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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567화 (568/1,419)

〈 567화 〉 568. 약속을 하다.

"당진설이 그런 말을 했다고?"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다시금 되물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이 연쇄간살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네에, 확실하게 말했어요.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간살사건의 범인은 이재원이라고 말이예요."

"......근거는?"

선우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주소양을 응시하며 물었다.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였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은 교접시 몸에서는 여인을 고양시키는 특수한 체향이 발산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체형이 간살된 시체에서 맡아졌다고 하였어요."

그녀는 당진설에게 들은 바를 조근조근 말하기 시작하였다.

"아!"

그 말을 들은 선우는 무언가 깨달을듯 탄성을 내질렀다.

잊고 있었던 설정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매월옥천향梅月鈺泉香!'

이재원은 이십여 년전 매월옥천梅月鈺泉이라고 불리우는 신비로운 샘물 속에 빠진적이 있었는데 그 후 여자를 유혹하는 향을 풍기게 되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재원에게 여자가 꼬일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주려고 작가가 대충 지어낸 설정에 불과하다 여겼기에 완전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런 잊힌 설정이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이재원의 발목을 잡는 형식으로 말이다.

"당진설이 그 향을 맡았다고?"

"네에, 매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맡았다고 하더군요."

"....독한 년"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수십년간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하였을 당진설의 독기에 치가 떨렸기 때문이었다.

끔찍한 간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수수방관하였다는 말이 아니던가

독하였다.

독해도 너무 독하였다.

치가 떨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걸 방치한거지?"

"잃고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을 말이에요."

"..........미친년."

선우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 하나 편하자고 셀수도 없이 많은 여인들이 간살당하는 것을 방치하였다.

범인임을 알고서도 방관을 하였다.

어찌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반대했던거군. 위증임을 밝히자는 의견에."

"맞아요, 그녀가 그러더군요. 이재원을 용의선상에 완전히 벗어나게 만들어야한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해야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요."

"썩었네."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모두라는 말이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당진설이 말한 모두는 이재원이 맹주직에 머무름으로서 수혜를 받고 있는 이들만을 의미하였다.

저 모두라는 말속에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이 없는 것이다.

그 말이 너무 화가났다.

자신은 협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인군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살고자 발버둥치는 소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소시민에게도 도리라는 것이 있었다.

적어도 인간로서의 도리가 말이다.

이재원은

당진설은

선을 넘어버렸다.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다.

어찌 화가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그럴순 없다고 못을 박았어요. 적어도 인간으로 그런 짓에 동참할 수는 없으니까요."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뭐래?"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살해당하고 싶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경고했어요. 이재원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저라해도 죽음을 면치못할 것이라고요."

주소양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진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재원은 눈이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면 아무리 자신이 대부인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하더라도 무사할 리 만무하였다.

살해당하고 말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권력욕과 명예욕을 탐하는 괴물이 되어있는 이재원이었다.

만약 그런 그에게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의 권력과 명예를 추락시킬 위협 요소로 인지하게 된다면

아무리 대부인인 주소양이라고 하더라도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선우님....저는.....저는 어떻게 해야하죠?"

주소양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분명 이대로 침묵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닌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대로 목숨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수십년 간 방치 되었다가 이제서야 여인으로서 즐거움을 알게 된 그녀였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딸과 함께 선우를 섬기는 행복한 일상을 갖게 된 그녀였다.

행복하기에 죽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기에 이 일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웠고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되려 물었다.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모르겠어요......어떻게 해야할지....전혀 모르겠어요..."

주소양은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대로....모른 척하고 싶지 않아요.......진실을 알고도 모른 척을 한다면 그 저도 당진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될테니까요...하지만....그렇다고...죽고싶지도 않아요.....저는...지금이...너무..행복해요....선우님 곁에서 오래도록...암퇘지로 살다가 훗날 복상사로 죽고 싶어요....."

주소양은 울먹거리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저는 어떻게 해야하죠? 저는...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쓰담 쓰담

그리고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착하네, 우리 소양이."

"아니에요....저..착하지 않아요...이 나이먹고...두려워서..진실을 피하고 있는 걸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려움을 품고 있는게 당연한거야. 그게 손가락질 받을 일은 아니야. 당연한 거니까."

선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녀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세상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두려워하지 않을 이가 어디있겠는가

이는 나이나 강건함에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공통적인 두려움이었다.

손가락질 받을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선우님."

선우의 위로를 받은 주소양은 감격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일단 참도록하자."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진설 말대로 지금 진실을 밝히는건 악수야. 적어도 네가 안전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야해."

"....하지만....그에게서 안전할 수 있는 방편따위가 있을 리가....없어요.....그는 현경의 고수인걸요."

주소양은 절망어린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재원은 현경의 고수였다.

