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9화 〉 460. 당가로 귀환하다.
재경각
"재문 상단에서 납품 목록을 보내왔습니다!"
당감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 해"
요랑은 딱잘라서 말을 이었다.
"두광 철기방에서 대금 계산서를 보내왔습니다!"
이내 새로운 재경각원인 당요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네가 해."
요랑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요랑님! 여기 계산이 점 표시는 무엇인가요?"
"단위 나눈거야. 동그라미가 세개마다 천 단위씩 늘어나."
"알겠습니다."
이내 재경각원은 재빨리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흐음"
그 모습을 본 요랑은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을 자신에게 떠넘기지 않고 각자 열심히하는 모습을 보니 만족스러움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저기 요랑님."
그때 뒤편에서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당서윤이 무척이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요랑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에?"
"너무 쉬시는거 아닌가요?"
"아닌데?"
요랑은 고개를 도리질치며 말을 이었다.
"아닌거 같은데요?"
"아니라니까?"
"최소 할달량 제대로 채우시지 않았잖아요?"
"무슨 소리야. 옛적에 다끝냈구만."
요랑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봐봐. 저게 다 내가 끝낸 거라니까?"
요랑은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서류 더미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 작업한 서류에 이름만 올린 거 모를 줄 아시나요?"
당서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그럴리가?"
요랑은 모르겠다는듯이 시치미를 뗴며 말을 이었다.
"후우"
그런 요랑을 보며 당서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한 소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요랑님 잠깐 저좀 봐요."
당서윤은 한층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보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에요."
"어디가게?"
덥석
"일단 따라오세요."
당서윤은 재빨리 요랑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요랑을 천천히 이끌기 시작하였다.
요랑은 당서윤이 이끄는대로 아무 말없이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녀에게서 묘한 박력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당서윤은 요랑을 재경각 뒤편에 있는 공터까지 데리고 나왔다.
인적이 드물어 무척이나 조용한 곳이었다.
당서윤은 천천히 요랑을 바라보았다.
"요즘 재경각에서 각원들이 불만을 엄청 제기하는 거 아세요?"
그리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입을 열었다.
"무슨 불만사항?"
요랑은 모르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높고 높은 기본급
처리한 서류 숫자에 따른 성과급제도
명절마다 주는 떡값
삼시세끼는 물론 간식에 숙소까지 보급해주는 복지
귀엽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상사까지
뭐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것이 재경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재경각에서 무슨 불만사항이 나온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었다.
"혹시 업무량이 많아서?"
요랑은 나름 생각해낸 결론을 내놓았다.
업무량을 제외하고는 불만사항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업무량에 관한 불만은 성과급제도를 시행한 이후부터 완전히 없어졌어요."
"그럼 뭔데?"
요랑은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물었다.
"바로 요랑님에 대한 불만 사항이에요!"
"나?"
요랑은 놀란듯 그녀에게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자신에게 무슨 불만이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스스로 관대한 상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원들의 실수나 잘못을 관대하게 넘어가주는 일이 비일비재할 뿐이 아니라 위계질서를 강요하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준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휴가나 조퇴의 경우에도 무척이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눈치 보지 않고 신청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다.
그런 관대한 상사에게 대체 어떤 불만이 나온다는 말인가
"거짓말!"
이내 요랑은 언성을 높였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만이라고 할만한 거리가 전혀 없던 탓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대체 무슨 불만 사항이 있는데!"
"일단 첫번째는 요랑님이 배려를 안한다는 거에요."
"배려라니?"
"요랑님은 누가 실수를 하거나 일처리를 잘못하면 다른 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놓고 흉을 본다면서요?"
"그거야 다른 사람들도 보고 반면교사 삼아 실수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선 안돼요. 혼나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 수치심과 모욕감을 발판 삼아 더욱더 노력하라는 깊은 뜻이야!"
"아니요. 그런 식으로 대하면 오히려 반발심만 들어요."
"어째서?"
