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3화 〉 464. 소집 통지서가 오다.
"참나."
당진설이 보내온 서신을 읽은 선우는 실소를 터트렸다.
서신에는 당진철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청하는 글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진철이 자신이고 자신이 당진철인데 누가 누구를 죽여달라는 말인가
실소가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선우야 왜 웃어?"
그때 옆에 있던 요랑이 궁금한듯 그에게 물었다.
"웃긴 내용이 써있거든."
"나도 볼래."
요랑은 궁금하다는듯 손을 뻗었다.
선우는 미련없이 그녀에게 서신을 건네주었다.
터업
"흐음"
서신을 받아든 요랑은 서신을 펼친뒤 빠르게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키득, 얘 바보 아니야?"
그리고 이내 그녀 또한 실소를 터트렸다.
어이없는 기분이 든 탓이었다.
"무슨 내용이 적혀있나요?"
그녀 마저 웃음을 터트리자 금적화는 의문스럽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우보고 선우를 죽여달래!"
요랑은 한껏 비웃음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에?"
그녀의 말을 들은 금적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선우에게 선우를 죽여달라는 말을 했다니
자살이라도 부탁했다는 말인가
"서신에는 오라비인 당진철에게 저를 죽여달라고 간청하는 글이 쓰여져 있더군요."
그녀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선우는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아....."
그 말을 들은 금적화는 이해한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어쩌실 생각이신가요?"
금적화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어쩌긴요, 당연히 거절해야지요. 제가 저를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우는 별일 아니라는듯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거절할 명분이 없지 않나요?"
"제자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사천당문의 가주로서 해서는 안될 짓이 아닙니까? "
"아니요....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금적화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 남편, 그러니까 가주인 당진철은 세가를 위해서라면 협에 어긋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제자를 죽이는 패륜 또한 마찬가지지요. 만약 그런 명분으로 거절을 한다면 당진설은 당가에 반발을 가질 수 있어요."
".........흐음...그런 문제가 있군요."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덩달아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당진철의 무자비한 성향이 발목을 잡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거 아예 그녀와 척을 지는 건 어떻습니까?"
"당가에 대한 의심이 들면 그녀가 직접 당가로 방문할 수 있어요. 그녀를 완벽히 속여넘길 자신이 있나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없는 탓이었다.
겉은 몰라도 내면까지 완벽하게 당진철이 될수는 없는 탓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가주가 가짜라는 사실을 들키게 된다면 모든게 끝이에요. 남편인 이재원을 불러와 당가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구요."
".......확실히 곤란하군요."
"명분을 찾아야해요. 장선우를 죽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을 명분을 말이에요."
"............"
선우는 고심에 잠겼다.
마땅한 명분이 있을까 생각해볼 심산이었다.
".....떠오르는게 없는데요?"
이내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내뱉었다.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저도 마찬가지예요."
금적화는 무척이나 어두운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도저히 거절할 만한 명분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후우......아무래도 아가씨와 상의를 해야할 것 같아요."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금적화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동의하였다.
분명 그녀라면 무언가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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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당서윤은 딱잘라 말을 이었다.
"없다니?"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말그대로야. 나도 언니의 청을 거절할 만한 명분을 생각해내지 못했거든."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 서신을 읽고 그녀는 쭉 생각해보았다.
당진설이 납득할 수 있는 거절의 명분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선우는 현재 후계 경쟁에서 누구보다 위협적인 존재였다.
차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물론 최고의 후기지수들이라고 불리우는 용봉조차 손쉽게 제압할 만큼 강대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탓이었다.
게다가 근래에는 살혼이라고 불리우는 전설적인 살수조차 사로잡았으니 당진설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꼭 죽이고 싶을 만큼 말이다.
그렇기에 오라버니인 당진철에게 대외적으로 제자로 알려진 장선우를 죽여달라는 패륜을 요청한 것이다.
가문을 위해서 얼마든지 무자비해질 수 있는 당진철이라면 그녀의 청을 결코 거절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거절할 명분을 만들 수 있겠는가
천무맹의 권력 구도가 완전히 뒤집어질 수 있는 후계 경쟁이라는 대격변을 맞이한 시점에서 말이다.
"없다고?"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응, 없어."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여지따위는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단호함을 엿본 선우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만 믿고 왔건만 그녀마저 방도가 없다고 하니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어떻게하지? 죽여야하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서윤이 언니인데 죽이는 건 좀......아니면 완벽히 연기로 속여 넘겨? 개 흉내도 이렇게 잘내는데 당진철 흉내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아니야....들키고 말거야....그럼 주소양처럼 자박꼼을? 아니야........아무리 그래도 자매 덮밥은 아니지......짐승새끼도 아니고.....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선우는 머리속을 쉴새없이 회전시키며 찾기 시작하였다.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을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으으...으으으.."
선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성을 내뱉었다.
단시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탓에 급격히 과열된듯하였다.
"선우야, 아파?"
그 모습을 본 요랑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파.."
"왜?"
"너무 생각을 깊이 했나봐."
"그럴 땐 당과를 먹어. 그럼 좀 나아질거야."
요랑은 품안에 있던 당과를 하나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머리가 아플 땐 단게 도움이 되긴 하지."
선우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당과를 받아들 셈이었다.
휘익
하지만 선우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요랑이 손을 뒤로 쏙 빼버린 탓이었다.
"뭐하는 짓이야? 선우야."
