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5화 〉 606.뱀탕으로 만들어주마.
논점 흐리기
상대적으로 논리가 부족한 진영에서 쓰는 방법이다.
논리적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말꼬투리를 잡고 자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불쾌한 주제로 말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본래 주제가 무색하게 말이다.
당진설은 논점을 흐리려고 하였다.
스스로의 논리가 부족하다고 여기고 천무맹에 대한 비하라는 자극적인 주제로 논점을 흐리려고 한 것이다.
'헛'
선우는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수작이 참으로 가소로워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아니요, 소협은 천무맹을 비하한게 맞습니다."
이내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천무맹은 협이 아니라면 보지도 듣지도 행하지도 않는 협의지사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 곳이 완벽하지 않다뇨? 그 말인즉슨 천무맹에 협의지사가 아닌 위선자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요? 협을 숭상하지 않은 악인이 있다는 말이 아니가요?"
당진설은 집요하게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자극적인 주제로 논점을 흐린 뒤 선우를 압박 할 심산인듯 하였다.
'......독한 년.'
선우는 그런 당진설을 보며 새삼 감탄하였다.
포기할 법도 한데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녀의 독심이 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단은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집단을 구성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들이 만들어낸 집단이 완벽할 리 없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지.'
선우의 눈빛이 침중해지기 시작하였다.
집단은 불안정하다.
하지만 그 집단에 속한 개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오만하고 비틀려있는 신념이지만 개인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학습되고 삶이 되어버린 신념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 신념을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하게 되는 것이다.
비난하고 비방하며 욕을 내뱉는 것은 물론 물리적은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며 심할 경우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당진설은 그런 심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원과 자신만의 갈등이 아닌 천무맹과 자신과의 갈등으로 문제를 심화시킬 심산인 것이다.
'요악한 개년이네.'
선우는 생각하였다.
지금껏 만나본 여자들 중 가장 치밀하게 악독한 년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그녀의 말을 인정한다면 이재원과 갈등이 천무맹과의 갈등으로 심화되어버린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을 부정한다면 집단이 소속된 개인을 대표한다는 말이 되니 이재원의 사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무맹의 맹주인 그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말이다.
그런데 쉽사리 대답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이라도 해보는게 어떠신가요? 소협."
선우가 말이 없자 당진설은 그에게 대답을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심산인듯 하였다.
"맞습니다."
이내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당당한 태도로 말이다.
"그런 이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삼천이나 되는 천무맹원들입니다. 어찌 속이 음흉한 이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겠습니까?"
선우는 올곧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소협."
선우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차갑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말,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비록 제가 어리다고는 하나 감당치 못할 말을 내뱉을 정도로 멍청이는 아닙니다. 당부인."
선우는 도전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리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군요."
당진설은 지지않으려는듯 그의 도전적인 눈빛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말을 이었다.
"소협, 당신은 지금 말 한마디로 삼천이 넘는 협의지사들과 척을 지게 된거예요."
"그게 대체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군요."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소협, 두렵지 않으신가요? 삼천이 넘는 무림인들이 당신의 적이 되었다는 사실에 말이예요."
당진설은 요사스러운 눈동자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삼천이 되었든 삼만이 되었든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선우는 당진설의 요사스러운 눈동자로 올곧게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어째서 제가 저보다 약한 약자들에게 겁을 먹겠습니까?"
선우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오만하고도 건방진 말이었지만 그 미소에는 자신감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지금 천무맹의 전력보다 당신이 강하다고 주장하는건가요?"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살짝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우의 발언에 당혹스러운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개 개인이 삼천이 넘는 천무맹의 전력보다 강하다니?
어찌 이런 오만한 말을 멋대로 지껄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아무리 반선半仙이라고 불리우는 현경의 괴물이라고 해도
이는 너무나도 오만한 말이었다.
맹에 소속된 화경의 고수만 네 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무맹주인 이재원은 그와 마찬가지로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절대고수였다.
게다가 삼천이 넘는 수많은 고수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런데 어찌 저런 오만한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선우는 오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만하군요."
당진설은 차갑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오만하였다.
오만해도 너무 오만하였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 말이다.
"오만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당부인."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뱉은 말을 관철할 능력이 있다면 그건 오만이 아니지요."
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그리고 그 눈빛을 마주한 당진설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홀로 천무맹의 모든 전력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시금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말이 없자 선우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개인은 불안정합니다. 그러니 개인이 구성하는 집단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무맹 또한 불안정한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제게 천무맹은 한줌의 결점도 없는 완벽한 집단이라느니. 천무맹의 수장이라 거짓을 말하지 않느다니, 이런 개소리는 그만 지껄이셨으면 합니다. 더이상은 수준 차이가 나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선우는 올곧은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제 발언은 얼마든지 퍼트리셔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만약 제 발언에 불만이 있는 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전해주십시오. 저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며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선우는 당당한 표정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이견 있으십니까?"
