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화 〉 422.그게 바로 사랑이에요.
"우우웅"
요랑은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심에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당가에 지내면서 딱히 생각해본적 없는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뭘까...선우는..."
"그대도 모르는 것인가?"
요랑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설마하니 본인조차 제대로 정의내리지 않았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우우웅...모르겠어..."
요랑은 골치 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선우와의 관계를 마땅히 정의할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원수였다.
탈태 후 기억이 희미해졌다고는하나 반평생을 함께한 남편을 죽인 원수 말이다.
그 다음은 보호자였다.
대판 싸우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자신을 보호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내단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말이다.
그 다음은 동행자였다.
처음으로 좁디 좁은 고독관을 떠나 그와 함께 중원을 돌아다녔다.
독지대가 아닌 맨땅을 직접 걸으며 돌아다녔고 객잔에서 칼침을 맞기도 하였으며 밤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맛난 음식을 구워먹기도 하였다.
옥령이라는 친구를 사귀기도 하였고 음양마라는 괴팍한 늙은이에게 후두려 맞기도 하였다.
그 다음은 친구였다.
그가 폐관 수련을 하러 들어간 그날 처음으로 선우에 대한 걱정이 치밀어올랐다.
걱정되었다.
혹여 다친 것은 아닐까
혹시 무리를 한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곧이어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선우에게 상당한 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정은 선우와 떨어져있는 동안 더욱더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하였다.
재경각의 업무가 힘들 때마다 그를 그리워하며 설움을 토해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우가 폭주하던 자신을 데리러 오던 날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간 쌓인 정의 크기가 상상이상으로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선우와 있으면 행복했고 그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수였던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선우를 함부로 정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원수이자 보호자였고 동료이자 친구였으며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이였으니 말이다.
"대답하기 힘들다면 굳이 대답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모습을 본 능소화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모든 문제에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치만"
그러자 요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궁금해."
요랑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내게 선우가 어떤 존재인지 말이야."
"흥미가 생긴 것이냐?"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흥미로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요랑은 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본녀가 도와주겠다."
능소화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 된다."
"그래?"
"그렇다, 하나하나 대답하다보면 그대가 선우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능소화는 확신에 찬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좋아 좋아!"
요랑은 꺄르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선우가 좋은가?"
"좋아! 약속을 뒤질라게 안 지키지만 그것도 나름 매력 있다고 생각해!"
요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얼마만큼 좋은가?"
"우웅...그건 측량못하겠어....비교할만한 게 없는걸."
"흐음..일리 있도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도록 하겠다. 만약 누군가 선우를 위협한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능소화는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선우를 위협할 사람이 있어?"
요랑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하였다.
그가 아는 선우는 인간을 초월한 흉기 같은 존재였다.
대체 어떤 인간이 감히 선우를 위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의 경우다. 선우가 강하긴 하지만 최강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가......우웅...확실히.....더한 인간이 있긴하니까....."
요랑은 지금까지 봤던 인간 중 가장 강했던 음양마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선우가 강하긴 하지만 음양마라면 충분히 그를 먼지나듯 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더한 인간이 선우를 위협했다고 생각해보거라.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울껄?"
"응?"
"그 영감탱이라면 선우 뿐만 아니라 나까지 때릴 게 분명할 테니까!"
요랑은 소름 돋는다는 듯한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예절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음양마에게 죽기직전까지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요랑은 두려운 듯 짧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요랑, 논지는 그게 아니다."
능소화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선우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대가 어떠한 행동을 할까라는 것이 논지이다."
"그니까 말했잖아. 울거라니까?"
"........뭐, 대신 맞는다던가.......지켜준다던가....도망갈 시간을 벌어준다는 선택지는 없는 것인가?"
능소화는 당혹스러움이 잔뜩 묻어있는 어조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무리야."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코앞에서 화산이 터지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야. 내가 뭘 한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어."
요랑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음양마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작정하고 덤벼든다면 지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송장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 선택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였다.
요랑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혹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목숨을 걸고 지킨다거나 시간을 끈다거나 같은 상당히 희생적인 대답을 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저렇게 쉽사리 상황을 포기한다는 말인가?
`내가 질문을 잘못했나?`
능소화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다시 상기해보았다.
혹여 잘못된 질문을 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소화 소화 소화!"
그때 요랑이 불현듯 능소화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말하거라."
"생각해보니까 선우한테 해줄게 있어!"
"그런가? 역시 그런 것인가?"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기쁜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응! 죽일거야."
"뭐...뭐라?"
"그 영감탱이가 진심이라면 분명 선우는 고통스럽게 죽고말거야.....그럴바엔 내 손으로 죽이는게 나아."
요랑은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결연의 의지가 서려 있었다.
"하아"
그 대답을 들은 능소화는 이마를 붙잡았다.
아무래도 요랑이 선우에 대해 정의 내리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다른 질문을 하겠도다."
"그래!"
그 후 능소화는 다시금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때마다 요랑의 엉뚱한 대답에 골머리를 썩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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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가려야~ 가려야~"
요랑은 문을 벌컥 열더니 이내 당대부인의 이름을 불렀다.
