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3화 〉 624.새로운 시대에 두고 왔습니다.
"그 팔은 대체 어떻게 된건가?"
윤제겸은 비어있는 이재원의 왼팔을 가리키며 말이다.
".........."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윤제겸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장선우에 의해 팔이 잘렸다는 사실은 온 무림에 퍼질대로 퍼진 상태였다.
윤제겸도 이를 알고 이것저것 딴 얘기를 한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그게 아닌듯 싶었다.
'시발....'
이재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팔이 잘린 이유를 스스로 설명해야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물밀듯이 몰려온 까닭이었다.
"이거 말입니까?"
이재원은 비어있는 왼팔에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두고 왔습니다."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새로운 시대?"
그 말을 들은 윤제겸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친구가 팔을 내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미련없이 내주었습니다."
이재원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언뜻 보면 꽤나 유쾌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좀더 자세히 풀어서 말해보게나."
그 말을 들은 윤제겸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며칠 전 천무맹에서 후계 경합이 열린 사실에 대해 알고 게십니까?"
"그게 이번 달이었나? 몇 달 전 언뜻 들은 기억이 있긴 하네만."
"거기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말입니다."
이재원은 아련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새로운 시대라......너무 포괄적이라 의미가 혼동되는 구만."
그 말을 들은 윤제겸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말하였다.
뭔가 있는 척 뜬구름 잡으며 개소리를 하는 이재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듯하였다.
'무식한 영감탱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속으로 윤제겸을 씹어대었다.
이렇게 멋지게 비유했으면 대충 알아들어야할 것이 아니던가
꽤나 유명한 대사를 오마쥬했건만 짱개라 그런지 이해력이 딸린듯하였다.
여기서는 후회가 없다면 그걸로 족하겠지
라고 하며 넘어갔어야했다.
그게 맞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개한 짱개에게 그런 로망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듯하였다.
'내가 이해해야지.'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아량 넓은 자신이 이해를 하자고 말이다.
저 영감탱이가 짱개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겠는가
태어나보니 미개한 짱개인걸 어찌한단 말인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이재원은 윤제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언급한 새로운 시대입니다."
".......천..하..제일인.."
윤제겸은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듯하였다.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말이다.
"그 말은...자네가 패배하였다는 말인가?"
윤제겸은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그렇습니다. 일말의 변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패배를 하였습니다."
이재원은 무척이나 시원스럽게 말을 이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호협처럼 말이다.
"믿을 수 없군."
그 말을 들은 윤제겸은 고개를 좌우로 살며시 저었다.
이재원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듯이 말이다.
"하하하하하.그러게 말입니다..저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재원은 유쾌한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 맹주! 지금 웃음이 나오는가? 자네 지금 팔을 잃었다네! 그런데 어찌 웃는다는 말인가!?"
윤제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까?"
"뭐라?"
"본디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려나는 법이지요. 저는 그저 밀려났을 뿐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말입니다."
이재원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후회는 없는가?"
"무엇이 말입니까?"
"팔을 내어준 것에 말일세."
"후회 따윈 없습니다. 무인으로서 그저 강자에 패배한 것 뿐이니까요."
이재원은 올곧은 시선으로 윤제겸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어마어마한 후회를 하였다.
후회를 넘어 살심을 품고 장선우를 죽이려고 직접 찾아가기까지 하였다.
자신의 팔을 자른 씹새끼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재원은 그런 자신의 속내와 행적을 모두 숨겨버렸다.
그리고 초탈하고 수양이 깊은 맹주를 연기하였다.
완벽한 이미지 구축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정도면 넘어오겠지?'
이재원은 기대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생각해도 완벽한 대인배의 모습이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에 윤제겸 또한 감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주는 실로 대인배로군."
윤제겸은 감탄했다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크흐흐흐 그래, 이거지.'
이재원은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원하던 반응이 나와 절로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과찬입니다. 그저 한 명의 무인일 뿐이지요."
이재원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대체 어느 무인이 팔이 잘리고 평정을 유지하겠는가? 충분히 대인이라고 칭할만 하다네."
"하하하하하 자꾸 띄워주니 괜스레 부끄럽군요."
이재원은 유쾌한듯 웃음을 터트렸다.
칭찬타임을 슬슬 끝낼 심산이었다.
"그나저나 선배님께서는 천무맹에 어쩐 일로 오시게 된 것입니까?"
"소식을 들었다네."
이재원의 물음에 윤제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소식이라뇨?"
이재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교가 준동을 하여 무고한 이들을 무참히 살해했다지?"
"......아니 그걸 알고 계셨습니까?"
이재원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그에게 물었다.
자신이 팔이 잘렸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던 주제에 산동혈사에 대해서 어찌 안다는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슨 소식을 지 좋은 것만 선택적으로 듣는다는 말인가
"며칠 전 구씨세가를 찾아갔었네. 오랜 친우를 보기 위해서였지."
이재원의 물음에 윤제겸은 아련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봤다네. 불타고 재만 남아있는 구씨세가의 터전을 말일세."
윤제겸은 침중하기 그지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없더군..아무것도...그 친구와 마주 앉아 술을 나눴던 정자도......같이 검을 나누며 무리를 나누었던 연무장도...........손녀딸의 재롱을 보던 넓은 대전도 모두 말일세.......그저...그저..잿더미 뿐이더이."
