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7화 〉 518. 작업에 들어가다.
타타타탁
이재원의 집무실에서 나온 황보유연은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는 그녀의 뺨에는 반짝이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흐윽...흑.....흑"
울면 안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엄연히 천무맹의 안주인.
누군가의 동정과 연민을 사서는 안되는 지고한 위치에 서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물샘이 도저히 제어가 되지 않았다.
한 번 터진 설움이 눈물샘을 망가뜨려버린 탓이었다.
"흐극....으으윽...흐그극."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가렸다.
울음을 멈출 수 없다면 얼굴을 가리는 편이 나으리라
타타타타타탁
타타타타타탁
얼굴을 가려버린 황보유연은 달리고 또 달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 발길이 닿기를 빌고 또 빌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쿵
"으윽!"
그녀는 무언가에 단단한 것에 그대로 부딪히더니 바닥에 엉덩방아 찧어버렸다.
전방주시를 제대로 하지않아 그래도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내 황보유연의 얼굴이 더욱더 울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량으로 구매한 찻잎은 가짜였고 딸은 경쟁자에게 사기를 당하였다.
반 년전 받아먹은 뇌물은 탈이 나버렸고 하나 뿐인 남편 이재원은 자신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남들보기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달렸더니 그대로 부딪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비참하였다.
비참하고 또 비참하였다.
"흐극....흐윽...흐으윽...흑..흑..흑...흑..흑.흐아아아아아앙!"
차오르는 비참함에 결국 황보유연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나 서럽고 서러웠기 때문이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앙!"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원없이 목놓은 채 말이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앙!"
싫었다.
모든 게 싫었다.
사업병이 도져 가난해진 황보세가도
그런 황보세가를 놓지 못하고 멍청하게 송금만 하는 자신도
이런 자신을 사치나 부리는 방탕한 여자라고 여기는 이재원도
안그래도 힘들어죽겠는데 곰같은 성정을 타고나 여우같은 년들에게 속고 다니는 딸도
전부 다 싫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앙!"
그녀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한 번 울음이 터지니 그간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이 한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앙!!!!!으아아아아아앙!"
그쳐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천무맹의 안주인으로서 갖춰야할 기품과 품격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초절정이라고 불리우는 지고한 경지에 이를 정도로 상당한 정신적인 수양을 쌓은 그녀였지만 감정의 폭풍 앞에서는 그저 연약한 여인일 뿐이었다.
'그...쳐야...하는데......그쳐야...하는데...'
하지만 마음이 도와주지 않았다.
이성적인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끝이야..'
그녀는 생각하였다.
울음이 그칠 때쯤이면 천무맹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이 뻔하다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감정이 더욱 북받치기 시작하였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앙!"
그녀의 울음소리는 더욱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목놓아 울고 또 울고 있을 때였다.
와락
갑자기 온몸을 감싸는 포근함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자신을 껴안은 것이다.
토닥 토닥 토닥
더불어 등을 토닥여주는 감촉이 느껴졌다.
너무나 따스하고 그리워하던 사람의 감촉이었다.
그녀는 그 따스한 품에 안겨 더욱더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몸을 감싸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그녀의 억눌렀던 감정을 더욱더 풀어헤쳤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울음은 쉴새없이 지속되었다.
묵혔던 감정이 모두 해소될 때까지 말이다.
***********
"훌쩍...훌쩍....훌쩍...훌쩍"
황보유연은 콧물을 훌쩍거리기 시작하였다
억눌러놨던 설움과 서글픔의 감정이 어느정도 해소가 되고 울음을 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훌쩍........훌쩍........."
그렇게 얼마나 훌쩍거렸을까
".........."
이내 그녀는 울음을 완전히 그칠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녀가 울음을 그치자 위쪽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황보유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
그러자 그녀의 시야에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괜...괜찮아요.."
남자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한 황보유연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힌 채 말을 더듬었다.
외간 남자의 품안에서 목놓아울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물밀듯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이제..놔주셔도 돼요.."
황보유연은 여전히 자신을 껴안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단단하고 따스한 품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천무맹의 안주인이었다.
외간 남자에게 안겨있는 모습을 보일수는 없는 것이다.
"놔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이대로 놔드린다면 울고 있었던 사실이 들통나버릴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남자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
그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배려가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품에 안아 목놓아 울고있는 자신의 얼굴을 숨겨주었다.
그리고 울음을 그친 후에도 자신을 배려해 좀처럼 놔주지 않고 있었다.
지이이잉
가슴이 울렁이기 시작하였다.
대체 얼마만에 받아보는 호의와 배려라는 말인가
한없이 피폐해진 그녀에게 남자의 작은 배려는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눈물이 날정도로 말이다.
"그럼....처소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안내해드리지요."
말을 마친 남자는 그대로 겉옷을 벗더니 그녀의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아......제 처소는..."
그가 걸음을 옮기자 황보유연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목적지를 안내할 심산이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황보 부인."
그러자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에.."
그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얼굴을 붉히며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물밀듯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많이 추했죠?"
