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7화 〉 588. 그녀를 치유하다.
"..........참고하도록하지."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사색이 된 얼굴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더욱더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마치 못 볼 꼴을 본 사람마냥 말이다.
선우는 그런 이재원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이재원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부인, 괜찮습니까?"
이재원의 모습이 사라지자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소양을 바라보았다.
"저는...괜..찮습니다."
선우의 물음에 주소양은 힘없이 답을 하였다.
주소양의 목소리에는 우울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얼굴이 흉하게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우울함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본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본연의 아름다움이 이재원에 의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니 어마어마한 우울감과 박탈감이 몰려들었다.
더불어 걱정이 되었다.
이 흉터가 지워지지 않고 낙인처럼 남는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괜찮기는요, 이렇게 상처가 짙은데 아무래 약을 발라야할 듯 싶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선우는 손을 뻗어 주소양의 손을 잡은 뒤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대로 힘없이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처소 안으로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되었다.
'잠깐.....나는?'
이내 처소 앞에는 점혈을 당한 허삼관만이 남게 되었다.
허삼관의 눈동자는 배신감에 쉴새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목숨을 걸고 막아줬더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이내 그의 눈빛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
"어머니!"
이예설은 놀란듯 소리를 내질렀다.
어머니의 상태가 심각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새하얗고 말랑하던 어머니의 양뺨이 빨갛게 부어오른걸로도 모자라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신거예요..."
이예설은 울상이 된 얼굴로 주소양에게 물었다.
그녀가 다쳤다는 생각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짝..다쳤단다.."
주소양은 힘없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인가요?"
이예설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주소양에게 물었다.
"............"
그녀의 물음에 주소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은 모호한 태도였다.
"맞군요!"
그 모습을 본 이예설은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 아버지인 이재원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어머니한테!"
이내 이예설은 역정을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이재원에 대한 반발심과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괜찮다...어미는...괜찮아."
주소양은 이예설을 바라보며 그녀를 안심시키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처참한 몰골에 놀란듯 보였기때문이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이예설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처였다.
그런데 뭐가 괜찮다고 자신을 안심시킨다는 말인가
"........설아..어머니 정말로..괜찮단다."
"괜찮단 말 하지마세요! 아프잖아요! 다쳤잖아요!"
이예설은 화가난듯 소리쳤다.
여자에게 외모란 것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요소였다.
여자의 가치는 아름다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외모에 흠집이 나버렸다.
양 뺨이 터지고 살갗이 찢어져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 화가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그녀의 울분 섞인 외침을 들은 주소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예설이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장 약을 가지고 올테니까 얌전히 계세요!"
이예설은 그런 주소양을 바라보더니 이내 선언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알았다."
그녀의 묘한 박력에 주소양은 이내 수긍을 하였다.
딸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원치 않았지만 여기서 거절한다면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선우님, 저 금방 갔다올게요."
이내 이예설은 선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래, 갔다와."
선우는 그녀의 말에 흔쾌히 허락하였다.
안그래도 주소양과 따로 할 말이 있던 선우였다.
자리를 비켜준다니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감사해요."
꾸벅
선우의 허락을 받은 이예설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였다.
총 총
그리고 총총거리며 빠르게 걸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맞다, 예설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우는 불현듯 무언가 생각난듯 그녀를 불렀다.
"무슨 일 있나요? 선우님."
그의 부름에 이예설은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갈 때 이상한 아저씨 점혈좀 풀어주고 가."
"이상한 아저씨요?"
이예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응, 처소 앞에 가면 점혈 당해서 옴싹달싹 못하고 있는 아저씨가 있을거야. 가는 길에 점혈 좀 풀어줘."
"알겠어요. 선우님."
선우의 말을 들은 이예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 어림짐작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처 앞에서 점혈 당할 법한 인물이라면 분명 팔복당주 허삼관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이내 이예설은 고개를 다시금 돌린 뒤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의 상처에 바를 약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끼이익
쾅
이내 문이 닫히고 방안에는 선우와 주소양만이 남게 되었다.
"소양."
이예설이 나가자 선우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주소양을 불렀다.
"......네에."
주소양은 힘없이 말을 받았다.
"아프지?"
선우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는...괜찮아요.."
"괜찮기는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선우는 그녀의 부어버린 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퉁퉁 부어버린 뺨을 보니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옥처럼 새하얀 그녀의 양 뺨이 붉게 물들어버렸다.
어찌 안타까움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우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뺨에 손을 올려놓았다.
"으으윽.."
그러자 주소양의 입에서 옅은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선우의 손이 상처에 맞닿으며 상당한 고통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잠시만...잠시만 기다려줘"
선우는 고통으로 인해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천천히 음양조화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자연기들이 선우의 단전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가더니 이내 음양조화신공의 기운으로 탈바꿈되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 상태로 음양조화기를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손에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음양조화기가 상처입은 그녀의 뺨을 그대로 감싸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뺨을 감싼 음양조화기는 그녀의 치유력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하였다.