그런 그에게 안전할 방편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내가 지켜줄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리예요.....선우님은....이재원을...감당할 수 없어요....그는 이미 이십여년 전 현경에 오른 괴물이라구요.."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리였다.

선우가 이재원을 감당하는 것은 말이다.

선우가 아무리 이립이전에 현경에 다다른 천재라고는 하지만 이는 이재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십여년 전 현경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우가 초월적인 천재성을 갖추고 있는 고수라고 하더라도 비슷한 재능에 세월까지 더해진 이재원을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서운한데? 나를 못 믿는거야?"

선우는 짐짓 서운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아니예요....그런게...아니에요...선우님의 천재성이라면....언제고 이재원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하지만....지금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요.....그는 선우님과 동급의 재능을....가지고 있으니까요.."

주소양은 천천히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부디...그와 대적할 생각을 하지 말아주세요.....선우님이...잘못된다면..저는.....저는......"

주소양은 눈물을 글성이며 애원을 하였다

보고싶지 않았다.

자신의 고집때문에 선우가 잘못되는 모습을 말이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죄책감으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리라

쓰윽 쓰윽

선우는 그런 주소양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손을 들어 그녀의 흐르고있는 눈물을 천천히 닦아주었다.

"소양."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소양을 불렀다.

".......말씀해주세요."

"내가 누명을 쓰고 무림맹에 쫓겨난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

"......일년 조금 넘은 걸로 알고 있어요.."

주소양은 기억을 더듬거린 후 입을 떼었다.

"일년 반정도 됐어. 햇수로는 이 년차이고 말이야."

선우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당시 내 경지는 절정 초입에 불과했어. 그런데 지금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 있지?"

".....현경이요."

"소양, 나는 이재원보다 더욱더 뛰어나.....그러니까....걱정하지마....내가 질 일은 없을테니까."

선우는 확신에 찬듯한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선우의 확신에 찬 눈빛을 마주하고도 주소양은 불안한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천재성이 말도 안될 수준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재원의 초월적인 무력을 눈앞에서 마주한 부작용이리라

"물론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아직은......이재원을 감당할 수 없을테니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인정을 하였다.

자신이 생각하여도 아직은 무리였다.

공령지체라는 전설상에서나 등장하는 사기적인 신체를 얻게 되었긴 하였지만 아직 마음의 검을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자신이 이재원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좀더 시간이 지난다면.....충분히 이재원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어."

선우는 뜨거운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줄래? 너를 어떻게든 지켜줄테니까."

"..........선우님."

선우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감격에 찬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너무나 감동적인 말에 감격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현재 자신은 그저 그가 기르고 있는 노리개 겸 암퇘지에 불과하였다.

이런 자신을 온힘을 다해 지켜주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어찌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다릴게요....얼마든지.....기다릴게요.....십년이고...백년이고....얼마든지요."

그녀는 고개를 마구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렇게 오래걸리지는 않을거야."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재원이 가지고 있던 주인공 보정은 내게로 옮겨왔으니까.'

그리고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빛에 이재원에 대한 적대심이 가득 차 있었다.

********

와장창

우지끈 우지끈

우드드득 우드드드득

"아오 시바아아아알!!!!"

처소로 돌아온 이재원은 방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천장을 무너뜨리고 벽을 부수고 바닥을 깨뜨렸으며 침상과 탁자를 가루로 만들었다.

마치 분풀이를 하듯이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온갖 집기들을 부수는 그의 손놀림이 더욱더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콰콰콰쾅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아아....하아...하아..하아...하아.."

어느새 진정을 한 이재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화가나는지 숨쉬는 것조차 잊은 채 파괴행위를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하아...시...바아알...하아...새끼들...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이재원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털썩

그러더니 이내 반파되어있는 침상 위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생각에 잠겼다.

이 좆같이 꼬여버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내 이재원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갈주경의 발빠른 변호 덕분에 숨통이 트이긴 하였지만 여전히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수뇌부들 중 몇 몇은 자신을 범인이라고 확정짓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정황이 명확히 드러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오 시발 좀더 치밀했어야했는데!'

이재원은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였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마음가는대로 구씨세가를 멸문시켰던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말이다.

좀더 용의주도했어야 했다.

좀더 조심스러워야했다.

그랬다면 일이 이지경까지는 다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발 요즘 왤캐 되는 일이 없어!'

이재원은 짜증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뒷처리를 대충해도 걸리는 경우가 단 한번도 없었다.

때마침 태풍이 분다거나 장대비가 쏟아지며 모든 증거들을 인멸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생각없이 저지르고 돌아올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없는 행동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아버렸다.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다죽여버릴까?'

이재원은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그냥 성질대로 전부 죽여버리고 천마의 짓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레절레

하지만 이내 이재원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정도 대량학살에 목격자를 남기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발'

이재원의 고심이 더욱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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