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5화 〉 436....좋아서 그렇습니다.
"끌끌끌...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천하제일인이라고 금제마저 천하제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노인은 유쾌하다는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금제를 풀어버린 것이 퍽이나 즐거운듯 보였다.
"당신...정체가 뭐지?"
강하윤은 노인을 바라보며 의문스럽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재원이 걸어둔 금제조차 쉽사리 풀어버리는 노인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낄낄낄..본노는 혈해에서 왔다."
노인은 재밌다는듯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혈해血解."
그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였지만 이런식으로 접근할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금제를 풀었다는 건....거사가 다가왔다는 소리인가?"
강하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
"머리가 영 나쁘지는 않구나...낄낄...그래...결행일이 정해졌다."
"그게 언제지?"
"내일이다."
노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일!?"
그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놀란듯 되물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암살에 들어갈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뭘 그리 놀라느냐.....낄낄...."
"........조금 시간을 늦출 수는 없는 것인가?"
"왜지?"
"그를 설득하고 싶다......."
"기각한다."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진설의 수족이 아니야. 그저 암살집단에 불과하다. 아량이나 인정같은 걸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노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강하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결행일은 내일이다. 이견은 없다. 그리고 빠지고 싶으면 빠지도록 해라. 망설임이 있는 아군만큼 멍청하고 도움안되는 놈도 없으니까 말이야."
노인은 짜증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
노인의 매서운 말에 강하윤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당진설의 수족이 아니었다.
그저 암살 집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대체 무슨 부탁을 한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하겠다."
이내 강하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끌끌끌 그래, 잘 선택했다."
노인은 만족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뒤적 뒤적
이내 노인은 품안을 뒤적거리더니 곱게 접혀져있는 작은 밀지를 하나 꺼내들었다.
"받아라."
노인은 밀지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혈도나 풀어주고 말하지 그래?"
그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아차차....깜빡했구만."
노인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었다.
탁 탁 탁 탁
그리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자, 이제 다시 받아라."
이내 그녀의 혈도를 완전히 풀어버린 그는 밀지를 다시금 건네며 입을 열었다.
강하윤은 손을 뻗어 밀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접혀져있는 밀지를 천천히 펼쳐들었다.
그곳에는 작은 글씨들이 빼곡히 적혀져있었다.
그녀는 눈알을 천천히 굴리며 밀지에 적힌 글씨를 읽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안에 쓰여져있는대로만 하면된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명심하거라. 만약 네년이 걸리적 거린다고 판단된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너를 죽일 것이다."
".............."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강하윤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필시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그 모습을 본 노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마치 이제는 아무런 용건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금제도 풀고 밀지도 전하였으며 친절히 경고까지 하였다.
용건따위 남아있을 리 없었다.
노인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
화평 객잔
털썩
배정 받은 방에 도착한 선우는 그대로 침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푹신해보이는 침상을 보니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아...좋아."
하지만 후회치는 않았다.
욕구에 충실한 만큼 만족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잠들까?'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대로 잠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그만큼 침상의 푹신함은 그에게 상당한 행복감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이내 선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자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더욱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하윤에게 사과를 해야지'
바로 강하윤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었다
나름 걱정스러운 마음에 해준 조언을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화통하고 상여자스러운 그녀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어색한 관계를 개선해야했다.
진정성 어린 사과를 통해서 말이다.
선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그녀에게 찾아갈 심산이었다.
똑 똑 똑
그때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누구십니까?"
의아함이 든 선우는 두들겨지는 방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소협...접니다...."
그러자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평소와는 달리 어색함과 쑥쓰러움이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을 말이다.
"당주!?"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급히 외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네, 맞아요...봉황당주예요."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선우는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야심한 시각에 동경하는 그녀가 자신의 방에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들..들어오십시오...열려있습니다."
선우는 눈치없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끼이이익
이내 선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더니 고집스러운 눈매가 매력적인 미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봉황당주 강하윤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막씻고 나온 것인지 흑단같은 머리에는 물기가 젖어있었고 피부는 뽀송뽀송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들어오자 은은한 향기같은 것도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냄새..'
선우의 얼굴이 더욱더 멍해지기 시작하였다.
"죄송해요...제가..너무 늦은 시각에 찾아왔죠?"
그때 강하윤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닙니다...괜찮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도리질치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왔는데 시간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새벽에 와도 상관없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선우는 궁금한듯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이런..저런..이야기를 나누려고요."
그녀는 말갛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앉으시지요."
선우는 그녀를 탁자로 안내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사양치 않고....."
털썩
이내 그녀는 선우가 안내한 탁자에 그대로 앉았다.
선우 또한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아버렸다.
두 남녀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
".................."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색해!'
