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8화 〉 669. 손버릇이 나쁘네.
"후아아아암"
수문위사 당기는 크게 하품을 내쉬었다.
밤새도록 오입질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까닭이었다.
기운이 빠졌고 피로가 몰려들었으며 꾸벅 꾸벅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 똑바로 차리게!"
그러자 옆에 있던 당훈이 타박하듯 언성을 높였다.
마음에 안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죄송합니다....선배님...어제 잠을 제대로 못자서.."
당훈의 타박에 당기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내 누누히 말하지 않았는가? 오늘은 귀빈이 오니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말일세!"
"......이게....참.....저도..금방 자려고했는데....곰같은 마누라가 놔주질 않아서...말입니다..."
"한창 신혼이니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지만 직장에서까지 피로를 가지고 오진 말게나."
".....알겠습니다."
"가서 세수라고 하고 오게!"
"괜찮습니다. 이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또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면 내부평가에 반영될 줄 알게."
"......알겠습니다."
당기는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
".........."
이내 두 수문위사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혼난 당기는 당기 나름대로 뻘쭘하였고
그를 혼낸 당훈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어.....선배님."
입을 다물고 있던 당기가 선배를 불렀다.
"말하게."
그의 부름에 당훈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오늘....오는 귀빈이 누구입니까?"
당기는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훈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어벙한 신입에 대한 짜증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분명 어제 대대적인 공표가 있지 않았나?"
"그게.....사실 그때도....졸고 있어서..."
당기는 면목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당훈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짜증을 넘어 어이없음마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당훈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이내 당기는 곧바로 사과를 하였다.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게."
당훈은 그런 당기를 바라보더니 이내 힘없이 말을 이었다.
괜스레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혼낸다고 딱히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오늘 당가를 방문하는 귀빈들은 선발대일세."
"선발대요?"
당기는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천무맹에서 마교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요."
당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무맹의 선전포고는 세상소식에 어두운 그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워낙 유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전포고를 한뒤 천무맹에서는 당가에게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요구했네."
"병참기지요!?"
"그렇네, 천무맹에서 물자확보를 하고 천산으로 향하는 것보단 길목에 있는 당가에서 물자확보를 한 후 천산으로 이동하는 게 좀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거지."
당훈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방문한다는 선발대라는게......?"
"맞네, 천무맹의 선발대일세."
당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략 오백 명 정도의 인원이 올 예정이라고 하더군."
"오백 명이나요!?"
당기는 놀란듯 되물었다.
"뭘 그리 놀라나 앞으로 수 천명은 더 찾아올 텐데."
"아니, 당가에 그렇게 많은 이들을 수용할만한 공간이 있습니까?"
당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당가가 넓다고는 하지만 수천 명이나 되는 이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있을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당가혈사로 인해 대다수 전각들이 비어버리지 않았나? 어느 정도 수용은 할 수 있을 걸세."
"아무리 그래도 수천 명은 수용할만큼 넉넉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흐음......아마 빈 공터에 임시 막사를 치는 형식으로 공간을 확보할 걸세.....아니면 성도 내에 있는 객잔에 장기 투숙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말이야."
그의 말을 들은 당훈은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내뱉었다.
".....성도 내 상권들만 살맛 나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경제가 활성화될테니까."
당훈은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천무맹에선 댓가로 무엇을 주기로 했답니까?"
당기는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수 천명의 인력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마련해준 당가였다.
큰 대가를 받았을 게 분명하였다.
"따로 받기로 한건 없다고 알고 있다네."
"네에?"
그의 말을 들은 당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째서 당가가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편의를 봐줘야하는 겁니까?"
"대의를 위해서가 아닌가."
"대의를 위해서라면 모두가 희생해야지. 왜 당가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말입니까?""
"전쟁이 끝나면 뭐라도 챙겨주지 않겠는가? 지금은 전쟁물자를 확보하느라 맹에도 이렇다할 여유가 없는듯하네."
"이해가 안됩니다! 그렇다면 구두약속으로라도 무언가 약조를 받아야지요 어찌 그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대가없이 수락한다는 말입니까!?"
"가주께서도 무슨 생각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 같은 범인이 어찌 가주와 같은 비범한 인물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당훈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는 가주를 비롯한 수뇌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어찌 반발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당기는 다시금 반발하려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쿵
그때 갑자기 땅에서 상당한 울리기 시작하였다.
"응?"
갑작스러운 진동에 당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쿵
그러자 다시금 땅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전보다 더욱더 크게 말이다.
"앞을 보게!"
그때 당훈이 긴장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아, 넵!"
화들짝 놀란 당기는 재빨리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쿵 쿵 쿵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당가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천天이라고 쓰여진 깃발을 들고 있는 수백의 무인들을 말이다.
'아...'
그 모습을 본 당기는 알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천무맹의 선발대가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쿵
쿵
이내 선발대들은 줄을 맞춘 뒤 질서정연하게 걸어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한눈에 봐도 기강이 빠듯하게 잡혀있는 모습이었다.
당기는 긴장된 표정을 지은 채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선두가 정문까지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멈추시오!"
갑자기 옆에 있던 당훈이 큰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쿵
그러자 이내 수백명의 인원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당가에 방문한 용건을 밝히시오!"
그는 선두에 선 이를 바라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는 천무맹에서 온 선발대이다! 조속히 문을 열도록 하라!"
그러자 선두에 선 이가 명령하듯 하대를 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먼저 소속과 이름을 밝히시오!"
