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3화 〉 434.나이 먹은 아줌마도 착각을 할 수 있답니다.
"계속 짓궂은 장난을 치면 저처럼 나이 먹은 아줌마도 착각을 할 수 있답니다."
강하윤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쓰담 쓰담
그리고 천천히 선우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
강하윤의 말을 들은 선우는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녀가 지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에 넋이 나가버린 탓이었다.
그저 얌전히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강하윤은 선우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이동을 할까요? 꽤나 지체 되었으니까요."
"......아,네! 이동! 이동해야죠."
그녀의 말에 정신이 돌아온 선우는 다급히 답을 하였다.
"소협은 저쪽 앞편에 있는 마차를 타시면 됩니다."
강하윤은 가장 앞에 있는 마차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군요."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이내 수긍하였다.
길잡이 역할을 해야되니 가장 앞쪽에 있는 마차에 배정된듯 하였다.
"그럼 가장 뒤에 있는 마차에는 당주님께서 타시겠군요."
중간에 있는 마차에는 갈지천이 몸져누워있었다.
다른 이가 동석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요. 뒤편에 있는 마차는 짐마차입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 그렇다면 당주께서도 앞쪽에 있는 마차에 타시는 겁니까?"
"아니요. 저는 걸어갑니다."
"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였다.
그녀가 누구란 말인가
무림의 수많은 여협들이 동경한다는 봉황당의 당주이자 천하제일인인 이재원의 둘째 부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여인이 마차를 놔두고 걸어간다는 말인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는 죄인의 신분입니다. 어찌 죄인의 신분으로 마차를 타고 가겠습니까?"
선우의 의문을 알아차린 것인지
강하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걸어가게 된 속사정을 설명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제남에서 사천까지 걸어온다는 말입니까!"
선우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저말고도 호위 무사들은 모두 걸어갑니다."
"어찌 그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당주께서는 현재 내공이 금제되어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기겁하며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그녀의 내공이 금제되어있다고 들었다.
그런 상태로 마차 속도에 맞춰 제남에서 무한까지 왔다면 분명 몸이 성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단련된 무림인이라도 내공이 금제된다면 튼튼한 일반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괜찮습니다. 수련이라고 생각하니 버틸만 하더군요."
선우의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 것일까
강하윤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수련과 노동은 다릅니다. 이는 노동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무척이나 가혹한 노동말입니다."
선우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싫었다.
자신의 최애 히로인이 고통받는 것이
싫었다.
누명을 쓰고 귀양 온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이 말이다.
"제 마차에 오르시지요."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어찌 죄인이 마차에 오르겠습니까?"
선우의 제안에 강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을 표하였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죄인된 입장에서 편하게 갈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상합니다."
"괜찮습니다. 이정도로 몸이 상할 정도로 연약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그녀에게 재차 권유했지만 소용없었다.
고집을 전혀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으으...쇠고집'
선우는 생각하였다.
고집부리는 면모까지 소설속과 다를바 없다고 말이다.
물론 그래서 더 좋았지만 말이다.
"당주께서는 고집이 참으로 억세십니다."
"하하하핫...제가 고집이 한 고집하지요. 아무리 소협이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불린다해도 제 고집을 꺾지는 못할 것입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군요."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걸어가겠습니다."
"네!?"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였다.
걸어간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길잡이로 마중나와준 소협이 걸어가겠다뇨? 어불성설이에요."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선우는 어찌보면 손님이었다.
굳이 마중까지 나와준 손님 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그가 걸어가도록 냅둔다는 말인가
"소협이 걸어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제가 마차를 타고 갈 이유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선우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힘드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조금 걷는다고 상할 정도로 연약하진 않으니까요."
선우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정말 고집이 억세시군요."
"하하하하하....제가 한 고집 하지요. 천하의 봉황당주님이라고 하더라도 제 고집은 꺾지 못할 것입니다."
".......이거...한방 먹었네요."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했던 말을 이렇게 그대로 돌려받을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영광이군요. 천하의 봉황당주에게 한방을 먹이다니 말입니다."
"어쩔 수 없네요. 까짓거 같이 걸어가기로 해요. 말동무도 하고 좋죠."
이내 강하윤은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선우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까닭이었다.
자신 또한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기도 하고 말이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선우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와 같이 걸어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렘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두사람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
"어머, 정말인가요?"
강하윤은 놀란듯 선우에게 물었다.
"정말이고 말고요. 제가 이 두눈으로 똑똑히 본 사실입니다."
"정말 믿기지가 않네요. 잔혈마검이 중원을 벗어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북해에서 마적질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강하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잔혈마검이 누구란 말인가
과거 성인군자의 탈을 쓰고 수많은 여인들을 겁간한 악마같은 작자가 아니던가
게다가 손녀 딸을 잃은 중원 오대 거부 중 하나인 손무창이 재산의 절반을 현상금으로 걸어 그 악명을 널리 알린 현상범이기도 하였다.
천무맹의 협사들과 현상금 사냥꾼들이 펼친 천라지망을 벗어나 중원을 벗어났다는 소문을 듣긴했지만 설마하니 그가 북해로 넘어가 마적질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강하윤은 궁금하다는듯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초롱초롱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을 이리 잘해주니 말할 맛이 절로 나왔다.
