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3화 〉 614.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
선우의 매서운 꾸짖음에 수뇌부들은 침묵을 한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뼈를 때리는 선우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희생이 두렵다면 전쟁을 무르면 되는 일이었다.
명예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겠지만 정말 사람을 아낀다면 개의치 않을 일이었다.
잠깐의 창피함으로 커다란 희생을 막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들에겐 커다란 희생보단 자신들의 명예와 자존심이 중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선우가 그 사실을 거침없이 파고든 것이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하던 진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침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이중성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버렸으니 말이다.
"더 할 말 없으신겁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수뇌부에게 물었다.
".............."
하지만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인이었다.
"할 말이 없다면 전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선우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버렸다.
더 있어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멈추시오!"
그때 그의 귓가에 듣는 것만으로 불쾌함이 절로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락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짜증나는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몸을 다시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역겨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여긴 어쩐 일로 행차하신겁니까, 맹주."
선우는 불쾌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어디 못 올 곳이라도 왔는가?"
"못 올 곳이 아니긴 한데.....굳이 찾아서 올만한 곳도 아니지 않습니까?"
선우는 비꼬듯 말을 이었다.
"수뇌부들이 이곳에 몰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런데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재원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받았다.
"아쉽게도 헛걸음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들과 얘기는 이미 끝났거든요."
"헛걸음이 아닐세. 나 또한 그대에게 할 말이 있으니 말일세."
"말씀하시지요."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말섞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이 절로 치솟았지만
무슨 꿍꿍이인지 일단 들어나 볼 심산이었다.
"내 부탁함세. 부디 정마대전에 참전해주게."
이재원은 올곧은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거절합니다. 참전할 의무가 없습니다."
"자네가 참전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무인들이 허무하게 희생당하게 될걸세."
"희생이 걱정된다면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게 맞지 않습니까? 저를 설득하기보단 정마대전 선포를 번복하십시오."
"그럴 수는 없네."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혹여 번복을 했다가 천무맹의 명예가 실추될까 두렵습니까?"
선우는 비웃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 게 아닐세. 정마대전은 무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꼭 치뤄야할 것이기 때문이네."
"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이재원을 말을 부정하였다.
"자네는 산동에서 일어난 혈사를 보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은 것인가!"
이재원은 짐짓 꾸짖듯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죽었네...그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말일세! 그런데 어찌 그런 광경을 일으킨 주구를 어찌 냅둔다는 말인가! 만약 이대로 냅뒀다간 중원 전체가 마귀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된다는 말일세! 어찌 사람 된 도리로서 그런 꼴을 내버려둔다는 말인가!"
이재원은 열변을 토로하였다.
"우습군요."
선우는 우습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뭐가 우습다는겐가!"
"마교에 의해 당가가 반파되었을 때만해도 좀 처럼 무거운 엉덩이를 떼어내지 못했던 분이 이렇게 무림의 안녕을 위해 열변을 토해내는 데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한껏 비꼬며 말을 이었다.
당가가 마교에 의해 반파되었을 때만해도 그저 호위병력만 보내주었을 뿐
정마대전이라는 말은 입에 담지조차 않았던 천무맹이었다.
그런 그들이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는 걸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본진인 산동성의 문파들이 털리고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은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저딴 말을 지껄인다는 말인가
"당가의 경우 좀더 신중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걸세. 결코 방치하거나 무시한게 아니란 말일세."
선우의 말에 이재원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맹주는 모순적인 인간이군요."
"뭐라!?"
이재원은 살짝 언성을 높이며 기분 나쁜 티를 내었다.
"신중하다는 인간이 정황상 증거만으로 정마대전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까?"
선우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이재원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정황상이 아니라 확신일세! 사건 현장에서는 마기魔氣가 가득 차있었다는 말일세!"
"그걸 정황이라고 하는 겁니다. 확신이란 직접 범인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내뱉을 수 있는 말입니다. 범인을 잡기는 커녕 목격자도 없는 마당에 어찌 추측만으로 확신을 주장한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차가운 어조로 이재원을 타박하기 시작하였다.
"자네는 정말 말이 안통하는군! 이리도 증거가 명확하거늘 어찌 이리도 범인이 마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말인가!
"증거라고 해봤자 마기밖에 없는데 제가 어찌 믿겠습니까?"
"마기야 말로 유일한 증거이자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어찌 부정한다는 말인가"
이재원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공을 익힌 자가 마교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그렇게 억지를 부린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지지않겠다는듯 반박을 하였다.
"수 많은 가문들을 단숨에 무너뜨릴 정도로 강대한 마공을 익힌 자가 마교 외에 어디있다는 말인가!"
"그 또한 편견이고 정황일 뿐입니다. 증거가 될 수없다는 말입니다."
"듣다 듣다보니 참으로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본 맹주가 보기엔 그대는 마교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네."
이재원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입니까?"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모두가 범인을 마교라고 주장하는데 혼자 바락바락 아니라고 주장하니 말일세."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뿐입니다."
"마기魔氣가 그 증거라고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맹주는 참으로 말이 안통하는 군요. 그건 정황상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어찌 그렇게 마교를 옹호하는 것인가!"
이재원의 말을 들은 선우는 눈살을 있는대로 찌푸렸다.
자신의 물음에 제대로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말이 막힐 때면 마교를 옹호한다며 되려 비난을 하였다.
