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2화 〉 643. 4885.........너지?
"말벗이나 하며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십니까?"
선우가 살혼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살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눈..눈치 챈건가?'
불안감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혹여 눈치챈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말이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랬으면 곧바로 나를 속박했을거야.'
살혼은 그럴 리 없다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만약 눈치를 챈 것이라면 곧바로 자신을 속박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지?'
살혼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평소 당소가 장선우에게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급이 같은 동료들과는 달리 장선우는 그의 상급자였다.
그런 자에게 동료들과 다를 바 없이 대했을 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저자세를 취할 수도 없었다.
당소가 더러운 성질머리를 어느 정도까지 죽였을 지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하지.......어떻게 해야하지...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살혼은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최적의 반응을 생각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민을 하였을까
이내 살혼은 결론을 내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몸이 좋지 않아서."
살혼은 무척이나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선우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욕을 먹더라도 그와 최대한 멀어지는 것을 택한 것이다.
"어디가 안좋으십니까?"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예에, 아무래도 속이 더부룩한게 영 좋지 않습니다."
살혼은 아픈듯 얼굴을 찡그리고 배를 어루만지며 입을 떼었다.
"그럼 제가 한 번 봐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살혼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아..아니...괜..괜찮습니다. 의각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선우가 다가오자 살혼은 손사래치며 거절을 하였다.
"웬만한 의원보단 제가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마시지요."
성큼 성큼
말을 마친 선우는 살혼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런 제기랄'
그가 다가오자 살혼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실책이었다.
장선우가 당가 출신의 무인이라는 특수성을 새까맣게 잊은 자신의 실책말이다.
당가 출신 무인들은 기본적으로 의술을 겸비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을 다루는 이들이었기에
언제든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장선우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독왕의 제자라는 신분을 가진 이상
그가 가진 의술은 웬만한 명의 못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 그의 앞에서 고통을 토로하다니
나 좀 봐주십시오하고 간곡히 부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디 배를 한 번 까보시지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선우가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살혼은 그런 선우의 호의를 필사적으로 거절하였다.
현재 자신의 단전에는 흑암잔혈마기가 가득 담겨져있는 상태였다.
만약 여기서 장선우에게 몸을 맡겼다간 꼼짝없이 정체를 들통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함부로 배를 내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배를 까지 않으면 진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너무 실례라서...저는....의각으로.."
살혼은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도저히 괜찮은 핑계거리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관없습니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많은 이들을 널리 이롭게 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같은 세가원이라면 그런 의료를 나누는데 인색해서는 안되지요."
선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대협으로서의 풍모가 절로 느껴지는 말이었다.
'염병할 새끼, 진짜'
그리고 그런 선우의 말은 살혼을 더욱더 난감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명백히 상급자인 장선우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절을 한다면 분명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하급자인 자신에 대한 부자연스러움을 느낄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배를 내줄 수도 없었다.
만약 배를 내주었다간 단전에 있는 마기가 잠식되어있다는 것을 들키게 될 것이다.
그럼 정체가 드러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정파의 동량이라는 작자가 마기를 품고 있으니 말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젠장할 젠장할'
살혼은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깊은 고심에 잠겼다.
어떻게든 이 개같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서 배를 내보이시죠."
그때 귓가에 재촉을 하는 장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르륵
살혼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하였다.
재촉하는 그의 목소리가 마친 사신의 속삭임처럼 들려온 까닭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우님."
살혼은 다급히 사과를 하였다.
"네에?"
그의 사과를 들은 선우는 의아한듯 그에게 되물었다.
갑자기 사과하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선우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부디 벌해주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선우님을 데려다주는 것이 번거로워 아프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살혼은 죄송스러움이 가득 담겨있는 표정을 지은 채 정중히 사과를 하였다.
"허허허"
그 말을 들은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설마하니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프다는게 전부 거짓말이다. 이런 말이십니까?"
선우는 담담한 시선으로 살혼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렇습니다......정말....죄송합니다."
살혼은 선우에게 연신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슬며시 눈을 올려 선우의 반응을 살폈다.
".....흐음."
사과를 들은 선우는 짐짓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거짓말을 한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생각에 잠긴듯 하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배려가 부족했던 거 같군요."
그리고 이내 선우는 살혼을 바라보며 정중히 사과하였다.
'됐어!'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살혼은 쾌재를 불렀다.
사태가 대충 수습된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니지요."
그때 선우가 뒤이어 섬뜩한 말을 덧붙였다.
"어..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살혼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그 말, 진심입니까?"
살혼의 말을 들은 선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네?"
"정녕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말씀입니까?"
선우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살혼은 마지못해 그의 말에 수긍을 하였다.
차마 못한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그의 대답을 들은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거짓말을 한 처벌로 제가 안쪽에 있는 고문실까지 가는 동안 말벗이 되어주시지요."
"말..말벗 말씀입니까?!"
