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화 〉 408. 소문이 돌다.
중원에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용봉조차 덜덜 떨게 만들었던 독왕의 제자, 장선우가 부정을 저질러 독서시와 파혼을 하였다는 소문이었다.
처음 소문을 접한 이들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장선우는 당씨성을 쓰지 않으면서 당가의 무공을 쓰는 외인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 독서시와의 정혼을 깨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소식은 파혼에 대한 신빙성을 더욱더 가중시켜주었다.
이예설 측에서 지지자 명단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장선우의 이름이 껴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세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장선우가 독서시와 파혼을 한 뒤 이예설 측에 붙어먹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사문을 중시하는 무인으로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찌 당가에서 지지하는 당진설이 아닌 이예설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당가의 금지옥엽이라고 불리우는 독서시 당서윤과 파혼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수많은 이들이 경악을 하였고 이내 그들은 입을 한데 모아 장선우와 이예설을 욕하기 시작하였다.
이예설의 경우 정혼자가 있는 남자를 유혹하여 휘하에 끌어들인 요녀라면서 경멸하게 되었고 장선우의 경우 여색에 빠져 스승과 사문마저 배신해버리는 패륜아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은 입에서 두남녀의 이름이 쉴새없이 입방아를 찧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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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당진설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좋구나."
차를 한차례 음미한 당진설을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목욕을 하고 즐기는 이 한 잔의 여유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었다.
어찌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쾅 쾅 쾅
"당 부인!"
그때 문 뒤편에서 다급히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당진설은 인상 와락 찌푸렸다.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여유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십니까."
"저....당연입니다!"
문을 두드린 이는 심복인 당연인듯 싶었다.
"들어오세요."
당진설은 신색을 곧바로 회복한 후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벌컥
"당 부인을 뵙습니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당연은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고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제가 그대를 그리 가르쳤나요? 당씨 성을 쓰는 네가 이런 식의 무례를 보인다면 그것은 곧 당가의 이름에 먹칠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까?"
"죄..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급박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연은 빨갛게 익은 얼굴로 다급히 사과하였다.
당진설의 꾸짖음에 부끄러움이 몰려온듯 싶었다.
"어떤 일이든 예를 차리는 것은 잊지말도록 하세요. 그대는 자랑스러운 당가의 혈족이니까요."
당진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네에."
당연은 고개를 살짝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예의마저 잊어버린 채 온 것입니까?"
당진설은 의문에 찬 음성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큰일 났습니다. 이예설 측에서 지지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게 무엇이 큰일입니까. 경합까지 두세달이 남은 시점이긴 하지만 발표를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당진설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정말 큰일인 줄 알고 내심 긴장까지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막상 듣고보니 김이 빠지는 소식이었다.
지지자 명단을 발표한 것이 무슨 큰일이라는 말인가
오히려 그들의 섣부름을 조롱할 일이 아니면 모를까
아직 경합까지는 두세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자 명단을 미리 발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두세달 동안 지지자에 대한 견제가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도장을 찍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명단 발표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명단 속에 있는 인물입니다!"
"왜요? 구파의 기재들이라도 끌여들였답니까?"
당연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당진설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리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누가 이예설을 지지하든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우는 장선우가 휘하에 있는데 대체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장선우가 이예설 측에 붙었다고 합니다!"
"..........뭐라구요?"
당진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지지 명단에 장선우의 이름이 석자가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입니까!"
당진설은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고함을 내질렀다.
"동명이인이겠지요! 어찌 당가의 무인이 이예설을 지지한다는 말입니까!"
"저도 처음에는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었는데.......당가의 장선우가 맞다고 합니다.."
"이...이...무슨!?"
그녀의 말을 들은 당진설을 말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장선우가 이예설의 뒤편에 서다니!?
그는 당가를 대표하는 무인이자 막내동생인 독서시 당서윤의 정혼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그가 자신이 아닌 주소양을 지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야! 뭔가 잘못 된거야!'
그녀는 부정하였다.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선우는 당가의 의지를 표명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이예설의 뒤편에 섰다면 당가 또한 이예설을 지지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럴 일이 일어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혈족 중심의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강한 당가가 혈족인 자신을 배신할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는 서윤이의 정혼자란 말입니다!"
당진설은 표독스러운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당장 당가에 전서를 띄우세요! 당장!"
당진설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당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당진설의 말을 들은 당연은 온몸을 오돌오돌 떨며 답을 하였다.
그녀의 살기에 오금이 저려버린듯 하였다.
"당장 가보세요!"
"네..넵!"
당연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가 나가고 당진설을 손톱을 쉴새없이 깨물기 시작하였다.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처럼 말이다.
까득 까득 까득
'아니야....뭔가..잘못된 걸거야...뭔가..!'
당진설을 이빨로 예쁘게 정돈된 손톱을 쥐어뜯으며 연신 부정을 하였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
이내 방 안에서 여유롭게 차를 음미하던 귀부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불안감에 몸서리치는 여인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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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이재원은 서신 한장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써져있는 것이 정녕 천월궁의 뜻이란 말이오?"