'이새끼 진짜 개같이 나오네.'
선우는 짜증이 절로 치솟는 것을 느꼈다.
논쟁을 할 때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이가 누구일까
화술이 좋은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
아는 것이 많은 사람?
전문적으로 토론을 배운 사람?
수십 년동안 정치를 했던 사람?
모두 아니었다.
가장 상대하기 힘든 이는 귀를 닫고 제 좋을대로만 말하는 이였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경청 따윈 개나 줘버린 후 제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기때문에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마치 눈앞의 이재원처럼 말이다.
'더이상은 무의미하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더이상 이곳에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이다.
아마 둘 중 하나가 고집을 꺾지 않는 이상
끝없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딴 건 사양이었다.
"제 의견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도망치는 겐가?"
"더이상의 논쟁이 무의미합니다."
"아직 본 맹주는 그대에게 참전하겠다는 확답을 듣지 못하였네."
"참전하지 않습니다. 그리 알아두도록 하시지요."
"납득이 되지 않네."
"맹주께서 납득을 하던 말던 그건 제 알바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선우는 당당한 시선으로 이재원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자네가 여기서 거절을 한다면 수많은 무림인들이 자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을 할걸세.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딴 비난에 겁을 집어먹을 정도였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선우는 날카로운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다음 그대로 처소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벅 저벅
그리고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당당한 걸음걸이로 말이다.
이재원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아...새끼....존나 쿨한 척하네. 쿨병 걸렸나.'
그리고 이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선우의 당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새끼가 소문이 좆같이 나고도 그럴 수 있나보자.'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이번 기회에 장선우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버리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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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맹이 정마대전을 선포한 이후
중원 무림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약을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러 말이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소문이 중원 무림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건 바로 검신劍神 장선우에 대한 소문이었다.
[검신이 정마대전의 불참을 선언하였다.]
짧지만 강렬하기 짝이 없는 이 소문은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무림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이 되었다.
검신劍神이 누구란 말인가
과거 당가혈사를 영웅적인 행보로 막아낸 무림의 젊은 영웅이자 천무맹주 이재원을 꺾고 새롭게 천하제일인으로 등극한 최강의 무인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어찌 정마대전을 불참한다고 선언한다는 말인가
처음 소문을 접한 이들은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면 손사래를 쳤다.
그가 정마대전을 불참한다는 소리가 말도 안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록 파문당하긴 하였지만 장선우는 엄연히 정공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정파의 무인이었다.
그런 이가 마교를 소탕하는 전쟁에 어찌 불참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천무맹에서 소문이 사실이라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세인들은 경악을 하였다.
그가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악은 곧이어 분노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는 가운데 제 놈 혼자만 쏙 빠져버리는 얌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천하제일인이라는 작자가 말이다.
여기저기서 장선우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기 시작하였다.
그의 행보가 이해 가지 않았으며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을 때쯤이었다.
뒤이어 또 다른 경악스러운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건 바로 장선우가 마교를 옹호하였다는 소문이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찾아간 맹주와 수뇌부들에게 마교를 옹호하며 불참을 선언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 소문을 들은 세인들은 더욱더 거세게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추악하기 그지없는 마교를 옹호하며 불참을 선언한 선우에 대한 적개심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내 무림에서 장선우에 대한 명성은 끊임없이 수직으로 하락하여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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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소 앞
"해명하라!"
"장선우는 마교 옹호 발언에 대해 해명하라!"
"우리는 해명을 원한다!"
"그대가 정녕 정파의 협사라면 당장 처소밖으로 나와 해명하라!"
"장선우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처소 앞에서 수 많은 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장선우가 정마대전에 불참한다는 사실과 마교를 옹호했다는 발언을 듣고 분노하며 몰려든 무림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화가 잔뜩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선우의 행태에 분노가 쌓인듯 하였다.
"어찌 정파의 동량이라는 자가 마교를 옹호한다는 말인가! 장선우는 당장 모습을 드러내고 경솔하고 끔찍한 발언에 대해 사죄를 하라!"
야비한 인상의 남자가 잔뜩 화가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사죄하라! 사죄하라!"
"산동 혈사로 인해 죽어버린 수많은 희생자들이 저승에서 네놈을 저주하고 있을 것이다! 어찌 그리도 무책임하고 끔찍한 발언을 한다는 말인가! 당장 그 발언에 대해 해명하라!"
그들은 처소가 떠나가라 소리를 내지르며 선우를 불렀다.
흉흉한 기세를 잔뜩 끌어올리 채 말이다.
"희생자가 네놈의 형제 자매 부모라고 생각해보거라! 지금처럼 마교를 옹호할 수 있겠는가? 네놈은 산동혈사를 일으킨 마교도와 다를 바가 없는 놈이다!"
"옳소! 옳소! 그는 마교도와 다름이 없소!"
"장선우! 당장 밖으로 나오거라! 어서 나와 그 죄많은 낯짝을 보자구나! 이 무도한 자식!"
"나오거라! 나오거라!"
남자의 말에 사람들은 동조하며 장선우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 따윈 없는 것 처럼 보였다.
"네놈이 나와 사죄를 할 때까지 우리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장선우는! 어서 모습을 드러내거라!"
"드러내라! 드러내라!"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더 고조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