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4화 〉 605.말꼬리 잡지 마십시오. 수준 떨어지니까요.
'설마 그딴 걸 꼬투리 잡을 줄이야.'
이재원의 표정이 더할 나위없이 침중해지기 시작하였다.
설마하니 기절한 그를 죽이려한 사실을 걸고 넘어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무조건 잡아떼야한다.'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무조건 잡아떼야한다고 말이다.
기절한 상대에게 앙갚음을 하러갔다는 사실이 공론화된다면 곤욕을 치룰게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또한 자네 착각일세."
이재원은 당황스러운 내심을 최대한 가라앉힌 후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대부인에게 손을 댄 것은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라네. 그저 집안 문제였지."
"제게 오려는 걸 막은 분풀이는 아니고요?"
선우는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허허허.....그녀와는 의도치 않게 의견충돌이 발생하였고 내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손찌검을 한 것에 불과하다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세."
"글쎄요. 제가 말뿐인 건 믿지 않아서 말입니다."
"정 의심스러우면 대부인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지."
이재원은 자신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떼었다.
"소양, 장 소협에게 말좀 해주게. 그런게 아니라고 말일세."
그다음 옆쪽에 있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친근하게 말을 이었다.
"..............."
그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듯 하였다.
'빨리 동조해 멍청한 년아.'
이재원은 뜨거운 시선으로 주소양 노려보았다.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주소양이 머리가 있다면 자신에게 동조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따라 남편인 자신의 평판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자신의 말에 동조를 하고 집안 문제로 축약을 한다면 그저 감정적인 남편으로 남게 될 것이고 만약 동조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한다면 기절한 후배에게 앙갚음하려고했던 파렴치한 인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녀가 머리가 있다면
아니 생각이란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남편인 자신의 편을 들게 뻔하였다.
기본적으로 가족에 대한 모욕을 가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게 중원인들의 사고방식이었다.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다는건 곧 스스로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것과 다를바 없는 짓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재원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말에 동조해줄 것이라고 말이다.
".................."
하지만 그런 이재원의 예상과는 달리 주소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침묵을 하는 것이다.
'시발, 입에 본드를 발랐나?'
그녀가 말이 없자 이재원은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장선우의 의심 어린 눈초리가 깊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찌릿
이재원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주소양을 노려보았다.
어서 자신에게 동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당시 맹주께서는 처소 안으로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였어요...그리고 저는 그걸 저지하는 과정에서 맞게 되었구요."
이내 주소양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저...저 시발년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의 눈빛에는 불똥이 튀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말에 동조해줄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있는 사실 그대로를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개같은 년이! 나를 거부해!?'
이재원은 가슴 깊은 곳에서 열화같은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 엄연히 자신이 건네준 기회였다.
그간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여온 주소양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준 기회말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뻥 걷어차 버린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빅 엿을 먹이면서 말이다.
어찌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는데요?"
그때 이재원의 귓가에 장선우의 얄미운 목소리가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얄밉고 역겨운 목소리였다.
"................"
그의 물음에 이재원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소양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이상
변명조차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맹주."
선우는 그런 이재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할 말은 다끝난 거 같은데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더 추해질까 무섭군요."
선우는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모욕하였다.
이재원의 기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으드드득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쉴새없이 이를 갈기 시작하였다.
모욕이었다.
무협지 속에 떨어지고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모욕 말이다.
무림초출 때부터 보통을 뛰어넘는 무재로 매일 찬양만 받았던 그였다.
그후 천마라는 마귀들의 왕을 물리치고 정점에 선 뒤에는 찬양을 넘어 숭배마저 받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언제 이런 모욕을 겪어봤겠는가
화가났다.
당장에라도 저 싸가지 없는 말을 내뱉는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짜증이 났다.
당장에라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주소양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네년이 나를 배신해?'
이재원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음험한 분노가 서서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소양으로 인해 과거가 생각났다.
그 어떤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과거가 말이다.
'주소양!!'
이재원은 서서히 살기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좆같었던 기억이 분노로 치환되었기 때문이었다.
죽이고 싶었다.
자신을 거역한 두 년놈들을 말이다.
이재원의 눈빛이 서서히 혈광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분노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꼬옥
그때 갑자기 손등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이재원의 혈광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따뜻한 온기로 인해 분노로 인한 광기가 어느정도 진정이 된 것이다.
'후우......큰일 날뻔 했군.'
이재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이성을 잃고 폭주할 뻔하였기 때문이다.
"말이 심하군요. 소협."
그때 이재원을 진정시킨 당진설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찌르듯 내뱉었다.
"뭐가 심하다는 말씀이지요?"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전혀 모르겠다는듯이 말이다.
"여기 계신 천무맹주께서는 엄연히 그대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연장자이며 항렬 또한 그대의 스승이 독왕과 같은 배분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께 추해지기 전에 꺼지라뇨? 그게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란 말입니까!"
당진설은 뾰족한 목소리로 꾸짖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차가움이 잔뜩 서려있었다.
북풍한설과도 같은 차가움이 말이다.
"연장자라고 무조건적으로 존중받아야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른이지요."
선우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늙었다고
무조건적으로 존중받아야하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는 나이를 헛 처먹은 정신병자들이 가득 차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보기엔 이재원은 나이를 헛 처먹은 애새끼에 불과하였다.
