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7화 〉 428.혼을 죽이는 살수, 살혼殺魂
또각 또각
당진설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잉어찜이 어떻소?"
"오늘 들어온 과일들은 전부 신선하답니다!"
"서역에서 들어온 비단이 있어요! 결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구름을 만지는 것 같답니다."
"오늘 잡은 오골계입니다! 지금 사시면 넉냥은 싸게 해드립죠!"
그러자 수 많은 상인들이 그녀에게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하였다.
분명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돈냄새를 맡은 것이리라
하지만 당진설은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걸음만 옮겼다.
저들의 호객 행위에 어울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각 또각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잉어를 사라고 외치던 생선 장수도
과일을 사라고 외치던 과일 장수도
옷감을 팔던 비단장수도
오골계를 권하던 푸줏간 주인 모두 말이다.
또각 또각
그렇게 모두를 지나친 당진설은 이내 대로변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객잔을 향해 걸어갔다.
객잔에는 해우解憂라는 글자가 하나 새겨져있을 뿐이었다.
끼이이익
이내 해우 객잔 앞에 멈춰선 당진설은 그대로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낡은 경첩소리가 나더니 이내 객잔 내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부는 여느 객잔과 다를바가 없었다.
꽤나 다양한 행색의 인간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었고 술을 마셨으며 왁자지껄 떠들기도 하였다.
전혀 다를바가 없었다.
일반적인 객잔과 말이다.
"아이고, 귀부인 어서오십시오!"
그때 어린 점소이 하나가 당진설을 향해 굽신거리며 말하였다.
"무엇을 준비해드릴까요? 식사? 숙박? 아니면 술? 말만 하십시오. 귀부인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용이라도 잡아올리지요."
점소이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싹싹한 태도였다.
분명 호객업으로 단련된 친절이리라
"정말 용이라도 잡아주시는건가요?"
점소이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하 그러믄요. 당연하지요. 해우 객잔에 대령 못할 것은 없습니다. 귀부인"
"그거 참 믿음직스러운 말이네요."
당진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뭘 주문 하시겠습니까?"
"여기는 뭐가 맛있나요?"
"해우 객잔은 맛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요리를 먹든 입안을 살살 녹일 만큼 맛있기 그지 없지요."
점소이는 짐짓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누가봐도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흐음... 듣기로는 해우 객잔에는 다른 객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이 있다고 하던데...."
"흐음...글쎄요...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당진설의 물음에 점소이는 짐짓 모르겠다는듯 말을 이었다.
"용도 아닌 것이 용처럼 보이고 봉도 아닌 것이 봉황처럼 겉치레를 꾸미고 있는 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용봉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용봉탕인지 아닌지는 직접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일단 용봉탕을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용봉탕은 가격이 조금 나갑니다. 괜찮겠습니까?"
"맛만 좋다면 가격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호쾌하시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독실에서 기다리고 계시지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점소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알겠어요."
당진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소이의 뒷모습을 따라 이동을 하였다.
.
.
.
드르르륵
"여기 입니다."
이내 독실에 도착한 점소이는 그대로 문을 열어 손짓을 하였다.
그의 말에 당진설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고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소곳이 자리에 앉아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봉탕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천천히 나와도 상관없습니다."
"그럴 수는 없죠. 시간은 금이니까요."
드르르륵
쾅
점소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문을 닫았다.
당진설은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내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 들어올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똑 똑 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요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내 바깥에서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드르르륵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내 문이 열리더니 냉막한 인상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벅 저벅
방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성큼 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당진설의 맞은 편에 앉았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부인"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이내 당진설에게 인사를 하였다.
"오랜만이군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날히 아름다워지고 계십니다. 부인"
"겉치레는 되었습니다. 본론부터 말하죠."
당진설은 차가운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탁
그리고 품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이내 무언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무기명 전표입니다. 액수는 정확히 오십만냥이고요. 그리고 벽력탄도 확보해놨어요. 그대들이 말한 장소에 따로 가져다놓겠어요."
"결정을 굳히신듯 하시군요."
"네에, 그를 배제할 수만 있다면 그리 비싼 값이 아닐테니까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의뢰를 받아들이지요."
그녀의 말을 들은 남자는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탁자 위에 있는 전표를 그대로 품 안에 넣어버렸다.
"안 세어보나요?"
"돈가지고 장난 칠 것처럼 보이진 않군요."
남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장난 쳤다해도 온전히 받아낼 자신이 있기도 하고 말이죠."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대단할 것 까지야...뭐...당연한겁니다."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암살계획을 들을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암살 계획이라....흐음"
당진설의 말을 들은 남자는 고민에 빠진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파견되는 암살자의 숫자는 총 육십일 명입니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말을 이었다.
"특급 살수 열 명, 일급 살수 스무명, 이급 살수 삼십 명으로 구성되어질 것입니다. "
"한 명이 비는데요?"
"남은 한 명은 해주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해주...라면?"
"세간에는 살혼殺魂이라고 불리지요."
"..........그거...그냥 소문이 아니었나요?"
"그럴리가요. 실제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
남자의 말을 들은 당진설은 입을 턱하니 벌렸다.
살혼이라면 그녀도 익히 들어알고 있는 별호였기 때문이었다.
살혼殺魂
죽음이라는 것은 공평하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찾아오니 말이다.
