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7화 〉 618.그에게 영구 퇴출을 명하는 바이오.
"하오나 맹주!"
이대곤은 억울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언성을 높였다.
"천하제일인이기에 더욱더 필요한게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그를 강제할 수단따윈 없소. 명예에 연연하지도 않고 협을 숭상하지도 않으며 사문도 가족도 연인도 없는 자이오. 그런 그를 어찌 강제할 수 있겠소?"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내 보건대 활빈당주는 이번 사태를 빌미로 그에게 빚을 지워둘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맞소?"
"............."
이재원의 말을 들은 활빈당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싶구려. 그는 누를 수록 튀어오르는 본성을 가진 자이오. 그런 자를 법으로 강제한다고 한들 스스로가 불합리하다고 여긴다면 분명 어마어마한 반발이 일어날 것이오. 심할 경우 그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오."
이재원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끝내기로 합시다. 그대의 의견을 수렴하여 벌을 주되 그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그치도록 하세."
".........."
그 말을 들은 이대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납득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애써 부정해왔던 사실들을 말이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장선우를 어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팔복당주."
이대곤이 말이 없자 이재원은 고개를 슬며시 돌려 허삼관을 바라보았다.
"말씀하시지요."
허삼관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물었다.
"그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다는 그대의 의견 또한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오. 초월적인 무력을 갖춘 그에게 만약 실수라도 한다면 천무맹에는 마교가 아닌 또다른 적이 생길 수 도 있을테니까 말이오. 하지만 그렇다해서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 유야무야 넘어가는 건 맹주로서 용납할 수 없소."
이재원은 올곧은 눈빛으로 허삼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법이란 만민에게 평등하고 공평해야만 그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오. 두렵다하여 무섭다하여 거슬리기 싫다하여 봐준다면 누가 맹법을 지키려고 하겠소? 이는 맹주로서도 맹원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허삼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무맹의 창립이념이 무엇이오? 협을 숭상하고 협을 행하는 정의구현단체가 아니오. 만약 이 사태를 유야무야 넘긴다면 이는 천무맹의 창립이념인 협과 정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오."
"..........."
"그렇기에 본 맹주는 그에게 가장 적법한 처벌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오. 모든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적정한 벌을 말이오. 그러니 이쯤하셨으면 하오. 본 맹주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오."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재원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을 하였다.
이재원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되었네."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다음 천천히 시선을 돌려 좌중을 바라보았다.
"혹여 다른 이견이 있는 자가 있는가?"
그리고 물었다.
또다른 의견이 있는지 말이다.
"..............."
그런 이재원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장 내에는 침묵만이 감돌 뿐이었다.
"좋소, 그럼 결단을 내리도록 하겠소."
장내가 조용하자 이재원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본 맹주는 이번 사태를 그냥 묵과할 생각이 없소! 정파의 동량이라는 작자가 분노라는 감정에 휘둘려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기 때문이오! 지금 피해자들은 외상 후 정신적 충격에 빠져 아직도 침상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오! 그런데 어찌 이런 사건을 묵과할 수 있겠소! 그는 맹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 마땅하오. 하지만 그 또한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오!"
이재원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그의 처소 앞에 진을 치고 사흘밤낮으로 고성방가를 하며 그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었소. 이는 무례를 넘어 무도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 장선우의 분노 또한 충분히 참작할 수 있는 바이오. 게다가 당시 천무맹은 그런 그들이 장선우를 자극하고 있음에도 침묵하고 모른 척을 하였소. 이 사안에 대해선 천무맹 또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오."
이재원의 힘있는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기에 본 맹주는 피해자들과 맹의 잘못을 모두 참작하여 그에게 영구 퇴출을 명하는 바이오. 그는 다시는 천무맹에 발을 디딜 수 없으며 천무맹에 관한 어떠한 일도 관여할 수 없소. 또한 천무맹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으며 천무맹 또한 그에게 관여를 하지 않을 것이오!"
이재원은 얌전히 앉아 있는 수뇌부들을 둘러보며 선언하듯 말하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재원의 선언이 끝나기 무섭게 수뇌부들은 일제히 답을 하였다.
동의를 한 것이다.
이재원의 판결에 말이다.
씨익
그리고 그들의 대답을 들은 이재원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후우...후우."
당진설은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찻잔에 입김을 불었다.
그다음은 찻향을 맡은 뒤 천천히 흡입하기 시작하였다.
꿀꺽
따뜻한 차가 목구녕을 지나갈 때마다 꽤나 안락한 느낌이 나기 시작하였다.
'꽤나 상등품이구나.'
그리고 생각하였다.
찻잎이 상등품의 물건이라고 말이다.
찻향부터 시작해서 맛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루룩
그녀는 다시금 차를 음미하였다.
이번에는 맛에 집중해볼 요량이었다.
저벅 저벅
그때 그런 그녀의 귓가에 경쾌한 발걸음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탁
그 소리를 들은 당진설은 그대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문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벌컥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백의를 입고 있는 무척이나 익숙한 인상의 중년남자.
그녀의 남편이자 천무맹주인 이재원이었다.
"오셨나요?"
