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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582화 (583/1,419)

〈 582화 〉 583. 깨닫다.

"다수결이 허용치 않는다면 결론이 나지 않을 겁니다!"

이대곤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반발하듯 언성을 높였다.

사건이라는 건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엇갈리는 법이었다.

누군가가 보기엔 장선우는 오체분시를 한 후 불태워죽여도 모자랄 악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보기엔 위협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이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다수결을 허용치 않다니?

제대로 된 결론이 날리 만무한 것이다.

'안되지! 안돼!'

이대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수 수뇌부들을 포섭해놓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변수는 허용할 수 없었다.

"빠른 결론이 옳은 결론은 아니지 않나요?"

그의 반발에 주소양은 눈살을 찌푸린 채 반박을 하였다.

재판에서 중요한 건 올바른 판결이다.

빠른 판결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사실을 간과한 이대곤의 발언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저 남자가 얼마나 멍청한 남자인지 말이다.

".............그렇다면....대부인께서는 결론이 날 때까지 며칠이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에 주눅이든 이대곤은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낼 수 있다면 그럴 의향입니다."

주소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됩니다! 저희가 한가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몇 날 며칠동안 판결 따위에 묶여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대곤은 말도 안된다며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기본적으로 수뇌부들은 한가한 이들이 아니었다.

각자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에 하루하루 처리할 일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고작 판결때문에 몇 날이고 며칠이고 묶이게 된다니

어불성설이었다.

"활빈당주, 지금 판결 따위라고 하셨나요?"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말꼬투리를 잡았다.

"지금 천무맹주의 팔이 잘려나간 사건에 대한 판결이 중요치 않다고 피력하시는건가요?"

주소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대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아니..그런게..아니라.."

그 눈빛을 마주한 이대곤은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기세에 오금이 절로 떨려왔기 때문이다.

"말조심하세요! 활빈당주! 이번 사안은 천무맹의 어떤 일보다 중요합니다! 후계 경쟁보다도! 각 당의 업무보다도 더 말입니다! 판결을 위해 며칠이 아니라 몇 달을 묶여있다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소양은 흉흉한 기세를 피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으으윽...."

그리고 그 기세에 노출된 이대곤은 괴로운듯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소양은 날선 눈빛으로 이대곤을 노려보며 물었다.

"아...아닙니다.."

이대곤은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온몸을 압박하는 흉흉한 기세에 절로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대곤을 노려보던 주소양은 이내 고개를 돌린 뒤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일제히 부정을 하였다.

천무맹의 안주인이자 여중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지고한 명성에 짓눌린 까닭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다시금 회의를 진행하도록하지요."

그 모습을 본 주소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입열었다.

자신의 말에 수긍하는 저들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탓이었다.

"또 다른 의견 있으십니까?"

그녀는 눈을 빛내며 다시금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회의가 상당히 길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서걱

귓가에 무언가 잘려지는 절삭음이 들려왔다.

절삭음이 들려온 곳은 자신의 왼쪽 어깨죽지였다.

천천히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없었다.

텅 비어있었다.

어깨죽지에 붙어있어야 할 왼팔이 말이다.

'어어...어?'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땅바닥에 볼품없게 떨어져있는 왼팔이 보였다.

'어째서?'

의아하였다.

어찌 자신의 왼팔이 어깨가 아닌 바닥에 붙어있다는 말인가

이상하였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선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러자 칠흑처럼 검게 물들어 있는 묵빛의 검을 치켜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지?'

흐릿하여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안력을 더욱더 집중하였다.

그러자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남자의 얼굴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적당히 진한 눈썹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물어져있는 입술

아는 얼굴이었다.

천하에 즐비하고 있는 기라성같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남자.

자신의 뒤를 이어 차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남자.

신룡神龍 장선우.

'장선우!'

이내 머릿속에 일련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가기 시작하였다.

화려한 등장으로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았던 장선우에 대한 기억

그 모습에 질투를 하며 제대로 짓밟아주리라 다짐했던 기억

예상치 못한 이변에 땅에 처박히고 벽에 처박히며 온갖 망신을 당했던 기억.

위신을 세우고 말겠다는 명분하에 무형검을 꺼내들었던 기억.

하지만 종국엔 모든 무형검을 파해당하여 팔이 잘려버렸던 기억.

'그래...나는.....팔이.'

떠올릴 수 있었다.

어째서 왼쪽 어깨죽지에서 팔이 떨어져나갔는지 말이다.

잘린 것이다.

저 괴물 같은 인간에게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든 사실을 깨달은 그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평생토록 영구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한다는 절망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재원.'

그때 검을 치켜든 장선우가 입을 떼었다.

'이...이...개같은 자시이이이익!'

이재원은 핏발이 선 눈빛으로 장선우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아파?'

선우는 조롱기 어린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이 처죽일 새끼야!'

'그럼 더 아파라.'

서석

'끄아아아아아아악!'

이내 이재원은 고통 어린 비명성을 내질렀다.

선우가 검을 휘둘러 오른쪽 팔마저 절단시켰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이재원은 콧물과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양팔을 전부 잃은 병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절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아파?'

선우는 그런 이재원을 바라보며 다시금 물었다.

