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6화 〉 437.그렇죠.....제게는.....남편이...있죠.
두근 두근 두근
강하윤은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까지 붉게 상기되기 시작하였다.
'이...아이가...나를?'
선우의 좋아한다는 말이 가슴 깊은 곳에 박혀든 탓이었다.
'아냐! 그럴리 없어!'
이내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젓기 시작하였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무림의 선배로서
무인으로서 좋아한다는 말이 분명하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립도 안된 나이에 차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고강한 무공에 괜찮은 외모, 탄탄한 몸,재밌는 입담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저 청년이 어찌 자신과 같은 유부녀를 좋아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아줌마를 말이다.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그래, 내 착각일거야! 그렇고 말고!'
"후우"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거칠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킬 요량이었다.
"후우...후우.."
그렇게 몇 번의 심호흡을 했을까
이내 그녀는 거칠게 뛰던 심장이 어느정도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끊임없이 착각이 분명할 것이라고 되뇌이면서 심호흡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된듯 하였다.
".....소협...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강하윤은 떨리는 눈동자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런 식의 장난은 좋지 않다고요. 아무리 나이든 아줌마라도 소협같은 매력적인 남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착각할 수밖에 없어요."
강하윤은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남자가 나한테 관심 있는게 아닐까하고 말이에요. 그러니 자제해주세요.....오히려 놀리는 것처럼 보인답니다."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놀리는게 아닙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놀리는게 아니면 뭔가요? 그렇다면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아줌마를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강하윤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좋아합니다."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그만 놀리라고요. 슬슬 저도 화가 날 것 같아요."
강하윤은 정색한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놀린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차치하고도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미 중년의 나이긴 하였지만 주름하나 없는 깨끗하고 탱탱한 피부는 그녀를 아무리 높게 쳐줘도 이십대 후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풍만한 가슴과 커다란 엉덩이 그리고 쩍 벌어진 골반은 그녀의 여성성을 강조하여 매력을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체 어째서 스스로를 이렇게 폄하한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장 소협은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요?"
"예, 소협은 이립도 안된 나이에 차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후기지수이잖아요? 그런 남자가 이제는 남편에게조차 버려진 비루한 여인을 좋다고 하는데 어찌 믿을 수 있겠어요?"
그녀는 슬픈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당주님은... 비루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이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말이죠."
선우는 진심을 토로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일러스트로 봤던 이십여년 전의 모습이나 나이가 든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말이다.
아니 오히려 농염함과 풍만함이 더해진 지금의 모습이 더욱더 아름다웠다.
가슴이 떨릴 만큼 말이다.
".............거짓말"
그녀는 선우의 말을 부정하였다.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보내오긴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기엔 그녀는 너무나 큰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수십년 간 남편인 이재원에게 방치가 되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불신이 생긴 까닭이었다.
"전부 거짓말이에요!"
그녀는 물기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모두 거짓말이 분명할 것이라고 말이다.
커져버린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늙어버린 외모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겠다던 남편조차 외면해버린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자신을 최고의 후기지수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신은 이십여 년전에 절 본 적도 없잖아요! 그런데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거죠? 제발 그만해주세요! 장난도 도가 지나치면 화가나는 법이에요! "
그녀는 울분이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선우에 대한 적의가 차올랐다.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에게
스스로를 다시금 혐오하게 만드는 그에게
자신을 슬프게 만드는 그에게 말이다.
"..........."
선우는 그런 강하윤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 속에 담긴 울분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이 부인들을 외면하고 외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소양에게 익히 들어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외면이 상상이상으로 심각한듯 싶었다.
그렇게 호방하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조차 자기혐오에 빠진 채 슬프게 울고 있으니 말이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위로해주고 싶다고
자기 혐오에 빠져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여인에게
가장 사랑했던 히로인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이다.
스르륵
선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이내 그녀의 앞에 도달하게 된 선우는 그대로 손을 내려 강하윤의 섬섬옥수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가녀린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올려 심장에 가져다대었다.
"뭐..뭐하는 짓이에요!"
선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강하윤은 깜짝 놀란듯 눈을 부릅뜨며 경악 어린 외침을 내뱉었다.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쉬이이잇"
선우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댄 뒤 그녀에게 조용히하라는 시늉을 하였다.
"잠시동안만 아무 말 없이 손끝에 집중해주시겠어요?"