이재원은 벙찐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천월궁주의 직인이 찍혀있었습니다."
비연각의 각주인 제갈탄이 답을 하였다.
'와아......미쳤네.'
이재원은 속으로 감탄성을 내뱉었다.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장선우가 독왕을 배신할 줄이야."
"소인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둘 사이가 어긋날만한 일이 전혀없었습니까."
"비연각주가 볼 땐 왜 이런거 같소?"
이재원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흐음....여러가지 추론을 할 수는 있겠지만...가장 유력한것은...아무래도..그...남녀 관계가 주요한 것 같습니다."
비연각주는 민망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우리 설아가 장선우를 유혹했다는 겁니까?"
이재원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장선우는 당서윤과 파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아가씨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하였죠. 정황상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비연각주는 담담한 어조로 정보를 기반한 추론을 내뱉었다.
"흐음........."
그의 말을 들은 이재원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허어."
이재원은 다시금 탄식을 내뱉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철없고 고지식한 계집이 설마하니 남자를 그렇게 유혹하였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얌전한 고양이 제일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고 하더니...네가 딱 그짝이구나.'
이재원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쉽구나...아쉬워..'
그리고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실수인 척 딸의 처녀를 맛볼 생각을 하고 있던 이재원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절로 차올랐다.
'성교육은 직접 시켜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이재원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늘씬하고 적당한 가슴을 가진 이예설은 그의 취향에 무척 적합한 몸매를 타고난 여인이었다.
그런 이예설을 간발의 차로 맛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들었다.
'바이바이 예쁜 보지야.'
이재원은 이예설의 예쁜 보지와 작별의 인사를 끝마쳤다.
처녀도 아닌 그녀에게는 관심이 급락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겠소."
이재원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당장 당가에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재원의 말을 들은 비연각주는 그를 향해 살짝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집무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이재원은 그의 뒷모습을 슬며시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깊은 고심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러운 장선우의 이탈이라는 변수에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무난하게 당가쪽에 유리하게 가려고 했는데....이러면 나가리인데?'
이재원은 생각하였다.
과연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독왕 코인을 탄 이후 당가쪽에 힘을 실어줄 생각을 한 그였다.
그런 그에게 장선우의 탈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꼭 사람이 모이면 트롤링하는 새끼가 한놈씩 있다니까.'
이재원을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고심에 잠겼다.
어느 정도 계획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느낀 탓이었다.
집무실에는 고요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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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방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이내 백의를 입은 이예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흥분한듯 잔뜩 상기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왜 왔냐."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앉아있던 선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죠!"
그녀는 선우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뭐가."
선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어째서 소문을 그따위로 냈냐고요!"
"무슨 소문?"
"시치미 떼지마요! 저와 당신이 내연관계라고 소문을 내셨잖아요!"
이예설은 기가막힌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분노한 상태였다.
정혼자가 있는 남자를 유혹했다는 소문으로 인해 평판이 바닥까지 떨궈졌기 때문이었다.
"안냈는데?"
"그럼 대체 소문이 왜 이렇게 난건데요!"
이예설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언성을 높였다.
"난들 알겠냐?"
그녀의 물음에 선우는 모르겠다는듯이 반박을 하였다.
"이이이익!"
그 태도가 얄밉게 느껴진 것인지
이예설은 분한듯 언성을 높였다.
"진짜 난 모르는 일이야. 부정을 저질렀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상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내뱉지 않았다고."
선우는 나름 억울한듯 항변을 하였다.
부정을 저질러 파혼당했다고 소문을 내긴 했지만 부정을 저지른 상대에 대해 일언반구도 담지 않았던 그였다.
황족인 경화군주를 언급하여 괜스레 황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녀를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문제잖아!"
그 말을 들은 이예설이 언성을 높였다.
"부정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니까 괜스레 제가 덤탱이 쓴 거 잖아요!"
"아...그런가?"
"그런게 아니고 확실하다구요! 어떻게 할거예요! 지금 제 평판은 바닥이라고요!"
이예설은 억울하다는듯이 항변을 하였다.
그녀는 억울하였다.
전략적인 정혼을 위해 몸조심 마음조심하며 살아왔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순식간에 세상에 다시없을 요녀로 탈바꿈된 것이다.
파혼 당한 장선우를 지지자로 표명한 시점에서 말이다.
진짜 무슨 부정이라도 저질렀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본적 없는 그녀였다.
그녀의 입장에서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쩔 수없잖아?"
선우는 되려 뻔뻔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지지자 성명을 발표한 건 너잖아?"
"저야 내연녀쪽은 전부 정리한 줄 알았죠!"
"그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발표해버린 네 잘못이네?"
"상식적으로 그런 사실관계는 전부 밝혀야하는게 아닌가요?"
"이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선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당장 해명하세요!"
"뭐를?"
"저랑 당신이 내연관계라는 소문 말이에요!"
"네가 하면 되잖아요!"
"대중들이 제 말을 쉽사리 믿을 리가 없잖아요!"
이예설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안그래도 답답해 죽겠는데 자꾸만 비협조적으로 나오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