모습을 본 마부가 부드럽게 말을 달래었다.
그러자 빠르게 달리던 마차의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늦춰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마차는 완전히 멈춰서게 되었다.
사천당문의 정문 앞에서 말이다.
"무슨 용건으로 당가에 방문하신겁니까?"
마차가 멈춰서자 정문을 지키던 수문위사 하나가 마부에게 물었다.
마차의 화려함에 압도당한 까닭인지
수문위사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천무맹에서 왔다."
마부는 담담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천무맹 말씀이십니까?"
수문위사는 의아한듯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 그러니 문을 열도록 하라."
"혹여 신분패를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휘익
수문위사의 말에 남자는 품 안에서 신분패 하나를 휙 던졌다.
덥석
그 신분패를 받아든 수문위사는 재빨리 신분패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아니!?"
그리고 이내 그는 경악하였다.
신분패의 외양이 너무나 익숙하였기 때문이었다.
"당가혈패!?"
그렇다.
마부가 내민 신분패는 오직 당가의 직계혈족에게만 지급한다는 당가혈패였던 것이다.
"문을 열어라."
그 모습을 본 마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알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수문위사는 빠르게 답하였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내 당가의 정문이 완전히 개방되었다.
마차는 열린 정문을 통해 당가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