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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 안으로 들어와버렸다-514화 (515/1,419)

〈 514화 〉 515. 황보유연의 우울

"뭐? 후계 경쟁이 미뤄졌다고?"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팽가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에, 아무래도 뒤숭숭한 지금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한듯 싶어요."

"얼마나 미룬대?"

"정확한 날짜는 따로 공지되지 않았어요. 아마 대자보를 붙인 범인을 잡을 때까지 유예할 심산인 것 같아요."

"이렇게 간단히 미뤄질거면 일찍 오라고 하지 말던가."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나 무례하였다.

한달이나 일찍 부른 주제에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기약도 없이 무한 대기라니

짜악

"너 때문이야."

선우는 손을 올려 그대로 팽가련을 후려쳤다.

그러자 팽가련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가버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녀는 곧바로 선우에게 사과를 하였다.

무척이나 송구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사실 그녀의 잘못이랄건 없었다.

후계 경쟁을 미룬건 천무맹주 이재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하였고 때마침 옆에 팽가련이 있었다.

때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흐음...이러면 곤란한데.....후계 경쟁때 스리슬쩍 도와주면서 꼬셔보려고 했는데.."

선우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후계 경쟁동안 황보유연을 꼬여낼 생각을 하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후계 경쟁이 미뤄지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 처음부터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는 고민하였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하고 말이다.

"야"

그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팽가련의 반대뺨을 후려쳤다.

짜악

"말...말씀하세요."

팽가련은 양뺨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좋은 방법없냐?"

"...........글...글쎄요?"

짜악

"쓸모없네."

선우는 다시금 뺨을 후려치며 입을 열었다.

"쓸모없어서 죄송합니다. 멍청해서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연신 굽신거리며 사과를 하기 시작하였다.

선우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자책감이 몰려온듯 하였다.

'흐음....'

선우는 고심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후계 경쟁이 미뤄진 이상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돈에 쪼달리고 있는 황보유연을 옭아맬만한 방법을 말이다.

'돈을 그냥 주는 건 너무 노골적이고........그렇다고 이걸 후원형식으로 주면 입 싹 닦을 수 있다는 말이지.......어쩐다..'

선우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돈이야 차고 넘칠만큼 많은 이가 바로 선우였다.

북궁연에게 받은 묘안석만 세 개였고 그 중 두 개를 꽤나 괜찮은 가격에 팔아치워 상당한 차익을 남겼다.

그걸 비자금을 꿀꺽한 상태였기에 개인적으로 융통할 수 있는 돈이 상당한 것이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막써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 금액으로 최대 효율을 야기시켜야했다.

'빚을 지게해야하는데.....빚을....'

그렇게 고민하던 그때였다.

그의 머리에서 무언가 번뜩 스쳐지나갔다.

꽤나 괜찮은 계획을 떠올린 것이었다.

"가련아."

선우는 옆에서 부어오른 양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팽가련을 불렀다.

"네에...선우님."

"너 나랑 일좀하자."

"어떤......일인가요?"

그녀는 의문스러운듯한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재밌는 일."

선우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기품 있어보이는 귀부인이 탁자에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찻잔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흐읍"

그리고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음미하였다.

질이 낮은 하품의 찻향이 코안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하아."

그녀의 입에서 크나큰 한숨을 내쉬어졌다.

너무나 질낮은 찻향에 실망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상등품이랑 다를바가 없어! 사기꾼 자식들!"

그녀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상등품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것을 철썩 같이 믿고 대량으로 구매했건만 아무래도 사기를 당한듯 싶었다.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다.

당장에라도 찻잔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후르르릅

하지만 그녀는 찻잔을 던져버리긴 커녕 들어올려 그대로 마시기 시작하였다.

싸다며 대량으로 산덕에 상당한 지출을 낭비한 그녀였다.

이대로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차를 전부 들이마신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으으으...맛없어."

그리고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싸구려 찻향만큼이나 맛없는 식감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 까닭이었다.

"흐극...흑...진짜..짜증나."

그렁 그렁

이내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였다.

처량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처지에 설움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누구란 말인가

천무맹의 안주인이자 황보세가의 직계혈족인 황보유연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신이 차 한잔 제대로 사먹을 돈이 없어서 싸구려 찻잎으로 우린 싸구려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어찌 설움이 몰려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망스러웠다.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다.

먼저 저승길로 가버린 오라버니 황보강이 원망스러웠다.

오라버니를 죽여버린 독왕 당진철이 원망스러웠다.

세가의 재정을 파탄내버린 수뇌부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대로 봉문을 선택한 남아있는 직계혈족들이 원망스러웠다.

벌컥

그때 갑자기 그녀의 방문이 거칠게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다급히 지워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내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문이 열리고 척봐도 말괄량이 티가 가득 나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짧은 말총 머리.

장난기 가득 서려있는 눈망울.

오똑하고 날선 콧대.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매.

어미를 닮아 꽤나 태가 나는 육감적인 몸매.

황보유연의 딸인 이소란이었다.

"왔느냐."

황보유연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나 돈주세요!"

이소란은 다짜고짜 황보유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돈이라면 얼마 전에 타가지 않았더냐?"

황보 유연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돈이라면 얼마 전에도 듬뿍 타갔던 이소란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짜고짜 무슨 돈을 요구한다는 말인가

"그게 언제적 일인데 그러세요. 다 쓰고 없답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많던 돈을 어디다 썼더냐.."