"......후회하게 될거예요."
당진설은 표독스러운 눈동자로 선우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벌떡
그리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맹주, 이만 가보도록 해요. 도저히 말이 통하는 작자가 아닙니다."
당진설은 옆에 있는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지."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재원은 이내 정신차린듯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또 보지."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더니 이내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무척이나 무거운 표정이었다.
"싫은데요?"
선우는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질끈
그에게 거절을 당한 이재원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빠르게 접객실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진설은 그런 이재원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뚝
그리고 이내 그녀는 접객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소협은 그 입이 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인지하셨으면 좋겠군요."
걸음을 멈춘 당진설은 천천히 고개를 돌린 후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가던 길이나 가십시오. 꼰대처럼 뒷말 남기고 가지말고."
선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버릇..없는.."
으득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이를 으득 하고 갈았다.
상상이상으로 무례한 선우의 태도에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멀리 안나갑니다."
선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당진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으득
당진설은 다시금 이를 갈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다음 곧바로 접객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선우를 비롯한 두 모녀는 그런 당진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기..선우님.."
그리고 이내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이예설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왜?"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그....천무맹과 싸워도 지지 않을거라는 발언..말이에요."
그녀는 불안한듯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선우의 발언이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무맹은 무림 최고의 무력 단체였다.
맹원들의 숫자는 가히 구파일방을 모두 합친 전력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이들을 단독으로 상대한다는 발언을 한다는 말인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쓰담 쓰담
"괜찮아."
선우는 불안에 떨고 있는 이예설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이 여간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짜로 이길 자신이 있거든."
선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우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삼천이 넘는 천무맹의 전력과 붙어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벽을 깨고 공령지체에 도달하여 무한한 내공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과거 십만대군마저 몰아부쳤던 천마의 무공, 건곤대나이마저 익히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자신이 질 리 만무하였다.
삼천이 되었든
삼만이 되었든
두렵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말이다.
".......그치만."
선우의 부드러운 위로에도 불구하고 이예설은 여전히 불길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듯 보였다.
"설마 날 못믿는거야?"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서운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니요..그런건 아니에요."
이예설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을 하였다.
"그럼 믿는거지?"
"............네에."
이내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선우의 말에 동의를 하였다.
"착하네. 우리 예설이."
선우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의 머릿결을 더욱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경멸에 가득 찼던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았던 그녀였다.
마치 앙칼진 살쾡이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순한 양이 되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다고 생각하니 꽤나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쓰러뜨렸던 날 그녀는 알았을까?
자신 앞에서 이렇게 순한 양이 될줄 말이다.
"그런데....선우님.."
그때 옆에 있던 주소양이 천천히 입을 떼어 선우를 불렀다.
"왜?"
이예설의 머릿결을 쓰다듬고 있던 선우는 의아한듯 그녀에게 물었다.
"당진설을....이대로 냅둬도 될까요?"
그녀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물었다.
표독스러운 당진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흐음, 뭔가 조치를 취해야할 것 같긴 한데...."
그 말을 들은 선우는 고민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우는 당진설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초딩같은 성격에 멍청한 이재원과는 달리 머리라는 것을 제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요악스럽게 말이다.
그렇기에 경계심이 들었다.
멍청한 이재원과는 달리 흉흉한 흉계가 가득 한 그녀였다.
그런 당진설이 지낭 역할을 하며 이재원을 이리저리 조종한다면 꽤나 귀찮아질 것 같았다.
"죽일까요?"
주소양은 고민에 빠진듯한 선우를 바라보며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몸 주위에 살기가 쉴새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주인님에게 버릇없이 대하는 태도가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사랑스럽고 거룩한 주인님에게 그런 말같지도 않은 독설을 내뱉다니 천번 죽어도 마땅하였다.
"죽이는 건 됐어."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요..."
선우가 허락해주지 않자 주소양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난 살인보다 복수를 원하거든"
이재원의 마누라들을 선동해서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당진설이었다.
그런 그녀를 그냥 죽이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세상에는 죽이는 것보다 더욱더 완벽한 복수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어떻게 하실건데요?"
주소양은 궁금하다는듯 선우에게 물었다.
"일단 생각해보려고. 성격이 어떤지는 대충 파악했으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진설을 처음으로 마주한 선우였지만 이미 충분한 대화를 통해 그녀의 성향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독사였다.
무척이나 요악스러운 독사말이다.
'뱀탕으로 만들어주마.'
선우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