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3화 〉 604.사과를 하다.
"진짜 가야해?"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구긴 채 말을 이었다.
"물론이죠. 맹주."
그러자 옆에 있던 당진설이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하아...진짜..시발"
이내 이재원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짜증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으신가봐요?"
"당신 같으면 내키겠어? 저 새끼는 내 팔을 잘라버린 새끼라고!"
이재원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셔야해요. 맹주."
당진설은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과를 하러 가라니! 이거 너무한거 아니냐고! 싯팔! 진짜!"
이재원은 가슴 속에 차오르고 있는 짜증을 그대로 내뱉었다.
장선우에게 사과를 해야한다는 당진설의 말에 짜증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장선우가 누구란 말인가
자신의 팔을 잘라 불구로 만들고 천하제일인의 호칭을 강탈해간 호로잡새끼가 아닌가
그런 개같은 새끼한테 어찌 사과를 한다는 말인가
온몸에 있는 살이라는 살은 전부 갈기갈기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한테 말이다.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해야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지고 들어가야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무협지에 떨어진 이후 사과 따윈 해본적 없는 인생을 살아온 이재원이었다.
잘되면 내탓 안되면 남탓을 하며 합리화와 자기 위안으로 험난한 무림을 헤쳐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과를 하라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진짜 잘못을 했어도 사과하기 싫은 판국이었다.
그런데 어찌 잘못한 놈에게 되려 사과를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싯팔! 안가 아니 못가! 내가 왜 사과를 해야해!"
이재원은 이내 당진설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이대로 순순히 사과를 한다면 심장이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았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맹주. 그를 정마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해선 꼬인 매듭부터 풀 필요가 있다고요."
당진설은 그런 이재원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어린 아이를 타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그 꼬인 매듭을 푸는게 왜 내 사과인데!"
이재원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매듭을 꼬이게 만든 것은 장선우였다.
처음부터 나대지말고 적당히 후기지수 수준의 무력을 선보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는 나댔고 종국에는 자신의 팔을 잘라버렸다.
누가봐도 그의 잘못이 명명백백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자신이 사과를 한다는 말인가
그 정신 나간 또라이새끼가 사과를 하면 모를까
"사랑스러운 맹주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대의를 위해서는 수치를 감내해야한다고 말이에요."
당진설은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아니 대의고 자시고 자존심이 상한다니까!"
이재원은 다시금 소리를 내질렀다.
그도 알고 있었다.
어째서 사과해야하는 지 말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마뜩치 않았다.
지금 사과를 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 저주받을 염병할 새끼한테 사과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렇다면 복수를 포기하실 건가요?"
당진설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과말고...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이재원은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사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리예요."
그 말을 들은 당서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꼬인 매듭을 풀지 않는다면 장선우를 정마대전에 끌어들일 수 없어요."
당진설은 담담한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맹주께서는 복수를 이룰 수 없게 될거예요."
"아니, 그래도 뭔가 다른 방법이!"
"아니요. 다른 방법 따윈없어요."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복수에 관한 계획은 그가 정마대전에 참전했을 때를 가정하고 세웠어요. 그가 참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에요."
"........그래도..."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아쉬운듯 끝말을 흐렸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니면 순수한 무력으로 그를 제압할 자신이 있는건가요? 한 팔이 잘린 상태로요?"
"................"
그녀의 날카로운 비난에 이재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딱히 반박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길 자신 따윈 없었다.
양팔이 멀쩡할 때도 처발렸던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이 팔이 하나 잘려져있는 상황에서 그를 이길 리 만무한 것이다.
"맹주, 현실을 직시하셔야해요."
당진설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고 있는 이재원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선 사과가 필요해요. 수치스럽겠지만 그렇게 해야 그를 죽일 수 있어요."
당진설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재원을 간절하게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마음이 돌려질 수 있도록 말이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하였다.
고민에 빠져든 것이다.
대의를 위해 사과를 해야할지
아니면 자존심을 위해 고집을 부릴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사과하지."
이내 이재원은 결심한듯 말을 내뱉었다.
그에게 사과하는 일은 더러운 파리떼를 수천마리나 삼키는 것처럼 역겨운 일이었지만 해야했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훌륭한 선택이에요. 맹주."
이재원의 결심을 들은 당진설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대견하다는듯이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아....그럼 가보도록 하지."
이내 이재원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쇳뿔도 단번에 빼랬다고 결심이 섰을 때 바로 이동할 심산이었다.
이 결심이 흔들리기 전에 말이다.
씨익
당진설은 그런 이재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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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실
"흐으으읍...휴우우우...흐으으읍...휴우우우"
탁자에 앉아있던 이재원은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독이기 시작하였다.
선우가 오기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을 심산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이내 태허일기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걸로는 태허일기공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쇄애애애애액
이재원의 단전에서 태허일기공의 기운이 일으켜지더니 이내 그의 세맥과 혈맥 안으로 전부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세맥과 혈맥에 스며든 태허일기공의 기운은 얼마지 않아 그의 머리에 닿았다.
그러자 머릿속이 청명해지고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마치 각성제를 먹은 것마냥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머리에 닿은 태허일기공의 기운이 다시금 온몸에 퍼져나가 일주천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력이 일주천하면 할 수록 이재원의 마음이 점점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흐으으읍!"
