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5화 〉 616. 본보기를 보이다.
시위꾼들은 경악을 하였다.
장선우가 이렇게 막나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에서는 배분을 무척이나 중요시 여겼다.
그렇기에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배분상 위라면 좀더 예의를 갖추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혹여 자신보다 높은 배분의 선배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면 예의가 없는 놈이라며 지탄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장선우는 그런 무림의 기본적인 예의를 전혀 지키지 않은 채 막말을 내뱉고 있었다.
자신보다 배분이 높은 선배들을 상대로 말이다.
어찌 경악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는 또라이였다.
감히 측량조차 할 수 없는 개또라이말이다.
"그대의 언행이 그대의 사문은 물론! 스승까지 욕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초풍은 언성을 높이며 선우를 크게 꾸짖었다.
"파문당해서 상관없는데?"
"파문당했다고 한들 그대의 본질은 변하지 않소! 여전히 사문을 욕되게 하는 것이오!"
"당가를 욕하게?"
선우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려 그에게 물었다.
당가를 욕할 수 있냐면서 말이다.
"............."
그리고 그 물음을 들은 초풍은 입을 닫았다.
욕할 수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가가 어디란 말인가
마교에 의해 반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천최고의 세력으로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가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당가에는 반선의 경지에 올랐다고 전해지는 독왕 당진철이 가주로 있는 곳이었다.
그런 당가를 어찌 세치혀로 농락을 한다는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였다.
"왜 말이 없냐?"
선우는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어찌되었든 그대는 잘못되었소.....무림의 선배에게 어찌 그런 막말을 내뱉는다는 말이오."
"내가 말했잖아.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새끼들한테는 대우따윈 없다고."
"지금 우리가 나이를 헛먹었다는 것이오!?"
선우의 말에 초풍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럼 제대로 먹은 것 같아?"
선우는 우습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해명을 요구한다는 명분하에 멋대로 남의 처소 앞에서 진을 치고 사흘밤낮으로 언성을 높이고 고함을 내지르며 시위를 했어. 그게 용납할 일이라고 생각해?"
선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린 그저....그대에게...사과를 받고 싶었을 뿐이었소!"
"무슨 사과?"
"그대는 산동혈사의 주구가 마교가 아니라며 마교를 옹호하지않았소!?"
초풍은 억울하다는듯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사과를 왜 해?"
"뭐라?! 지금 마교를 옹호했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오!?"
"난 그저 혈사의 주구가 마교가 아닐수도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 그게 옹호가 되지?"
"사건현장은 마기가 그득 차 있다고 들었소! 그런데 어찌 마교가 범인이 아니라는 발언을 한다는 말이오!"
"마공을 쓰는데가 어디 마교 뿐이냐?"
"천무맹주께서 마교의 짓이 확실하다고 호언장담을 하였소!"
"천무맹주가 죽으라면 죽을래?"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뭐가 달라. 맹목적인 믿음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 지금 천무맹주 말만 맞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
"그럼 천무맹주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오!?"
초풍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한 것 뿐이다.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오! 천무맹주가 틀리다니!"
"누굴 믿던 네 마음이니까 그건 알아서 하고 대충 해명했으니까 이제 꺼져."
선우는 귀찮은 파리를 쫓듯 손을 살짝 저었다.
"아니! 우리는 사과를 받아야겠소! 만약 이대로 넘어간다면 산동혈사의 원혼들이 승천조차 못할 것이오!"
'짜증나네.'
선우는 슬슬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하나같이 억지와 감성팔이로 점칠된 이들이었다.
소문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동조하고 사실대로 알려줘도 제 좋을대로만 들을 뿐이었다.
"맞다...사과하라!"
"사과해라!"
"당신의 발언으로 수많은 원혼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서 사과하라!"
그리고 초풍의 발언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
일대에 있던 시위대들이 하나같이 고함을 내지르며 동조를 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은 보잘 것 없지만 집단은 강하다고 했던가
하나하나 보면 볼품없는 이들이었지만 집단으로 뭉쳐 고함을 지르니 제법 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이딴 개소리를 왜 듣고 있어야하지?'
선우는 속으로 곰곰히 생각하였다.
어째서 이 자리에 나와 그들의 개소리를 하나하나 듣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무리 들어도 인생 사는데 하등 도움 안되는 잡스러운 떼였다.
애새끼도 아니고 다큰 어른들이 떼쓰는 것을 뭐하러 듣고 있는다는 말인가
우우우우우우우웅
순간 선우는 기운을 방출하기 시작하였다.
"크으으윽!"
"으으윽...으윽.!"
"허으윽...윽.."
그러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고함을 내지르던 시위꾼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고통어린 신음을 흘렸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온 몸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한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선우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장내에 있는 시위꾼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내 자유의지에 따라 생각한 바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주장은 존중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다른 이의 의견을 존중하였으니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선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압이 더할 나위없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대들은 내 주장이 납득안된다며 내 영역에 들어와 나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선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는 내 자유를 침범하는 일이고 난 이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토해내도록 하겠다. 나의 권리가 다시는 침범되지 않도록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선우의 몸 주위에 희미하지만 붉은 기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붉은 기운들은 시위대 전체를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이내 시위대를 중심으로 거대한 반원이 형성되었다.
