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2화 〉 543. 이소란, 모욕을 당하다.
"후우"
선우의 처소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이소란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와 싸우고 나온 것이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어미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녀였다.
언제나 사랑으로 보듬어준 어미에게 반발따위를 할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그녀가 반발을 하였다.
언성을 높이고 고함을 내지르면서 말이다.
죄책감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아니야, 이번에는 어머니가 잘못했어!'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휘저으며 죄책감을 부정하였다.
이번에는 명백히 어머니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미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편이 아니라고 연을 끊으라니
너무나 편협한 사고방식이었다.
만약 그런식으로 사람을 가려서 사겼다간 주위에 남아있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편협한 사고방식을 강요한다는 말인가
그녀는 생각하였다.
언제나 현명한 어머니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녀가 잘못한 것이 확실하다고 말이다.
'절대 사과하지 않을거야!'
그녀는 속으로 다짐을 하였다.
어머니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때까지 일언반구도 섞지 않겠다고 말이다.
"어머, 이게 누구신가요? 황보가의 웅녀가 아니신가요?"
그렇게 그녀가 굳은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우아하면서도 재수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이소란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고귀한 척
우아한 척
기품있는 척
온갖 꼴깞은 다 떠는 재수없는 계집의 면상을 말이다.
".....이화영."
이소란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내뱉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황보가의 웅녀."
이화영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화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다르게 불러드릴까요? 일자무식은 어떤가요?"
그녀는 조롱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름으로 불러......이화영."
"너무나 어려운 부탁이네요. 당신에게 인간 대접은 십 년은 일러요."
"죽고 싶은거야?""
이소란은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이가 어디있겠어요."
이화영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꼴을 보아하니 내게 맞아죽고 싶어 발악을 하는 것 같은데?"
이소란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후후훗....그럴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고작 절정 중경에 불과하면서?"
그녀는 비웃음 섞인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절정 상경에 도달한 자신과 달리 아직 중경에 불과한 이소란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패버린다고 하니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란 말인가
"흥. 너처럼 가식떠는 년쯤이야. 근성으로 후드려패면 돼."
"정말 그놈의 근성론은 답도 없군요. 무공은 효율적으로 익혀야하는거예요. 무의미한 노력만을 요구하는 근성따윈 구시대적인 사고랍니다."
이소란의 말을 들은 이화영은 질색한다는듯 말을 이었다.
연나라 때부터 수 백년동안 끊임없이 발전시킨 가문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근성론 따위는 허상에 불과하였다.
그런 것따윈 효율적인 무공을 배우지 못한 이들의 발악과 자기 위로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급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명가의 후손인 이소란이 근성을 입에 담는다.
어찌 이리 천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당신이 고작 절정 중경에 불과한 거예요. 후계 중 가장 비루한 경지가 아닌가요? "
으득
그녀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녀의 재수없는 말에 짜증이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화영의 말대로 그녀의 경지는 다른 후계들에 비해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후계 후보들 모두가 절정 상경이라는 경지에 다다라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 재수없는 여자보다 자신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비를...걸러..온거야?"
이소란은 적의가 담긴 눈빛으로 이화영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시비를 걸러왔다뇨. 그저 그대의 멍청하고 우매한 짓을 교정해줄 뿐이에요."
이화영은 거만한 표정을 지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교육?"
"네에, 품위와 격식따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대에게 말이에요."
"꺼져, 네 교정 따윈 필요없어."
이소란은 불쾌한듯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저도 좋아서 이러는건 아니라구요. 당신처럼 모자란 이와 말섞은게 얼마나 품격 떨어지는 일인 줄 아시나요? 당신의 몸에 저와 같은 핏줄이 흐르지 않았다면 쳐다도 안봤을 겁니다. "
"싫으면 안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럴 순 없어요. 저와 같은 핏줄이 흐르는 이상 그대의 천박하고 열등한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제 명예와 직결될테니까요."
이화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 삼생의 영광인줄 알고 제 말에 잘 따르도록 하세요."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흥, 퍽이나."
이소란은 코웃음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우우우우웅
그리고는 내력을 끌어모은뒤 기세를 뿜기 시작하였다.
"지금 반항하겠다는건가요?"
"네 말을 들은 생각도 의지도 없어. 그러니 다치기 싫으면 돌아가."
이소란은 기운을 흩뿌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말을 들은 이화영은 비웃듯말하였다.
절정 상경인 자신에 비해 중경이라는 미천한 경지에 위치해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기운을 흩뿌리며 위협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경지에 차이가 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당할 정도는 아니야."
이소란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보다 미천한 경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뛰어넘지 못할 정도의 경지는 아니었다.
임기응변이나 실전 경험등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수준 차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정말 멍청하네요."
그 말을 들은 이화영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멍청한 황보세가의 핏줄이 어디 가진 않는군요."
"가문을 욕하지마!"
이화영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자신을 욕하는 건 상관없었다.
자신이 배움이 모자르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가문을 욕하는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황보세가는 주제도 모르고 까불다 봉문당한 머저리 집단이잖아요?"
그녀가 발끈하자 이화영은 신랄한 어조로 황보세가를 모욕하기 시작하였다.
"말조심해! 황보세가는 어머니의 가문이야! 네 작은 어머니의 가문이라고!"
"글쎄요, 저는 황보부인을 단 한번도 어머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뭐라고!?"
"애초에 같은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존경할 만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화영은 신랄하게 황보유연을 까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를 모욕하지마!"