이내 이재원은 온몸을 일주천하던 태허일기공의 기운을 모두 거둬들였다.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와라.'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지금 상태라면 머리를 박고 사과를 해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저벅 저벅
그때 그의 귓가에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투박하면서도 무거운 발걸음
분명 장선우의 발소리가 분명하였다.
또각 또각
그때 그의 귓가에 전혀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상대적으로 가벼우면서 경쾌한 발소리였다.
'주소양인가보군.'
그는 생각하였다.
장선우를 데리러갔던 주소양의 발걸음 소리라고 말이다.
탁 탁 탁
그때였다.
이재원의 귓가에 전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주소양의 발걸음 소리보다 더욱더 가벼운 소리였다.
'뭔데!? 누군데!?'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장선우와 주소양말고 대체 누가 더 들어온다는 말인가
끼이이익
그때 갑자기 낡은 경첩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시발.'
그리고 이내 이재원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이가 문밖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예설.'
그렇다.
문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자신의 딸인 이예설인 것이다.
이재원의 안면이 사정없이 구겨지기 시작하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의 귓가로 얄미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팔을 자른 후기지수.
자신에게서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강탈해간 남자.
검신劍神 장선우였다.
덜 덜 덜 덜
이재원은 몸을 살며시 떨기 시작하였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 왠지 모를 두려움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팔이 잘렸던 외상 후 정신적충격이 아직 남아있는듯 하였다.
꼬옥
그때 그런 이재원의 손등 위에 따뜻한 온도가 느껴져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은 재빨리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손등을 덮고 있는 당진설의 손이 보였다.
그 체온을 느낀 이재원은 두려웠던 마음이 어느정도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고맙다. 당진설.'
이재원은 속으로 당진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반갑소."
그리고 선우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었다.
무척이나 태연한 모습으로 말이다.
"저는 그다지 반갑지 않군요."
그때 이재원의 귓가에 싸가지 없는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발놈이 삐딱선을!'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이재원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장선우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였다고 말이다.
"......이해하네....자네를 죽이려고 했던 내가 반갑지는 않겠지."
이재원은 침울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저자세로 그를 대한 것이다.
'시발 놈아, 삐딱선 탄다고 내가 굴할 줄 알아?'
이재원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었다.
장선우가 어떤 반응하든 어떻게든 버텨내자고 말이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 말이다.
"그걸 아시는 분이 여기에는 왜 오신겁니까?"
선우는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되물었다.
'저...저...싸가지 없는 새끼..'
선우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표정이 구겨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비록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넘겨주었다지만 여전히 무림의 대영웅으로 불리우는 위대한 무인이 아닌가
그런 무인이 저자세로 나오는데 어찌 저렇게 싸가지 없게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슴 속에 어마어마한 분노가 치솟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저 싸가지 없는 새끼의 머리통을 터트리고 싶었다.
"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왔네."
하지만 이재원은 속 안에 끌어올랐던 거대한 분노를 간신히 잠재운 뒤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 뭡니까?"
선우는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서서 들을게 아니라 앉아 듣는게 어떤가?"
"사양하겠습니다. 별로 앉고 싶지 않군요."
선우는 까칠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일관하였다.
'저 씨이이이이바아아아알!!'
그리고 그 태도를 마주한 이재원은 속으로 분노를 토해내었다.
싸가지가 없었다.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나이로 보나
무림에서 활동한 경력으로 보나
충분히 대우받을 만한 위치에 서있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자신을 이렇게 홀대한다는 말인가
"앉지 않겠다면 내가 일어서도록 하지."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다음 눈앞에 서있는 선우를 마주보았다.
"내가 잘못했네."
이재원은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디 나를 용서하게나."
그리고 선우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무척이나 정중하고 예의바른 자세였다.
"무슨 잘못을 하셨습니까?"
선우는 그런 이재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부...전부...미안하다네."
"저는 그런 뭉뚱그려진 사죄를 원하지 않습니다. 뭘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에게 살수를 펼친 것을 사과하겠네."
이재원은 어금니를 으득 깨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요?"
선우는 그런 이재원에게 되물었다.
"..........그리고라니?"
"잘못이 그게 끝입니까?"
"....끝일세."
이재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돌아가십시오."
선우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것인가?"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사과를 받습니까?"
선우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모르겠네...내가...그것 말고 ...또 어떤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이재원은 답답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대체 뭘 잘못했다고 저지랄을 떤다는 말인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다네."
"맹주께서는 뻔뻔하시군요."
"뭐라!?"
이재원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까닭이었다.
"제가 기절한 틈에 절 죽이러 친히 처소를 방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얘기는 왜 쏙 빼시는 겁니까?"
선우는 이재원을 노려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그건..오해일세...나는 그저 자네의 상태가 걱정돼서 봐주러 갔을 뿐일세!"
이재원은 변명하듯 다급히 소리쳤다.
"지나가던 개도 안믿을 소리는 작작하시죠. 걱정돼서 왔다는 분이 마누라나 패고 있습니까?"
선우는 그런 이재원을 가소롭다는듯이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시발.'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눈앞에 있는 싸가지 없는 새끼를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