그녀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 그녀에게 상당한 금액을 건네준 그녀였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벌써 다썼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번 경매에 새로 나온 영약이 있더군요. 저도 모르게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녀는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무절제한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냐.."

그녀의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쓸데없는데 쓴 것이라면 경을 치며 화내었겠지만 영약을 구매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내공을 증진시켜 경지를 높이겠다는데 어찌 욕을 할 수 있겠는가

"뭘 구매하였느냐?"

"삼십년산 설삼이요!"

"삼십년산?"

"네에!"

"몇 개나 샀더냐?"

"한 개밖에 못샀어요!"

"한 개!?"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삼십년 산이 비싸긴 하였지만 며칠 전 내어준 돈으로는 서너개는 살 수 있을터였다.

그런데 어찌 한 개밖에 사지 못했다는 말인가

"네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치열했어요. 경아 그기집애한테 빼앗길 뻔했다니까요!"

"경아라면.......당진설의 딸 이현경을 말하는 것이더냐?"

"네! 그 기집애말이에요."

이소란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하였다.

으득

그 말을 들은 황보유연은 이빨을 으득 갈았다.

모든 내막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딸이 잘 가지도 않는 경매장을 가게 되었는지

어째서 딸이 삼십년 묵은 설삼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샀는지 말이다.

공작을 당한 것이다.

당진설의 딸 이현경에게 말이다.

그녀는 멋모르는 이소란을 경매장에 끌고 간뒤 삼십년 산 설삼에 입찰을 한 것이다.

이소란은 그녀를 따라 입찰을 하였고 이현경은 그런 그녀를 털어먹기 위해 입찰금을 한없이 높였을 것이다.

마치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이현경의 행동은 승부욕이 강한 이소란을 자극하였고 결국 한달 치 생활비를 완전히 탕진하게 만든 것이다.

으드드득

'여우 같은 년이!'

황보유연은 다시금 이를 으드득 갈았다.

제 어미를 닮아 독살스럽게 행동하는 이현경의 행동이 심히 거슬린 탓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돈이 필요해요. 어머니!"

이소란은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내어주마."

황보유연은 그런 딸을 바라보며 천천히 운을 떼었다.

딸이 무슨 죄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얕긴 하지만 착하기 그지없는 딸이었다.

그런 딸에게 멍청하다며 손가락질하고 싶진 않았다.

황보유연은 품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주머니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다음 주머니를 그대로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가져가거라."

그녀는 눈물을 꾹 참으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 좋아하는 차마저 싸구려로 바꾸며 간신히 모은 비자금이었다.

그런 비자금을 요악한 이현경에 의해 털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와아...이렇게나 많아요?"

그녀는 주머니를 열어보며 말을 이었다.

".....아껴...써야한다."

그녀는 이를 악물으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어머니, 혹여 무리하는건 아닌가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세가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건 그녀도 잘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돈까지 쥐여주니 괜스레 부담감이 들었다.

"무리라니......어미는 무리해서 돈을 내어주고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그저 사정에 맞게 내어줄 뿐.....더 내어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하구나."

그녀는 이소란을 바라보며 허세를 부렸다.

한달동안 아끼고 아껴서 만든 비자금이었다.

그런 비자금을 속절없이 털리고 있건만 그녀는 오히려 허세를 부렸다.

자신은 가난히 살아도 딸만큼은 풍족하고 여유롭게 살게하고 싶은 그녀의 바램이 녹아난 허세였다.

"헤헤헤헤...어머니 사랑해요."

그 말을 들은 이소란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황보유연에게 다가가더니 그대로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하였다.

"원, 저리 가거라."

황보유연은 그런 딸의 입맞춤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손을 들어올려 딸을 밀어내었다.

물론 그 밀어내는 손길에는 애정이 가득 차 있었지만 말이다.

"란아...이제 경매장은 가지말거라."

"네에 어머니~"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황보유연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들어온 것처럼 빠른 퇴장이었다.

황보유연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딸에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황보유연의 흐뭇한 표정은 단박에 울상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눈가에는 눈물이 글성글성 맺히기 시작하였다.

뚝 뚝 뚝

"흐윽...흑...흐극...흑"

이내 그녀는 울기 시작하였다.

서럽다는듯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이다.

"저게...어떤...돈인데..흐윽..저게...어떤...돈인데.."

그녀는 서러움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방안에 있는 각종 사치품을 헐값에 팔아치워 마련한 돈이었다.

그 좋아하던 용정차를 하품下品으로 바꾸고 마련한 돈이었다.

그런데 그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이현경의 악랄한 술수에 말려들어서 말이다.

서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윽...나쁜...흑..년...흐극..흑.."

그녀는 이현경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며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하였다.

딸은 어미를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하는 짓거리를 보니 독사같은 당진설을 빼다박은듯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이현경이었다.

황보세가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어찌 이런 치졸한 짓을 벌인다는 말인가

"복수할거야....복수할거야...복수할거라고!"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였다.

자신을 눈물 짓게한 이현경에게 말이다.

복수를 다짐한 황보유연은 다시금 찻잔을 들어올렸다.

벌컥 벌컥

그리고 다시금 차를 들이키기 시작하였다.

"우웨에엑"

그러자 이내 역함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하품을 넘어서 가짜를 팔아치운듯 하였다.

"아 진짜!"

쨍그랑

그녀는 찻잔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짜증이 물밀듯이 치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이내 후회를 하였다.

아끼던 찻잔을 제 손으로 깨뜨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씨이잉!"

그녀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볼을 부풀리며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

산산조각이 나 복구불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녀의 우울함이 한층 더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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