"지금 이 깃발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우리는 천무맹의 선발대이다! 조속히 문을 열거라!"
"신원증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누구든 당가의 문지방을 넘어갈 수 없소이다!"
당훈은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세운 뒤 고함을 내질렀다.
"뭐라! 이 건방진 놈이!"
선두에 선 이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당훈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고작 문이나 지키는 수문위사 주제에 모가지가 뻣뻣하였다.
마교를 토벌하기 위해 제남에서 사천까지 수천 리를 달려온 용사들에게
어찌 이런 푸대접을 한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고작 당가의 문지기 주제에.'
선두에 선 이는 짜증을 넘어 분노까지 치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소권룡小拳龍 이재선이다! 한낱 문지기 따위가 어찌 내 앞을 가로막는다는 말인가!"
소권룡小拳龍 이재선
그는 천무맹주 이재원과 언소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외가인 언가의 무공인 언가권을 계승한 그는
약관이라는 젊은 나이에 소권룡小拳龍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후기지수로 이름을 날리는 이였다.
그런 그가 선발대를 이끄는 대주로서 당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신분증명이 우선이오!"
이재선이 신분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당훈은 뻣뻣하게 태도를 고수하였다.
사실상 좀더 융통성 있게 넘어가도 될 문제이긴 하였다.
이미 천天이라고 쓰여져있는 깃발을 보았으며
선두에 선 이가 천무맹주의 아들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훈은 그리하지 않았다.
천무맹은 엄연히 객의 신분이었다.
그런 이들을 절차를 무시한 채 그대로 문을 열어주게 된다면
당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 주인된 입장에서 객에게 비굴하게 군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에 당기는 뻣뻣하고 딱딱한 자세로 원리원칙을 고수하였다.
당가의 위신을 위해서 말이다.
"이런 벽창호같은 작자를 봤나!"
그런 당훈의 태도를 본 이재선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당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수백명을 이끄는 대주직을 맡게 되었다.
아직 약관밖에 안된 나이이기에 수백명을 이끄는 대주의 자리를 맡기엔 경험이 일천하였지만
이재원의 편애로 인해 경험적인 일천함을 전부 무시한 채 대주직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재선 또한 잘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다 완벽하게 대주직을 수행하고 싶었다.
자신이 이정도 역량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낱 문지기 따위가 자신을 가로막았다.
하층민 중에 하층민인 문지기 따위가
자신의 증명할 기회를 가로 막아버린 것이다.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을 열어라! 열지 않는다면 강제로 열도록 하겠다!"
"신분패를 제시하십시오! 신원증명이 절차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설령 천무맹주라해도 이곳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뭐라!? 이노오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선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를 들먹이며 하는 말에 분노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비천한 문지기 따위가 어찌 위대한 영웅을 들먹인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네놈이 관을 봐야 정신차리겠구나!"
이재선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저 건방진 문지기의 뺨을 후려갈길 심산이었다.
"대주......일단 협조를 하시는게...."
그때 옆에 있던 부대주가 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철없는 도련님으로 인해 일이 커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맹주께서 모욕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아니...엄연히 말하면 모욕이....."
"천무맹주는 무림을 구한 영웅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이라는 말이다! 그런 대영웅을 존경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가 어찌 모욕이 아니겠는가!"
말을 마친 이재선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문지기를 향해 걸어들어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뚝
이내 이재선은 문지기의 코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보거라."
이재선은 흉신악살처럼 인상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신원이 증명되지 않으면 누구도 이 문을 통과할 수 없소이다!"
짜악
그때 이재선이 손을 들어 문지기의 뺨을 후려쳐버렸다.
휙
문지기의 얼굴이 옆으로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다시 지껄여보거라."
"신원이 증명되지 않으며..!"
짜악
"다시 말해보거라."
"신원이..."
짜악
"다시."
이재선은 몇 번이고 뺨을 때리며 묻고 또 물었다.
언제까지 모가지가 뻣뻣할까 지켜볼 심산이었다.
짜악 짜악 짜악
찰진 타격음이 얼마나 울렸을까
이내 수문위사 당훈의 뺨은 처참하게 변하고 말았다.
피부가 터져 새빨간 속살이 드러났고
드러난 속살에서 끊임없이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흘러나온 핏물은 얼굴 전체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네놈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소권룡이라는 말은 들었소."
"맞다. 그런데 지금 대체 뭐하는 짓이더냐?"
".......그저 본분을 다하는 것 뿐이오."
"본분을 다하는게 날 막아서는 것인가?"
"신원.....증명이 없다면....출입 또한 없소....이는 당가에서 정한 규율이오.."
"그 규율이 천무맹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하오!"
그의 말을 들은 당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답을 하였다.
"하아...."
그 말을 들은 이재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이 더욱더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천무맹보다 당가를 위로 두다니
어찌 이리도 몰상식한 말을 한다는 말인가
"야, 그냥 더 맞자."
이재선은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미친놈에게는 매가 전부라고 하던가
이 몰상식한 놈에게는 아무래도 큰 매가 필요한듯 싶었다.
부웅
이재선은 내력을 담은 후 손을 휘둘렀다.
그의 돌덩이같은 손바닥이 그대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덥석
그때 갑자기 날아가던 손바닥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손목이 잡히며 제지당한 까닭이었다.
'뭐..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이재선은 눈이 휘둥그레하게 바뀌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손버릇이 나쁘네."
그때 날카롭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이재선의 귓가에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마치 북풍한설처럼 냉막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재선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옆으로 슬쩍 돌렸다.
그리고 이내 경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