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1화 〉 612.당신의 이기심을 대의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황보유연은 연신 사과를 하며 선우의 얼굴을 헝겊으로 다급히 닦기 시작하였다.
헝겊을 부여잡은 그녀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혹여 선우에게 미움을 받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네가 뭔 잘못이 있겠어."
선우는 그런 황보유연을 부드럽게 달래주기 시작하였다.
어찌 이 참사를 그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우는 슬며시 시선을 돌려 문쪽을 바라보았다.
"..........."
그러자 뻘쭘하게 서있는 이소란의 모습이 보였다.
"소란아."
선우는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불렀다.
".....네에.."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만약 큰일이 아니면 넌 일주일간 안아주지 않을거야."
선우는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우스운 협박처럼 보이지만 색에 환장한 이소란에게 이만큼이나 효과적이 협박 또한 없었다.
"...........네에."
이소란은 지은 죄가 있는 지라 조용한 목소리로 수긍을 하였다.
선우의 얼굴을 차로 뒤덮이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듯하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떡을 치고 있을 지 모를 생활을 보내고 있는 선우였다.
그렇기에 그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문을 먼저 두드리는 게 필수였다.
그렇지 않다면 의도치 않게 민망한 모습을 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소란 또한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언제나 문을 잘 두드리며 들어오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들어온 것이다.
의아함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큰일 났어요..선우님."
선우가 묻자 이소란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밖에...수뇌부가...수뇌부가 찾아왔어요!"
"누군데?"
"혼자가 아니예요! 수뇌부 대부분이 온 것 같아요"
"뭐!?"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이게 별안간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수뇌부 대부분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왔다니?
"지금 어디있는데?"
"처소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데?"
"그건 모르겠어요......저도 그냥 전달만 받은 거라."
선우의 물음에 이소란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 또한 시비를 통해 전해들은 내용이었다.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선..선우님 어디 가세요!"
선우가 걸음을 옮기자 황보유연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말없이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객이 왔으면 주인이 맞아줘야지."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괜찮을까요?"
황보유연은 걱정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물었다.
"설마 위험할까봐?"
그녀의 걱정어린 말에 선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반선이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경지에 올랐으며 살검殺劍이라는 마음의 검까지 세운 선우였다.
뿐만 아니라 공령지체라는 개사기 체질 덕분에 무한의 공력까지 손에 넣은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수뇌부 따윈 한 트럭으로 가져다주어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위협이 될 리 만무하였다.
"그런 건 아니지만......좋은 의도로 찾아온 건 아닌 것 같아서요."
황보유연은 걱정이 한껏 담겨있는 눈동자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괜찮아."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어떤 의도로 찾아왔건 내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테니까."
선우는 확신에 찬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네에."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황보유연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자신에 가득 찬 눈빛을 마주한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초월자이자 위대한 무인이었다.
그런 그를 수뇌부 따위가 곤란하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다..다녀오세요. 선우님."
황보유연은 선우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였다.
그의 태도에서는 정중함과 품격이 묻어나왔다.
"금방 다녀올게. 소란이랑 놀고 있어."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지아비를 신처럼 따르는 모습이 어지간히도 귀여워보였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선우님."
황보유연은 곧바로 답을 하였다.
"너도 엄마랑 잘 놀고 있어."
선우는 옆에 있는 이소란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준 뒤 말을 이었다.
"네에.."
그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선우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인지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몇 번 더 쓰다듬어준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황보유연과 이소란은 그런 선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저벅 저벅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대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웅성 웅성
그러자 그의 귓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알 수 있었다.
대문 건너편에 이소란이 말한 수뇌부들이 잔뜩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새끼들 왜 왔으려나.'
선우는 호기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접점조차 없는 그들이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덥석
이내 선우는 문고리를 붙잡았다.
혼자 추론해보기보단 직접 부딪히는 걸 택한 것이다.
저들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끼이이익
이내 커다란 대문이 낡은 경첩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선우는 볼 수 있었다.
대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말이다.
"나왔다!"
"장선우가 나왔어!"
"장 소협 할 말이 있소!"
"어찌 그런다는 말이오!"
"아니 장소협 협이란!"
그리고 이내 대문 앞은 시장통을 방불케할 정도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각자 제 할말만 하는 수뇌부들로 인해 분위기가 난잡하게 변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면 들을 얘기도 못듣겠구만.'
그 모습을 본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다간 들을 얘기도 못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선우는 천천히 내력을 운용하였다.
그러자 주위에 떠다니고 있던 자연기들이 그의 몸속에 흡수되더니 그대로 내력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만류귀원기의 기운으로 말이다.