"인간인 이상 누구든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실수로 인해 누군가에 심한 모욕과 수치를 받게 된다면 자연스레 위축감이 들 수밖에 없고 조심하여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더욱더 잦은 실수를 하기 때문이에요."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이 능률이 떨어지게 되는 거랍니다."
"......하지만 혼내지 않는다면 일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걸.."
"혼내지 말라는게 아니에요. 잘못하면 혼나는게 당연하죠. 단위 하나에 수백 수천이 왔다갔다하는 재경각의 업무라면 더더욱이요. 하지만 그럴 경우 따로 불러내서 혼내주셨으면 해요. 적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말이에요."
".............."
당서윤의 말을 들은 요랑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는 듯 하였다.
"그래도 안고쳐지면?"
"그럼 해고를 해야죠. 일을 장난으로 여기는 사람을 끌고갈 정도로 재경각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랍니다. "
당서윤은 단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알았어....내가 잘못한 거 같아."
이내 요랑은 수긍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쁘네요. 제 의견에 동의해주셔서요."
당서윤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억지를 부릴 줄 알았는데 순순히 수긍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설득력 있었으니까."
"그럼 두 번째 문제에요."
"또 있었어?"
요랑은 놀란듯 되물었다.
대체 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요랑님 요즘 일안한다면서요?"
"......아닌데?""
"거짓말."
"진짜야! 아까 책상 위에 서류 쌓아져있던거!"
"그거 다른 각원이 했던 서류에 이름만 끼워넣은 거잖아요."
"공동작업한거야!"
"그냥 검산 한 번만 해준거 다 알아요."
".........검산도..업무는 업무니까.."
"요랑님."
당서윤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거 서류처리가 성과급으로 바뀐거 아시죠?
".....응"
"그런데 서류 처리자에 요랑님 이름을 끼워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성과급이 나오겠지?"
"맞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성과급을 검산 한 번한 요랑님과 대부분의 일처리를 다한 각원이 똑같이 나누게 되는거에요. 불합리하지 않나요?"
"...........응"
"요랑님이야 돈욕심보다는 할당량만 떼울 요량으로 그렇게 했을테지만 각원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한 거랍니다. 검산 한 번 받았다고 성과급이 나눠지게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미안....그럴...생각은.."
요랑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큰 사고를 친 거 같아 미안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아요. 그냥 게으름 피우고 싶었던거요."
당서윤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돼요. 다른 사람의 성과를 빼앗아 이름을 올리는 행위는요."
"......응."
"다신 안그럴거죠?"
".....응, 제대로 일할게."
요랑은 고개를 슬며시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혹여 재경각주 일이 힘들다거나 하기 싫으면 말씀하셔도 돼요."
"힘들거나 하기 싫은 건 아니야.......가끔 일하면서 풍족하게 돈을 버는게 싫은건 아니니까...그냥...살짝...농땡이를 부린 것 같아."
"다행이네요. 혹여 요랑님이 관두실까 걱정했거든요."
당서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해....애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요랑은 반성하였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그들을 몰아붙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다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배우는거죠."
당서윤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영물인데?"
"죄송해요...정정할게요. 처음부터 아는 영물이 어디있겠어요? 다부딪히고 넘어지면서 배우는거죠."
당서윤은 재밌다는듯이 키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야 그게 이상해."
요랑 또한 마주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익살스러운 태도에 우울했던 마음이 어느정도 해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나 사과할래!"
이내 요랑은 기운을 차린 것인지
씩씩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어머, 누구한테요?"
"모두한테!"
요랑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명백하게 잘못한 짓이었다.
직접 마주하고 고개 숙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응원할게요. 요랑님."
당서윤은 그런 요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통 고루한 사고방식이 박힌 사람의 경우
실수를 지적할 때 무척이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냐며
전부 잘되라고 그런 것이 아니냐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요 귀여운 상사는 고루한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먼듯 하였다.
실수를 인정하고 곧바로 사과를 결심하는 추진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가자!"
