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1화 〉 582. 이 회의에서 다수결 따윈 없습니다.
맹내 회의실
그곳에서는 격렬한 갑을박론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당장 죽여야합니다!"
활빈당의 이대곤은 목대에 핏줄을 세운 채 고함을 질렀다.
누가봐도 흥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죽이다니요? 대체 그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그 말을 들은 팔복당주 허삼관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팔복당주께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맹주의 팔을 잘라버렸습니다!"
이대곤은 핏발 선 눈빛으로 허삼관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정당한 이유가 있지 않았는가?"
"뭐라고요!?"
"먼저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은 맹주일세. 그는 그런 맹주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팔을 자른 것에 지나지 않아. 요컨대 정당방위라는 말일세."
허삼관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이대곤은 고함을 내지르며 반박을 하였다.
"맹주께서는 그저 전력을 내보이지 않는 후기지수를 훈계할 요량으로 손을 쓴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일 의도따위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대가 본 것과 내가 본 것은 꽤나 차이가 있는듯 하군."
그 말을 들은 허삼관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내 보기엔 맹주는 그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하였다네. 장선우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출혈을 쏟아냈다는 것을 잊은 겐가?"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너무 좋을대로만 생각하는군. 누가보면 맹주가 직접 해명하는 줄 알겠어."
허삼관은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 다했습니까! 팔복당주!"
그 말을 들은 이대곤은 흉흉한 눈빛으로 허삼관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허삼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늘과도 같은 맹주의 팔이 잘린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맹주의 팔을 잘라버린 천둥벌거숭이를 옹호한다는 말인가
"다 못했다면 어쩌겠는가?"
허삼관은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이대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대변인이라도 된 것마냥 이재원의 행동을 저 좋을대로 해석하고 포장하는 이대곤에 대한 적의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천무맹의 맹주가! 무림을 구한 영웅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대로 두고 본다는 말씀입니까! 죽여합니다! 죽여서 맹의 위신을 세워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대곤은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은 채 열변을 토해내었다.
"적법한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먼저 손을 쓴 것은 맹주일세! 그것도 항복한 상대로 말일세! 오히려 그에게 감사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수급이 아닌 팔을 취했다는 사실에 말일세!"
허삼관은 마찬가지로 흥분한 기색으로 언성을 높였다.
"대체 팔복당주는 누가 편인겁니까? 정녕 천무맹의 맹원이 맞냐는 말입니다!"
"여기서 네편 내편이 어디있는가! 그저 보고 느낀 그대로 판가름을 할 뿐이지!"
"내 팔복당주의 충심이 의심되는군요!"
"뭐라?! 충심이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충심이 없으니 장선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나보고 자네처럼 배알도 없이 맹주를 그저 찬양만하라는 건가?"
"뭐라고요!?"
"사실이지 않는가! "
이대곤과 허삼관이 옥신각신하며 다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고성이 오갔을까.
"그만."
그때 상석에서 위엄넘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당주들께서 너무 과열된 듯 싶습니다. 조금 진정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상석에 앉아있는 여인, 주소양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
그녀의 말을 들은 두 당주는 순식간에 입을 꾹 다물었다.
차분하지만 힘있는 그녀의 목소리에 완전히 압도된 까닭이었다.
"지금 이 자리는 신룡神龍의 처분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당주들 간의 사적인 싸움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두 당주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죄...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부인."
그녀의 말을 들은 두 당주는 이내 사과를 하였다.
그녀 말마따나 감정이 과열된듯 싶었기 때문이다.
"이해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자아. 그럼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도록 하지요."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다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손을 번쩍 들어올린 당진설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당 부인, 말씀하시지요."
그녀와 눈을 마주친 주소양은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녀였지만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여야합니다."
당진설의 입에서는 너무나 뻔한 대답이 나왔다.
물어보는 것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느껴질 정도로 뻔한 대답이었다.
"이유는요?"
주소양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떼었다.
"천무맹주는 천무맹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상징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팔이 잘려 영구적인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를 살려둘 수 있다는 말입니까? 죽여야 합니다. 활빈당주의 말대로 그를 죽여 맹의 위신을 세워야한다는 말입니다."
당진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의 있습니다."
그때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팽가련이 손을 번쩍 들더니 말을 이었다.
"말씀하세요. 팽부인"
주소양은 팽가련을 바라보더니 이내 발언권을 주었다.
"맹주가 팔이 잘려나간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보복성으로 장선우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라고요? 보복성이요?"
"보복성이 아니면 뭔가요? 앞뒤 잴 것도 없이 맹의 위신과 맹주의 복수를 위해 그를 죽이려드는데 말이에요."
팽가련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저는 정당한 처분을 주장한 것 뿐입니다. 지금 상황은 팽가의 연회에 초대된 손님이 팽가주의 팔을 잘라버린 것과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팽부인께서는 참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못 참지요."
"그럼 얘기는 끝난게 아닌가요?"
"아니요, 끝나지 않았어요."
팽가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세가와 천무맹을 동일시 하는건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요?"
"뭐라고요?"
"혈족으로 이루어진 세가와 달리 천무맹은 자발적인 협의지사들이 모인 집약체입니다. 그런데 세가와 천무맹을 동일시하다니.....비약이 심하군요."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혈족으로 이루어진 세가와 달리 맹에서 맹주의 복수를 이행할 의무따윈없습니다."