스스스스스스
그리고 선우는 바뀌어버린 내력을 그대로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그라자 이내 온 사방에 만류귀원기의 기운이 가득 들어차기 시작하였다.
"허으윽"
쿵
그러자 수뇌부 중 한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선우가 흘려낸 기운을 감히 버텨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크윽...이게 무슨.."
어떤 이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신음을 흘렸다.
기운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살이 에일듯한 압박감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
또 어떤 이는 말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내력을 운용하여 선우의 만류귀원기에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내 시장통을 방불케할 정도로 시끄러웠던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하게 바뀌어버렸다.
단순히 기운을 방출한 것만으로 말이다.
'이제 좀 조용하네.'
주위가 조용해지자 선우는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대화할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찾아온 것입니까?"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뇌부들을 둘러보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에게..으윽..할 말이..있어서..왔소.."
그러자 활빈당주 이대곤이 연신 신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말씀하십시오."
"그..그전에...이...기운을 좀..풀어줄 수는 없겠소?"
이대곤은 시뻘개진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상태에선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약속만 해주신다면 풀어드리겠습니다."
이대곤의 물음에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말...말씀하시오.."
선우의 말을 들은 이대곤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말하시는 겁니다. 만약 다시금 시장통처럼 시끄러워진다면 지금보다 더한 기운을 흘리겠습니다."
선우는 수뇌부들을 둘러보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수뇌부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사색이 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처지인 그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한 기운을 흘린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알...알겠네...그대의...조건을..수락하겠네.."
이대곤은 다급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을 하였다.
장선우의 태도는 선배된 입장으로 봤을 때 무척이나 건방지고 예의없는 태도였지만 그딴 걸 지적할 틈이 없었다.
시간을 더 끌었다간 실금을 한 채 기절할지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파앗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기운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하아아.."
"흐어어어.."
"..하아.."
그러자 여기저기서 숨결을 내뱉기 시작하였다.
목구녕까지 턱 막히던 기운이 사라져 숨쉬기가 원활해진 까닭이었다.
"자아, 이제 말해주십시오. 왜 오신겁니까?"
선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
그러자 수뇌부들은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 없이 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었다.
처소 앞에 오기 전 수뇌부들은 한 가지 모의를 하였다.
그건 바로 장선우의 기를 미리 죽이고 시작하자는 모의였다.
어린 나이에 현경에 고수에 오른 장선우였기에 콧대가 한없이 높을 거라고 여기고 내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나온 계획이 그의 면전에 대고 쉴새없이 질문과 비난을 쏟아내 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
무력적으로 그를 압박할 수 없는 이상
정신적으로 밖에 압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계획은 보기좋게 빗나가버렸다.
기를 죽이긴 커녕 되려 기가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초월적인 강대한 기운에 말이다.
그렇기에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기가 죽어 쉽사리 목구녕에서 말이 내뱉어지지 않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것입니까?"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용건이 있어서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가만히 입을 다문 채 눈치만 본다는 말인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보도록하겠습니다."
그들이 여전히 말이 없자 선우는 그대로 뒤를 돌아버렸다.
겁을 집어먹어버린 그들을 자극할 심산이었다.
"잠...잠깐"!
그때 선우의 귓가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며 물었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이대곤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말씀하시지요. 왜 찾아온겁니까?"
선우는 속으로 옳다구나하며 그에게 물었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말하기 앞서...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소."
"말씀하시지요."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듯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들은바로는 그대가 정마대전에 참전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이게 사실이오?"
이대곤은 담담한 시선으로 선우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얘기를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이재원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따지러 온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것 아닌듯 싶었다.
전혀 다른 주제가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사실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구태여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그런 선택을 한 것이오!"
그리고 선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대곤이 고함을 내질렀다.
시뻘개진 얼굴로 선우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제가 참전해야하는 명분은 없을텐데요?"
선우는 당당하 태도로 말을 이었다.
참전의 명분따윈없었다.
자신이 일으킨 전쟁도 아닐 뿐더러 득될 것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선우의 말을 들은 이대곤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정마대전은 무림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라는 말이오! 그런데 어찌 그렇게 나 몰라라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말이오!"
"대의를 위해 참가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싫습니다."
선우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뭐라!"
"저는 모두를 위해 살 생각 따윈 없습니다. 그저 나를 위해 살 뿐입니다."
선우는 올곧은 시선으로 이대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중원무림이 마도천하가 되도록 내버려두겠다는 말이오!"
"제가 없다고 무너져내릴 정파였다면 진즉 무너졌을 것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를 끌어들이려는 당신의 이기심을 대의로 포장하지 마십시오."
선우는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이대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심히 역겹습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이대곤의 얼굴이 더욱더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