붉게 부풀어 올랐던 뺨이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상처들이 메꿔지며 딱지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 생겨난 딱지가 하나둘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새살이 돋아난 것이다.
이내 주소양은 원래 백옥같은 피부결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음양조화기의 효용으로 인해 말이다.
"이제 됐어."
상처를 전부 치유한 선우는 천천히 손을 떼어내었다.
".......치유가..된건가요?"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을 뜬 채 선우에게 물었다.
더 이상 뺨에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 해봐."
선우는 화장대 쪽에 있는 동경을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재빨리 화장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화장대 위에 있는 동경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러자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비춰줬다.
'아!'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선우가 자신을 완벽히 회복시켰다는 것을 말이다.
".......선우님.."
주소양은 글성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흉하게 변했던 얼굴을 원래대로 되돌려준 사실에 감격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회복될 거 조금 더 시기를 앞당겼어. 이왕이면 예쁘게 있는게 낫잖아?"
그런 주소양을 바라본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미소는 산뜻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와락
그때 갑자기 주소양이 선우에게 달려들더니 그대로 껴안아버렸다.
"선우님....너무...너무...너무..좋아요오오오...."
그리고는 선우의 널찍한 가슴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하였다.
"잠깐...진정해..소양아."
선우는 잔뜩 흥분한 주소양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상상이상으로 과격한 반응에 당혹스러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으으윽...너무...너무,..무서웠어요...이대로...흉한 몰골로..살아가야하면 어쩌나...흉터가...영영..남으면 어쩌나...너무..너무...무서웠어요..."
주소양은 참았던 눈물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딸인 이예설 앞이라 태연한 척하고 괜찮은 척하였지만 사실 그녀는 누구보다 두려웠고 무서웠으며 서글펐다.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연호하긴 하였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외모라는 것은 여인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 외모가 흉하게 변했는데 어찌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걱정이 되었다.
얼굴에 난 흉터가 영구적으로 남게되는게 아닐까
이 흉터로 인해 사랑하는 선우님이 자신을 경멸하게 되는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걱정이 선우로 인해 완전히 해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흐아아아아아아아앙!!!!!"
이내 주소양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선우의 품에서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로서의 책임감
천월궁주로서의 책임감
무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모두 벗어던진 채 한 여인으로서 울기 시작한 것이다.
토닥 토닥 토닥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부드럽게 토닥여주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설움이 완전히 날아가버릴 때까지 말이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런 선우의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주소양은 더욱더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였다.
마음속에 있는 설움이 완벽하게 날아갈 때까지말이다.
.
.
.
.
.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훌쩍...훌쩍...훌쩍...감사해요."
이내 주소양은 훌쩍거리며 울음을 멈추기 시작하였다.
울만큼 울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사는 내가해야지."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해야할 사람은 자신이었다.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준 주소양에게 말이다.
만약 그녀가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고마워, 목숨을 걸고 나를 지켜줘서.."
선우는 뜨거운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부끄러운듯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민망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예된 입장으로서 주인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일을 가지고 칭찬을 들으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쓰담 쓰담 쓰담
선우는 그런 주소양의 흑단 같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말하는 것 하나 하나가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헤에에..."
그런 선우의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 좋았던 것일까
주소양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해맑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기분이 좋게 만들어주는 행복한 미소였다.
그렇게 머릿결을 얼마나 쓰다듬었을까
"그런데...선우님.."
이내 주소양은 조심스레 선우를 불렀다.
"왜?"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갑자기 궁금한게 생겨서 그런데.....질문 드려도 될까요?"
"말해봐."
"그..완벽히....치료를 할 수 있는데....왜 설아가 약을 가지러 간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건가요?"
그녀는 의문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선우에게 물었다.
"딸 앞에서 우는 꼴을 보이게 할 순 없잖아? 억지로 참고 있었을 텐데."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배려해주신건가요..?"
"뭐 배려라면 배려라고 할 수 있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름의 배려이긴 하였다.
딸의 앞이기에 강해질 수밖에 없는 주소양에 대한 작은 배려말이다.
".......고마워요.."
주소양은 섬세하게 자신을 배려해준 선우를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더불어 그의 대한 애정이 더욱더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니야."
선우는 낯간지러운지 볼을 긁적이며 말하였다.
".....선우님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라도 제게는 너무나...감사하고 감동적인 일이랍니다......"
주소양은 몽롱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사랑해요....선우님."
그리고 선우를 바라보며 진심어린 사랑을 토로하였다.
"나도 사랑해. 소양,"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귀엽다는듯이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볼 때마다 귀여움이 중첩되는 여인이었다.
더불어 사랑스러움도 말이다.
이내 두 사람은 뜨거운 시선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입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정열적으로 말이다.
이내 처소에는 뜨거운 열락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