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9화 〉 550. 유부녀의 눈물 어린 고백
똑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디.
"누구십니까?"
선우는 두드려지는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예요.....소협."
그러자 문밖에서 곱디 고운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시지요."
그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끼이이익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내 문이 열리더니 한 명의 귀부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색기가 묻어나오는 살짝 짙은 화장
농염함이 절로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이목구비
착 달라붙어 몸태를 살려주는 고급진 황색 비단 옷
귀부인의 정체는 바로 황보 유연이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소협."
방안에 들어온 황보유연은 선우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런 것도 같군요.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선우는 그녀의 인사를 대충 받은 뒤 용건부터 물었다.
착 가라앉아있는 목소리로 말이다.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닌듯합니다."
그 차가운 목소리에 기가 죽은 탓일까
황보유연은 기어가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후우.....알겠습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선우는 어쩔 수 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짧게 인사한 후 이내 탁자로 걸어가 그대로 앉아버렸다.
털썩
선우 또한 그녀의 맞은 편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그리고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였다.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말이다.
'....이....아이......내게 화가 나있구나..'
그 태도를 마주한 황보유연은 알 수 있었다.
선우가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나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아아...아..'
그녀는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분명 자신이 미울 것이다.
정을 통하였으면서 매정하게 돌아선 자신이 말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의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한 당사자는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는 것과 느끼는 감정은 다른듯하였다.
서운하였다.
차갑게 자신을 대하는 선우의 태도가 너무나 서운하였다.
이런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가시더니."
그때 선우가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물어볼게 있어 왔어요...."
그녀는 축 처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서운한 감정이 목소리를 절로 처지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뭡니까?"
선우는 고저없는 담백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란이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녀는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선우는 태연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며 말을 이었다.
"시치미 뗄 생각하지 말아요. 소협과 만난 이후 란이가 우울증에 빠졌어요. 이걸 우연이라고 치부할 이는 아무도 없을거예요."
황보유연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뻔히 알고 왔건만 시치미를 뚝 떼는 선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에 관해선 전 할 말이 없습니다. 소란 소저에게 직접 물어보도록하시지요."
"물어봤어요! 몇 번이고 물어봤다고요! 하지만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았어요!"
그녀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렇다면 소란 소저께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어찌 구태여 캐물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아이는 요 며칠간 물 한모금 입에 대지 않았어요! 눈은 퀭해졌고 볼살은 홀쭉해졌으며 기력은 탈진 직전인 상황이에요! 그런데 어찌 어미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딸에 대한 모성을 몰라주는 그의 야속함에 화가났기 때문이었다.
"과보호입니다. 냅두면 알아서 괜찮아질겁니다."
"그 아이는 고집이 강해요! 이대로 냅뒀다간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생존의지가 강합니다. 걱정마십시오. 정말 죽을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면 스스로 음식을 챙겨먹을테니까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 아이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확실히 소란 소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알고 지낸지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황보 부인의 행동이 과보호라는 건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약관입니다. 어른이란 말입니다. 품안에 고이 모셔서 오냐오냐 키우지 말고 알아서 날아가게 냅두라는 말입니다."
"당신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다면 나가십시오. 저도 굳이 언성 높여가며 이런 말을 나누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언뜻 봐도 짜증이 잔뜩 묻어나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황보유연의 화를 돋구기에 충분하였다.
"어째서 말을 그렇게 하는건가요!"
"뭘 말입니까!"
"아까부터 계속 무례하고 거친 태도로 대하시잖아요!"
"아니 그럼 제가 황보부인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워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뭐라구요!?"
"지금 저와 황보부인이 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제가 황보 부인께 정중하고 부드럽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장...소협.."
그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충격받은듯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자신에게 적이라는 말을 쓸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나한테..그런 말을.."
그녀는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설움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선을 넘은 이후에는 어색해지긴 했지만 그간 상당히 깊은 감정 교류를 해왔던 남자였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많은 위로가 되었고 실질적인 도움까지 받은 은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였다.
어찌 설움이 치솟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
황보유연은 울상을 지은 채 선우를 바라보았다.
누가봐도 슬픔이 가득 배어있는 모습이었다.
"어째서 그런 슬픈 얼굴로 저를 바라보시는 겁니까?"
하지만 선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이런 관계를 원한 건 부인이 아니셨습니까?"
선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황보유연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흐윽.."
그리고 그 차가운 눈빛은 황보유연의 가슴 깊은 곳에 거침없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마치 심장을 난자하듯이 말이다.
"다시는 제게 친절을 바라지 마십시오. 다시는 제게 배려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 어떤 호의도 바라지 말라는 겁니다!"
선우는 단정짓듯 말을 내뱉었다.
"흐윽...흑...흑..흑..흐윽."
선우의 차갑기 그지없는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폐부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언어의 칼날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
선우는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듯이 말이다.
"흐으윽...흐아아아아앙!"
그리고 이내 황보유연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자신이 눈물을 보였음에도 달래주지 않고 방관하는 그의 태도에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흐아아아아앙!"
그녀는 울었다.
무척이나 서글프게 말이다.
분명 자신이 원한 관계였다.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쓰지 않는 그런 건조한 관계말이다.
하지만 막상 선우가 관심을 쏟아주지 않으니 설움이 치솟아올랐다.
