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5화 〉 676. 저희 또한 똑같은 명분으로 되갚아주면 됩니다.
"다시 말해보시오!"
이재원은 시뻘개진 얼굴로 제갈찬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아..아무래도....당가 측에선 북해빙궁주를 감싸주려는듯 합니다."
그의 물음에 제갈찬은 드러난 사실을 축약하여 말하였다.
당가의 의도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말이다.
"당가가.....북해빙궁주를? 천무맹이 아니라?"
이재원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게..사료됩니다."
제갈찬은 송구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말없이 이재원은 표정을 굳혔다.
더불어 북풍한설과 같은 한기를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한기를 마주한 제갈찬은 말을 아꼈다.
맹주의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사람은 극도로 화가나면 오히려 냉정을 찾게된다면
분노가 오히려 냉정하고 침착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지금 이재원의 상태가 딱 그러하였다.
그는 고함을 내지르기 보단 차분하게 말을 읊조렸다.
차가운 한기를 뿌리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저 차가운 분노 뒤에 숨어있는 열화와 같은 거대한 분노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군사."
이재원은 담담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말씀하시지요."
"내가 이런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하오?"
"........."
이재원의 물음에 제갈찬은 말을 아꼈다.
그 또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혈맹인 천무맹을 저버리고 북해빙궁에 붙은 당가의 행태가 말이다.
"감히!"
이내 이재원은 열화와 같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천무맹을 이토록 무시하다니!"
그다음을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차가운 분노 뒤에 숨어있던 거대한 분노를 터트려버린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내 집무실 안에 쉴새없이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분노에 반응하여 의지가 발현된 까닭이었다.
"크으으으윽!"
그리고 그 발현된 의지에 휘말린 제갈찬은 고통 어린 신음성을 내뱉었다.
온몸이 조여드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군사!"
이재원은 분노에 찬 음성으로 군사를 불렀다.
"...말...말씀하시지요."
"당장 당가에 서신을 보내게. 당장 범인을 포박하고 그 신변을 천무맹에게 양도하라고 말일세!"
이재원은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제갈찬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미 몇 번이고 요청하였지만.....소용없었습니다..."
이재원의 말에 제갈찬을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사실 이재원에게 보고를 올리기 전 몇 번이고 당가에게 범이의 신변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당가는 일관되게 거부의 의사를 표명하였ㄷ,
그럴 수는 없다면서 말이다.
"말을 덧붙이게! 만약 범인을 양도하지 않는다면 맹과 관계가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일세!"
이재원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이는 협박이었다.
만약 범인을 양도하지 않는다면 척을 지고 말겠다는 협박 말이다.
"그....그랬다간...당가 측에서 반발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제갈찬은 사색이 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반발하면 제 놈들이 어찌하려고? 천무맹을 거역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이재원은 있는대로 인상을 구긴 채 말을 이었다.
"그....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뭐라!?"
이재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발을 하였다.
천무맹을 거역할 수도 있다니?
이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천무맹은 무림에서 단일세력 중 가장 강성한 곳이었다.
소위 명문세가라고 불리우는 가문들의 두배이상되는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 천무맹과 척을 진다는 것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마어마한 인력과 인망을 바탕으로 꼬장을 피운다면 명문가라 하더라도 두손두발을 들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천무맹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현재 당가는 청성과 아미를 포함한 연맹을 구성하여 거대한 사업체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규모나 인력 면에서 천무맹에 꿀릴 게...전혀 없는 상태이지요. 만약 천무맹과 척을 진다해도 크나큰 타격을 받긴 힘들 것입니다.'"
제갈찬은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당가와 같은 무림 세력에게 압박하기 위해선 사업체를 빼앗는게 가장 일반적이었다.
같은 품질이라면 소비자는 결국 경제적으로 저렴한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단일 세력 중 가장 강성한 규모와 인력을 자랑하는 천무맹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당가는 그런 협잡에 휘말릴 정도로 연약하지 않았다.
구파의 일원인 청성과 아미를 끌어들여 거대한 연맹을 구성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통해 천무맹과에 비견될 정도의 규모와 인력을 얻게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압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현재 저희는 당가로부터 상당히 수혜를 받고 있는 입장입니다. 당가제 병장기부터 시작해서 전쟁 물자의 보관은 물론 병참기지로서의 역할까지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척을 지게된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입니다."
제갈찬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현재 천무맹은 당가로부터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마교와의 전쟁이라는 대의와 피로 맺어진 동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척을 지게 된다면 그간 누린 수혜를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곤란하였다.
마교와 전쟁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말이다.
쾅
"그럼 이런 수모를 겪고 그냥 유야무야 넘기라는 말인가!"
이재원은 책상을 후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제갈찬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였다.