존중받을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후계 경쟁 당일 맹주께서 감정적으로 행동한 건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그점에 대해선 맹주께서도 충분히 반성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소협에게 직접 사과를 하러 찾아온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맹주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렇게 예의없는 태도를 고수한다는 말입니까? "
당진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엔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과를 받고 말고는 받는 사람이 정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를 하였다.
사과를 받고 말고는 당사자가 정할 문제가 아닌가
어찌 사과를 받지 않는다고 으름장을 놓고 꾸짖으려고 한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맹주께서는 충분한 반성을 하셨습니다."
당진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팔을 잘라버린 당신이 있는 곳까지 친히 발걸음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당진설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맹주께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문제 아닙니까? 어째서 당부인께서 그걸 판단하는지 모르겠군요."
"대체 어떤 부분이 반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거죠? 저야말로 이해가 안되는군요. 혹여 사과를 받기 싫어 억지를 부리는건가요? 그렇다면 미숙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무공은 천지를 뒤집을 지 몰라도 그 속내만큼은 어린애나 다름없이 미숙하다고 말이에요."
당진설은 신랄한 어조로 선우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이년 봐라?'
그리고 그녀의 비난을 들은 선우는 생소함을 느꼈다.
멍청하고 생각이 짧은 이재원과는 전혀 다른 면모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억지가 아닙니다. 본 그대로 느낀 그대로를 내뱉었을 뿐입니다."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부족하다고 느낀거죠?"
그녀는 이해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일단 사과조차 틀려먹었습니다."
선우는 언성을 살짝 높이며 말을 이었다.
누가 봐도 화가 치밀어오른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이상하군요. 제가 보기엔 맹주의 사과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당진설은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부인께서는 귀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개뼉다귀 같은 사과를 직접 듣고도 옹호를 하다니 말입니다."
선우는 한껏 비아냥 대며 말을 이었다.
천무맹의 안주인을 대하는 태도라고 보기엔 무척이나 예의 없고 버릇없는 태도였다.
"소협께서는 입이 거칠군요. 무공 수련에만 빠져 살다보니 인성교육을 덜 된듯 싶습니다. 한탄이 절로 나오는군요. 엄연히 당가의 무공을 잇는 자가 이리도 천박하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오라버니가 제자를 잘못 키운 것 같군요."
당진설은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독설을 내뱉었다.
"제가 보기엔 그 딴 개뼉다귀 같은 사과를 옹호하는 당부인의 인성이 더욱더 문제 있는 것 같은데요?"
선우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독설을 내뱉으며 그녀의 신경을 긁기 시작하였다.
"대체 맹주의 사과가 어디가 문제라는 건가요?"
그녀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물었다.
"사과를 할 때 잘못을 축소하지 않았습니까? 후계 경쟁 뿐만 아니라 기절한 후에도 찾아와서 죽이려고한 주제에 그 사실을 쏙 빼고 사과하다니요? 그딴 사과를 한 주제에 진정성이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여기신겁니까?"
선우는 신랄하게 이재원의 진정성 없는 사과를 까내리기 시작하였다.
"그에 관해선 맹주께서 말하지 않았나요? 죽이려고 찾아간게 아니라 상태가 괜찮은 지 보러 간 것이라고 말이에요. "
"그딴 말도 안되는 변명을 제가 믿을 것 같습니까?"
"못 믿을 게 어디 있나요?"
당진설은 되려 선우에게 되물었다.
"저는 맹주의 팔을 잘라버린 장본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걱정되어 찾아왔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우는 어이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맹주께서는 협을 숭상하고 협을 생각하며 협을 행하는 협의지사들의 집단, 천무맹의 맹주입니다. 그런 분께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선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집단의 성향이 그곳에 속한 개인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당부인."
선우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의 눈초리를 받아내며 입을 떼었다.
"이해가 안되는 군요. 집단에 속했다면 그 집단의 이념과 맞아떨어진다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어찌 집단이 개인을 대표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소협께서는 아무래도 문무양도라는 칭호는 얻을 수 없을듯하군요. 이렇게 무식해서야....."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집단의 이념에 이끌려 그 집단에 들어간 개인이라면 당부인 말씀대로 집단이 개인을 대표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이념에만 이끌리겠습니까? 이득에 이끌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 이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찌 집단이 개인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집단이 청렴하다고 하여 그 집단에 속한 모든 이들이 청렴하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일차원적인 발상입니다. 이렇게 사고가 깊지 않다니.....혹여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은 게 아닐까 의심되는군요."
"이해가 안되는군요. 맹주께서는 집단에 그저 소속되기만한 평범한 개인이 아닙니다. 집단의 수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맹주가 이념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망발을 입에 담는다는 말입니까?"
당진설은 선우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집단의 수장이 언제나 옳다는 건 너무나도 위험하고 멍청한 발상입니다. 당부인."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집단에 속한 개인이 완벽하지 않은데 어찌 그 집단의 대표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너무나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지요."
"지금 천무맹을 비하하는 건가요?"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떼었다.
"천무맹에 대한 비하가 아닙니다. 기실 세상에 그 어떤 집단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람이란 불안정한 존재이니까요. 오히려 집단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자체가 오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선우는 피식 비웃음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말꼬리 잡지 마십시오. 수준 떨어지니까요."
선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