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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671화 (672/1,419)

〈 671화 〉 672.망설임이 사라지다.

선우는 쉴새없이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당진철의 모습으로 변모한 이후

가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선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는 딱히 업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당서윤이나 금적화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놓고

한량처럼 살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주로 변모한 이후부터는 그 행보가 달라졌다.

더이상 한량처럼 지낼 수 없는 것이다.

가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의심스럽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 싫어어어..'

선우는 도장을 내리찍으며 우는 소리를 내었다.

본디 내근직이라는 것은 언뜻보면 만만해보이는 직종이었지만

성향이 맞지않는다면 중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선우가 딱 그러하였다.

책상물림하는 것보단 몸을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선우였다.

그런 선우에게 가만히 앉아 결재 도장을 찍는 일은

고역에 가까운 일이었다.

'차라리 미친듯이 검을 휘두르는게 낫지.'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가만히 죽치고 있는 것보단 차라리 검을 들고

신명나게 검무劍舞를 추는게 나을 것 같다고 말이다.

"선우."

그때 선우의 귓가에 날카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왜에?"

선우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쌀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절세미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독서시毒西施 당서윤이었다.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거 맞아?"

그녀는 뾰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이지."

선우는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건 뭔데?"

그녀는 서류 한 장을 들어올렸다.

서류에는 반려 도장과 결재 도장 두 개가 동시에 찍혀져있었다.

"아."

그 모습을 본 선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없이 도장을 찍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안."

선우는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변명보다는 사과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을래?"

당서윤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업무가 장난이야? 너 정신줄 언제부터 놨어?"

"......아마....반 시진 전부터?"

"망할 자식이!"

당서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 말인즉슨 반 시진 전부터 서류작업을 개같이 했다는 말이었다.

"내가 어려운 거 시켰어? 그냥 서류 위에 써져있는대로 도장만 찍으라고 했잖아? 근데 왜 그런 것도 제대로 안하는건데!"

당서윤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안그래도 바빠죽겠는데 넋놓고 헛짓거리를 하는 선우를 보니 답답함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미안."

선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그냥 일하는 시늉만 하라고 했지!"

"그....도와주려고."

선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선우도 자리만 차지하고 일을 하는 시늉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눈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당서윤을 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뭔가 기둥서방같은 느낌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요없다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일을 떠맡았다.

능력있는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기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것도 대형사고를 말이다.

복사기가 없는 중원이기에

도장을 잘못 찍은 서류들은 전부 수작업으로 만들어야했다.

일을 도와주려다 되려 어마어마한 일거리를 떠넘긴 것이다.

"도와줄거면 제대로 도와주던가! 너 때문에 일을 두 배, 세 배로 해야하잖아!"

당서윤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래서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였다.

평소 서류 업무 하곤 담을 쌓아온 선우였기에

효율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보니 효율문제가 아니었다.

비효율적인 처리를 넘어서

없는 일거리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사고를 치는 것이다.

당서윤은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할거야! 기밀서류들이라서 전부 나혼자 수작업해야한단 말이야!"

".........그...내가..도와줄...."

"도장찍는 것도 정신줄 놓고 하는 널 어떻게 믿고?"

당서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장 하나 제대로 못찍어서 대형사고를 친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문서 작성같은 걸 맡길 리 만무한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 자리만 지키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마! 숨만 쉬고 있어! 알았어?"

"......넵."

그녀의 박력 어린 말에 선우는 곧바로 수긍하고 답을 하였다.

여기서 또 일을 도와준다고 나섰다간 그녀가 독을 뿌릴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후우"

선우의 답을 들은 당서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선우가 처리한 서류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하였다.

옳게 된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기 위해서였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한대로 숨만 쉬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겁하다.....가슴에....돌덩이가 날아와 꽃힌다.'

선우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친 사고를 말없이 수습하고 있는 당서윤을 보니

미칠듯한 불편함과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몰려온 까닭이었다.

무거웠다.

죄책감의 무게가

불편하였다.

타박 한 번하고 아무 말없이 작업에 들어간 당서윤의 태도가 말이다.

차라리 속시원하게 뺨이라도 후려갈겼으면 지금처럼

불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속정 깊은 당서윤은 잔소리 몇 마디로

모든 일을 무마시키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태도는 선우를 너무나 힘들게 만들었다.

'살..살려줘.'

선우는 속으로 애원하였다.

누군가 집무실로 찾아와 자신을 빼내주기를 말이다.

집무실에 계속 같이 있다간 숨이 막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우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쿵 쿵 쿵 쿵

갑자기 누군가 집무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좋았어!'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누구시오."

선우는 속내를 감추고 정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소신 당감입니다!"

그러자 바깥에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감?'

선우는 의아함이 들었다.

당감이라면 재경각에 근무하는 각원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집무실에는 무슨 일이란 말인가

"들어오게."

선우는 의아함이 들었지만 이내 그의 출입을 허락하였다.

끼이이익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이내 녹색 무복을 입을 당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주를 뵙사옵니다!"

당감은 허리를 꾸벅 숙이며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하였다.

"별안간 무슨 일이오? 분명 재경각에서 사람을 보낸다는 말은 없었을터인데...."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큰..큰일 났습니다!"

그의 물음에 당감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무슨 일인가? 차근 차근 말해보도록 하게."

당감의 심각한 표정을 확인한 선우는 짐짓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그.....천..천무맹의..선발..대가.."

"천무맹의 선발대? 아, 그들이 온 것인가?"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짐짓 화색을 띈 채 말을 이었다.

빠져나갈 구실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무맹의 선발대가 전멸하였습니다!"

