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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664화 (665/1,419)

〈 664화 〉 665. 마음껏 울어도 돼요

".....쓰레기도다."

능소화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북풍한설 같았다.

"쓰레기."

그리고 옆에 있던 요랑 또한 그녀를 따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영물인 그녀의 입장에서 봐도 명백한 쓰레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말....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은 것인가? 북궁연은 이미 출산을 마치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을 것이다."

"..........그게...말이야......요근래...바쁘기도 했고.....북해까지...인편이 닿지도 않았고..."

"전부 핑계로다. 인편이 닿지 않긴 왜 안닿는단 말인가? 북해로 가는 상단이 몇개나 있는데? 그대는 그저 까먹은 것이다. 그대의 아이를 품은 북궁연과 그대의 아이 모두 말이다."

능소화는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반박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약속하지 않았던가? 반년 안에 돌아오겠다고? 근데 그 약속을 지켰는가?"

"..........그.......갑자기 소집되는 바람에..."

선우는 나름의 변명을 내뱉었다.

반년 안에 돌아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이재원은 후계 경쟁에 참전할 후기지수들을 미리 소집하였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제안을 거절했다간 그의 눈밖에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해도 서신정도는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북궁연은 그저 그대가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능소화는 따가운 시선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앙숙처럼 싸웠던 북궁연이었지만

선우의 무심한 행태를 보니 오히려 그녀에게 동정이 갔다.

같은 여자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 또한 치솟았다.

어찌 이리도 무신경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새로 마누라를 늘리고 여자를 꼬시는 동안 북궁연은 그대의 아이를 잉태한 채 하루하루 그대가 돌아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반년 안에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아이를 직접 안아주겠다는 약속을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북해를 떠난 지 벌써 열달이 넘었다. 그런데 서신조차 남기지 않다니? 어찌 그리도 무심하다는 말인가! 반성하거라!"

능소화는 흥분한듯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차분한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

선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가 쓰레기 같다는 자괴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연아한테 너무 미안해에......그리고 내 아이에게 너무..미안해.."

선우는 축 처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능소화의 꾸짖음에 자신의 허물을 제대로 인지한 까닭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잉태해준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아 세상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분신이다.

그런 이들을 배려조차 하지 못하였다.

잘지냈는지

괜찮은 것인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무엇하나 묻지 못하였다.

'난 쓰레기야...'

우울감과 자괴감이 미친듯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아껴주고 사랑해주겠다고 약속했건만

그런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선우."

능소화는 말없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를 불렀다.

"......응."

선우는 축 처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녀 또한 같은 상황이었다면 무척이나 섭섭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응,"

"그리고 이 감정은 북궁연 또한 똑같을 것이다."

"..응"

"이번 일이 그대의 잘못이란 걸 알겠는가?"

".....응."

"그렇다면 이제 뭘 해야할지도 알겠는가?"

능소화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응."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성큼 성큼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선우는 문쪽을 향해 그대로 걸어갔다.

끼이익

그다음 문을 열고 곧바로 나가버렸다.

뒤도 안돌아본 채 말이다.

"선우, 어디로 가는거야?

그 모습을 지켜본 요랑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능소화에게 물었다.

"할 일을 하러 간 것 뿐이리라."

"할 일?"

"그렇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말이다."

능소화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요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쓰윽 쓰윽

집무실에 앉은 선우는 화선지에 몇 번이고 붓질을 하였다.

와락

그리고 이내 화선지를 와락 구겨버린 뒤 그대로 뭉쳐 바닥에 던져버렸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쓰윽 쓰윽

선우는 다시금 붓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에 차는 글이 나올 때까지 쉴새없이 말이다.

"하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써재껴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북궁연 입장에서는 산채로 튀겨도 모자를 정도로 죄인이나 다름없는 입장이었다.

그녀가 임신과 출산하는 동안 곁을 지켜주지 않았다.

그저 방치한 것이다.

현대였으면 꼼짝없이 이혼사유가 될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쓰윽 쓰윽

선우는 몇 번이고 쓰고 또 썼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올 때까지 말이다.

"이게 아니야!"

찌이익 찌이익

하지만 이내 선우는 화선지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마음에 드는 문장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북궁연에 대한 미안함이 도저히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새끼."

선우는 찢어진 종이를 바라보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완전히 잊은 채 희희낙락 지냈던 자신이 말이다.

쓰레기 같았다.

너무 쓰레기 같아 과거의 자신을 줘패고 싶었다.

항상 이재원을 쓰레기라며 비난하였던 자신이었건만

지금 보니 이재원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마누라를 방치한 건

자신이나 이재원이나 매한가지였으니 말이다.

아니 자신이 더 질이 나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이재원도 제 자식을 출산할 때는 제 마누라 곁을 지켜줬을테니 말이다.

"하아아아....."

선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 있는 감정의 응어리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게 우울함에 빠져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십니까?"

선우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예요. 상공."

그러자 바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 일이지?'

