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9화 〉 590. 요사스러운 뱀의 계략
이재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진설의 입에서 말도 안되는 말이 내뱉어졌기 때문이다.
정마대전이라니?
이십여년 전 정파와 마교 사이에 발생한 거대한 무력의 충돌
수많은 문파들을 궤멸시키고 수많은 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거대한 전쟁.
무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붉디 붉은 피로 물들었던 시산혈해의 전장.
무림인들의 재앙이라고 불리우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공포로 각인 된 사건.
그것이 바로 정마대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마대전을 다시금 일으키자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부인,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이재원은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정신이 나간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정신 나간 소리를 내뱉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예요. 맹주"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고혹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수 많은 무고한 이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말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마대전이라니! 이건 선을 넘은 것이 아니오!"
이재원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십여 년 전 정마대전 당시
일선에서 전두지휘하며 정마대전을 종식시켰던 이재원이었다.
그 정마대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이재원조차 참혹하다고 느낄 정도로 끔찍한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선이라....그 선의 기준이 뭐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살며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또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로 말을 빙빙 돌릴까
짜증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맹주께서는 아까 분명 몇 명이 죽던 상관없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당진설은 그런 이재원을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
"........하..하지만.."
이재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그런 말을 지껄이긴 하였다.
하지만 차마 정마대전을 일으킬만한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만약 이 사실이 들통날 경우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전부 날아가버릴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존경으로 추앙받는 자신조차 몸을 사릴 정도로 말이다.
"맹주."
이재원이 말이 없자 당진설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우신 겁니까?"
그녀는 궁금하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정마대전이 시작되면...많은 사람들이.....죽을 것이오...."
이재원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불안감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게 아니잖아요. 맹주."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고개를 살며시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걱정하는건 사람 따위가 죽어나가는 일이 아니잖아요."
당진설은 뱀처럼 요사스러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움찔
당진설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그녀의 요사스러운 목소리가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그게 무슨 말이오!"
이내 이재원은 발끈하듯 언성을 높였다.
"맹주께서 걱정하시는건 모든 걸 잃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잖아요."
그녀는 고혹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십여년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두려운 거 잖아요."
당진설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그렇지..않소..나는..정말...무림의 안녕을...걱정."
정곡을 찔린 이재원은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하였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릴까봐말이다
"맹주, 좀더 솔직해지셔도 돼요."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맹주의 모든 걸을 이해해줄 수 있답니다."
"내....모든 걸..?"
"네에, 그 어떤 짓을 하여도 이해해줄 수 있어요. 수 십년 간 수많은 여인들을 간살한 살인범이라고 해도.....명예를 위해 제자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운 냉혈한이라고 해도.....구씨세가를 멸문시킨 장본인이라고 해도......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이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도해도.......지금껏 이룩한 것을 잃을까 두려워 망설이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라해도 말이에요."
당진설은 요사스러운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너어.."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경악한 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놀라셨나요?"
당진설은 그런 이재원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너무나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재원의 모습이 퍽이나 귀엽게 보인듯 하였다.
"..............."
이재원은 그런 그녀를 입을 턱하고 벌린 채 멍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간 천무맹에서 일어났던 모든 간살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천무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대제자인 장삼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사실을
반발하는 구자엽에 대한 분풀이로 구씨세가를 멸문시켜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싹
이내 이재원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들었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들이 속속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어떻게..전부 다 알고 있는거지?'
무서웠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그녀가 말이다.
"모든..걸..다..알고 있었구나.."
이재원은 떨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네에, 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반푼이가 아니니까요."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하였다.
"......어째서..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거지?"
이재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을 전부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해가 될 리 만무하였다.
"말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이재원의 물음에 당진설은 시원스럽게 답을 하였다.
"뭐라고!?"
이재원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저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말할 이유가 없다니
저게 협을 숭상하는 정파의 여협으로서 할 소리란 말인가
"그걸 말한다고 해서 제게 이득이 되는게 있는건 아니잖아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사실이 밝히진다면 경아는 범죄자의 딸이 되버리지 않겠어요? 저 또한 범죄자의 아내가 될 거구요. 게다가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고요."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사실을 말했다한들 과연 맹원들이 제 말을 믿어줬을까요? 맹주에 대해 광신이라고 칭할 정도로 푹 빠져있는 그들이 말이에요."