그리고 이 죽음이라는 개념은 강건하기 짝이 없는 무림인들조차 피할 수 없다.
강건한 신체를 단련하고 깊고 정순한 내공을 품고 있다해도 병약해지거나 노쇠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약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였으니 말이다.
사십여년 전 어느날
화산의 장문인이었던 매화검제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장문인의 급사에 의아해 하였다.
매화검제가 젊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정도로 노쇠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아함을 느낀 제자들은 검시관에게 의뢰하여 사인을 조사하기 이르렀다.
하지만 장문인의 시체에서는 그 어떤 타살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고 사인은 심장마비로 종결되게 되었다.
제자들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껄끄러운 마음으로 화산검제의 장례를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명쾌한 해결책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였다.
아무리 신선처럼보이는 무림인들이라고 하더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후 무림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무림의 명숙들이 하나둘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화산검제, 무불통지, 청운검공, 권골, 도제, 경화검 등 등 하나같이 높은 무공으로 이름을 날리던 무림의 명사들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의문이 들었다.
강건한 신체와 정순한 내기를 가지고 있는 무림인들이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하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긴다는 말인가
보통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면 암살이라고 보는게 맞겠지만 시체에는 그 어떤 타살의 흔적 없었다.
그렇다면 급사로 볼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의문이 들었다.
어찌 그들만 급사로 사망한다는 말인가
그들은 무림 고수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는 이들이었다.
의문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무림에는 묘한 소문 하나가 나돌기 시작하였다.
명사들이 죽은 것은 심장마비가 아닌 타살이라는 소문이었다.
바로 혼을 죽이는 살수, 살혼殺魂에 의해서 말이다.
신체가 아닌 혼을 죽였기에 타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소문은 점점 커져 무림 전역에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동안 무림에서는혼을 죽이는 살수는 공포 그 자체로 군림하게 되었다.
항거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하는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허어."
당진설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십여년 전 무림의 공포로서 군림하던 죽음 그 자체가 사실은 혈해의 해주였다니
어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사실을 내게 말해줘도 되나요?"
"딱히 숨긴 적은 없습니다. 그저 해주께서 나설 일이 없어. 자연히 잊혀졌을 뿐."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족스럽군요."
당진설은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만족스럽다니 다행입니다."
남자는 진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따로 도울 일은 없을까요?"
"그를 당가밖으로 나오게만 해주신다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당가 내부에서는 아무래도 일을 진행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생길테니까요."
"그건 걱정마세요. 이미 계획을 전부 짜두었답니다."
당진설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보다 변수가 하나 있어요."
"변수 말씀입니까?"
"네, 암살에 강하윤도 참가하게 될거예요."
"봉황당주 강하윤을 말씀 하시는 겁니까?"
당진설의 말을 들은 남자는 놀란듯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반문하였다.
"네, 봉황당주 강하윤이요."
"이중 의뢰는 곤란합니다. 혈해의 칼에는 눈이 없습니다."
남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걸리적거리시면 죽여도 되니까요."
"..........진심입니까?"
"네에, 미끼로 쓰던 고기방패로 쓰던 마음대로 하세요."
당진설은 진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같은 부군을 모시는 사이가 아니던가요? 당부인?"
"그렇긴한데 봉황대주 자리가 탐이 나서요."
당진설은 탐욕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믿을 이 하나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군요."
"믿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 아닌가요?
남자의 말에 당진설은 웃음으로 화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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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누군가 문이 다급히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삼부인! 삼부인! 삼부인!"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하였다.
".....들어오세요."
그 목소리를 들은 금적화는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듭되는 야근에 피로가 잔뜩 누적된듯 싶었다.
벌컥
이내 문이 열리고 재경각원인 당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슨 일인가요."
금적화는 피곤에 찬 눈빛으로 당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큰일 났습니다!"
".......말씀하세요."
"천무맹에서 서신이 날아왔습니다!"
당감은 서신 한 장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보나마나 당진설이 돈 보내라고 독촉장을 보냈겠죠. 저쪽 한 구석퉁이에 던져두세요."
금적화는 귀찮다는듯한 표정을 팍팍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랑이 비리를 알아낸 이후
그녀에게 지원되었던 모든 지원금을 반절 이상 줄여버린 당가였다.
당연히 당진설은 반발하였고 몇 번이고 돈을 보내라며 독촉을 하였다.
천무맹에서 날아온 서신이라면 분명 독촉장일 것이다.
"그게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당감은 답답하다는듯 가슴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뭔가요?"
당감의 모습을 본 금적화는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서신에 맹주 직인이 찍혀있다는 말입니다!"
"뭐라고요!?"
당감의 말을 들은 금적화는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맹주 직인이 무엇이란 말인가
맹주가 직접 쓴 서신이라는 것이 아니던가
"어서 줘봐요!"
그녀는 재빨리 손을 내밀어 당감의 손에 들려있는 서신을 냉큼 가로채었다.
차르르르
그리고 그대로 서신을 펼쳐 내용을 읽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천무맹주가 무슨 일로 서신을 보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데굴 데굴
금적화는 눈동자를 쉴새없이 굴리며 서신을 빠르게 읽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뭐야 대체 이게!'
이내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서신에는 생각보다 급박한 소식이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떡
금적화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당감!"
그리고 당감에게 감사를 표한 후 그대로 집무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서신의 내용을 한시라도 빨리 당서윤에게 전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감은 그런 금적화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