요랑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나 주려는 거 아니였어?"
"준다고 안했는데?"
"그럼 왜 꺼낸건데?"
"설명할 겸 내가 먹을 겸."
할짝
요랑은 당과를 혓바닥으로 할짝이며 말을 이었다.
"더 없어?"
"더 없어."
"입에 있는 거라도 줄 생각은?"
"완전 없어."
요랑은 짧게 도리질치며 답을 하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맛있게 당과를 핥아먹기 시작하였다.
"............."
무척이나 얄미운 모습이었다.
짜증이 날만큼 말이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한 번 날을 잡아서 저 머리 굵어진 영물을 마구 괴롭혀주자고 말이다.
"서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선우는 재빨리 본래 화제로 돌아가 슬며시 당서윤에게 물었다.
당과 가지고 요랑과 드잡이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어."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알아..당진설과 척을 질 수 밖에 없다는거...하지만..그럴 경우 그녀의 의심을 살 수가.."
선우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언니의 청을 받아들이자."
당서윤은 선우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며 말을 이었다.
"뭐라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황한듯 되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당진설의 청을 받아들이자니?
자신보고 자신을 암살하라니?
"언니가 너를 죽여달라는 청을 받아들이자고. 그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
당서윤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서..윤...설마..네가...내게..죽으라고..할줄이야."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상처받은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맞아, 이제 네 효용은 끝났어. 섭정도 끝났고 기둥서방같은 삶도 끝이야! 나가버려!"
".......크윽...서윤...네가..나를.."
선우는 과장된 동작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그의 얼굴에는 비통함과 서글픔이 가득 차 있었다.
"네 그 더러운 행태에 지쳤어. 약속은 밥먹듯이 어기고 섭정을 맡았다는 인간이 일은 안하고 놀러만 다니고 밖에 나갔다오면 여자를 꼬셔서 데리고 오고 말이야. 게다가 요즘 잘 때 개 흉내도 안내주더라? 그만 하자. 우리, 이정도면 할만큼 했어."
당서윤은 쉼없이 말을 이어가며 신랄하게 선우를 비난하였다.
"서윤아....살짝 진심이 담긴 것 같다?"
그녀의 신랄한 비난에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뭔가 그녀의 비난에 진심이 섞인듯한 느낌을 받은 까닭이었다.
"에이, 장난이지."
당서윤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개 흉내는 지금도 잘내주잖아."
"그럼 나머지는 다 진심이라는거잖아!"
"말이 그렇게 되네?"
당서윤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언니의 청을 받아들일 생각이야. 그 편이 오히려 안전할테니까."
이내 당서윤은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장난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흐음...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죽일 생각이야?.....곤란한데....이대로 장선우라는 신분을 버리는 건.."
선우는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선우를 대외적으로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슷한 시체를 하나 던져두고 모습을 바꿔버리면 될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미 구축해놓은 신분과 위업이 아까웠다.
"아니, 장선우는 죽지 않아."
선우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독왕이 작정하고 노려도 죽지 않을 상황을 만들테니까."
"어떻게?"
선우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천무맹으로 가면 돼."
"뭐라고?!"
선우는 놀란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별안간 천무맹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천하제일인 이재원이 있는 천무맹이라면 독왕이 작정하고 노린다고 해도 죽일 수 없는 훌륭한 상황을 만들어줄테니까."
그녀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잠깐 천무맹이라니...이재원에 있는 곳을 가라니...그게 말이된다고 생각해?"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탓이었다.
이재원이 누구란 말인가
자신의 불구대천 원수이자 최종적으로 넘어야할 보스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어차피 한달 뒤에 천무맹으로 가야했잖아? 미리 간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지만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됐단 말이야!"
선우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 말대로 어차피 한달 뒤에는 천무맹으로 들어가야하긴 하였다.
그곳에서 열릴 후계 경쟁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난 천무맹에 갈 명분이 없다고! 분명 작당했다고 의심 할거야!"
"너 다른 서신 안읽었어?"
당서윤은 의문어린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서신?"
선우는 의아한듯 그녀에게 물었다.
"이재원이 네게 보내온 서신이 하나 더 있잖아?"
"아"
뒤적 뒤적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그제야 생각난듯 천천히 품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품안에서 밀봉되어있는 서신 한 장을 꺼내들었다.
이재원이 자신에게 보내온 서신이었다.
차르르르르
선우는 밀봉되었던 서신을 펼치고 그대로 읽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 쓰여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선우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짜증이 절로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서신에는 소집 통지서였다.
후계 경쟁에 참가하는 모든 후기지수들을 천무맹으로 소집하겠다는 통지서 말이다.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후계 경쟁까지 두달이나 남았는데 어찌 벌써부터 불러모은다는 말인가
"이제 명분은 충분하지?"
당서윤은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선우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선우가 찾던 명분을 찾아줬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듯 하였다.
".......명분이 충분하긴 한데....."
선우는 우물쭈물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기 싫은데."
"안가면 이재원이 분노할껄?"
"그냥 선우라는 존재를 없애는 건 어때?"
"어떻게 없애게?"
"당가주가 죽였다고 하면 되지."
선우는 별일 아니라는듯이 말을 이었다.
"이재원이 그걸 두고 볼 것 같아? 그것도 자신에게 직접 초대를 받은 후기지수가 죽었는데?"
당서윤은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도.......하아."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
아무래도 외통수인듯 싶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