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화 〉 421. 요랑의 마음을 묻다.
집무실
"하아아암"
당서윤은 크게 하품을 내쉬었다.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망할 장선우."
그녀는 자신을 피로하게 만든 원흉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바로 정인인 장선우를 말이다.
선우와 첫날밤을 치르고 난 이후
당서윤은 그전과는 전혀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흘에 한 번씩 선우에게 안기는 일상이었다.
첫날밤 이후 그는 꼬박꼬박 침소를 방문하였다.
무척이나 성실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성실성은 당서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쉬는 시간조차 없이 매일 격무에 시달리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선우의 성실한 방문은 그녀를 더욱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물론 거절하는 방법이 있긴 하였지만 그녀는 차마 선우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어떻게 거절을 해...`
선우와의 관계가 미칠 듯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기분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는 기분
그의 품에 안겨 잠드는 기분
모든 것이 좋았다.
피로가 잔뜩 누적되어있음에도 거절을 못할 만큼말이다.
그렇기에 당서윤은 난관에 봉착해있었다.
선우와의 교접은 거절치 못할 정도로 너무나 좋았지만 이러다간 수명을 갉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쩐다..`
그녀는 고심에 잠겼다.
이 난관을 헤쳐나갈 지혜로운 방법을 말이다.
쾅 쾅 쾅
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그리고 이내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귀여운 인상의 절세미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절세미녀의 정체는 요랑이었다.
"어머, 요랑님 어서오세요."
그녀의 등장에 당서윤은 반가운 듯 아는 체를 하였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그녀를 보니 반가움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못 지냈어!`
"네?"
요랑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당황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요랑은 가출 사건 이후 무척이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마치 귀인처럼 말이다.
요랑이 근무하던 재경각주의 집무실은 그녀를 위한 놀이방으로 꾸며져 버렸고 재경각 지원 인력을 기존의 세배로 늘려 요랑에게 업무가 부담되었던 일들을 전부 분담시켜버렸다.
게다가 일 또한 요랑이 심심할 때만 처리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꾸었고 그 양조차 하루에 열 건이 넘지 않도록 제한을 하였다.
아주 중요한 서류들만 처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재경각을 요랑의, 요랑을 위한, 요랑에 의한 곳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 요랑이 잘지내지 못한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순간 당서윤의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누가 요랑님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랑에 대한 극진한 대우는 가주 대리로서 내린 지엄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지엄한 명을 누군가 어기고 있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건 항명이나 다름없었다.
"당진설은 미쳤어!"
그녀가 묻자 요랑은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네?!"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요랑의 입에서 도저히 예상치 못한 인물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시집가있는 언니의 이름이 왜 나온다는 말인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 일? 무슨 일!?"
그녀의 말을 들은 요랑은 발작하듯 언성을 높였다.
"이걸 봐봐!"
요랑은 장부 하나를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당진설이 요 반년동안 당가에서 타간 지원금이야. 얼마인 것 같아?"
요랑은 짜증 난 듯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잠..잠시만요."
당서윤은 요랑의 강경한 모습에 당황을 하며 조심스레 장부를 펼쳐보기 시작하였다.
촤르르르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탁
이내 당서윤은 장부를 그대로 접어버렸다.
"엄...청..나네요."
그리고 당서윤은 애써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엄청나지? 대단하지? 어디서 돈이 빠지고 있나 했더니 여기서 다 빠지고 있더라?"
"...........그런가요..?"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맨날 야근하면서 뼈 빠지게 아끼고 계산하고 돈 벌어다 주면 뭐해? 이렇게 안 보이는 곳에서 줄줄 새는데? 아니 가짜 상단을 등록해서 돈 빼먹는 건 대체 무슨 수법인데? "
"............"
"돈 해 처먹는 수법이 너무 대단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
요랑은 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듯 잔뜩 열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특히 이거 봐. 이번 달 말에 타간 지원금을 봐보라고!"
요랑은 장부을 뺏어들더니 이내 제일 끝쪽에 있는 부분을 펼쳐들더니 강조하듯 손가락 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오십만냥이라고! 오십만냥!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오십만냥이면 당과가 몇개고 전병이 몇개인지 알아? 내가 평생 처먹어도 못 먹을 정도의 양이라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돈버는 놈 따로있고 돈쓰는 년 따로있는거야? 그런거야? 그럼 나도 돈쓰는 년이 될래! 일 안해! 안한다고!"
요랑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생각할 수록 울분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진설이 빼먹은 돈은 상상이상으로 어마어마하였다.
당진설은 그동안 품위 유지비는 물론이고 여성 무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발전기금, 미혼녀들의 출산 장려를 위한 발전기금, 미혼모를 위한 지원금 등 별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타가고 있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허위 상단을 여러 개 만들어 마치 거래가 오갔던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여 상당한 돈을 착복하기도 하였다.
횡령
그렇다.
어마어마한 횡령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만약 요랑이 심심풀이로 허위 상단의 매물을 찾아보지 않았다면 결코 발각되지 않았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횡령을 말이다.
"....이게...가능한 건가요?"
당서윤은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당진설이 상당한 돈을 지원받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정도로 어마어마한 액수를 착복하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매년 세가의 순 이익중 상당한 금액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꼴이 아니던가
"가능하니까 정리했지! 그거 완전 미친년이야! 이번 달이야 후계 경쟁인지 뭔지 때문에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끔찍할 정도의 과소비야!"
요랑은 진지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장 지원금을 끊어버려야해! 그리고 그년한테 돈 갖다 바친 놈들은 목을 쳐야 하고!"
"..........역시 내부 조력자가 있는 거군요."
"있다마다! 이런 미친 짓거리를 혼자 했으려고?"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은퇴했던 영감탱이들이 대부분 동조했더라. 걔들부터 조져야해. 허위 상단과 거래 도장 찍은 건 그 놈들이야."