"뭐라고요!? 한 단체의 장이 팔이 잘려 외팔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수조차 하지 않는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당진설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외팔이가 된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나름의 이유가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뭐라고요?!"
"맹주는 싸울 의사가 없는 상대를 대상으로 살수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어찌 외팔이가 된 사실에 불만을 토로한다는 말입니까? 목숨을 앗아갔어도 입을 다물어야할 판국에 말입니다."
팽가련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팽부인!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지금 그 말은 맹주께서 그자리에서 죽어야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녀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불쾌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 말이 아니지않습니까! 그저 정황상 맹주 또한 떳떳하게 행동하진 않았다는 말입니다!"
"지금 맹주를 비난하시는건가요? 당신을 집법당주의 자리에 앉힌 맹주를요?"
"그런건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건 사건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느냐입니다! 맹주는 잘못을 하였고 정당한 댓가를 치뤘을 뿐입니다."
"이보세요. 팽부인 당신 남편의 팔이 잘렸어요. 그런데 그걸 넘어가겠다고요?"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팽가련을 노려보며 입을 떼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주관적인 시선은 배제되어야합니다."
팽가련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해가 안되는군요."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맹주의 팔을 잘라버린 장선우의 편을 드는 팽가련이 말이다.
아무리 소원하다고는 하나 이재원은 엄연한 남편이었다.
그런데 어찌 팔이 잘려버린 남편이 아닌 팔을 잘라버린 장선우의 편을 든다는 말인가
"팽부인, 혹여 그와 붙어먹기라도 한겁니까?"
"뭐라고요!"
팽가련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자신을 모욕하려는 그녀의 발언에 화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찌 남편이 아닌 그의 편을 든다는 말입니까?"
"당부인! 말을 가려서 하십시오! 저는 집법당주로써 공정한 판결을 원할 뿐입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웃기는 말씀이군요. 언제부터 집법당주께서 그리도 공정하셨나요?"
"뭐라고요!?"
"강 부인에게 거짓 누명을 씌워 귀양을 보낸게 바로 집법당주가 아니신가요? 그런 분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공정을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요?"
당진설은 비웃는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부인!"
팽가련은 그런 당진설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가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적인 자리가 아닌 천무맹의 수뇌부들이 전부 모여있는 자리였다.
이런 곳에서 어찌 저런 치욕적인 말을 내뱉는다는 말인가
저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맹렬하게 말이다.
"또다시 절 모욕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팽가련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가만두지 못하겠다면 어쩌시게요? 강하윤처럼 귀양이라도 보내게요?"
당진설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팽가련의 주위에서 어마어마한 내력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당진설의 모욕적인 발언에 참지 못하고 내력을 흩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흥!"
그 모습을 본 당진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이내 독기 어린 내력을 발산하기 시작하였다.
져줄 생각 따윈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
그때 상석에 앉아있던 주소양이 고함을 내질렀다.
솨아아아아악
그러자 팽가련과 당진설의 주위에서 뿜어져나오던 내력들이 일시에 해소가 되었다.
"분명 사적인 싸움은 금한다고 했을텐데요? 본 부인의 말이 우스운 건가요?"
주소양은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두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떼어내었다.
"..........."
"..........."
그녀의 말을 들은 두 여인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살벌한 기세에 압도당한 까닭이었다.
"말했다시피 이곳은 신룡神龍 장선우에 대한 처분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만약 또다시 사적인 싸움을 이어간다면 본녀의 말을 무시한다고 여기고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되었든 말입니다."
주소양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움찔
움찔
그 눈빛을 마주한 수뇌부들은 하나같이 온몸을 움찔거리기 시작하였다.
겁을 집어먹은 탓이었다.
맹주인 이재원을 제외한다면 천무맹에서 가장 강한 여인이 바로 주소양이었다.
화경 상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런 주소양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하고 겁을 집어먹지 않을 이는 없었다.
그녀라면 내뱉은 말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회의실이 조용해지자 이내 주소양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일단 여러분들의 의견은 잘 알 것 같습니다. 처분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 같군요. 그를 죽일지 아니면 이대로 내버려둘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 말대로 현재 장선우의 처분에 대해서는 두가지 의견으로 나누어져있었다.
그를 죽이거나 아니면 아무런 처벌도 없이 내버려두거나 말이다.
중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채 극단적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양측 의견 모두가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어떤 의견이든 선뜻 고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투표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 구석퉁이에 가만히 있던 이대곤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불만이 많았다.
처음부터 투표로 결정하면 되는 일을 뭣하러 이렇게 질질 끈다는 말인가
"투표로 결정을 한다면 무척이나 빠른 결정이 할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제대로 판결보단 다수의 의견이 반영이 될 것입니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게 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입니까?"
이대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판결이야 말로 정당한 판결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다수의 의견이 꼭 옳다고는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대곤의 물음에 주소양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라고요?"
이대곤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판결이라는 건 결코 다수결로 결정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면 선동이나 정치적인 위치에 따라 객관성을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소양은 이대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 회의에서 다수결 따윈 없습니다. 그리 알도록하세요."
그리고 선언하듯 입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