당감은 곧바로 답을 하였다.

선발대가 오긴 왔다.

문제는 오자마자 전멸했다는 사실이었다.

"뭐라!?"

이어지는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당혹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좀더 자세히 설명해보게!"

선우는 다급한 어조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그의 물음에 당감이 더듬거리며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선발대가 당가에 도착한 후 수문위사와 기싸움을 벌였던 이야기

수문위사를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는 이야기

갑자기 누군가 끼어들어 그들을 단죄하였다는 이야기 등

천무맹의 선발대가 전멸당한 정황을 말이다.

"누가 그들을 전멸시켰다는 말인가? 혹여 마교의 타격부대가 출현한 것인가? "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대체 누가 그들을 전멸시켰다는 말인가? 혹여 마교가 아닌 제 삼의 세력이.....?"

선우는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발대로 오기로 한 이들은 도합 오백이 살짝 넘는 대인원이었다.

그런 그들을 전멸시켰다면 어느정도 세력을 일군 이들일 것이 뻔하였다.

"그들을 전멸시킨 것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천무맹의 선발대 오백명은 단 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당감은 송구한 표정을 지은 채 사죄를 하였다.

스스로의 무능이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할 것 없네. 선발대를 전멸시키고 사라진 이의 정체를 자네가 어찌 알겠는가"

선우는 사죄하는 당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거늘

어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는가

타박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그게.."

선우의 말을 들은 당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선우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까닭이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선발대를 전멸시킨 범인이....당가 안으로 들어와있습니다."

"뭐라?!"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반문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가가 위험 인물의 출입을 허가했다는 말이 아니던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무력에 굴복하여 그자를 들여보낸 것이더냐!"

선우는 나름 엄중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꾸짖듯 말하였다.

외부인을 그것도 선발대를 전멸시킨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물의 출입을 허가해줬다는 말에 분노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당가는 자신이 정한 안전지대이자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 어떤 곳보다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경계를 이따위로 섰다는 말인가

분노가 치밀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그게.."

분노한 선우를 마주한 당감을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다.

"무엇인가!"

"능...소저께서...그....범인을 데려가셔서...."

"능 소저가?"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는 순간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능소화가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예에...그. 범인과 몇 마디..이야기를 나누더니....그대로 데려가셨다고 합니다."

"범인과?"

"예에.......이야기를 들어보니 면식이 있는 사이인듯 싶었다.

".........."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능소화가 세상 밖을 나온 지 고작 일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면식이 있는 이가 흔할 리 만무하였다.

'황실 쪽 인물인가?'

선우는 나름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하였다.

황실 쪽 인물이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말이다.

"혹여 범인의 다른 특징은 없었는가?"

선우는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일단 머리색이 특이했다고 합니다."

"머리 색이?"

"네에, 눈처럼 새햐얀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아..그렇다고 나이가 들어 생긴 푸석푸석한 백발이 아닌 윤기있는 아름다운 머릿결이었다고 합니다."

"응?"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순간 익숙함을 느꼈다.

무척이나 익숙한 묘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품안에는 귀여운 아기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수문위사가 언뜻 봤는데 너무 귀여워 넋이 나갈정도로 귀여웠다고 하더군요."

"..아...기?"

"아, 그리고 빙공을 썼다고합니다. 오백이나 되는 인원들을 전부 얼려버렸다고하더군요!"

"뭐라!?!?!"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선발대를 전멸시킨 범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이다.

눈처럼 새하얀 머릿결

오백이나 되는 무인들을 단번에 얼릴 정도의 강력한 빙공

품안에 품고 있는 귀여운 아기

세상에 나온 지 일여년 밖에 안되는 능소화와 면식이 있는 인물

'북궁연.'

바로 북궁연이었다.

북해빙궁의 궁주이자

자신의 정인이면서

자신의 아이를 출산한 북궁연 말이다.

선우는 눈시울이 서서히 젖어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에!?"

선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감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있냐는 말이다!"

"능 소저가.. 기거하는 전각으로 들어갔다고...들었습니다."

벌떡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다음 바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하였다.

"가주!"

그 모습을 본 당서윤은 다급히 선우를 불렀다.

"나중에!"

하지만 선우는 그런 그녀의 부름에 가벼이 대답 한 후

그대로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마치 바람처럼 말이다.

이내 집무실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당서윤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당감만이 남게 되었다.

***********

타타타탁

타타타탁

선우는 내달렸다.

달리고 또 내달렸다.

소식을 들은 까닭이었다.

북해에 두고 왔던 여인이

사랑하는 여인이

당가로 직접 발걸음을 했다는 소식을 말이다.

그것도 자신의 혈육을 품에 안은 채 말이다.

혈류를 가속시켜

신체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풍진보를 극성으로 운용하여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내 선우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한계를 초월한 빠르기에 마치 순간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신법을 발휘하였을까

타탁

이내 선우는 걸음을 멈추었다.

도착하였기 때문이었다.

능소화의 처소 앞에 말이다.

선우는 시선을 올려 처소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저 문 너머에 있을 북궁연과 자신의 핏줄을 말이다.

보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말이다.

하지만 좀처럼 발이 내딛어지지 않았다.

북궁연을 홀로 방치했다는 죄책감이 걸음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후우우우"

선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이대로 문 앞에서만 서성거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꺄르르르.."

그때 선우의 귓가에 아이의 웃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말이다.

덥석

그 웃음소리를 들은 선우는 처소 앞에 있는 문을 잡았다.

일순간 망설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천천히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이내 실내 전경이 선우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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