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3화 〉 544. 그녀를 옹호하다.
"그..그게 무슨 망발인가요!"
이소란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이화영이야 원체 싸가지없는 계집이라 그럴 수 있다지만 모용상은 엄연히 무림의 명숙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런 예의없고 몰상식한 발언을 옹호한다는 말인가
"망발이라니, 내 들어보니 틀린 말이 하나 없더군."
모용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대의 어미가 다른 부인들에 비해 잘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뭐..뭐라구요!?'"
"뭐, 아름다운 외모는 부정하진 않겠네. 하지만 그정도는 다른 부인들 또한 기본적인 소양으로 갖추고 있지 않는가? 그럼 그 아름다운 외모를 제외하고 그녀가 가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무공이 특출나길 하나 가문이 탄탄하길 하나 아니면 특출난게 있어 천무맹에 보탬이 되길하나? 무엇하나 잘난것이 없지 않는가?"
모용상은 신랄한 어조로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그 발언이 이화영과 전혀 다를바 없이 무례하였고 모욕적이었다.
"어떻게...무림의 명숙이라는 작자가...그런..말을.."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네."
"어머니는 천무맹의 안주인이에요! 그런데 어찌 그런 어머니를 이토록 무시하는 건가요? 이건 맹주에 대한 모욕이나 다를바가 없어요!"
"모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훌륭하신 맹주를 모욕할 리 없지 않은가?
모용상은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모욕한 건 그대의 어미라네. 훌륭하신 맹주가 아니라."
모용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환이 두렵지 않나요?"
이소란은 차가운 눈빛으로 모용살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두려울게 무에 있겠는가? 지금 황보 부인이 끈 떨어진 연 신세라는 걸 천무맹에서 모르는 이가 있는가? 위세를 떨치던 황보세가는 봉문당하여 지원 받기는 커녕 되려 돈을 지원해주고 있는 실정이고 그녀를 지지해주던 계파원들이 하루가멀다하고 이탈하고 있으며 거기다 맹주의 신임조차 잃어버렸네. 그런 황보부인이 무엇이 두렵겠는가? "
모용상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현재 황보유연의 정치적인 입지는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후계 후보인 이소란이 압도적인 인재도 아닐 뿐더러 지지를 보내 줄 황보세가는 봉문하였고 계파원들은 하나둘 전향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소란에게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맹주로부터 큰 호통을 들었다는 사실 또한 당시 맹주전에 근무하고 있던 시비들을 통해 여기저기 퍼져나간 상태였다.
한마디로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 그녀를 어찌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그..그럴리...없어요...그럴리가..없다구요."
이소란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하였다.
어머니는 분명 말하였다.
봉문을 하였기는 하나 황보세가의 지원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또한 수많은 계파원들이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되려 어머니가 황보세가를 지원해주고 있다니?
계파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다니?
"거짓말! 그럴 리 없어! 어머니는 분명 내게 충분한 여유가 있다고 말씀하셨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거짓말이 확실할 것이다.
"푸흡!"
그때 모용상의 옆에 있던 이화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
그리고 경망스럽게 웃기시작하였다.
기품따위는 벗어던진듯 말이다.
"하하하하....이소란, 이쯤되면 황보부인이 되려 불쌍해지는군요."
그녀는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옥처럼 아끼던 딸이, 실상은 어미에 대해 가장 무관심한 존재였으니 말이에요."
이화영은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황보부인은 언제나 돈에 쪼들려 살고 있었어요. 그게 왜 그럴 것 같나요? 분명 품위 유지비라는 명목의 지원금과 계파에서 보내오는 지원금이 있을텐데 말이죠."
".........."
"모든 건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만큼은 부족함없이 살아갈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귀부인으로서 품위마저 잃은 채 억척스럽게 살아갔던 거랍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사실조차 모른 체 흥청망청 돈을 탕진하며 의미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했겠죠."