그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들어와."

선우는 이내 방문을 허락하였다.

끼이이이익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곧바로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문 안에서 품격이 절로 묻어나오는 귀부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녹옥으로 만들어진 옥비녀로 고정한 머리.

자애로움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눈망울

잡티는 물론 주름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오똑함은 잃지 않은 콧대

묘한 색기가 느껴지는 붉은 입술

도자기처럼 나올 데 들어갈 데가 명확히 구분되어있는 아름다운 몸매를 갖춘 여인.

당대부인 운가려였다.

"상공을 뵙습니다."

집무실로 들어온 운가려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었다.

"왔어?"

선우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반겼다.

기분이 영 좋진 않았지만 사랑스러운 그녀 앞에서 티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공,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때 운가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응? 무슨 일? 아무 일도 없는데?"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모른 척을 하였다.

괜스레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긴요.....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시면서.."

운가려는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울어?......내가?"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반문하였다.

울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니?

선우는 다급히 손을 올려 입매를 만지작 거렸다.

자신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이번에는 눈매를 만지작거렸다.

눈꼬리 또한 반달처럼 휘어있었다.

완벽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울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상공........무슨 일인가요?"

".....아니야..아무 일도....없었어.."

선우는 애써 부정하였다.

그녀가 떠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저벅 저벅

그때 운가려가 선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앞에서 걸음을 멈춘 뒤

선우의 눈동자를 올곧은 시선으로 응시하였다.

"상공, 제 눈을 보면서 얘기해주세요."

".......보고 있어."

"자꾸 피하고 계시잖아요.....제대로 봐주세요."

".....알았어.."

이내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였다.

그러자 올곧으면서 아름다운 운가려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나요?"

운가려는 선우의 눈을 응시하며 물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무 일도...없어."

선우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른 채 말이다.

"거짓말."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단호한 말이 내뱉어졌다.

"거..짓말이 아니야."

"지금 상공의 눈빛이 쉴새없이 떨리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이 아니라뇨?"

그녀는 되려 선우에게 물었다.

"....진짜로...아무것도.."

"상공."

운가려는 선우의 말을 그대로 끊어버렸다.

아니라고 피력할 게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말해주세요."

그녀는 자애로운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전 상공의 편이랍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그 미소를 마주한 선우는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였다.

그 어떤 것이라도 포용해줄 것 같은 거대한 자애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 눈빛에 빠져버린 것일까

선우는 지금 껏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북궁연에 대한 이야기

북해를 떠나기 전 북궁연과 했던 약속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들

주색잡기에 빠져 북궁연을 까맣게 잊었던 일들 등

그간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차례차례 나열하였다.

더불어 느끼고 있는 감정들까지 모두 토로하였다.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고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지

그녀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말이다.

운가려는 그런 선우의 말을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듣기만 하였다.

어떠한 말도 없이

그의 말이 모두 끝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된거야."

이야기를 끝 마친 선우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운가려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말로 내뱉으니 감정이 더욱더 과잉되었기 때문이었다.

"상공."

운가려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를 불렀다.

"........응."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와락

그때 운가려가 갑자기 양팔을 벌리더니 이내 선우를 품 안에 안았다.

꼬오옥

그리고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꼬옥 안아주었다.

".......!"

갑작스레 껴안긴 선우는 감정이 북받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따뜻한 품이 마음의 긴장을 쉴새없이 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울...울면 안돼.....울면..안돼..'

선우는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까딱하면 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왜..그래."

선우는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가득 차 있었다.

"울고 싶을 땐...울어도 돼요."

그때 선우의 귓가에 운가려의 따스한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온기가 느껴질 만큼 따스한 목소리가 말이다.

"아....니...그게..무...슨..소리야."

"참는게 능사가 아니랍니다. "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상공은 지금껏 쭉 참아오셨잖아. 슬플 때도 화날 때도 서운할 때도 아플 때도...그러니 오늘은 조금만 울기로 해요......맺힌 감정이 날아갈 정도로만 말이에요."

운가려는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자애로운 말이 꾹 꾹 눌러담고 있던 감정을 그대로 터트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주르륵

선우는 쉴새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마음 속에 담긴 응어리를 전부 풀어내듯이 말이다.

"마음껏 울어도 돼요....이곳에는 저와 상공밖에 없으니까요."

꼬옥

운가려는 울고있는 선우를 더욱더 꼬옥 끌어안았다.

쓰담 쓰담 쓰담

그리고는 부드럽게 그의 머릿결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나..쓰레기지?....나...진짜..나쁘지?....."

선우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에요.....그렇지 않아요....잠시 잘못을 한 것 뿐이랍니다.."

운가려는 그런 선우를 달래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해요. 정말 중요한 건 그 잘못을 반복치 않는 거랍니다."

운가려의 자애로운 목소리가 선우의 귓가에 울리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와 품을 느끼며 그대로 숨을 죽여 울었다.

감정이 해소 될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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