당진설은 재밌다는 살며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이재원에 대한 신앙이 극에 치달아있는 천무맹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재원의 추악한 범죄를 들춘다고 믿어줄리 만무하였다.
명예라는 것은 사실보다 더욱더 강한 힘을 가지기 마련이니말이다.
"게다가 만약 제가 그런 사실을 떠벌이고 다녔다면 맹주께서 가만히 있으셨겠어요?"
"............"
사실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떠벌이고 다녔다면 마누라고 뭐고 칼침을 선사해주었을 것이다.
언제나 완벽해야할 자신에게 오점이 되버릴테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뭣하러 그런 사실들을 떠벌이겠어요?"
그녀는 차가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두려운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일련의 사건들 정황을 전부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다.
수십년 동안 말이다.
어찌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실들을 이제와서 내게 말한 이유가 뭐지?"
이재원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저의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꽁꽁 숨겨놨던 비밀이었다.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면 평생 감추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비밀들인 것이다.
그 비밀을 발설하는 순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테니말이다.
그런 비밀들을 지금에서야 밝힌 저의가 궁금하였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죠."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믿음?"
이재원은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네에, 제가 당신 편이라는 믿음을 말이에요."
당진설은 고혹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의 모든 일면을 알고서도 당신의 편에 선 거랍니다.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말이에요. 그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해가 가지 않는군."
이재원은 고개를 좌우로 살며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지? 내 쪽에 줄을 댄거지?"
이재원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은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항복한 후기지수를 상대로 살수를 펼쳐 평판이 한없이 낮아졌다.
그리고 그 후기지수에게 팔을 잘려 천하제일인이라는 명예마저 잃게 되었다.
또한 대부인이자 수많은 원로들과 장로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주소양을 폭행하여 정치적인 입지 또한 한없이 작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자신에게 줄을 댄다는 말인가
이해가 될리 만무하였다.
"당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면 믿으실 건가요?"
당진설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이재원에게 물었다.
"퍽이나."
이재원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잠자리를 가지지 않은 지 이미 수십년이었다.
요사스럽다며 그동안 눈도 제대로 마주친 적 없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따위가 남아있을 리 만무하였다.
"어머...매정하셔라."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고혹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해라. 당진설. 그렇지 않는다면......"
이재원은 흉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입막음을 위해 죽게 될 것이다."
이재원은 경고하듯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이내 흉흉하기 짝이 없는 기세를 피어올렸다.
"이유라.....이유라..."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유는 간단해요. 그편이 더욱더 이득이 될테니까요."
"이득?"
"네에, 이득이요.."
당진설은 옅은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좋지 않아요. 별안간 탄핵을 당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탄핵을 당한다면 제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곤란하답니다."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가 누리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할테니까요. 천무맹주의 부인이라는 명예도 권력도 재력 모두 말이에요. 저는 그런 꼴을 볼 수 없답니다."
"그래서 날 돕겠다고?"
"네에, 당신이 오래토록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원하는 바이니까요."
당진설은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어때요? 납득이 되셨나요?"
당진설은 이재원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되었다."
그녀의 물음에 이재원은 수긍을 하였다.
또다시 사랑이니 뭐니하는 개소리를 지껄였다면 머리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충분히 납득할 수있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이득을 위해 자신의 편에 선다니
어찌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이제 저를 신뢰하실 수 있으신건가요?"
"............"
이재원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완전히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안 이상 더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네요. 맹주께서 저를 신뢰한다니 말이에요."
당진설은 기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본제로 돌아올까요? 두려우신 거죠?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릴까 말이에요."
그녀는 요사스러운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맞아."
그녀의 물음에 이재원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을 하였다.
모든 것이 까발려진 상황에서 어설픈 거짓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려워....내가...이십여년 동안 좆빠지게 고생해서 만들어낸 이 낙원이! 모두 날 우러러보고 모두가 날 좋아하며 나만을 위해 사는 이 낙원이! 모두 무너져내릴까 두려워!"
이재원은 가식따윈 전부 던져버린 채 진심을 토로하였다.
무고한 이들이 죽는게 아닌 낙원을 잃는 것이 두렵다고 말이다.
"이해해요. 맹주."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수긍하듯 말을 이었다.
"저또한 당신이 만들어낸 낙원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요."
그녀는 뱀처럼 요사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정마대전을 일으켜야해요. 당신만의 낙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녀는 확신에 찬 눈동자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의 낙원은 무너져내리고 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