그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당진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됐소이다, 앉아 있으시오."
그녀가 일어나자 이재원은 손사래치며 그녀에게 앉기를 종용하였다.
성큼 성큼
털썩
그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그녀의 맞은편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차 한 잔 주시겠소?."
이재원은 맞은편에 있는 당진설은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 차 있었다.
쪼르르르
"가신 일이 잘되셨나봐요?"
당진설은 곧바로 찻잔에 차를 따르며 그에게 물었다.
"잘됐냐고? 그냥 잘된게 아니오! 완벽하였소!"
이재원은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부인! 그대는 천재이오! 진실로 천재임이 틀림없소! 어떻게 그 새끼들 반응까지 다 알 수 있는 것이오?"
이재원은 놀라움이 가득 담겨있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직접 겪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게 그녀의 말대로였다.
팔복당주 허삼관의 주장도
활빙당주 이대곤의 주장도
또한 그들의 반응조차 모두 그녀의 예측대로였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치 예언자 같았다.
모든 것을 다알고 있는 예언자말이다.
"뻔헀으니까요."
당진설은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선 수뇌부들은 너무나 뻔하였다.
뻔해도 너무 뻔한 것이다.
예측조차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이재원의 감탄에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대는 정말 대단한 여자이오....당부인."
이재원은 감탄한듯한 표정으 지으며 그녀를 칭찬하였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이재원의 거듭되는 칭찬에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장선우를 퇴출이 결정이 된건가요?"
"그렇소. 그대의 말대로 하니 모두가 동의를 하였소. 그대는 정말 대단하오."
이재원은 감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읊어준대로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지껄였던 이재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수뇌부들 전체에게 먹혀들었다.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에요. 맹주께서 잘하신 걸 어찌 제 칭찬을 한다는 말인가요."
당진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오?"
이재원은 이해가 안된다는듯한 표정으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모든 판을 짠 건 그녀이건만 어찌 자신이 잘했다는 칭찬을 한다는 말인가
"말이라는 건 본디 그만한 영향력을 갖춘 이가 말했을 때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랍니다. 맹주가 아니었다면 제 말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었겠어요."
당진설은 뱀처럼 요사스러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흐음...확실히...본 맹주가 말하였기에 그런 설득력을 발휘했던 걸 수도 있었겠군."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모든 판을 쥐고 흔든 당사자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씀이에요. 맹주가 없었다면 소첩은 그저 아녀자에 불과했답니다."
"하하하하하....그대는 참으로 사람을 기분좋게하구려."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절로 자존감이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부인, 내 궁금한게 있소."
한참 웃음을 터트리던 이재원은 이내 정색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말씀하시지요."
그의 말에 당진설은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장선우가 순순히 나가겠소?"
이재원은 의문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수뇌부들 앞에서야 자신있게 그가 나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그였지만 그 속내는 의문이 가득 차 있었다.
과연 그가 나가라고 했다고 나갈까라는 의문이 말이다.
"나갈거예요."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확신에 찬듯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어찌 그리 확신하시오?"
이재원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장선우가 시위 현장에서 재밌는 말을 했다는 걸 아시나요?"
당진설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재밌는 말?"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한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그가...........그런 말을 하였소?"
이재원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네에, 시위에 참가했던 이에게 그대로 전해 들은 내용이에요."
그의 물음에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하였다.
"그게 그 말이 그가 나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이재원은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그의 사상은 지극히 개인을 중요시하는 사상이에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자유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반대로 말하면 남에게 피해가 준다면 그 자유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치환할 수도 있는거죠."
당진설은 여전히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뭔 개소리지?'
그리고 이재원은 그런 그녀의 말을 못 알아먹어 멍을 때리고 있었다.
갑자기 이십여년 전 공자왈 맹자왈을 배웠던 윤리시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좀더...쉽게 설명해줄 수 없겠소?"
이재원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그녀에게 부탁을 하였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나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해요.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역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면 이는 강제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답니다. 저희는 그 이유로 정당히 요구하는거예요. 이만 나가달라고 맹법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누군가를 해하는 행위는 허용치 못한다고 말이에요."
당진설은 이재원이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하였다.
그녀 기준으로는 어린 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쉽게말이다.
"..........그런다고 순순히 나가겠소?"
"나갈 수 밖에 없을 거예요. 맹법은 맹원들 모두가 지키기로 약속한 하나의 가치잖아요? 그 가치를 무시한다면 그의 자유 또한 보장받을 근거를 잃게 된답니다."
"..........그렇군."
이재원은 이해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이해같은 걸 했을 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또다시 모른다고 하기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렇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아는 척을 하면서 말이다.
'결론은 그새끼가 나가버린다는 말이잖아? 그냥 결론만 알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
이재원은 스스로 합리화를 한 채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나간다면 어찌할 생각이오?"
이재원은 당진설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분간은 그저 주시할 생각이에요."
"주시 말이오?"
"네에, 어차피 오라버니가 없는 이상 그를 상대할 방법 따윈없어요. 일단 주시하면서 기회를 엿볼 생각이에요."
당진설은 뱀같이 요사스러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하였다.
"그를 완벽히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