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0화 〉 581. 베어내다.
모순矛盾
초나라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창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방패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것은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구경꾼들 중 한 명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자 상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렇듯 논리 아귀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모순矛盾이라고 칭한다.
두 명제가 충돌하여 논리가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현경의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도 모습을 드러난다.
반선이라고 칭해지는 현경의 고수는 스스로가 추구하는 바를 의지로 발현시키는 초월적인 힘을 얻게 된다.
그 초월적인 힘은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어떤 이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절검切劍을 추구하였고
어떤 이는 죽은 부하들의 혼을 양분삼아 초월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영검靈劍의 경지를 추구하였으며
어떤 이는 마음이 이는 순간 벨 수 있는 심검心劍의 경지를 추구하였다.
또 어떤 이는 마음이 이는 순간 중독을 시킬 수 있는 심독心毒의 경지를 추구하였고
어떤 이는 어떤 독이든 전부 흡수하여 힘으로 삼을 수있는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 어떤 공격으로도 함부로 해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절대방어의 신체,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현경에 다다른 절대자들은 목표 또는 신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矛盾이 발생한다.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절검切劍과 무엇이든 해할 수 없다는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이 맞붙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음이 이는 순간 중독시킬 수 있다는 심독心毒과 어떤 독이든 흡수하여 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가 맞붙게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신념과 목표가 상반되는 순간
그 힘이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矛盾이 발생할 경우 현경의 고수들 간의 싸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간단하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중독시킬 수 있다는 심독心毒이든
어떤 독에도 중독되지 않는다는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든
무엇이든 벨수 있다는 절검切劍이든
그 어떠한 것으로 해할 수 없다는 금강불괴지신剛不壞之身이든
결국 모두 의지의 발현이었다.
시전자가 품고 있는 의지의 크기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난다.
더욱더 간절하고 강건한 정신력을 갖춘 자만이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재원이 만들어낸 의지의 집약체가
거대한 형상의 무형검으로 형태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형상의 무형검은 선우를 향해 그대로 휘둘러졌다.
몸을 반으로 갈라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거대하군.'
그리고 선우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는 거대한 의지를 말이다.
저릿 저릿
이재원의 거대한 의지에 노출 된 선우는 온몸에 저릿저릿 감각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나로 합쳐진 거대한 의지에 몸이 절로 반응한 까닭이었다.
온몸이 경고를 하고 있었다.
저 거대한 의지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당장이라도 도망쳐야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선우는 도망치는 대신 칠흑처럼 어두운 묵빛의 살검殺劍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몸의 경고를 그대로 무시한 것이다..
위험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수십년 간 쌓여진 거대한 의지에 비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자신의 의지 따윈 보잘 것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질 것 같지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확연한 의지 차이건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선우는 몸의 경고가 아닌 느끼고 있는 그대로를 따랐다.
응축되어있는 살검殺劍을 들어올리고 그대로 휘두른 것이다.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전력으로 말이다.
콰콰콰콰쾅
그러자 이내 굉음이 터져나왔다.
마치 수백 수 천개의 벽력탄이 터지는듯한 어마어마한 굉음이었다.
이재원의 거대한 의지와 선우의 살의가 부딪히며 반발력이 터져나온 것이다.
두 의지는 대치를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누구 하나 쉽사리 밀리지 않은 지루한 대치를 말이다.
'시이이이바아아알!!!! 왜! 왜! 어째서! 베이지 않는거야!'
이재원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십년간 쌓아온 의지들을 한데로 모아 형성시킨 최고 출력의 무형검無形劍이었다.
출력만 따지면 연무장에 있는 모든 이들을 단번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힘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힘이 맥없이 막혔다.
그것도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검을 세운 애송이에게 말이다.
이해가 갈리 없었다.
어찌 자신이 수십년간 쌓아왔던 의지가 저딴 애송이의 의지 따위에 막혀버린다는 말인가
'지랄하지마! 나는 세계의 왕이다! 선택받은 왕이라는 말이다! 그런 내가 질 리 없어!'
우우우우우웅
이재원은 의지를 더욱더 집약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선우와 대치하고 있는 무형검無形劍의 크기 더욱더 거대해지기 시작하였다.
'죽어! 죽어! 이 개새끼야! 내 낙원에서 꺼지란 말이야!'
이재원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의 낙원에 침범한 불순분자를 제거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크으윽..'
선우는 속으로 신음성을 흘렸다.
이재원의 거대한 의지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무리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의지를 한데 뭉친 이재원의 검격은 강하였다.
전처럼 가볍게 소멸시킬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덜 덜
살검을 쥐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였다.
부들 부들
그리고 검격을 버텨내고 있는 하체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만 멈추라고 그렇지않으면 근육이 망가지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선우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는대로 행하자고 말이다.
꽈아악
선우는 온몸이 떨릴 수록 더욱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으드득
절로 갈리는 이를 더욱더 악물었다.
