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2화 〉 673. 연우
"아부부부부...아부!"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귀여운 아기는 팔다리를 열심히 휘젓기 시작하였다.
"그래, 그래, 뭐가 그리도 기분 좋은 것이더냐?"
능소화는 그런 아기를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절로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댜댜다 뜨댜아아아~"
아기는 그런 능소화가 싫지 않은 것인지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말을 옹알이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아..."
그리고 그 모습은 능소화의 심장을 쉴새없이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이건 사기였다.
어찌 이리도 귀여운 아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꼬옥
능소화는 아기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 품 안에 살며시 껴안아버렸다.
도저히 안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의 귀여움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부우우우"
아기 또한 그런 능소화의 품이 싫지 않은 지
그녀의 품에 안겨 기분 좋은 옹알이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좋아?"
그때 부드러운 음성이 능소화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아기의 어미인 북궁연이었다.
"너무...너무..좋다아아...어찌...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말이더냐"
"후후후....혈통이 우월해서 그런게 아니겠어?"
북궁연은 뿌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식 칭찬을 듣는데 싫은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차가운 성정을 가진 북궁연이었지만
사랑스러운 자식의 칭찬에 표정이 한껏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으윽...부정하고 싶지만....부정할 수 없도다..."
능소화는 분한듯한 얼굴을 하며 말을 이었다.
평소 북궁연과 대립각을 세우던 능소화였지만 이번 만큼은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부정하기엔 눈앞에 아기는 너무나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능소화는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생후 삼개월이 조금 더 됐어."
"삼개월?!"
"응."
"그렇다면 태어나자마자 중원으로 데리고 온 것이더냐?"
그녀는 놀란듯 북궁연에게 물었다.
북해와 중원까지 거리는 길게 잡으면 네 달
빨리 잡으면 두 달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생후 삼개월이면 태어나자마 데리고 왔다해도 과언이 아닌 거리인 것이다.
"맞아,"
"너무 섣부르지 않는가? 좀더 몸을 추스려도 될터인데..."
"보여주고 싶었거든."
"무엇을 말인가?"
"사랑하는 낭군에게 우리 아기가 얼마나 귀여운지 말이야."
북궁연은 푸근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능소화는 말을 잃었다.
냉막한 그녀가 저리 웃는 걸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그런 미소도 지을 줄 아는구나."
그리고 이내 능소화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 미소가 어떤데?"
"뭔가 푸근해졌고 안락해졌도다."
"그래? 난 모르겠는데?"
북궁연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놀랍도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저 냉막한 북궁연마저 환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아기의 존재가 말이다.
'아기를 낳는다면...전부 저렇게 되는 걸까?'
능소화는 생각하였다.
만약 자신도 아기를 낳게된다면 북궁연처럼 바뀌게 되는 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궁금한게 있도다."
"뭔데?"
"아기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아직 안정했어."
"뭐라?"
능소화는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생후 삼개월이 넘었건만 아직도 이름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름을 짓는건 부부의 공동작업이잖아? 내 멋대로 정할 수는 없지."
북궁연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타깝구나. 삼개월간 이름도 없이 지냈으니 말이다."
"괜찮아. 이제 아비도 만나고 새로운 이름도 생길거니까."
".......그도 그렇군."
"그나저나 궁금한게 있어."
"물어보거라. 아는 선에선 모두 답해주겠느니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북구연은 의문스럽다는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능소화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분명 약속을 했었단 말이야......내가 출산하기 전에 다시 돌아온다고 말이지."
북궁연은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푸근한 미소따윈 사라진지 오래라는 듯이 말이다.
"근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랑하는 낭군이 북해로 돌아오지 않았잖아? 그렇다고 서신 한 통 보낸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아무 이유없이 날 방치했을 리는 없잖아?"
북궁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소집되어 천무맹을 가기도 하였고
그곳에서 천무맹주의 팔을 자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신 한통 보내지 않을 정도로 급박한 일들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입을 함부로 열 수 없었다.
뭔가 잘못 말했다간 큰 사단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왜 말이 없어? 말해봐. 어서어."
능소화가 말이 없자 북궁연은 그녀를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어서 말을 해보라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말해달라고 말이다.
"그......그러니까."
그리고 그녀의 재촉을 들은 능소화는 드문드문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돌아온 선우가 요랑과 당서윤을 부인으로 맞이했던 일
후에 봉황대주 강하윤을 부인으로 맞이했던 일
천무맹에 소집되어 끌려갔던 일
그곳에서 팽 모녀와 황보 모녀를 거두어들인 일
천무맹주 이재원의 팔을 잘라버린 일
주소양을 정식 부인으로 인정했던 일
정마대전이 선포되었던 일
천무맹에서 쫓겨난던 일 등
선우가 중원에 돌아오고 있었던 모든 일들을 말이다.
"............."
북궁연은 침중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얌전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처음에는 담담한 표정이였으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왠지 모를 냉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된 것이니라."
말을 마친 능소화는 슬쩍 북궁연의 눈치를 살폈다.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능소화는 무척이나 차가운 얼굴을 한 채 침묵을 하고 있었다.
첫 대면했을 때가 생각날 정도로 차가운 얼굴을 말이다.
'.......화났구나.'
그 모습을 본 능소화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화가 단단히 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을 했을까
".........후우"
이내 북궁연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우리 낭군이 참 바빴네. 그치?"
그녀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그렇다."
