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5화 〉 566.비루한 협사보단 행복한 쓰레기가 낫답니다.
"................"
회의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에 할 말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누구보다 청렴하고 결백해야할 천무맹주가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천하제일인이
과거 마교의 침입으로부터 무림을 구한 정마대전의 영웅이
천무맹의 유일한 오명이라고 할 수 있는 연쇄 간살사건 진범이라니?
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지속되었을까
"당진설."
이내 주소양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에~ 말씀하세요. 대부인."
당진설은 환하게 웃으며 답을 하였다.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만약....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수 십년 동안 맹주의 범죄이력을 알고도 그를 감싸준 꼴이 된다.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주소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말을 무섭게 하시네요. 공범이라뇨. 그저 방관했을 뿐이에요."
"방관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냐?"
그녀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화가난듯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되려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뭐라!?"
"생각을 해보세요. 대부인, 제가 만약 그런 사실을 밝혔다면 저는 어떻게 됐겠어요? 분명 죽거나 미친년 취급을 받고 어딘가에 유배되어 평생 갇혀살았을 걸요?"
그녀는 눈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 딸은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았겠죠. 미친 어미를 둔 자식이라면서 말이에요."
"......그건 억측이다.."
"억측이 아니라 확신이에요. 지금껏 진범이 누구인지 잡아내지 못한 무능한 집법당이 제 말을 믿어줬을 것 같나요?"
당진설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달리 과거 맹주에 대한 지지도는 광신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그런 그를 간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다면 분명 엄청난 뭇매를 맞을 것이 뻔하였다.
당진설의 이름값 따위론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명성을 갖고 있는 이재원이었으니 말이다.
"믿어줬다해도 문제에요. 집법당에서 진범이 밝혀진들 뭐가 달라졌을 것 같나요?"
당진설은 침묵을 하고 있는 주소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반선이라고 불리우는 현경에 다다른 천하 제일의 고수예요. 그런 그를 집법당에서 어찌 할 수 있다는 건가요?"
"..........."
당진설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진상이 밝혀진다한들 무엇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인간으로서는 닿지 못할 정도로 아득한 곳에 다다른 이었으니 말이다.
"저는 큰 욕심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넘치는 권력과 사치 그리고 안전정도만 보장된다면 충분하답니다. "
"네 권력과 사치에는 수많은 여인들의 핏물이 섞여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이냐?"
주소양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제 알바가 아니지않나요? 안타깝긴 하지만 제 목숨을 걸정도로 안타깝진 않아서요.."
"너는 참으로 독한 여자로구나."
"당가의 여인에게는 무척이나 큰 칭찬이랍니다."
당진설은 진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런 진실을 밝힌 이유는 뭐지? 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나았을텐데?"
주소양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 사랑하는 부군의 미친 짓으로 인해 사태가 예상 이상으로 커져서 말이에요. 저 혼자 입다문다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더군요. "
당진설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 협력해주세요. 저희들이 사랑하는 부군께서 용의선상에 벗어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뭐라!? 지금 네 말은 사건을 은폐하겠다는 소리더냐!?"
그 말을 들은 주소양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네에, 맞아요."
그녀의 물음에 당진설은 시원스레 답을 하였다.
"그럴 순 없다."
주소양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몰랐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실상을 안 이상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주소양은 뜨거운 눈빛으로 당진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협보다는 권력을 탐하게 된 주소양이었지만 이번 일은 간과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 넘어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떻게 하시게요? 맹주가 범인이라는 걸 알리기라도 하시려구요?"
"못할 것도 없다!"
"남편인데도?"
"그런건 중요치 않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하는 법. 어찌 남편이라하여 추악한 범죄를 그냥 넘겨버릴 수 있겠는가!"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적어도 인간으로서 도리를 아는 그녀였다.
원한 관계라면 모를까
그녀는 그저 욕구에 따라 추찹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이재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맹주를 범인으로 지목할 심산인가요?"
당진설은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그에게는 채취가 난다고 말이야. 그걸 근거로 제시하면 되지 않느냐!"
"대부인께서는 맹주의 채취를 맡으신 적 없으시잖아요."
"그거야...네가 증언을 해주면......."
"그럴 생각 없는데요?"
당진설은 상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라!?"
"그럴 생각 없다고요. 제가 왜 그래야하죠?"
당진설은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함구하겠다는 소리더냐!"
주소양은 분노에 찬 시선으로 당진설을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네, 전 그럴 생각이에요. 맹주가 진범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요."
당진설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죄책감따위는 전혀없는 무척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당진설! 네년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이 없는 것이냐! 어찌 이런 추악한 일을 알고서도 끝까지 모르는 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도리가 밥먹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뭐라?!"
"밥 뿐 아니죠. 도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줄 수도 돈을 줄 수도 그렇다고 아름다운 보석을 줄 수도 없죠."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소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이득이라고 도리 때문에 제 안락할 삶을 포기해야하나요?"