황보유연은 창피함에 얼굴을 더욱 붉히며 말을 이었다.
"목놓아 우는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다우셨습니다."
".........농이 과해요."
"진심입니다."
남자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감사해요."
그의 위로를 들은 황보유연은 능금처럼 얼굴을 붉혔다.
두근 두근 두근
더불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부드러운 위로와 아름답다는 말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파고든 까닭이었다.
저벅 저벅
황보유연은 남자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말이다.
*************
끼이익
남자는 천천히 문을 젖혔다.
그러자 천무맹주의 부인이 기거하는 방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소박한 전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장식품이라고는 일절없는 무척이나 정갈한 전경이었다.
"도착하였습니다."
남자는 품안에 안겨있는 황보유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고마워요.."
남자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우물쭈물거리며 천천히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좀더 안기고 싶다는 욕구가 차오르긴 하였지만 그녀는 애써 그런 욕구를 꾹꾹 눌러담았다.
더이상 그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소까지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민폐였으리라
"감...사해요."
품에서 벗어난 황보유연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였다.
"별말씀을요."
그녀의 인사에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듯 손사래를 쳤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살짝 목례를 하고는 미련없이 뒤로 돌아버렸다.
그대로 나가버릴 심산인듯 싶었다.
'아...'
그 뒷모습을 본 황보유연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의 치부를 전부 봐버린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무척이나 창피한 일이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잠깐만요!"
황보유연은 다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네?"
남자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돌아보았다.
"차...한 잔...하지 않으실래요?"
황보유연은 팽가련에게 받은 용정을 살며시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쉴새없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혹여 그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고개를 살며시 주억거렸다.
"네에!"
이내 황보유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
.
.
.
.
.
쪼르르륵
황보유연이 찻잔에 조신히 차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이내 찻잔에 뜨거운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식기 전에...드시지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살며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한 차례 향을 음미하더니 그대로 차를 삼키기 시작하였다.
"향이 무척 좋군요. 감사합니다 부인."
탁
남자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한게 뭐가 있나요. 그저 찻잎이 좋았을 뿐이랍니다. "
황보유연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도는 정성이라고 들었습니다. 찻잎이 아무리 좋아도 만드는 이의 정성이 없다면 이렇게 좋은 향이 날 수 있겠습니까?"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남자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얼굴을 잔뜩 붉혔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금칠이라뇨? 진심으로 느낀 바를 말했을 뿐입니다."
남자는 진지한 눈빛으로 황보유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화악
그 눈빛을 마주한 황보유연은 얼굴을 화악 붉혔다.
진지하기 짝이 없는 그의 눈빛이 무척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파닥 파닥
황보유연은 슬며시 손을 들어올려 붉어진 얼굴쪽에 파닥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를대로 오른 열을 식힐 심산이었다.
"더우신가보군요."
"살짝...그렇네요...아무래도 여름이다보니..."
그녀는 변명하듯 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의 멋진 모습에 흥분하여 열이 오른 것이지만 그런 사실을 멋대로 내뱉을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날씨 핑계를 대는 편이 백번은 나은 일이리라
"더우시다면 옷을 벗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에!?"
그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옷을 벗으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설마 내 몸을 노리고?'
그녀는 이내 얼굴을 잔뜩 붉어지기 시작하였다.
수치심과 모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에게 못 볼 꼴을 보이긴 하였지만 자신은 엄연히 천무맹의 안주인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어찌 그런 음심을 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아무리 그가 잘생기고 배려심 넘치고 친절하다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내 황보유연은 언성을 높이며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잔뜩 서려있었다.
"겉옷을 입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걸 벗으면 한결 나을 것 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겉...겉옷인가요?"
"겉옷말고 달리 벗을게 있습니까?"
남자는 모르겠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민망한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멍청한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아....나는...바보인가.'
그녀는 민망함이 미친듯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저렇게 멋진 남자가 추하게 우는 늙은 여자를 좋아할 리 만무하였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잊어버린 채 그런 부끄러운 망상을 하다니
민망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아직은...괜찮은 것 같습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떼어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붉은 홍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별말씀을요."
남자도 그런 황보유연의 반응을 느낀 것인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
이내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한 침묵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민망한 착각을 한터라 좀처럼 입이 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제...화제를 돌리자.'
이내 황보유연은 결심한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보니 통성명을 안하였군요. 저를 도와주신 은인인데 이리도 실례를 범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황보유연이라고 합니다. 천무맹주의 일곱번 째 부인이지요."
황보유연은 최대한 태연한 얼굴을 가장한 채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 저도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마땅히 이름을 밝혀야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었으니 말입니다."
황보유연의 말을 들은 남자는 송구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름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이 미안한듯 싶었다.
"제 이름은 장선우라고 합니다. 무림에서는 천룡이라는 허명을 얻고 있는 이지요.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보 부인."
남자,장선우는 무척이나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었다.
"...장...선우?"
그리고 그 인사를 받은 황보유연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정체를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황보유연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