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1화 〉 562. 의심을 품다.
구씨세가가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이 충격적인 소문은 천무맹을 넘어 무림 전역에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멸문에 의문을 표하였다.
구씨세가는 꽤나 명망있는 무림의 가문으로서 덕이 높고 협을 행하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어 수많은 협사들의 귀감이 되었던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적이 없었고 세가내 무사들의 무공 또한 출중하여 상당한 무력까지 갖추고 있던 집단이었다.
거기다 구씨세가가 위치한 곳은 천무맹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제남이었다.
그런 구씨세가를 대체 누가 멸문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이내 의문을 품은 세인들의 이목은 천무맹에 집중되었다.
천무맹의 당주가 죽음을 당한 사건인 만큼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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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세가 내 모든 인원들은 사망을 하였습니다. 식솔들은 물론 고용인들까지 전부말입니다. 고용인들의 경우 모두 목이 잘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누구하나 다른 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자엽 당주의 경우 온몸이 해체되어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구강태 대협은 온몸이 으스러져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보고서를 들어올린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딸과 아내가 모두 알몸에다 애액이 분출되어있는 것을 봐선 범인에게 강간을 당했던듯 싶습니다."
팽가련은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범인은 한 명, 외부에서 온 단독범의 소행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상처가 동일하였고 외부인으로 보이는 발자국은 한 사람의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팽가련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범인의 의도는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훔쳐간 것도 없애버린 것도 무엇하나 없었습니다. 돈이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원한 관계에 의한 범죄가 가장 유력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상입니다."
보고를 마친 팽가련은 수뇌부들을 바라보았다.
"..........부검은....."
그때 팔복당의 당주 허삼관이 손을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필요없을 듯 싶습니다. 온몸이 완전히 해체가 되어 단서따위는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
그 말을 들은 허삼관은 입을 꾹 다문 채 괴로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구자엽과 막역한 사이로 수십년간 우정을 나눈 친우였다.
그런데 그런 친우가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가 된 것이다.
어찌 괴롭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범인이....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것이오?"
"아쉽게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발자국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 발자국을 쫓다보면 무언가 나오지 않겠소!"
허삼관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는 분명 말하였다.
발자국을 보아 외부인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 말인즉슨 범인의 발자국을 특정했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범인을 특정치 못한다는 말인가
그저 발자국만 따라가면 될텐데 말이다.
"그게 좀...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허삼관은 의문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발자국이 중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라져버렸다고!?"
허삼관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네에, 마치 범인이 하늘로 솟구친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의 말대로 범인으로 특정되는 발자국을 발견하긴 하였다.
그리고 그 특정된 발자국을 따라가기도 하였다.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일한 단서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갑자기 끊겨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마치 하늘로 치솟은 것처럼 말이다.
"허어....."
그녀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탄식을 내뱉었다.
범인을 특정조차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황건당주를 죽인 범인을.....찾는 것은.....불가능하다는 말이오?"
그는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허어.."
"이럴 수가.."
'그런....."
이내 곳곳에서 탄식과 한숨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뜻을 같이하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잔인하게 말이다.
그런데 범인을 잡는 것은 물론 누구인지 알 수 조차 없다고 하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수십년 간 천무맹을 위해 봉사했던 구씨세가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어찌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 팽가련이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몇 가지 특정 정도는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특정 말이오?"
"네에, 사건 현장은 미약하지만 단서를 남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특정된 사실을 말해주시오."
"거진 제 추측이 대부분인데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소! 추측이든 뭐든 전부 전부 말해주시오!"
허삼관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작은 실마리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추측이든 뭐든 가릴 것 따윈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어설프게나마 제 추측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팽가련은 좌중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첫 번째 이번 사건은 철저한 원한 관계입니다. 돈을 노린 강도짓이 아닌 원한에 의한 철저한 복수극말입니다. 그러니 황건당주와 원한 관계를 맺은 이들 중 하나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지요."
팽가련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 범인은 단 한명 그리고 남자입니다. 발자국의 크기 , 보폭으로 미루어보아 여자라고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넓직하고 두껍더군요. "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세 번째 범인은 저희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경지에 다다른 고수입니다."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경지에 고수라면 대체 어느정도 수준을 말하는 것이오? "
팽가련의 말을 들은 허삼관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말하는 고수의 기준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건 현장을 탐문해본 결과, 그 어디에도 싸움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허삼관의 물음에 팽가련은 되려 그에게 질문을 건네었다.
"............일방적인 학살을 의미하겠구려."
그 말을 들은 허삼관은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중견문파급 전력을 가진 구씨세가가 고작 한 명의 남자에게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는 사실에 심각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식객으로 있던 열 명의 절정 고수, 오 십여명의 일류 무사, 팔십여명의 이류 무사 이들이 전부 전멸당하였습니다. 일방적인 폭력으로 인해서 말입니다. 또한 초절정에 이르렀던 황건당주와 전임 황건당주였던 구월검 구강태 대협마저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끔찍한 말로를 맞이하였습니다."