"어멋, 요랑님."
"요랑 어서 와요."
문을 열자 아름다운 두 명의 여인이 환한 미소로 요랑을 반겨주었다.
"어라? 옥령이도 있었네?"
바로 당대부인과 옥령이었다.
"잠시 담소를 나누러 왔어요. 요랑이야 말로 웬일이세요?"
옥령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웅! 가려한테 물어볼게 있어서 왔어!"
요랑은 활기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물어볼거요?"
옥령은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응응!"
"자리를 비워드릴까요?"
"아니야 아니야! 옥령이도 있는 김에 같이 들어 줘!"
그녀의 말을 들은 요랑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네에."
그녀의 말에 옥령은 기분이 좋은 듯 눈웃음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일인가요 요랑님?"
당대부인은 의아한 듯 그녀에게 물었다.
"잠깐만!"
성큼 성큼 성큼
그녀의 물음을 들은 요랑은 다급히 외친 후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당대부인의 품속으로 그대로 뛰어들었다.
푹신
그러자 말랑말랑하고 푹신한 젖통의 감촉이 요랑의 온몸에 전해졌다.
"나 여기서 말할래..."
요랑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후훗...얼마든지요."
당대부인은 그런 요랑이 귀여운지 말갛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머리도 쓰다듬어줘..."
이내 요랑은 그녀에게 다시금 어리광을 부렸다.
"네에 네에.."
쓰담 쓰담 쓰담
그러자 당대부인이 요랑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있잖아...내가 소화랑 얘기를 해봤는데.."
"네에~"
"아무래도 선우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네에!?"
"네에!?"
요랑의 갑작스러운 말을 들은 두 여인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나눈건가요?"
당대부인은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소화가 물어봤어. 내게 선우가 어떤 존재인지 말이야."
그녀의 물음에 요랑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요?"
"그래서 대답했어.....같이있으면..편하고.....즐겁고....혼내면..슬프고....싸워도....금방...다시 말하고 싶고...계속 같이...있고 싶다고 말이야."
요랑은 능소화에게 해줬던 말을 떠올리며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소화가 말하더라. 그건 연정이 아닐까하고 말이야."
요랑은 영롱한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가려랑 옥령은 어떻게 생각해? 나는 선우를 연모하는 거야?"
요랑은 당대부인과 옥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척이나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다.
"..........."
"..........."
요랑의 말을 들은 두 여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랑이 연모라니?
그녀는 사람이 아닌 영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사람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종족자체가 틀린데 말이다.
"너무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왔어. 내 감정은 뭐야?"
요랑은 고개를 슬며시 들어올린 후 당대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은 대답을 촉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요랑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두 여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깊은 고심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이내 옥령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감정은 스스로 판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가 정의해주는 게 아닌 스스로의 판단 말이에요."
"하지만 난 사랑이란 걸 모르는 걸?"
요랑은 의문에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럼 사랑에 대해 알면 되지 않을까요?"
"사랑을?"
"네, 알려드릴게요. 사랑이 무엇인지."
옥령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려줘! 사랑이 뭔지!"
요랑은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건 무척이나 오묘한 감정이에요. 그래서 마땅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죠.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기쁠 수도 있고 떠나간다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깊은 슬픔에 빠질 수도 있거든요."
옥령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감정을 조종하는거야?"
"네에, 어찌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인해 수많은 다른 감정들이 파생되어지니까요."
".....우웅..어려워."
요랑은 골치 아픈듯한 표정을 지었다.
옥령의 설명이 아리송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흐음, 예시를 들어볼까요? 요랑은 선우가 칭찬해줬을 때 어때요?"
"기뻐! 완전 기뻐! 더 받고 싶어!"
"그럼 반대로 선우가 요랑을 혼낼 때는 어때요?"
"또 별것도 아닌걸로 시비거는구나. 느껴. 가끔 보면 유치하다니까!"
"후훗...그럼 선우가 싫으신건가요?"
".....그런건...아니지만.."
옥령의 물음에 요랑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었다.
선우가 짓궂다고 느끼긴 하지만 그가 싫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짓궂은 면모가 더욱더 재밌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만약 선우가 북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요랑은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선우가 떠나가는 것을 상정해본 것이다.
그리고 이내 요랑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선우가 떠나간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고 가슴이 답답해졌기 때문이었다.
"어때요?"
요랑이 말이 없자 옥령은 확인하듯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하면서 말이다.
"기분이...이상해."
요랑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상한데요?
"선우가 떠나간다고 생각하니까....속이 막...울렁거리고...가슴도 답답하고....우울해."
요랑은 느끼고 있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선우가 떠나버렸다면 어떨 것 같아요?"
"..........."
옥령의 가정에 요랑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슬퍼...슬프고...너무..슬퍼...매일 그리울 것 같아...매일..생각날 것 같아....텅빈 느낌이 들 것 같아."
요랑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우가 떠나버렸다고 생각하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상당한 슬픔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거예요."
그 모습을 옥령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응?"
그녀의 말에 요랑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게 바로 사랑이에요."
옥령은 확신에 찬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랑?"
그녀의 말을 들은 요랑은 어안 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반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