덜 덜 덜 덜 덜
그 모습을 본 시위대들은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하였다.
저 붉은 기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에게 다시 묻겠다."
선우는 온몸을 벌벌 떨고 있는 시위대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돌아가겠는가? 아니면 이곳에 남아 내 분노를 온전히 감당하겠는가?"
선우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말이다.
혹여 멋모르고 끌려온 이가 있을까봐 한 배려였다.
"............."
하지만 그런 배려가 무색하게 누구하나 나가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덜덜 떨면서도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움직일 생각따위는 전혀 없다는듯이 말이다.
"모두 이곳에 남을 생각인가 보군."
선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의지는 단단하나 현명하다고 할 수 없겠군."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으며 말하였다.
안타깝다는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선택도 그대들의 자유니, 나 또한 존중하도록 하겠다."
이내 선우는 차가운 눈동자로 그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충분히 감당하도록 하라!"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선우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들을 감싸고 있던 붉은 기운들이 일제히 덮쳐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위대들을 향해 말이다.
이내 시위대들의 온몸에 전체가 붉은 기운에 잠식당하기 시작하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아아!! 아파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악!"
"뜨거워! 뜨겁다고! 너무 뜨거워!"
"아악! 아아악! 아아아악! "
"흐아아악!"
그러자 시위대들은 일제히 바닥에 몸을 구르고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괴로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흐아아아아아악!"
"살...살려줘어어어어!"
"흐어어어엉...흐어어엉!"
"크으윽...흐윽...흐윽..아파...아파.."
이내 몇 몇은 울음마저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차오르는 고통을 참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흐아아아아아...흐아아아아아."
초풍은 눈물, 콧물은 물론 침까지 줄줄 흘리며 고통을 토로하였다.
끔찍하다는 말이 절로 어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치솟은 까닭이었다.
처음에 붉은 기운이 주위를 감싸고 있을 때 만해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던 그였다.
아무리 장선우가 막나가는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천무맹 한복판에서 자신을 죽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있긴 하겠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겼고 이걸 빌미로 시위를 의뢰했던 이에게 더욱 큰 보수를 뜯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붉은 기운이 온몸을 잠식한 뒤 완전히 상반되게 바뀌고 말았다.
도저히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고통이 작열통이라고 하던가
붉은 기운은 자신에게 작열통을 선사해주었다.
불길 속에 온몸이 타는듯한 고통을 선사해준 것이다.
너무 괴로웠다.
손끝과 발끝부터 안쪽까지 천천히 타들어가는 느낌이 미칠 것 같은 괴로움을 선사하였기 때문이었다.
"흐어어어어엉...흐어어어어엉.."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나 극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감정을 터트려버린 것이다.
후회가 되었다.
천하제일인인 그의 처소 앞에서 시위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을 말이다.
후회가 되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로 그를 자극하였던 일이
후회가 되었다.
그가 돌아갈 기회를 주었을 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을 말이다.
"흐어어어어어어엉!!!!"
그의 울음소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더 커져가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후회 또한 커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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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아악!"
"흐어어어어어엉!"
"흐으으윽...흐으으윽.."
"끄으으윽"
처소 앞에서는 시위꾼들의 고통 어린 비명성이 난무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극심한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손톱이 완전히 망가져버릴 때까지 바닥을 박박 긁고 있는 자
입술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자
이빨을 너무 억세게 갈은 것인지 새하얀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내리는 자
바닥에서 어찌나 발작하였는지 옷이 닳아 반라가 된 자 등
수많은 이들이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선우는 그런 그들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충분히 끔찍한 장면이었지만 선우는 기운을 걷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어보였다.
있을 리 만무하였다.
이미 본보기를 삼겠다고 다짐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하나둘 받아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이 찾아온게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허삼관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천하제일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면 강요를 하였다.
그다음은 수뇌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심을 대의로 포장한 뒤 참전을 강요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시위대였다.
그들은 소문이 사실이냐며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였다.
가만히 냅두니 별의별 인간들이 쉴새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마치 동네 똥개를 찾는 것마냥 말이다.
그렇기에 본보기가 필요하였다.
헛소리나 늘어놓는 인간들이 찾아오기 꺼려할 정도로 철저한 본보기가 말이다.
선우는 바닥에 누워서 발작을 하고 있는 시위꾼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괴로움이 가득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괴로울 수밖에 없겠지'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화경 상경의 고수였던 주소양조차 오줌을 지리게 만들었던 작열독을 열화판으로 풀어버렸다.
그런 것을 저들이 버틸 리 만무하였다.
아마 저들 모두 온몸이 타는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성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항의를 하러온 것을 말이다.
돌아갈 기회를 주었을 때 돌아가지 않은 것을 말이다.
'좀만 더 아파라.'
선우는 눈을 반짝이며 바닥에서 발작하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좀더 고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다리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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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쇄애애애애액
이내 선우는 작열독기를 천천히 거둬들이기 시작하였다.
일각이라면 그들이 고통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기운들을 걷어낸 바닥에 누워있는 시위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통이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직 고통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듯 보였다.
"또다시 온다면 그땐 일각으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선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시위꾼들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 극심한 고통이 고작 일각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 까닭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 미련없다는듯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처소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시위꾼들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