선우는 속으로 비명성을 내질렀다.
며칠째 어색하게 지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입마저 다물고 있으니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장소협."
이내 강하윤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 말씀하시지요."
"죄송해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네?"
"제가 장 소협에게 무례를 범한 것 같아요.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는 장소협의 소관일텐데....제가 멋대로 참견한 것 같아요."
"아..아닙니다.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은 접니다. 분명 절 걱정하셔서 하신 말씀일텐데.....제가 너무 매몰차게 대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소협은 그저 무례한 사람에게 뜻한 바를 전했을 뿐이에요. 매몰차게 대한 것은 전혀 없었어요."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야말로 당주님의 참견이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절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니 무례라고 생각치 말아주십시오."
"............."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슬며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사과를 하러 왔건만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는 그를 보니 웃음이 새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묘한 아이야.'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참으로 묘하기 그지 없는 아이라고 말이다.
봉황대주의 직함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자신은 끈 떨어진 연에 불과한 신세였다.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득이 될만한 위치의 인물이 아닌 것이다.
아니 오히려 친하게 지낼 수록 해가 될 위치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듯이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고 배려해주고 위해주었다.
묘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득 저 끝도 없는 호의의 저의가 궁금해졌다.
기본적으로 사람간의 관계는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일방적인 호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주는 만큼 바라게 되는 것이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저 아이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리도 잘해주는지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장소협."
강하윤은 묘옥같은 눈빛을 반짝이며 선우를 불렀다.
"말씀하시지요."
"왜 저한테 잘해주나요?"
"네?"
"왜 저한테 잘해주시냐구요. "
그녀는 올곧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잘해줬나요?"
선우는 모르겠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잘해줬어요. 그것도 엄청 말이에요."
"모르겠는데요. 당주께서 울적하신 상황이라서 작은 호의도 크게 느끼신게 아닐까요?"
"아니요. 확신할 수 있어요."
그녀는 확신에 찬듯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 소협은 제게 상당한 호의를 베풀어주고 있다는 것을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 합니까?"
제가 잠들었을 때 기운을 흘려서 피로를 풀어주지 않으셨나요?"
"......깨있었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였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설마하니 눈치 챌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범인은 장소협이었네요."
그녀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그 말을 들은 선우는 아차했다.
멍청하게도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면 항상 바람부는 쪽에 서있지 않으셨나요? 제가 바람에 맞지 않도록 말이에요."
".........우연입니다."
"우연은요. 제가 위치를 옮기니까 따라서 옮기던데요?"
그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꼼짝없이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망할 오지랖'
선우는 스스로의 오지랖을 탓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녀를 보살피기 시작한 것은 눈에 자꾸 밟혔기때문이었다.
어찌 좋아하는 여인이 고난을 겪는데 눈에 밟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그녀가 좀더 원활한 여정을 할 수 있도록 작은 배려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배려가 점점 커지더니 종국에는 그녀가 알아챌 수준까지 커져버린듯 하였다.
나름 티를 안낸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들켜버렸으니 말이다.
"저 궁금해요. 장소협."
강하윤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장소협께서 왜 이렇게 저에게 잘해주시는지요."
"..........."
"그것도 한창 어색해져있는 저에게 말이에요."
"별 이유 없습니다.그냥 눈에 밟혀서요."
"제가 불쌍했나요?"
"그런게 아닙니다."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불쌍하다는 감정이랑은 조금 달랐다.
자신은 불쌍하다고 다 도와주는 성인군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뭔가요? 대체....제가 눈에 밟힌 이유가 뭔가요?"
그녀는 재촉하듯 그에게 물었다.
그가 뜸을 들일 수록 궁금증이 증폭되었기 때문이었다.
"..........좋아서 그렇습니다."
선우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슬며시 붉히며 입을 열었다.
"네?"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서, 자꾸 눈에 밟혀서 그랬습니다."
선우는 올곧은 눈빛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하였다.
전혀 예상밖의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라...뭐지?'
그녀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예상한 대답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의 호의를 눈치챘을 때 그녀는 선우에게 무언가 음흉한 속셈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아줌마에게 이런 과도한 호의를 베풀어줄 리 없지 않겠는가
분명 자신의 직위나 무력을 이용하여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죄인의 신분으로서 사천당가로 귀양되는 신세이기는 하나 자신은 여전히 봉황대주였고 천하제일인의 둘째 부인이었으며 화경 상경을 넘어선 초고수였다.
이용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직위와 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각을 하였다.
그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의 대답은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모든 호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던 것이다.
후배가 아닌 남자로서 자신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자신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데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아줌마인데 좋아한다니!?
대체 무슨 말을 내뱉어야 한다는 말인가?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