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4화 〉 435. 금제가 풀리다.
'갑자기 이렇게 진지하게 간다고?'
선우는 당황하였다.
분명 그녀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훅 들어온다는 말인가
그냥 훅 들어온 것도 아니다.
거의 드릴로 꿰뚫어버릴 듯이 들어온 것이다.
선우는 그녀와 무거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장 사랑했던 히로인이 말하고 웃고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을 뿐인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선우는 고심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이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타파할 수 있을까라는 고심에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이내 선우는 정색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피를 택한 것이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면 입밖에 내뱉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강하윤은 그런 선우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혹시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음을요?"
"네, 다시 당진설을 지지할 생각이 없냐는 말이에요."
그녀는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장 소협의 상황이 무척 좋지 않다는 걸 아시나요?"
강하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 상황이요?"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독서시와 파혼을 하고 주소양을 지지하기 전까지 장소협은 신룡이라고 불리우며 수많은 이들의 동경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권력을 위해 사문마저 배신한 패륜아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답니다."
강하윤은 올곧은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저 또한 장소협을 만나보기 전까지 권력에 미친 추악한 후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장소협을 직접 겪어보니 소문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하는 권유입니다. 장소협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강하윤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주소양을 지지하겠다는 말을 철회해주세요, 그리고 당진설을 지지해주세요. 그것만이 장 소협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강하윤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설득을 하고 싶었다.
장선우를 살릴 수 있도록 말이다.
자신은 당진설로부터 암살 명령을 받은 몸이었다.
목숨빚이라는 어쩔 수 없는 명분으로 인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악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인이 아닌 자를
협객이라고 칭할 수 있는 자를
한낱 권력 투쟁으로 인해 죽여야한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선우를 설득하고자 하였다.
그가 주소양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철회하도록
다시금 당진설을 지지한다고 말하도록 말이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그를 죽일 필요가 없어질테니 말이다.
"일단 말씀은 감사드립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이미 이런 상황쯤은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감수하고 벌인 일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대는 무인이 아닌가요? 어찌 무인이 굳이 불명예를 지고갈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요?"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무릇 무인이라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명예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불명예를 지고갈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제게 명예는 소중한 것이 아니니까요."
선우는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진심인가요?"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충격적인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심입니다. 명예보단 눈앞의 이득이 더욱더 먼저 보이더군요. "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이득을 위해서라면 명예같은건 언제든 저버릴 수 있습니다. 명예가 밥을 먹여주는건 아니니까요."
"............."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하였다.
선우의 사상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뼛속까지 무인으로 살아온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명예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명예를 엿바꿔먹듯이 바꿔먹을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명예가 없어도 살 수는 있습니다. 남들이 안알아주면 어떱니까? 그저 나만 잘살면 되지요."
"..........이해할 수 없어요. 장 소협의 생각을 말이에요."
이내 강하윤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다른거지. 틀린게 아니지 않습니까?"
선우는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속으로 선우의 말을 곱씹어보는듯 하였다.
"결국....장 소협은 당진설에게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이내 침울한 기색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제 뜻이 아니니까요."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후우"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설득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말인즉슨 그를 죽여야한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그리 뜻이 확고하니 더 이상 권하기도 그렇군요."
강하윤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우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강하윤은 그런 선우를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를 죽여야한다는 생각에 우울함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
강하윤이 전향을 권한 이후
선우와 강하윤 사이는 상당히 어색하게 바뀌었다.
아니 어색하게 바뀌었다기보단 강하윤이 일방적으로 선우를 피하는 형국으로 바뀌게 되었다.
선우가 다가오는 낌새를 보이면 일부러 자리를 피하였고 어쩔수 없이 마주쳐도 단답으로 일관하여 대화의 문맥을 끊어버렸다.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 것이다.
"하아"
선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강하윤이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탓이었다.
전혀 상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녀는 말걸지 말라는듯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이리저리 자리를 피해다닐 뿐이었다.
'내가 말실수한건가?
선우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설마하니 자신이 말실수를 한건 아닐까하고 말이다.
'역시 전향 권유 때문이가?'
그리고 이내 제일 유력한 후보를 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전향 권유를 거절한 것이었다.
'하긴 걱정된 마음에 한 권유인데.....그렇게 단칼에 거절했으니 화날만도 하겠지.'
선우는 한편으로 그녀의 마음도 이해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서운함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틀째 피해다니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격이 바뀌었나?'
선우는 의문이 들었다.
그가 아는 강하윤은 어색한 것을 모기에 물린 것마냥 싫어하는 여자였다.
