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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568화 (569/1,419)

〈 568화 〉 569. 저랑 판을 짜보지 않겠어요?

"하아...시발..."

이재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고심해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갈 주경의 거짓 증언으로 결정적인 위기를 넘기긴 하였지만 이미 수뇌부들 마음속에는 의심의 씨앗이 심어져버렸다.

만약 여기서 또다른 증거가 발견된다면 자신은 빼도박도 못하고 범인으로 몰릴 것이다.

'안돼! 시발 안된다고!'

이재원은 속으로 비명성을 내질렀다.

이곳은 수십년 간 자신이 만들어낸 낙원이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고 떠받들며 죽는 시늉마저 하게 되는 낙원인 것이다.

잃고 싶지 않았다.

수십 년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까득 까닥 까득 까득

이재원은 손톱을 쉴새없이 물어뜯기 시작하였다.

불안감에 나온 옛버릇이었다.

무협지 안으로 떨어진 이후 없어진 줄 알았던 버릇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증거이리라

그렇게 이재원이 불안감에 떨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똑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냐"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부군, 소첩이옵니다. "

그러자 바깥에서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진설?'

그 목소리를 들은 이재원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당진설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오."

이재원은 짐짓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슬쩍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은 난장판이었다.

천장은 군데 군데 무너져 있었고 벽을 구멍이 뚫려있었으며 바닥은 여기저기 깨져있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집기구들이 여기저기 부서진 채 널부러져있었다.

도저히 사람을 들일만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오늘은 내가 좀 피곤하오....급한 일이 아니라면 다음에 보는 것이 어떻소?"

이재원은 곤란한듯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도저히 이런 꼴을 내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급한 일이예요. 부군."

"후우.......알겠소. 그럼 내 접견실로 가도록 하겠소. 거기서 기다리고 계시구려."

"부군, 방안이 난장판이라서 그런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

그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그게 무슨?!"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안이 난장판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이재원은 의심스러운듯 방문을 바라보았다.

보통 집기구를 때려부술 때는 기막을 쳐놓고 부수기마련이었다.

화풀이로 집기구를 부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매번 믿을만한 인부에게 방의 보수를 맡긴다.

다시금 원상복귀를 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어찌 당진설이 방안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그냥 더럽냐는 의미겠지...'

하지만 이내 이재원은 신색을 회복하였다.

그냥 정리가 안되는 것을 묻는 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발 별게 다 예민하군.'

이재원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하하하...미안하오..내 방이 정리가 안되어있어서 말이오."

이재원은 이내 낯간지러운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집기구가 전부 부숴져있을텐데...어찌 곧바로 정리 할 수 있겠어요?"

오싹

"..............."

순간 당진설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어떻게..'

이재원의 눈빛에는 당혹스러움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모든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그러니 방에서 얘기하셔도 무방합니다."

곧이어 당진설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이내 출입을 허락하였다.

그녀를 마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그녀를 말이다.

끼이이익

이재원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내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혹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농염한 인상의 미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삼부인 당진설이었다.

"맹주를 뵙습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우아한 자태로 이재원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어서...들어오시오."

그녀의 인사에 이재원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인사를 마친 당진설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은 화가 많으셨나봅니다.....평소보다 더한 걸보니 말이에요."

그리고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알았소?"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인가요?"

"내 방이 난장판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말이오."

이재원은 눈을 번뜩거리며 말을 이었다.

"알 수밖에요. 매번 부군의 처소를 정리한 사람은 제가 심어둔 아이였으니까요."

"뭐라?!"

이재원은 경악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전해들은 까닭이었다.

사람을 심어두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모든 행적을 속속히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내게 사람을 심어둔 것이오!?"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에게 사람을 심어두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부군."

그의 살벌한 눈빛을 마주한 당진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신의 치부를 다른 이들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오?!"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고 싶지 않은 것과 사람을 심어두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이라는게 어찌 항상 완벽할 수 있겠어요? 개인적인 시간을 갖게되었을때는 완벽치 못한 면모 또한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저는 그런 부분이 걱정되어 나름의 방책을 마련했을 뿐이랍니다."

"......그 방책이라는게 사람을 심어두는 것이오?"

이재원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네에, 맞아요. 제 사람을 심어둔다면 우리 사랑하는 부군의 부끄러운 모습이 새어나가지 않을테니까요."