이재원과 같아졌다.
이소란을 임신한 이후 자신에게 일말의 관심하나 주지 않았던 무관심한 남편인 이재원과 말이다.
또다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절망을 선사하였다.
후회가 되었다.
그에게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해달라고 요청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일부러 그를 피해다녔던 과거의 자신이
"흐아아아아아앙!"
그녀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후회와 슬픔, 절망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온 몸을 지배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치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울음을 그치고 신색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온몸을 지배하고 있는 이 복합적인 감정이 좀처럼 제어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기에 울고 또 울었다.
어서 빨리 눈물샘이 말라버리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아...미치겠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우는 이내 한탄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울고 있는 황보유연에게 다가갔다.
와락
그다음 그녀를 와락 껴안아버렸다.
품안에 쏙 들어올 수 있도록 말이다.
"..........딸꾹....딸꾹......."
갑작스러운 선우의 포옹에 황보유연은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너무나 놀란 까닭이었다.
토닥 토닥 토닥
선우는 그런 그녀의 가녀린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기 시작하였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내력을 불어넣어주면서 말이다.
우우우우우웅
이내 선우의 내력이 그녀의 온몸에 전해지더니 긴장되었던 몸을 천천히 풀어주기 시작하였다.
"............."
그러자 이내 딸꾹질이 잠잠해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멈춰버렸다.
"죄송합니다. 황보 부인."
그녀가 딸꾹질을 멈추자 선우는 품안에 안겨있는 황보유연을 바라보며 사과를 하였다.
"어...어째서.."
딸꾹질을 멈춘 황보유연은 의문 어린 얼굴로 선우를 올려다보며 물음을 건네었다.
어째서 선우가 자신을 달래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는 말하였다.
어떤 친절도
어떤 배려도 바라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찌 우는 자신을 이리도 따스하게 안아준 뒤 달래준다는 말인가
덧붙여 딸꾹질도 멈추게 해주고 말이다.
이해가 될 리 만무하였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요.......부인께서 우는 모습을 말입니다."
선우는 진한 연민이 담겨있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간 울만큼 울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제가 어찌 울고 있는 부인을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흐윽...뭐예요...정말...흐윽.."
콩 콩 콩 콩
황보유연은 작은 주먹을 들어올려 선우의 가슴팍을 투닥이기 시작하였다.
모진 말해서 죄송합니다."
쓰담 쓰담
선우는 울고 있는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저를....싫어하는 줄...알았잖아요..."
"그럴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찌 유연처럼 사랑스러운 여인을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병주고....약주는 것도.....아니고.....미워하려면...끝까지 미워하던가...이렇게..다시..안아주면...전...어떻게 하라는...건가요....미워할 수도 조차 없잖아요..나빠요...당신은....나빠요.."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원망하듯 말을 내뱉었다.
물론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보단 기쁨이 가득 차 있었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황보 부인이......아니...유연이 정말 좋으니까요.."
"흐윽...흑...흑..흑...흑"
그녀는 다시금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따스한 말이 가슴을 절로 울렸기 때문이었다.
"사랑합니다....유연."
꼬오옥
선우는 그런 황보유연은 더욱더 따스하게 안아주며 말을 이었다.
"저도...흐윽...저도...사랑해요...선우.."
그녀는 선우의 품에 파고들며 말을 이었다.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해지기 다짐한 것이다.
자신은 선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그를
돈을 마련하지 못해 절망을 하던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그를
끝까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는 그를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무척이나 오랜 시간동안 포옹을 이어갔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듯이 말이다.
***********
"유연, 덥지 않으십니까?"
선우는 품안에 꼬옥 안겨있는 황보유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 더워요."
선우의 물음에 그녀는 즉답을 하였다.
"저는 좀 더운 것 같습니다."
"....저와.....떨어지고 싶으신건가요?"
선우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떨어지자는 그의 말이 어지간히 충격인듯하였다.
"이대로는 소란 소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알겠어요."
그녀는 마지못해 몸을 떼어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따스한 품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었지만 소중한 딸을 위해선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착하네요."
쓰담 쓰담
그녀가 몸을 떼어내자 선우는 칭찬하듯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애 취급하지..말아주세요...저는...소협보다...연상이에요."
선우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황보 유연은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짐짓 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말과는 달리 그의 손길을 굳이 거부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워낙 어리게 생겨서 가끔 여동생처럼 느껴지는 군요."
"....농이....짙어요..선우.."
그녀는 선우의 입에 발린 소리가 싫지 않았는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쓰담 쓰담
선우는 그녀를 두어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유연."
그리고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황보유연을 불렀다.
"네에, 말씀하세요."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으십니까?"
"후회라니요?"
"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분명 후회를 하실겁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소란 소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십니까?"
"......듣고싶어요......이대로 가다간 란이의 몸이 크게 상하고 말거예요...저는 도저히.....그 꼴을 볼 수 없어요."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이소란의 어미였으니까 말이다.
"후우......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로서는 어쩔 수 없군요."
선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다음 올곧은 눈빛으로 황보유연을 응시하기 시작하였다.
"소란 소저가 제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무척이나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그 고백을 거절하였고 소란 소저는 실연의 아픔으로 인해 앓아눕게 된 것입니다."
"뭐라구요!?"
그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의 얼굴에 경악이 어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