요랑은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당서윤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녀가 과연 어떻게 사과할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아가씨! 각주님!"
그때 갑자기 앞쪽에서 당감이 뛰어오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들을 부르면서 말이다.
"무슨 일인가요?"
"뭐야?"
당서윤과 요랑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급박하게 뛰어들어온다는 말인가
"왔습니다!"
"네?"
"뭐?"
"선우님께서 돌아왔습니다!"
"뭐라고요!?"
"와!"
이내 당서윤의 놀란듯한 목소리와 요랑의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너무나 기쁜 소식을 접하였기 때문이었다.
"당감! 당감! 선우는 어디있대?"
요랑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당감에게 재촉하듯 물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입맞춤을 마구해줄 심산이었다.
"현재 봉황당주와 함께 내빈실에 있다고 하십니다."
"내빈실이요?"
당서윤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그에게 물었다.
돌아왔으면 가주전부터 들리거나 제 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째서 내빈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봉황당주 강하윤과 함께 말이다.
오싹
순간 그녀의 등골이 싸해지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불안한 가정이 스쳐지나간 까닭이었다.
'.......설마...아니겠지?.'
하지만 그녀는 애써 불안한 가정을 부정하였다.
분명 선우는 자신있게 말하였다.
더이상 여인을 늘릴 생각은 없다고
강하윤이라는 위험한 폭약을 떠안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여인을 더욱더 늘린다면 인간이 아니라 개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강하윤을 자신의 여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봉황당주께서 이송해온 백호당주는요?"
"갈 대협께서는 먼저 검진을 받으러 이동을 하였습니다."
"흐음...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당서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감 부각주."
"말씀하시지요."
"부탁하나 더드려도 될까요?"
"하명하시지요."
당감은 살짝 목례를 한 채 입을 열었다.
"선우가 돌아온 것을 삼부인께 전해주실 수있나요?"
당서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삼부인께요?"
"네, 꼭 좀 부탁드려요."
당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금적화에게 선우의 귀환을 알린다면 그녀가 알아서 선우의 여인들에게 소식을 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알겠습니다."
당감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주 대리의 명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내 당감은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분명 금적화가 있는 집무실로 향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 저희는 내빈실로 갈까요?"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당서윤은 이내 옆에 있던 요랑에게 말하였다.
"웅!"
요랑은 기쁜 듯 환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을 오랜만에 만난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오르는듯 싶었다.
이내 두 여인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사랑하는 낭군이 머물고 있는 내빈실을 향해서 말이다.
********
내빈실
덜 덜 덜 덜 덜
선우는 온몸을 덜 덜 떨기 시작하였다.
주르르륵
뿐만 아니라 식은 땀마저 흐르기 시작하였다.
위풍당당하게 도착했음을 알린 것은 좋았으나 막상 여인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일단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였고 죄책감이 들었으며 그녀들이 자신에게 실망할까 불안감이 들었다.
쫄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하지....일단 개 흉내부터 내고 있을까? 왈 왈 와르르? 아니야 그럼 장난친다고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볼지도 몰라....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이내 선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뻔뻔해지고 싶었지만 유약한 마음이 그걸 허락해주지 않는듯 하였다.
터업
그때 갑자기 선우의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자신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있는 강하윤의 손이 보였다.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강하윤을 바라보았다.
"괜찮을거에요."
그러자 강하윤이 살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괜찮을거에요..그러니..너무 불안해 하지 말아요."
그녀는 따뜻한 목소리로 선우를 진정시켜주었다.
그러자 몸에 변화가 생겼다.
덜 덜 떨던 몸은 더이상 떨지 않게 되었고 줄줄 흐르던 식은땀이 더이상 나지 않게 되었다.
진정이 된 것이다.
".......고마워"
선우는 자신을 위로해준 그녀를 바라보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뭘요."
강하윤은 쑥쓰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선우의 귓가에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꿀꺽
선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긴장어린 시선으로 내빈실 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