"중원에 오고 여자를 몇 명이나 늘린걸까?."
"....글쎄?"
"뭐, 당가의 아가씨나 요랑이라는 여인은 익히 들었으니 별상관없는데....남의 마누라를 딸 포함해서 다섯이나 꼬신 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지?"
"......그.....아마도....그....복수를..."
"어떤 미친놈이 복수로 남의 마누라를 따먹어? 죽였으면 죽였지."
".........그....미친놈이....아무래도 선우인 것 같다."
능소화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북해에는 오래 고어가 있어."
"....그게 무언인가?"
"미친 개는 매가 약이다."
"북해에 그런 과격한 말이 있던가?"
능소화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있어."
벌떡
북궁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화야, 잠시만 아이 좀 맡아줄래?"
"어딜...가려고 그러는가?"
"약 주러."
북궁연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잠..잠시만!...기다리거라!"
능소화는 다급히 북궁연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왜에? 나는 지금 바빠. 소화야."
"지금 그대는 무척이나 흥분하였다! 잠시 속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나 지금 되게 냉정한데? 봐바? 몸에서 냉기도 나오고 있잖아?"
"그건 기운을 흩뿌리는 것이지 않은가!"
"네 착각이야. 그러니 빨리 놔. 난 선우를 만나러 가야겠어."
"진...진정하라!"
두 여인은 서로 옥신각신하기 시작하였다.
선우에게 가려는 북궁연과 그런 그녀를 말리려는 능소화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꺄르르르르르"
그 모습을 본 아기는 재밌다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옥신각신하는 두 여인의 모습이 꽤나 재밌게 보인듯 하였다.
그때였다.
벌컥
갑자기 거칠게 문이 열어젖혀지기 시작하였다.
깜짝 놀란 두 여인은 재빨리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들 눈에는 긴장이 가득 서려있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경악을 하였다.
무척이나 반가운 남자의 모습이 눈에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선우!""
두 여인은 동시에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안녕."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 선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인사를 건네었다.
*****
"아뱌뱌뱌뱌뱌"
아기는 방실방실 웃으며 옹알이를 하기 시작하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선우에게 호감을 느낀듯하였다.
그 옹알이를 들은 선우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능소화 품에 안겨있는 아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저...아이가.."
방실거리는 아이를 보며 선우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를 본 순간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저 천사처럼 귀엽기 그지없는 아이가
자신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아가."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말이다.
"잠깐 안아...볼 수 있을까?"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능소화는 슬쩍 시선을 돌려 북궁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북궁연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에게 화가나긴 하였지만 혈육간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능소화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꼬오옥
그리고 선우는 그런 아이를 품안에 안아들었다.
"아가....."
선우는 품안에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꺄아아아"
그러자 아이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선우의 품이 그리 싫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선우의 감정을 극도로 고조되게 만들었다.
자신의 피를 이은 자식이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고조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주르륵
선우는 눈물을 슬며시 흘리기 시작하였다.
벅찬 감동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내가.....네...아빠란다.....아빠.."
선우는 벅찬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부우우우....아부우우우"
그런 선우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옹알이를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아빠...아빠.."
선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소중하기 짝이 없는 자식을 보니
무심했던 과거가 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소중한 자식을
이렇게 작고 연약한 자식을
자신은 잊고 있었다.
여자와 복수에 정신이 팔려서 말이다.
죄책감이 치솟기 시작하였다.
미칠듯한 죄책감이 말이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눈시울이 살짝 붉혀져있는 북궁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아."
선우는 애달픈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말해."
북궁연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전부...전부...다 미안해."
선우는 죄책감에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녀에게 미안하였다.
전부 말이다.
약속을 저버린 것
자신의 혈육을 홀로 출산하게 방치한 것
서신 한통 보내지 않아 걱정하게 만든 것 등
미안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물 닦아."
북궁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연아."
선우는 슬픈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그녀가 화가 단단히 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 처음보는 아버지야.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선 안되잖아?"
"....연아."
"눈물 닦아...그리고 마주 웃어줘......아이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줘."
".....하지만....나는..."
"네 잘못에 대해선...나중에....나중에 말하도록하자...지금은....그냥..아이에게만 집중해줘."
북궁연은 살며시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음같아선 자신은 물론 아이까지 잊어버린 선우에게
역정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있었다.
아이 앞에서 괜스레 불화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응."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그녀의 요청대로 아이를 꼬옥 안아들었다.
"꺄하아아아"
그러자 아이 입에서 기분좋은 옹알이가 흘러나왔다.
"그리도 좋더냐?"
선우는 그런 아이를 즐겁다는듯이 바라보았다.
옹알이마저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아....아이 이름이 어떻게 돼?"
선우는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정하지 않았어."
"......어째서?"
"이름은 네가 정해줬으면 했으니까..."
"내..가?"
"....응."
북궁연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을까?"
선우는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귀여움이 넘쳐흘러 아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자 아이야."
"......아들이구나."
선우는 품안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요 귀여운 녀석은 아들인듯 싶었다.
"사실...예전부터 생각해놓은...이름이 있었는데...."
"뭔데?"
북궁연은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그럼.....연우 어때?"
이내 선우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연우?"
"네 이름과...내 이름을 한 자씩 따서....연우."
".......연..우라.."
선우의 말을 들은 북궁연은 천천히 말을 읊조려보았다.
울림이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이름인 것 같아."
북궁연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사랑스러운 자식의 이름이 정해진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