이화영은 검지를 쭉 뻗어 이소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
그렁 그렁
그녀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충격받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눈물을 글성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물밀듯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말이죠. 후계 후보 중 가장 미천한 자예요. 무력도 지력도 재력도 가문도 인망도 무엇하나 가진게 없으니까요. "
그녀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눈치마저 없잖아요. 세상 돌아가는 꼴을 저 혼자 모른 체 온실의 화초처럼 지내고 있는 멍청이. 그게 바로 당신의 본질이랍니다."
이화영은 경멸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발 주제 파악을 해주세요. 되도 않는 헛짓거리로 자매들의 명예까지 실추시키지 말아주세요. 그냥 방안에 들어가서 어미가 적선해온 돈으로 얌전히 살아가주세요. 어미의 등골이나 쪽쪽 빨아먹으면서 말이에요."
"..............."
"그 편이 당신의 주제에 어울린답니다. 황보가의 웅녀熊女."
이화영은 선고하듯 고압적인 태도로 말을 이었다.
주르르륵
그 말을 들은 이소란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녀의 독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노가 치솟았다.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어머니와 가문을 모욕한 저 둘에게
가장 사랑하는 어미에 대해 가장 무관심했던 스스로에게
후회가 되었다.
힘든 어머니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봐주지 않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어머니에게 반항을 하고 반발을 하며 고함을 내지르던 과거 자신의 행동이
제대로 된 사정조차 모른 체 흥청망청 돈을 써버렸던 철없던 자신의 행동이
연민이 치솟았다.
자신을 위해 제 몸을 희생하여 기품마저 저버린 채 비굴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삶이 말이다.
"흐그윽...흑....흑...흑..흑."
이내 이소란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올랐던 복합적인 감정이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라라...울려버렸네요...헤헤"
그녀가 울자 이화영은 상쾌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바보 같은 이소란이 하염없이 우는걸 보니 속이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웅녀는...울음소리도 우렁차군요....이정도면 천무맹 제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화영은 이소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조롱을 하기 시작하였다.
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모욕을 줄 심산이었다.
"흐으으윽...흐으윽...흐으아아아아앙."
이소란은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을 멈추고 싶었지만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인 황보유연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이화영과 모용상으로부터 받은 모욕감과 수치심이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 탓이었다.
"후아아아아아아앙!"
그녀는 울었다.
마치 세살배기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
"아아아아...안타깝네요....이런 장면을 저 혼자만 보다니요....이런 장면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 모습을 본 이화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자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기록해서 황보부인에게 그래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그녀는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만 보고 즐길 수 밖에......'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울고 있는 이소란을 응시하였다.
눈물과 콧물은 물론 식은 땀까지 잔뜩 흘리는 꼴이 퍽이나 웃겼다.
'더 울어라~ 더 울어라~'
그녀는 속으로 부채질을 하였다.
끊임없이 울음을 터트리라면서 말이다.
이 처소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이들이 그녀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저벅 저벅
그때 그녀의 귓가로 무척이나 규칙적인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장선우가 기거하고 있다는 처소에서 말이다.
'응?'
순간 울고있는 이소란을 구경하고 있던 이화영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내 그녀의 시야에 누군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꽤나 준수한 외모.
육척 정도되는 장신
옷위로 보이는 이곳저곳 발달된 근육들
척봐도 균형잡힌 걸음걸이
자신을 넘어 오만마저 느껴지는 빨려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
그 모습을 본 이화영은 알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바로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불리우는 장선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눈꼬리를 반달처럼 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그러자 누가봐도 호감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기다렸다.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우는 장선우가 자신을 아는 척 하기를 말이다.
저벅 저벅
그의 걸음걸이가 점점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두근 두근
그가 다가올 때마다 이화영의 심장소리는 더욱더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나 걸어왔을까
이내 그가 그녀의 코앞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후우'
그녀는 속으로 심호흡을 하였다.
이제 머지 않아 그가 자신 앞에서 멈춰선 뒤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건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그리하였으니 말이다.