"모욕받기 싫으면 뭔가 뛰어난 구석이라도 있어야하는게 아닌가요? 황보 부인에게는 특출난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대부인이나 강부인처럼 어마어마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팽부인이나 언부인처럼 한 단 체의 장으로서 직급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당부인처럼 독공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제갈 부인처럼 이지적인 것도 아니지 않나요? "
"그건 모용부인도 마찬가지 아니야!?"
이소란은 뾰죡하게 말을 내질렀다.
"어머, 저희 어머니는 특출 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있는 그대로가 고귀하고 품격이 넘치는 귀부인이라서 말이에요."
"궤변이야!"
"궤변이 아니에요. 아마 저 말고도 다른 수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녀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장점을 찾을 수 없는 여자라고 말이에요."
"그만...해....."
이소란은 시뻘개진 얼굴로 이화영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존경할 건덕지 하나 없는 여자를 어찌 어머니라고 칭할 수 있겠어요? 그저 황보부인이라는 호칭이 가장 적당해요. 남처럼 느껴지고 참 좋지 않나요?"
"그만.....그..입..다물어."
"아, 그러고보니 장점이 하나 있긴 하네요. 저번에 어머니께 돈을 빌리러 오셨거든요. 그때 어머니가 무릎을 꿇으면 만냥 정도는 융통해준다고 하니 그대로 무릎을 꿇더군요. 그 수치를 모르는 뻔뻔함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당당함은 정말 존경스러워요. 물론 닮고 싶지는 않지만요."
이화영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황보유연을 쉴새없이 모욕하였다.
뚝
그리고 그녀의 모욕적인 언사는 이소란의 이성을 붙잡고 있던 끈을 그대로 끊어버리기에 충분하였다.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효녀가 바로 이소란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미에 대한 모욕은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치솟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그만해에에에에!"
부웅
격노를 참지 못한 이소란은 내력이 가득 담긴 주먹을 이화영에게 날렸다.
그녀의 얄미운 주둥이를 그대로 박살내버릴 심산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액
바람 꿰뚫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주먹이 그대로 이화영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덥석
그때 누군가 갑자기 이소란의 손목을 덥석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이 그자리에서 그대로 뒤집어지기 시작하였다.
"어어...어어어!?"
갑자기 몸이 뒤집어지자 이소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너무나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휘리리리릭
이내 몸이 뒤집어진 그녀는 허공에서 그 상태로 몇 번이고 회전을 하였다.
마치 무언가 강제로 몸을 회전시키듯이 말이다.
콰쾅
이내 몸이 허공에서 몇 바퀴나 돌아버린 이소란은 그대로 땅에 처박혀버렸다.
어마어마한 굉음을 터트리면서 말이다.
"으으으윽....으으윽.."
땅에 처박힌 이소란은 연신 신음성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땅에 처박히면서 온몸의 뼈가 골절된 것과도 같은 고통이 찾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크으윽...누구.....십니까.."
그녀는 찔끔 흘러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삼킨 후 자신을 내던져버린 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모용상이다."
무심하게 생긴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유리검瑠璃劍?!"
남자의 말을 들은 이소란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모르는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리검瑠璃劍 모용상
그는 모용세가의 방계 출신으로 그 특출난 재능을 인정받아 방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두전성이斗轉星移와 유리검瑠璃劍이라고 불리우는 모용가의 비전 무공을 전수 받은 모용세가가 최고의 고수 중 하나였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얇은 검을 주로 사용하는 그는 과거 요녕땅을 뒤흔들었던 천지쌍마라는 마두들을 유리검을 사용하여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여 그 명성을 떨쳤으며 그 후 수십년간 마인 척결이라는 명분하에 요녕땅에 존재하는 모든 마인들에게 죽음을 선사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전설적인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막아선 것이다.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가 있곘는가
"알아보는구나."
그녀의 말을 들은 모용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당신이...저를..!?"
그녀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영아를 해하려고 하지 않았더냐? 어찌 내 귀한 조카가 상처를 입는 것을 내버려둔다는 말이더냐?"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으으윽...이건...저와...이화영 사이에 일이에요.."
이소란은 연신 신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온몸에 어마어마한 격통이 치밀어오른 까닭이었다.
"말로만 해결했다면 내가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살의가 담긴 주먹을 뻗었고 내가 나서서 중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걸...중재라고..하던가요? 이렇게 중상을 입혀놓고?"
이소란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용상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셔왔고 숨쉬는 게 불편하였다.
상당한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런 중상을 입힌 주제에 중재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내가 익힌 두전성이斗轉星移는 외부에 작용하는 모든 힘의 방향을 되돌리는 효용을 가지고 있다. 네가 중상을 입은 것은 네가 그만한 힘으로 영아를 가격하려고 하였기에 벌인 일이다."
모용상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잘못 같은 건 일절 없다는듯한 태도였다.
"이건...후계 간의 싸움이에요!"
"영아는 후계이기 이전에 내 조카이다."
"그녀가 제 가문과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을 보시지 않으셨나요?"
이소란은 억울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억울하였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이화영이었다.
먼저 모욕을 한 것은 이화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추하게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고통을 받아야한다는 말인가
"영아가 틀린 말을 한건 아니지 않더냐?"
가재는 게편이라고 하던가
모용상은 당연하다는듯이 이화영의 편을 들어주었다.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뭐...뭐라구요!?"
"반박을 못하고 주먹을 날린 건 네가 찔려서 그런 것이 아니더냐?"
"어떻게....그런?!"
이소란의 눈망울이 서서히 적셔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