그 또한 무림에서 수십 년은 굴러먹은 무림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런 개같은 수모를 그냥 넘겨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정예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천무맹에 소속된 오백이 넘는 무인들이 전멸을 당하였다.
고작 한 사람에게 말이다.
그것도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치욕이었다.
차마 얼굴을 들기 부끄러울 정도로 수치심이 차올랐다.
어찌 마교를 토벌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그렇게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소식을 접한 세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최고의 단일세력이라고 불리우는 천무맹도 별 것 아니라고 말이다.
명예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어찌 납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우우우우우우웅
이재원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하였다.
과거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었던 이재원이었다.
등교해도 반겨주는 이가 없었고
학교 생활내내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으며
하교를 할 때 같이가는 이 하나 없었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과거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반작용 때문이었을까
이재원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명예에 집착하였다.
명예가 있다면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을 무시를 하지 않고
알아봐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명예를 위해 싸웠고
명예를 위해 선인을 연기했으며
명예를 위해 가식을 떨었다.
그런데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명예가 땅에 떨어져버렸다.
고작 한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일...일단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그저 지켜봐야할 듯 싶습니다."
제갈찬은 송구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가를 압박하고 싶어도 현재는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전쟁물자를 구입하느라 상당수의 예산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당가로부터 이런 저런 수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혈을 감행하고 당가와 기싸움을 벌인다면
천무맹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인력과 규모는 동등하였고 자본력에서는 한없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으드드득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이를 갈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에게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였다.
현재의 치욕을 훗날에 되갚아준다는 인내심따윈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가났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상황 자체가 말이다.
".........다른 대안은.....없는 것인가"
하지만 이재원은 그 분노를 간신히 말아 삼키고 그에게 물었다.
다른 대안이 없냐고 말이다.
".............애석하게도..."
제갈찬은 면목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맹주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 또한 천무맹에 속한 맹원이었고
천무맹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함부로 건들기엔 당가의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감히 건드는 것조차 부담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부들 부들
이재원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무력감은 장선우에게 뺨을 맞은 이후 처음이었다.
끼이이익
"방법은 있어요."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이재원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름답지만 표독스운 인상을 가지고 있는 귀부인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아름답지만 고지식한 인상을 가지고 귀부인 또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엿들은 것이오?"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무력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녀들에게 고스란히 내보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이재원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곧바로 그에게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언소소 또한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여우같은 년.'
그 모습에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되려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뭐라 타박할 건덕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방법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재원은 의아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별안간 방법이 있다고 말하니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북해빙궁주의 신변을 양도받을 수 있는 방법말입니다."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이재원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간단해요."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희 또한 똑같은 명분으로 되갚아주면 됩니다."
"되갚아준다?"
이재원은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그녀에게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당가는 선발대를 전멸시킨 북해빙궁주에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요. 동맹세력 간의 가벼운 마찰에 불과하다고 사건을 축약하면서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상황을 심각하게 몰고가봤자. 꼴만 우스워질게 자명해요. 당가 측에서는 별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당진설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가에선 이번 사건을 그저 가벼운 다툼이었다며 사건을 축약시키고 있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이다.
범인의 정체가 동맹세력이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일의 심각성을 상당부분 해소시켜버렸기 때문이었다.
비난을 받을지언정 피해는 받지 않게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심각하게 몰고 가봤자 큰 타격을 입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똑같이 갚아주는 거예요. 선발대를 전멸시킨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에요."
당진설은 독사와 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똑같이?"
"네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당서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당가 측에서도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을거예요. 그들은 이미 같은 짓을 저지른 북해빙궁주를 옹호한 전력이 있으니 만약 여기서 나서게 된다면 동맹세력 간의 차별을 두게 될테니까요."
".......설득력 있군."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이내 수긍한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동맹세력 간의 차별을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가라 하더라도
여론의 뭇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명예가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는 당가로서도 상당히 부담될 것이다.
결국 무림세가라는 것은 명예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세력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북해빙궁주의 모가지를 꺾어버리면 되는 것이오?"
이재원은 의욕에 가득 찬 시선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허락만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당가로 달려갈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니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떼었다.
"왜 안된다는 것이오!?"
이재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맹주께서 가면 그 속내가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반감을 사게 될 거예요. 천무맹의 맹주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비를 튼다면 말이에요. "
".............."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천무맹주라는 작자가 거슬린다며 동맹세력에게 시비를 튼다면 그 또한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북해빙궁주를 제압한다는 말이오?"
이재원은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비록 후기지수와 하급 무사들로 구성된 선발대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오백이 넘는 무인들을 전멸시킨 무력을 갖춘 이였다.
그런 이를 대체 누가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권왕拳王."
그때 잠자코 있던 언소소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언가의 가주께서 직접 나서실겁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권왕拳王이!?"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거론 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