저벅 저벅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옆을 그대로 지나쳐 이소란에게 걸어간 것이다.
와락
순간 이화영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지기 시작하였다.
어찌 자신을 무시하고 반반한 것 빼고는 볼 것 없는 이소란에게 먼저 다가간다는 말인가
"왜 웁니까? 소저."
뚝
바닥에 처박혀있는 이소란의 앞에 다가간 선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흐으윽...너무...흐윽...미안해서..요.."
"뭐가 그리 미안합니까?"
"전부...전부요오오오...흑..흑..흑."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한테도 미안하고.......흐흑...소협에게도 미안하고....저를 믿어주던...계파원들한테도...전부...미안해요.....흐극...흑...흑.."
"어째서 미안합니까?"
"제가.....흐으극...흑..철없이...흑.멍청하게...굴었어요...저는...나쁜..아이예요..흐윽.."
"소저가 바보이긴 하지만......나쁜 아이라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흐극.....네에?"
"소저가 정말 나쁜 아이라면 미안하며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테니까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죄책감의 강도는 그 사람의 심성과 비례하기 마련이지요. 대로변에서 꺼이꺼이 울정도로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만큼 소저의 심성이 곱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선우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어느새 울음을 그친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선우가 어머니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떄문이었다.
"그러니 그만 우셔도 됩니다. 소저는 나쁜 아이는 아니고 그냥 바보이니까요."
"....그게..뭐예요.."
그를 바라보던 이소란은 이내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무슨 위로를 이따위로 하냐는듯한 질책이 담겨있었다.
"이런 곳에서 울어봤자 꼴만 사납지 않겠습니까? 우는 건 처소에 가서 혼자 울고 지금은 신색을 회복하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
선우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소협 말이 맞아요...안그래도 꼴이 우습게 되었는데....더 우스워질 수는 없죠.."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다음 손을 들어올려 물기에 젖어있는 눈가를 거칠게 닦아내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어이없는 위로에 감정 과잉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은 까닭이었다.
"수긍이 빠른게 소저의 장점입니다."
선우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덥석
이소란은 그런 선우의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저는 용서 받은건가요?"
몸을 일으킨 이소란은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요. 그건 아직 생각 중 입니다."
"그럴거면 왜 나온거예요."
이소란은 불만인듯 볼을 살짝 부풀리며 말을 이었다.
"다 큰 처녀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선우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얼굴을 슬며시 붉히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못볼 꼴을 보여줬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부끄럽습니까?"
선우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소란을 바라보며 짓궂게 물었다.
"......몰라요.."
그녀는 토라진듯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말하였다.
"더 부끄러운 꼴도 다봤으면서 새삼스럽게.."
".............."
화악
선우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얼굴을 더욱더 붉히기 시작하였다.
선우의 짓궂은 말에 그와 지새웠던 밤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소협."
그때 뒤편에서 무척이나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선우는 천천히 뒤쪽으로 고개를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무척이나 기품있어보이는 여자가 선우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소협께서는 무척이나 예의가 없으시군요."
그녀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살가운 미소와 달리 무척이나 차가운 말투였다.
"아, 죄송합니다. 울고 있는 친우를 달래느라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친우요?"
"그렇습니다. 소란 소저는 제 벗이지요."
선우는 확신에 찬듯한 눈빛으로 이화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소협께서는 아무래도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한듯 싶군요. 그런 모지리를 벗으로 삼다니 말입니다."
이화영은 기품 넘치는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이소란에 대한 무시가 가득 담겨있었다.
"글쎄요. 적어도 부모를 들먹이며 자매를 비난하는 쓰레기 같은 년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요?"
싸아아아악
순간 그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냉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북풍한설 따위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싸늘한 냉기가 말이다.
".............소협."
이내 웃음기를 싹 지우고 차갑게 식은 표정을 지은 이화영이 선우를 불렀다.
"그건 절 겨냥하고 한 말인가요?"
그녀의 눈빛에는 차가운 분노가 가득히 서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