"네에, 그정도면 거짓말에 대한 댓가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선우는 인심 쓰듯 말을 이었다.
'젠장 맞을 새끼! 무슨 애새끼냐? 혼자서도 못가게?'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살혼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떻게든 자신을 끌고가려는 장선우의 집요함에 짜증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제놈이 무슨 애새끼란 말인가
어찌 혼자서 걸어가는 것조차 못한다는 말인가
당장에라도 저 미성숙한 개새끼의 대가리에 칼을 꽂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참자..참자...참자..'
하지만 이내 살혼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흥분해봤자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선우는 강하였다.
자신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말이다.
그런 장선우를 본래 몸도 아닌 갈아탄 몸으로 상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참아야했다.
당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는 말이다.
'당가 밖으로 나가 원래 무력을 되찾는 즉시 네놈의 소중한 이들을 전부 몰살시켜주마!'
살혼은 조용히 가슴 속에 깊은 살심을 품었다.
장선우는 무리지만 그의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자신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은 죽음의 신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이내 살혼은 선우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제안에 수긍을 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같이 걸어가시죠."
그의 대답을 들은 선우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말벗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오른듯 싶었다.
'처죽일 새끼.'
살혼은 그런 선우에게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다짐하였다.
어떻게든 탈출하여 그에게 피에 젖은 복수를 이룩하겠다고 말이다.
***********
저벅 저벅
두 남자가 좁디 좁은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이거 생각보다 멀군요."
선우는 옆에서 걷고 있는 살혼을 슬쩍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무래도 내밀함이 강조되는 곳이니까요.."
"것도 그렇군요."
선우는 수긍하듯이 말을 이었다.
"힘들겠습니다. 이렇게 먼거리를 매일 왔다갔다해야하니 말입니다."
"간수로서..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명감이 넘치시군요."
선우는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러보니 저번에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아이라뇨?"
"그 있잖습니까, 금화루에서 만났다는 운명의 여인 말입니다."
"아..아아아..금화루의 그 아이 말씀입니까?"
선우의 물음에 살혼은 아는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네에, 분명 잘될 것 같다고 몇 번이고 강조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군요."
살혼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개인사 부분은 물어볼 수록 곤란하였다.
당소에 대해서 아는 게 무엇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소는 얘기가 길어지기 전에 적절히 처내버렸다.
잔뜩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저런....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드렸군요."
선우는 죄송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사과를 하였다.
실례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닙니다....이미 지난 일입니다."
살혼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이정도로 분위기를 조져놨으면 아가리를 닥치고 있겠지?'
살혼은 생각하였다.
이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면 저 수다쟁이새끼도 아가리를 닫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 그러보니 도반삼양귀원공의 성취가 오성 정도라고 하셨지요?"
"....아...예에..그러했습니다."
"제가 언제 한 번 무공이라도 봐드릴까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복할 따름입니다."
살혼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었다.
물론 그는 도반삼양귀원공이 정확히 무슨 무공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오성 언저리라면 초라한 당소의 무공실력과 엇비슷할 것 같았기에 그저 수긍만하였다.
"이거 시간을 한 번 맞춰봐야겠습니다."
"언제든 편하실 때 말씀해주십시오."
"하하하 알겠습니다. 조만간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선우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저번에......."
선우가 다시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살혼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저 수다쟁이는 입을 다물 심산이 없는듯하였다.
.
.
.
그렇게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을까
"그러보니 4885말입니다."
대충 대답을 하고 있던 살혼의 귓가에 의미심장한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네에."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선우는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살혼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글...글쎄요."
살혼은 짐짓 모른 척을 했다.
"제 앞에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었다.
"눈은 투과할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흑건으로 덮여있고 입을 강철로 만든 재갈이 물려있으며 팔다리는 한철로 만든 족쇄로 구속되어있습니다. 일반적인 죄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처사이지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입을 떼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대체 어째서 그를 그렇게 가혹하게 몰아붙이는지 말입니다."
선우는 재밌다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쓸..쓸데없는 호기심은 화를 부르는 법입니다."
살혼은 그런 선우의 제안을 곧바로 거절하였다.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간 무언가 잘못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보통 사이가 입니까? 이정도 비밀정도는 충분히 공유할 수 있습니다."
살혼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선우는 손사래치며 입을 떼었다.
어떻게든 말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정...정말...괜찮습니다...전혀 궁금치 않습니다."
"이거 참 되려 궁금하군요. 어째서 이렇게 궁금해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가 재차 거절하자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그게 무슨.."
"4885가 누군지.........어째서 그렇게 처참하게 구속되어있는지 말입니다."
선우는 날카롭게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무..무슨..소리인지..저는 잘.."
"아!"
그리고 이내 선우는 깨달은듯 탄성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알 수밖에 없겠군요."
선우는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본인이 스스로가 당사자일테니까요."
"..............."
"4885.........너지?"
선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살혼을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살혼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치솟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