그리고는 진지하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강하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하였다.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의 진지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그대로 그의 말을 따른 것이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손 끝에 집중을 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이 남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두근
'응?'
그때 손끝에서 무언가 상당한 진동이 느껴졌다.
두근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 전보다 더욱더 크고 선명한 진동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이내 더욱 거센 박동이 손끝을 타고 그녀에게 전해져 오기 시작하였다.
뛰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심장이
무척이나 거세게
"당주....아니....하윤 소저."
그때 선우가 입을 천천히 떼더니 그녀를 불렀다.
당주가 아닌 강하윤이라는 한 사람으로 말이다.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선우는 진중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아니..오히려...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비록 이십여년 전 당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선우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이십여년 전에 당신을 지금 이 자리에 데리고 온다하더라도 지금의 당신이 휠씬 더 아름답다고 말이죠."
"............"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세요. 하윤 소저. 당신은 그 어떤 사람보다 아름다운 한 명의 여인입니다."
".........."
강하윤은 천천히 시선을 올려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강하윤은 직감을 할 수 있었다.
저 선우의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러자 이내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자 이성적으로 억눌렀던 설렘들이 물밀듯이 몰려왔기 떄문이었다.
설레었다.
이런 기분은 과거 이재원과 연애할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온몸이 붉게 상기되기 시작하였으며 눈이 몽롱하게 풀리기 시작하였다.
그에 대한 적의가 호감을 넘어 애정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러면 안돼!'
몸의 변화를 느낀 그녀는 생각하였다.
이러면 안된다고
이렇게 설레선 안된다고
자신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청년에게 애정이 솟아오를 수 있다는 말인가
안되었다.
이래서는 안되었다.
그녀는 다급히 심장을 진정시키기 시작하였다.
만약 이대로 놔뒀다간 훗날 감당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쿵 쾅 쿵 쾅 쿵 쾅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불이 붙어버린 심장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강하윤은 몽롱하게 풀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네에, 무척이요."
선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을 하였다.
"그렇게......매력적인가요?"
"물론입니다."
"정말인가요?"
그녀는 확인받고 싶은듯 다시금 되물었다.
"지금 뛰고 있는 심장이 그 증거입니다."
선우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심장 소리가 어떤가요?"
"무..척...커요...크고...울려요..마구..마구."
"왜 그런 것 같나요?"
"......저 때문인가요?"
그녀는 매혹적인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동경하고 좋아하는 여자가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데 대체 어떤 남자가 두근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아......그렇군요."
강하윤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답을 하였다.
"이제 제 진심이 느껴지셨나요?"
"네에.....느껴졌어요....무척이나요.."
강하윤은 무척이나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 또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진심이 전해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손을 떼어내었다.
"....아"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탄탄하고 묵직한 그의 가슴에 손을 떼니 손 안에 허무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입니다."
선우는 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름 억울했거든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자꾸만 거짓말이라고 하니 말이죠."
"......죄송해요...소협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에요."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기도 했고....그....저는...남편이..있는...유부녀기도 하고...."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남편도 있는 당주께 그런 말을 한 제 잘못이니까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싸늘
순간 붉게 그을려있던 강하윤의 얼굴에 싸늘함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잊고 있던 사실이 상기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남편인 이재원의 존재를 말이다.
"......그렇죠.....제게는.....남편이...있죠."
강하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에, 아쉽네요. 만약 남편분만 없었으면 곧바로 청혼을 했을텐데 말입니다..하하하"
선우는 멋쩍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선우의 웃음 소리를 들은 강하윤은 그를 따라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평소에 터트렸던 웃음과는 전혀 다른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지만 말이다.
'바보! 멍청이!'
그녀는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하였다.
바보에 멍청이라면서 말이다.
남편이 있는 주제에 무슨 헛된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자신은 유부녀였다.
다른 남자의 호의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 임자없는 처녀처럼 멋대로 설레고 두근대며 망상에 빠졌다는 말인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저 남자에게 호감을 품어버린 스스로가 말이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남편인 이재원의 존재가 말이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와 혼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선우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우울함이 물밀듯이 치솟아오르는것을 느꼈다.
이재원이라는 존재가 마치 족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쁘네요. 제 마음을 이렇게 터놓으니 말입니다"
".......네에....저도 기뻐요."
강하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하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내뱉는 순간 자신은 부정한 여인이 되고 말테니까 말이다.
강하윤의 낯빛이 침울해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에 슬픔을 느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