요랑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매물이라 없는데 어떻게 들통나지 않게 된걸까요?"
당서윤은 요랑을 바라보며 의문이 담긴 질문을 하였다.
허위 상단이라면 매물이 없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들통나지 않았는지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관행처럼 넘겼대. 전임자가 후임자한테 말이야. 암묵적으로 공인된 비리인 것처럼 포장해서 말이야."
"그런!"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설마하니 그런 식으로 비리를 저질렀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내가 왜 못 지냈는지 알겠지?"
요랑은 삐죽 입술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네....알것도 같아요. 관행처럼 이루어진 비리를 보며 경멸감이 들었던 거군요."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분노가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 같아도 이렇게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조직적인 비리를 발견했다면 분노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아닌데?"
그녀의 말을 들은 요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반문하였다.
"네?"
"배알 꼴려서 그런건데?"
"배...알이요?"
"나는 일해서 돈을 벌아다 쓰는데! 저년은 놀면서 따박따박 돈받아 쓰잖아! 그것도 수십만냥이나!"
요랑은 억울하다는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하니 분노의 이유가 질투였을 줄은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비리는 나 같은 노동자에게 어마어마한 상실감과 박탈감을 준다고!"
요랑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요랑님도...놀면서...돈 받잖아요..`
당서윤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켜버렸다.
여기서 저런 말을 했다간 분위기가 안좋아질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윗대가리들이 문제야! 관행 관행거리면서! 지들 입맛대로 휘두르려고 한단 말이야!"
`요랑님이 이렇게 말을 잘했던가?`
당서윤은 새삼 요랑의 어휘력에 감탄하며 그녀의 말을 경청하였다.
그녀의 울분이 풀릴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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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요랑은 울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 조잘대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당서윤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기대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당서윤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요랑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챈 까닭이었다.
"요랑님 정말 고마워요. 요랑님이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어요."
당서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칭찬하였다.
그녀가 지금 칭찬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헤...뭘."
그러자 이내 요랑의 입가에서 만족스러운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누군가에게 받는 칭찬은 언제 들어도 짜릿하였다.
"그럼 나 이제 가볼게!"
요랑은 당서윤을 바라보더니 이내 활기찬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어디 가시게요?"
"선우한테 가서 칭찬 받으려고!"
요랑은 기쁜듯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소연과 칭찬 몇 마디로 당진설에 대한 짜증은 저 멀리 날려버린듯 하였다.
"아쉽네요. 좀 더 계시지."
"안돼! 선우한테 갔다가! 당대부인한테도 가야되고! 금적화에게도 가야되고! 능소화한테도 가야해!"
"금부인께 이야기 안하셨어요?"
그녀는 놀란듯 요랑에게 되물었다.
설마하니 재경각에 근무하고 있는 금적화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응! 서윤이가 가주 대리잖아! 가주 대리한테 제일 먼저 말하는게 맞는거잖아!"
요랑은 당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당서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요랑의 예상치 못한 말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 가볼게~"
요랑은 그런 당서윤을 바라보더니 이내 바깥으로 가버렸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보였다.
당서윤은 그런 요랑의 뒷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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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요랑이 재빨리 문을 열어젖혔다.
"소화야! 소화야! 소화야!"
그리고 침상에 앉아있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 그대는 요랑이 아니던가? 어쩐 일로 본녀의 처소에 방문한 것이더냐?"
갑작스러운 요랑의 방문에 능소화는 반색하며 그녀를 반겼다.
설마하니 이렇게 뜬금없이 찾아올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거 알아? 나 완전 멋진 일 했다?"
"궁금하구나. 대체 어떤 일을 한 것이더냐?"
능소화는 궁금하다는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 귀여운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가를 병들게 만든 어마어마한 횡령과 비리를 단독으로 캐내었어!"
요랑은 자랑스러운듯 당진설의 비리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내뱉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능소화는 그녀의 말에 경청하며 이런 저런 맞장구를 치기 시작하였다.
사천의 패주라고 불리우는 사천당문의 거대한 비리는 그녀 입장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나쁜 여자로다. 어찌 가문의 돈을 그렇게 물쓰듯이 막쓴다는 말이더냐"
"내 말이! 내 말이!"
요랑은 맞장구를 치며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는가?"
"서윤이한테 가서 다 일러바쳤어. 이제 걔네 뒤질라게 혼날거야."
"호오, 과연 현명하도다. 그대는 정말 다재다능한 이로다."
"헤헤헤헤헤."
그녀의 칭찬을 들은 요랑은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붉혔다.
"나 소화 좋아!"
요랑은 그대로 능소화의 품에 뛰어들었다.
"본녀도 요랑이 좋다. 어찌 이리 꾸밈없이 순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경탄하듯 요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신기하였다.
자신을 허물없이 대하는 요랑의 태도가 말이다.
자신은 황족이었다.
그것도 현 황제의 친손녀 말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어려워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요랑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꾸밈없이 다가오고 꾸밈없이 대해주었다.
그런 태도가 신기하고 고마웠다.
`선우와 비슷하구나.`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연인과 친구 이 모든 것을 한번에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요랑과 선우는 정확히 어떤 관계이지?`
그러다 문득 능소화는 의문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바로 요랑과 선우의 관계였다.
둘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하였다.
친근한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정의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과하게 친근한 것도 같고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뜨거움이 부족하였다.
도통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흐음`
이내 궁금증이 든 능소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랑, 궁금한게 있도다."
"뭔데? 뭔데? 뭔데?"
그녀의 물음에 요랑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선우와 정확히 어떤 관계인 것인가?"
"선우...랑?"
그녀의 물음에 요랑은 의문에 찬듯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의혹이 서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