윤제겸은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근처에 있던 이들을 붙잡고 다급히 물었지.......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어째서....내...친우의...집이.......내....소중한 전우의 집이 불타 없어졌냐고 말일세."
윤제겸은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네.....마교가 준동하여 내 소중한 친우의 가문을 멸문시켰다는 사실을 말일세."
윤제겸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재원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눈빛에는 울분과 슬픔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복잡하게 혼재되어있었다.
'맞다.....이새끼....구강태랑 친구였지.'
그 윤제겸의 뜨거운 눈빛을 마주한 이내 이재원은 떠올릴 수 있었다.
윤제겸이 구씨세가의 태상가주였던 구강태의 친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둘은 정마대전 당시
흑월당의 당주와 부당주로서 수많은 마귀들을 휩쓸고 다녔던 둘도 없는 전우이자 맹우였다.
그렇기에 이해가 되었다.
소식이 어두운 그가 어떻게 마교 준동에 대해 전해 듣게 되었는 지 말이다.
'흐흐흐흐..럭키세븐인데?'
이내 이재원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친우의 죽음을 알게된 것이라면 그를 꼬여내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이재원은 윤제겸을 바라보며 사과를 하였다.
"구 선배가 돌아가신 건 모든 제 불찰입니다."
이재원은 송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함이 절로 묻어나는 모양새였다.
"고개를 들게. 맹주. 어찌 그게 그대의 잘못이란 말인가."
"아닙니다.....구씨세가는 천무맹의 코앞에 위치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멸문지화가 일어났는데...눈치 못챘다는 건 제게도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재원은 더욱더 고개를 숙이며 거듭 사과를 하였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죄책감에 고개를 못드는 것처럼 보일 것이리라
"아닐세.....잘못은 마교의 저 추악한 마귀들이 잘못했거늘...어찌 맹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일세...어서 고개를 들게나 맹주."
".......선배님.."
이재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슬픔이 가득 담겨있는 표정으로 윤제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중요한건 그들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네."
윤제겸은 그런 이재원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본노와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네. 그렇지 않으면 정마대전을 선포하지 않았을테니 말일세."
"누구보다 소중한 맹의 전우들입니다...어찌...복수를 꿈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본노 또한 이번 복수에 동참을 하고 싶다네."
윤제겸은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선배님......"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안타까운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께서는 이미 금분세수를 하신 몸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복수행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무림에서 금분세수가 가지는 의미는 모든 은원을 끊고 강호를 은퇴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상황에서 복수행에 동참하겠다는 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명성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재원은 말리는 시늉을 하였다.
"누구보다 소중한 친우가 목숨을 잃었네. 그의 아들 ,며느리, 손녀가 처참하게 능욕마저 당하였네. 그런데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
윤제겸은 올곧은 시선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만약...이번 복수행에 동참하신다면....선배님의 명예가...."
이재원은 걱정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금분세수를 하고 세상을 겪으며 깨달은 바가 있네. 명예라는 건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일세. 명예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차가운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할 수도 없고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에 몸을 시원하게 할 수도 없으며 배를 부르게 할 수도 없다네. 또한 몸을 가려줄 수도 없고 교감마저 나눌 수 없다네."
윤제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걸 내가 뭣하러 신경 쓰겠는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것을.......만약 그 명예라는 것이 내 복수를 막아버린다면 본노는 과감히 명예를 저버리겠네."
윤제겸은 단호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배."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감격했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완강히 말씀하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군요."
이내 이재원은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으로 윤제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맙네! 고마워! 정말 고맙네.맹주."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윤제겸은 감격한듯 그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하였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지요. 선배님...감사합니다. 흔쾌히 정마대전에 나서주셔서요."
"아닐세, 오히려 고마워 할 사람은 나일세. 이렇게 자네 덕분에 복수의 기회를 잡이 않았는가?"
윤제겸은 거듭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복수의 기회를 잡은 건 접니다. 선배님의 존재는 맹의 큰 전력이 될 것입니다."
"내 발목 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이내 두 사람의 얼굴에는 의욕이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서로 원하는 바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재원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슬슬 늙은이 상대하는 게 지쳐 도망칠 심산이었다.
"그렇게 하세. 내가 바쁜 사람을 너무 붙들고 있었구만."
윤제겸은 미안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이렇게 가게 되어 죄송하네요."
"개의치 말게나. 그대는 맹주가 아닌가? 바쁜게 흠은 아니지."
윤제겸은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재원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이재원은 살짝 목례를 하고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윤제겸은 그런 이재원의 뒷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쭉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우우웁."
이내 윤제겸은 입안에서 무언가 차오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웨에에에에엑!"
그리고 이내 바닥에 토사물을 뱉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마어마한 역겨움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아...하아...우웁.."
다시금 토악질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의 행태가 너무나 역겨운 까닭이었다.
역겨웠다.
자신의 손녀딸을 간살한 주제에
마치 존경하는 선배를 보는듯이 반기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자신의 친우는 물론 그의 식솔들까지 잔인한게 몰살시킨 주제에
슬픈 척 연기를 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이 말이다.
"우웨에에에에에엑!"
윤제겸은 토하고 또 토하였다.
몸속에 있는 역겨움이 어느정도 가실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토악질을 했을까
"...........이재원."
윤제겸은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에는 고요한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