당진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맹주가 범인이라는 게 알려진다면 맹은 결단나고 말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해요. 말 한마디로 죽는 시늉까지 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말이에요. 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차갑게 식은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어마어마한 재화도 아름다운 보석도 전부 말이에요. 그러니 협력하지 않겠어요. 진범임이 밝혀져봤자 좋을 일 따윈 전혀 없을테니까요."
당진설은 확고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정말로 이기적이구나.....당진설."
"이성적인 것 뿐이에요."
"그게 어찌 이성적이라는 것이냐! 너의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있지 않느냐!"
주소양은 고함을 내지르며 언성을 높였다.
"산사람은 살아야죠. 죽은 사람은 그저 침묵을 하고 말이에요."
".......네년은 정말 쓰레기같은 년이다."
"비루한 협사보단 행복한 쓰레기가 낫답니다."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불쾌함 따윈 전혀 없는 상쾌한 표정이었다.
"...............되었다. 네년의 도움따위는 받지 않겠다."
"잘생각하셨어요. 만약 포기치 않고 증언을 요구했다면 곤란했을거예요."
당진설은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포기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줄 몰라요."
"포기 할 생각은 없다."
주소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진실을 파헤쳐 만천하에 공개할 생각인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내 그를 구속하고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
"무리라니까요."
당진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주소양은 무공만 너무 익혀 머리는 나쁜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아까 분명 말했잖아요? 그를 옭아맬만한 이가 없다고요. 대부인께서 만약 진실을 파헤치려고 한다면 살해당할거예요. 그는 악랄한 마귀니까요."
"...........모두가 힘을 합한다면!!"
"그렇다해도 무리예요? 과저 천마의 습격에서 무언가 느낀게 없나요? 천무맹이전 정파무림의 상징이라고 불리웠던 무림맹이 천마의 손에 의해 무너져내렸어요. 그런데 그런 천마조차 죽여버린 맹주를 적대하겠다고요? 새로운 자살 방법인가요?"
당진설은 한껏 비웃으며 주소양을 조롱하였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협력을 하든 침묵을 하든 둘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세요. 쓸데없이 죽음을 자초하지 말고 말이에요."
당진설은 주소양을 바라보며 섬뜩한 경고를 보내었다.
질끈
그녀의 말을 들은 주소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벌떡
그리고 이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저벅
그다음 그대로 회의실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거침없이 말이다.
끼이이이익
쾅
이내 그녀는 회의실 바깥으로 얌전히 사라져버렸다.
당진설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금 시선을 돌려 좌중을 둘러보았다.
"또 협력을 불허하실 분이 있으신가요?"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부인들에게 물었다.
벌떡
그때 잠자코 앉아있던 황보유연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척이나 빠름걸음으로 바깥으로 이동하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끄덕 끄덕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진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약한 성품을 타고난 그녀라면 나갈만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었다.
"또 다른 분은요?"
그녀가 나가자 당진설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스르륵
그러자 이내 팽가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팽부인께서도 제게 협력을 하지 않을 심산인가요?"
그녀는 의외라는듯 팽가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 못지 않게 권력욕에 빠져있는 여자가 바로 팽가련이었다.
그런 여자가 선뜻 양심적인 선택을 하니 의아함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저는 집법당주입니다.....법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어찌 그런 꼴을 냅둘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후후후...재밌네요.....장삼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신 분이 그런 말을 하시니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은 당진설은 재밌다는듯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맹주의 대제자인 장삼에게 간살 누명을 씌운 팽가련이 저딴 말을 하니 웃음이 절로 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알고 계신거죠?""
팽가련은 놀란듯 고개를 동그랗게 뜨며 그녀에게 물었다.
"정황이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요? 하필 팽부인의 방계 혈족이 장삼에게 간살당하였고 그 현장을 곧바로 덮친 집법당의 행보가 말이에요."
당진설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연쇄 간살 사건의 범인이 이재원이라는 사실을 잘알고 있던 당진설이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집법당의 작위적인 행동을 눈치챌 수 있었다.
천무맹주의 대제자였던 장선우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과정을 말이다.
"우습지 않나요? 후계 경쟁을 이기겠다는 일념하에 죄없는 아이에게 추악한 죄를 뒤집어씌우시는 집법당주께서 법을 수호한다는 말씀을 하시다니 말이에요."
"................"
팽가련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반박할만한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쟁자 제거를 위해 자신이 장삼에게 누명을 씌운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뭐 그래도 빠지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어요. 이런 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당진설은 고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만 나가보도록 하세요."
당진설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으득
그 모습을 마주한 팽가련은 이를 으득하고 갈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회의실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말이다.
한 편 당진설은 떠나가는 팽가련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싱긋거리는 미소를 순식간에 지우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남아있는 분들은 전부 제게 협조해주실 거라고 봐도 무방한가요?"
"............"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주 좋아요."
당진설은 그런 그녀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침묵은 곧 긍정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남아있는 부인들은 자신의 편일 것이다.
당진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여섯명 중 반절이나 건졌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은 것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계획을 말씀드려야 겠군요."
이내 당진설은 한 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연신 웃음을 흘리며 헤픈 웃음을 내보이던 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꿀꺽
그녀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기다렸다.
당진설이 입을 떼어내어 계획을 말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