눈치보며 여기저기 피해다닐바엔 정면으로 맞부딪혀 적이되거나 동료가 되는 그런 여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자신을 피해다니니 이십여년 동안 성격이 바뀐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절로 들었다.
'일단 사과하자.'
선우는 생각하였다.
일단 그녀를 찾아가서 사과를 하자고 말이다.
만약 그녀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화나던가 말던가 신경 안쓰고 제 갈길을 갔겠지만 그녀라면 달랐다.
'고3,무림에 가다'에서 나온 히로인 중 가장 애정하던 캐릭터가 아니던가
친해지고 싶었다.
다시 친해져서 생동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내일은 객잔에서 묵는다고 했으니까. 밤에 슬쩍 불러야겠다.'
선우는 머릿속에서 나름의 계획을 짜며 눈을 반짝였다.
내일은 다시금 그녀와 친해지고 말리라
그렇게 다짐하였다.
********
"하아"
강하윤은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으면 당진설이 보낸 서신이 아른거렸다.
장선우를 죽여버리라는 내용이 담겨있는 서신이 말이다.
잊으려고 노력해봐도 소용없었다.
이미 머리속 깊은 곳에 그녀의 명령이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죽이기 싫은데.."
그녀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였다.
죽이기 싫다고 말이다.
그는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청년이었다.
신룡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고절한 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거만함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쾌한 남자.
협을 행하기 위해 악명 높은 북풍대와 홀로 맞선 협의지사
그런 남자를 어찌 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원래대로라면 거절했을 것이다.
추악한 어른들의 욕망에 미래가 창창한 청년이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하니 말이다.
'그놈의 목숨빚'
하지만 문제는 목숨빚이었다.
팽가련의 마수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당진설에게 도움을 청한 그녀였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면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까지 했던 그녀였다.
그런 자신이 어찌 그녀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협과 의리 사이에 어마어마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장선우라는 남자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강하윤]
갑자기 귓가에서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응?'
순간 상념에서 깬 그녀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강하윤]
그때 다시금 귓가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전음!?'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서 있는 곳으로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걸어오거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다.]
그 소리를 들은 강하윤은 짐짓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걸음을 옮겨야할지 고민이든듯 하였다.
[당부인께서 보내셨다. 이번 장선우의 암살을 위해 네년의 금제를 풀어달라는 명을 받았다]
그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금 전음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강하윤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동남쪽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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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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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강하윤은 상당히 깊은 숲속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야영을 하고 있는 곳과 상당히 떨어진 곳까지 말이다.
사방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 하였고 이곳저곳에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던 그녀는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체구를 가진 노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끌끌끌....어서 오거라."
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냐? 나를 부른 것이?"
강하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맞다. 금제를 풀어달라는 명을 받았거든 낄낄"
우우우우우우웅
노인은 경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가 웃을 때마다 상당한 기운들이 일렁였다.
꽤나 경지에 오른 고수처럼 보였다.
"정체가 뭐지?"
그녀는 긴장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였었다.
"네년의 금제를 풀어줄 자다."
"내 금제는 천무맹주가 직접 금한 것이다. 쉽사리 풀릴만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자신의 내공을 금하고 있는 금제는 남편이자 천하제일인으로 불리우는 이재원이 직접 가한 금제였다.
그런데 어찌 그런 금제를 정체도 알 수 없는 수상쩍은 노인이 풀 수 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끌끌끌...천하제일인이라고 금제마저 천하제일인 것은 아니지."
그녀의 말을 들은 노인은 재밌다는 듯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저벅 저벅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팍 팍 팍
그리고는 재빨리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혈도를 점해버렸다.
딱 딱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내 몸이 완전히 굳어버린 강하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다.
어찌 금제를 풀어주러왔다는 자가 자신의 혈도를 점한다는 말인가
"흐흐흐..얌전히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노인은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터업
그리고 그녀의 단전 위에 손을 올렸다.
그다음 천천히 내력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흐음...확실히...천하제일인답게 걸어둔 금제도 단단한 녀석으로 걸어놨구만."
내력을 흘려보내던 남자는 이내 감탄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는 더욱더 많은 양의 내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하였다.
"크으으으으윽!"
내력이 몸속에서 날뛰기 시작하자 강하윤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상당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끌끌...좀 아플 게다."
우우우우우우웅
이내 그녀의 단전에 어마어마한 내력이 공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콰쾅
갑자기 굉음이 터지더니 그녀의 몸에 새하얀 운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터업
그리고 그녀의 단전 위에 손을 올렸던 노인은 천천히 손을 떼어내었다.
더이상 올려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떠냐?"
노인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금제가...풀렸어."
노인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금제가 완전히 풀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