당진설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 그대의 사람이 안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소?"

이재원은 의심스럽다는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안전할 수밖에 없지요. 맹주님의 처소에 정리하는 아이들의 혀는 전부 잘라두었거든요."

당진설은 상큼한 미소를 지은 채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었다.

"뭐...뭐라?!"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시녀들의 혓바닥을 잘라버렸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처소를 정리하는 이를 마주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처소를 정리한 이들과 단 한번도 마주친적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들이 혓바닥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마주치지조차 못하였으니 말이다.

'.....독한년'

이재원은 당진설의 독기에 새삼 감탄하였다.

성격이 표독스럽고 독한 것을 알고 있긴 하였지만 이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이재원이 말이 없자 당진설은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풀렸소."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저를 타박하실 생각인가요?"

"......아니오..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소....내 오히려 감사하리다."

이재원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사람을 심어두었다는 사실이 불쾌하긴 하였지만 따지고보면 자신의 지랄같은 행보를 덮어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를 어찌 타박할 수 있겠는가

"역시 부군께서는 참으로 아량이 넓으십니다. 소첩은 혹여 꾸짖음을 들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답니다."

이재원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풍만한 가슴을 살며시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구라치고 있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그녀의 말을 부정하였다.

조마조마했다는 사람이 어찌 저리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는 말인가

참으로 여우같은 여자였다.

"하하하하 내가 어찌 그대를 혼낼 수 있겠소. 사랑하는 나의 부인을 말이오."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진설은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웃음을 지을 때마다 농염함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궁댕이랑 젖탱이만 작으면 들박섹스인데....아쉽네.'

이재원은 그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남자를 본능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분위기를 발산하는 여자가 바로 당진설이었다.

외형적인 아쉬움만 없었더라면 곧바로 침상에 눕혀 따먹었으리라

"그건 그렇고 할 말이 대체 무엇이오? 방금 전 분명 급한 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재원은 궁금하다는듯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대체 어떤 급한 일로 자신을 찾았는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 사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요."

이재원의 물음에 당진설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 말을 들은 이재원은 낯빛이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위해 위증을 해준 그녀였다.

주기적으로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다고 말이다.

관계를 안한지 수십년이나된 그녀가 말이다.

그런 그녀가 무엇을 물어볼지 어느정도 예상이 되었다.

그녀는 물어볼 것이다.

구씨세가를 멸문시킨 범인이 자신이 맞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젠장...'

이재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말하시오."

이내 이재원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저랑 판을 짜보지 않겠어요?"

당진설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에!?"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판을 짜자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오? 판이라니?"

이재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부군께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을 말이예요."

당진설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뭐라!?"

이재원은 놀란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설마하니 그녀가 추궁 대신 제안을 해올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니?

".....자세히...말해보시오."

"현재 부군께서 처한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답니다. 비록 제갈주경의 기지로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나 수뇌부 측에서 인정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제안을 하는거예요. 부군께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을 말이에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상황은 좋지 않았고 이대로 냅뒀다간 범인으로 몰릴 것이 뻔하였다.

구자엽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현경의 고수라면 자신 외에는 특정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녀의 꿍꿍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추궁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추궁을 하였을 것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용의선상에 벗어날 제안을 했을 뿐이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자신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걸 알고 뒤편에서 자신을 뒤흔들려는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은 말없이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고심을 하였을까

"부군, 겁먹으실 필요 없어요."

당진설이 침묵을 하고 있는 이재원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언제나 부군의 편이니까요."

자애와 포근함이 절로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날....용의선상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할 심산이오.?"

그녀의 부드러운 음성에 긴장을 푼 탓일까

이내 이재원은 의문 어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간단해요....또다른 용의자를 만들면 된답니다."

"또다른 용의자?"

이재원은 의아한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네에, 다른 용의자를 만든다면 맹주에게 쏠린 의혹을 분산시킬 수 있을거랍니다."

"무리오."

그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용의자를 지목하기 위해선 최소 현경급의 고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또다른 용의자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요. 가능해요."

당진설은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천하제일마라고 불렸던 음양마陰陽魔라면 말이지요."

그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미소를 마주한 이재원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녀의 입에서 저 노괴가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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