"북풍대의 대주가 잔혈마검인 것을 발견한 저는 그에게 외쳤습니다."네놈이 잔혈마검이냐?" 그러더니 잔혈마검이 외치더군요."그렇다! 내가 바로 잔혈마검이다! 네놈은 누구길래! 본좌의 행사를 방해하느냐!이렇게 말이죠. 그다음 제가 "나는 협을 행하는 자이다! 오늘 네놈의 악의를 받아가도록 하겠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자 잔혈마검이......"
선우는 이런 저런 과장을 섞어가며 북풍대와 마주친 상황을 재미나게 풀어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실상은 조금 다르긴 하였지만 말이다.
잔혈마검을 죽인 것은 능소화였고 북풍대를 학살한 것도 넘쳐나는 협의 보단 잔혈마검의 목이 탐나 저지른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선우는 살짝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바꿔버렸다.
협의를 위해 북해의 마적단을 몰살시킨 영웅으로 말이다.
이 편이 좀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소협, 멋져요."
선우의 말을 전부 경청한 강하윤은 눈을 반짝거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북풍대에 대한 이야기는 중원에서도 꽤나 유명하였다.
지나간 곳에는 그저 시체만 남아있는다는 악명이 말이다.
그런 북풍대를 단신으로 토벌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천라지망조차 가뿐히 피해버린 잔혈마검이 대주로 있는 북풍대였다.
노련하기 그지없는 중견고수라도 힘든 일이리라
".....별거아닙니다."
그녀의 칭찬을 듣자 선우는 쑥쓰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소협의 용기있는 협행은 북해의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을거예요."
"......뭘...그렇게까지."
"진심이에요. 북풍대에 대한 악명은 중원에서도 유명하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자비한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요."
강하윤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북풍대를 모조리 전멸시켰는데 어찌 희망의 등불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하윤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선우는 뻘쭘함을 느꼈다.
그냥 재밌으라고 살짝의 과장을 덧붙인 것 뿐인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한다.
부담스러움이 느껴졌다.
태생이 아싸기질이 다분한 그였다.
주목 받는 것보다 뒤편에서 얌전히 있다가 중간쯤 선호하는 그였다.
그런 그에게 햇살처럼 눈부신 칭찬은 되려 거부감이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희망의 등불이라면 선배님이야말로 희망 그 자체가 아니십니까?"
선우는 은근슬쩍 화제를 돌려버렸다.
이러다간 날이 샐동안 칭찬 세례를 받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요? 금시초문인데요?"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모르겠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시치미 떼실 필요없습니다. 저번에 강북일괴를 일수에 제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선우는 인명록에 쓰여져있던 강하윤의 업적 중 하나를 슬며시 언급하며 그녀를 띄워주었다.
자고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선우는 지금 그녀를 춤추게할 심산이었다.
"그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북풍대를 토벌한것에 비하면 말이지요."
"어찌 강북을 어지럽히던 마두를 처단한 사실이 별것이 아니라고 폄하될 수 있겠습니까? 충분히 멋진일을 한겁니다."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우....정말...별거 아닌데.."
선우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슬며시 붉히며 입을 열었다.
강북일괴는 그녀의 무공에 비하면 그리 자랑할만한 공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리 띄워주니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선배님에게는 별거 아니여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희망이 되는 법이지요."
"어머, 그거 낮에 제가 했던 말이 아닌가요?"
"제가 학습이 조금 빠릅니다."
선우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미소를 마주본 강하윤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의 대화가 무척이나 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딱딱하기 그지없는 천재를 생각했던 그녀였다.
무공이 그정도로 높다면 분명 성격적인 결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본 선우는 그녀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유쾌하였고 호방하였으며 재미있는 사내였다.
말재주도 좋아 한 번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으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마저 풍겼다.
무척이나 호감가는 인물인 것이다.
'안타까워.'
그러니 안타까움이 배로 들었다.
이 유쾌하고 멋진 사내를 죽여야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소협."
강하윤은 진지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시지요."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강하윤은 짐짓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든지요."
선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이예설을 지지하게 되었나요? 그것도 독서시와 파혼하면서까지 말이죠."
그녀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느낀 장선우라는 인간은 권력에는 초탈한 인물이었다.
비록 오랜 시간을 겪어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런 그가 당가를 배신하고 주소양을 지지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실상은 배신이 아니었다.
그저 당진설을 속이고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이걸 파고드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최애 히로인이긴 하지만 아군은 아니었다.
진영으로 볼 때 그녀는 천무맹 측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실상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비밀이라는 것은 알고있는 이가 적을 때 비로소 효력이 발휘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좀더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이득이 당가를 배신할 정도로 컸나요?"
"........."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그렇다고 말한다면 상종도 못할 개새끼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한다면 말이 되지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런 걸 물어봐?'
선우는 속으로 심각하게 당황하였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소양이 무엇을 주기로 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선우가 말이 없자 강하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궁금하다는듯이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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