팽가련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범인은 강합니다. 중견문파따윈 가볍게 전멸시킬 수 있을만큼 말입니다."
".......그렇다면...화경의 고수인 것이오?"
허삼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부정을 하였다.
"최소 현경입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뭐,...뭐라?!""
"현..현경?!"
"아니 그게 무슨!?"
"현경이라니...현경이라니!?"
그녀의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경악성을 내뱉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현경이란 대체 무슨 경지인가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우는 화경을 뛰어넘은 초월의 경지이자 신선으로 가는 과정에 해당하는 반선의 경지라고 불리우는 지고한 경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경지를 함부로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
"집법당주, 어찌 그리 확신하시오?"
허삼관은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현경에 경지라고 어찌 그리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오?"
"시체들이 베인 단면을 봤습니다."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단면을?"
"네에, 무척이나 깔끔하고 섬뜩하며 아름답더군요."
"그 단면을 보고 경지를 유추했다는 말이오? 고작 초절정에 불과한 그대가?"
허삼관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고작 초절정에 불과한 팽가련이었다.
그런데 어찌 단면만 보고 범인을 현경의 고수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억측이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억측말이다.
"물론 저는 단면만 보고 그 경지를 유추할 수는 없습니다. 현경이라는 경지는 제가 밟아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였으니까요."
팽가련은 허삼관의 의견에 동의를 하였다.
화경조차 다다르지 못한 그녀가 현경을 구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인께서는 다르지요."
이내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저는 섬뜩할 정도의 단면을 보고 대부인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과연 이렇게 섬뜩함이 절로 느껴질 정도의 단면을 만들어낸 고수는 어느정도 수준을 갖춘 이냐고 말입니다."
팽가련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부인께서는 말하였습니다. 적어도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대부인이?!"
"여중제일인이 그런 말을!?"
"어찌 그런?!"
그녀의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경악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함을 내질렀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에 이성을 잃은 까닭이었다.
여중제일인 주소양
그녀는 정마대전의 영웅이자 인간의 한계라고 불리우는 화경 상경에 다다른 절대고수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윗줄을 언급하다니?
그녀의 언급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구씨세가를 멸문시킨 범인이 현경에 다다른 고수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습니까? 이제 제 말에 신빙성이 느껴지시나요?"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그들에게 물었다.
"................."
그녀의 물음을 들은 수뇌부들은 너도나도 입을 다물었다.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것이다.
그녀의 추측성 발언들이 전부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종합해보자면 범인은 구씨세가 혹은 황건당주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현경에 다다른 남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팽가련은 정리한 내용을 확인시키듯 다시금 내뱉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수뇌부들은 이내 고심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특정된 상대를 각자 유추해보려고 한 것이다.
"아!"
그때 팔복당주 허삼관이 무언가 깨달은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벌떡
그리고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다음 상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맹주..........제 말을 곡해하지 않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까지나..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묻는 것이니까요."
허삼관은 의심이 담긴 눈빛으로 상석에 잠자코 앉아있던 이재원을 향해 물었다.
"구씨세가가 멸문당했다고 여겨지는 시각인 자시子時 와 인시寅時 사이 어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나를 의심하는 것이오?"
그의 물음을 들은 이재원은 볼쾌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허삼관의 의심이 마음에 들지 않은듯하였다.
"의심이 아니오라. 그저 확실히 해두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그 말이 아니오? 나를 못 믿으니 확실히 해두는게 아니겠소?"
이재원은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럴리가요. 저는 맹주님을 무척이나 신뢰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저처럼 맹주님을 신뢰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무지몽매한 이들에게 맹주님이 결백하다는 것을 알릴 기회를 주십시오."
허삼관은 유들유들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알려주십시오. 그날 자시子時 와 인시寅時 사이에 무엇을 하셨는지 말입니다."
허삼관은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다시금 물었다.
"개인적인 용무를 치뤘소,."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개인적인 용무가 중요한겁니다. 대체 어떤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하신겁니까?"
허삼관은 집요하게 이재원을 물고 뜯고 집요하게 물었다.
"내 사생활까지 그대에게 공개해야할 의무는 없지 않은가?"
이재원은 불쾌한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공개하셔야합니다. 의심을 제대로 벗고 싶다면 말입니다."
허삼관은 올곧은 눈빛으로 이재원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지금 맹주를 무척이나 의심하고 있습니다."
허삼관은 은밀한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이재원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고 있는 유일한 분이니까요."
허삼관은 뚜렷한 눈동자로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맹주께서는 황건당주 구자엽에게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허삼관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남자이면서 구씨세가따윈 가뿐히 멸문시킬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췄다는 사실 또한 잘알고 있습니다."
"억측이요."
이재원은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그의 말을 억측으로 취급하였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억측으로 말이다.
"억측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맹주의 발언에 달렸습니다."
허삼관은 다시금 올곧은 눈빛으로 이재원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맹주께서는 그 시각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허삼관은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런 허삼관의 모습을 마주한 이재원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화살이 이렇게 빨리 돌려질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나는....."
허삼관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