질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하였다.
저 거대한 의지를 죽이고 말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파스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살검殺劍에 맞닿아있던 이재원의 검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스스스스
처음 시작은 정말 조그맣고 미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미세함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파스스스스스
이내 이재원의 검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선우는 검을 맞닿은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이재원이 서 있는 곳으로 말이다.
파스스스스
그가 걸음을 내딛을 수록 무형검이 작아지는 속도가 더욱더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이십 장.......십 장.....팔 장
저벅 저벅
오 장.......삼 장......일 장.
뚝
파스스스스스
이내 선우의 걸음걸이는 이재원의 코앞에서 멈추게 되었고 더불어 이재원이 만들어낸 이십장 크기의 거대한 무형검은 그대로 사라지게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재원 앞에서 멈춰선 선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자신의 대적자이면서 원수인 이재원의 모습이 보였다.
이재원은 불신에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도 무형검을 전부 소멸시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듯 싶었다.
'허어.'
그 모습을 본 선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불신에 가득 한 눈빛 속에 숨어있는 두려움의 감정을 읽은 탓이었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을 말이다.
어찌 헛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끝내자. 이재원'
선우는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이대로 그의 수급을 취할 심산이었다.
자신의 복수를
질긴 악연을 끝마치기 위해서 말이다.
'시발...죽는다..죽는다...죽는다고..'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죽음의 공포 앞에 진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다.
자신은 눈앞에 애송이에 손에 의해 죽고 말것이다.
더 이상 무형검을 만들어낼 수도 없었다.
모든 의지가 소멸한 까닭이었다.
'내가...죽어?...나...죽는거야?'
이재원의 눈빛에 진한 공포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무림에 떨어지고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무슨 짓을 하든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죽을 것 같았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따위는 전부 사라져버린 것이다.
'싫어! 죽고 싶지 않아!..시발...죽고 싶지 않다고..'
이재원의 눈가에 물기가 젖어들기 시작하였다.
죽음의 공포 앞에 눈물샘이 고장난듯 말을 들어먹지 않은 탓이었다.
빌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그에게 빌고 싶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입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의 공포 앞에 온몸이 굳어진 것이다.
부우우웅
그떄 선우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싫어어어어어!'
이재원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대로 꼼짝없이 죽어버리고 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다.
스걱
그때 이재원의 귓가에 무언가 베어지는 절단음이 들려왔다.
화끈 화끈
더불어 왼쪽 어깨죽지에서 화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라?'
이재원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는 있어야할 왼팔이 아닌 텅 비어있는 허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어..?'
그 모습을 본 이재원은 실감이 안나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익숙하기 그지없는 형태의 팔을 말이다.
'아...아?...아아아아?!'
이내 이재원은 깨달을 수 있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져있는 저 팔의 정체가 자신의 왼팔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이내 이재원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왼팔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절단면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더불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이 수반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신체가 훼손되었다는 사실에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어마어마한 정신적인 충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재원은 괴성을 내질렀다.
그 괴성에는 온갖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득 섞여있었다.
팔을 잃었다는 상실감
앞으로 팔 없이 살아가야한다는 절망감
장애인이 되고만 스스로에 대한 비참함
그리고 자신의 팔을 잘라버린 장선우에 대한 살의 등
수많은 감정들이 섞여있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꺼어어어억...커어어억.."
이내 이재원은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쿵
그리고 이내 이재원의 신형이 그대로 뒤편으로 넘어가버렸다.
극도로 차오른 정신적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것이다.
'.........젠장할.'
선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모든 의지가 담겨있던 일검一劍이 빗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현기증 때문이었다.
핏물을 너무 많이 흘린 탓에 결정적인 순간에 현기증이 일어난 것이다.
'하필...왜...그때.'
선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털썩
그리고 이내 선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온몸에 힘이 완전히 빠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살검을 꺼내들었을 때부터 선우의 몸은 한계에 가까웠다.
핏물을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온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런 몸상태로 꾸역꾸역 버텨보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른듯 싶었다.
'시발...저새끼...죽여되는데..'
선우는 바닥에 쓰러진 채 기절해있는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죽여야했다.
지금 죽여야 뒷탈이 없는 것이다.
선우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의지와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은 까닭이었다.
'........젠장'
더불어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천근만근처럼 말이다.
'안되...는데..'
선우는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하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기절한다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적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수장의 팔을 잘라버렸다.
일반적인 조직이라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만약 여기서 그대로 정신을 잃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버..텨..야해..'
선우는 어떻게든 눈꺼풀을 위로 치켜뜨기 위해 노력하였다.
끔뻑 끔뻑
하지만 소용없었다.
눈꺼풀은 쉴새없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이내 완전히 바닥에 닿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비워지기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말이다.
'주소양...믿는다.'
쿵
이내 선우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한계까지 혹사시킨 육체의 반동으로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