'대체! 대체 ! 왜 나한테 이딴 짓을 하는것이냐!'

이재원은 억울하다는듯 고함을 내질렀다.

억울하였다.

자신은 잘못 따위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꼴을 당해야한다는 말인가

'몰라?'

'그딴 건 모른다!'

'모르면 잘려야지'

서걱

'끄아아아아아아악!'

이번에 잘려진 것은 양쪽 다리였다.

그저 가벼히 휘두르는 일검에 전부 잘려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하아아아..'

이재원은 눈물을 철철 흘리기 시작하였다.

멀쩡한 사람이 사지절단이 된 병신이 되어버렸다.

그저 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아아아아....하아...하아..'

그렇게 처절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선우가 다시금 검을 치켜세우기 시작하였다.

'잘가라.'

'잠...잠깐!'

이재원은 다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왜?'

'살..살려줘!...살려달라고!'

이재원은 그에게 애원을 하였다.

살려달라고

제발 목숨을 거두어가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이대로 삶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사지가 전부 다 잘려나갔지만 살고 싶었다.

평생 병신으로 살아가야한다해도 살고 싶은 것이다.

'부탁은 공손하게 해야지. 병신아.'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살..살려주세요! 제발..살려주세요!'

이재원은 비굴하게 빌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버린 철천지 원수에게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자신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무척이나 비굴한 상황이었지만 이재원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자존심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푸우욱

'싫어 새끼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싸늘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치켜든 검으로 이재원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꺼어어억....어..째..어째서..?'

이재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비굴하게 빌었다.

공손하게 빌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목숨을 취한다는 말인가

'너도 안 살려줬잖아.'

'......그..그런..'

이재원의 눈빛에는 절망이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죽음이 코앞까지 왔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은 것이다.

'지옥가서도 잘 살아라.'

푸슉

이내 선우는 심장에서 검을 빼내었다.

'쿨럭..'

그러자 이재원은 피를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뒤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죽...기..싫...어어..'

이내 이재원은 처절한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

벌떡

"으아아아아악!"

이재원은 비명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한 반작용이었다.

"맹주!?"

"맹주! 깨어나셨군요!"

그때 그의 주위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재원은 재빨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의각주와 활빈당주 이대곤의 모습이었다.

"하아...하아...하아..하아.."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죽음을 맞이했던 모습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 까닭이었다.

'꿈...꿈인가.?'

이재원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뚫린 자국 따윈 없었다.

'후우'

이재원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모든게 꿈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꿰뚫린 일도

양 다리잘려버린 일도

오른 팔이 절단된 일도

왼 팔이 절단돤 일도 모두 말이다.

'잠깐.....왼팔!?'

그때 이재원의 머릿속에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이재원은 재빨리 시선을 돌려 왼쪽 어깨죽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옷 소매가 헐렁하게 흔들리고 있는 텅 비어있는 왼팔을 말이다.

이재원은 깨달을 수 있었다.

왼팔이 잘린 사실만큼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현실이었다.

왼팔이 잘려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재원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왼팔이 잘렸다는 현실을 목도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분노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쿠우우웅

그와 동시에 의각이 쉴새없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분출되는 거대한 기운에 건물이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끄르르륵..으으윽.."

"커어억...어어억.."

그리고 그 기운에 정면으로 노출된 의각주와 이대곤은 개거품을 물기 시작하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대한 압박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분노를 표출하였을까

"하아...하아..하아...시발새끼..진짜.."

이내 이재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대곤."

그리고 이내 개거품을 물고 있는 이대곤을 바라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네에엡!"

그의 물음에 개거품을 물고 있던 이대곤은 다시금 정신줄을 붙잡은 채 재빨리 답을 하였다.

"어딨냐?"

이재원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누...누구를...말씀하시는 건지.."

"내 팔을 잘라버린 그 개같은 새끼가 어디있냐고!!!"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고함을 내질렀다.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이대곤의 태도에 답답함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지금쯤...처소에서...기절해 있을 것입니다.."

"그 새끼가 기절해 있다고?"

"그렇습니다...그...맹주께서..의식을 잃는 걸보고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기절해버렸습니다."

이대곤은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그런데 그 기절한 새끼를 가만히 냅뒀어?!"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천무맹의 지존이자 무림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자신의 팔을 자른 개자식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개자식을 죽이기는 커녕 따뜻한 처소에 머무르게 한다는 말인가

맹주의 위신따위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처분을 어떻게..해야할지..결론이 나지 않아서.."

'시발 진짜.'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다.

맹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무맹의 지존이 악적에 의해 영구적인 장애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것도 기절해서 칼만 쑤시면 죽어버리는 새끼들 말이다.

대체 이게 무슨 고구마같은 전개란 말인가

만약 소설이었다면 독자가 우수수 떨어져나갈 개같은 전개인 것이다.

벌떡

이재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겉옷을 대충 걸쳐입기 시작하였다.

"맹주...어딜..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그 모습을 본 이대곤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장선우에게 간다."

이재원은 눈살을 찌푸린 채 이대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네에!?"

"내 팔을 자른 그 개자식을 죽이러간다는말이다!"

이재원은 핏발 선 눈빛으로 이대곤을 노려보며 선언하듯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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