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화 〉 394. 봉황당주 강하윤
천무맹 회의실 안
"당장 쳐들어가야합니다!"
백호당주 검왕 갈지천은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지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백호당의 부당주이자 친동생인 갈무량이 무참히 살해당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디 더러운 마교종자들이 천무맹의 핵심 인사를 그리도 무참히 살해한다는 말입니까! 이런 일은 그동안 존재치도 않았으며 앞으로 존재해서도 안될 일입니다! 당장 쳐들어가 천무맹의 위엄을 살려야합니다!"
갈지천은 얼굴을 붉게 상기시키며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백호당주."
그때 옆에 있던 봉황당주 강하윤이 침착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지금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진정하시지요"
그녀는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 지금 진정하게 생겼소!? 내 동생이자 부하가 죽었단 말이오! 평생 협을 추구하며 살아온 협객이 죽었단 말이오!"
그녀의 말을 들은 갈지천은 울분에 찬 음색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것도 내가 그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천무맹의 앞마당에서 말이오! 어찌 내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겠소!"
갈지천은 잔뜩 상기된 얼글로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강하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림을 평화롭게 만든 천무맹주 이재원을 동경하였고 그런 그가 맹주로 있는 천무맹을 사랑했던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천무맹에서 살해를 당하였다.
어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말인가
"감정적으로 대응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좀더 이성적으로 접근해야합니다."
강하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백호당주 갈지천이 너무 흥분하고 있다고 말이다.
부하이자 동생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마교와의 전쟁은 수백 수천 명의 생사가 달린 일이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봉황당주! 그대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구려! 갈무량은 죽었소! 마기로 점칠된 상태로 말이오! 대체 여기서 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오! "
갈지혁은 답답하다는듯한 눈초리로 강하윤을 노려보았다.
"마교의 소행이라는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강하윤은 차분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뭐라!?"
"증거라고는 갈 부당주의 몸에 있는 마기 뿐 아닙니까? 어찌 그것만 가지고 범인을 마교로 몰아간다는 말입니까? 마공을 익힌 이들은 마교 말고도 수두룩합니다!"
강하윤은 나름 미심쩍은 부분은 골라내었다.
그녀는 이번 사건에 큰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바로 사건 조사 방식이 지나치게 간결하였고 성급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고작 사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만에 범인과 살해동기까지 완벽하게 나오게 된 것이다.
증인까지 완벽하게 확보된 채로 말이다.
보통 살인 사건의 경우 범인을 확정 짓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자칫 실수로 무고한 이를 잡아들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꼼꼼히 검수하고 또 검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묘하였다.
고작 사흘만에 범인이 확정지어졌고 마교의 세작이라는 결론까지 나버렸다.
마치 범인을 정해놓고 결론을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작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강하윤은 조금더 신중을 가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누군가의 음모에 놀아나지 않도록 말이다.
"허어!"
그 말을 들은 백호당주 갈지천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살인마를 두둔하는 것이오?"
"뭐라구요!?"
"말이 그렇지 않소! 이미 정황상 증거뿐 아니라 증인까지 나온 판국에 자꾸만 범인이 마교가 아닐지 모른다는 개소리를 하고 있지 않소? 내 눈에는 살인자를 두둔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소!"
갈지천은 강하윤에게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강하윤도 지지 않겠다는듯이 언성을 높였다.
"그런 말이 아니면 대체 무슨 말이란 소리오! 나는 무식해서 전혀 모르겠구려!"
"적어도 무고한 이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것은 방지해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이번 사건이 너무 빠르게 결론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잠깐만요."
두사람의 언성이 오가던 그때 집법당주 팽가련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지금 집법당의 판결이 미덥지 못하다는 말인가요?"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하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미덥지 않다기보단 좀더 신중을 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 참으로 오만하군요! 어찌 봉황당주가 집법당의 행사에 관여한다는 말입니까!"
그녀는 화가난듯 언성을 잔뜩 높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 아니면요? 제가 보기엔 봉황당주께서는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듯 보입니다."
팽가련은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현실 도피라뇨!?"
그녀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황당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저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현실 도피라니!?
"살인 용의자가 봉황당원임을 부정하고 싶은게 아닌가요? 혹여 본인의 명예에 누가 될까 말이죠."
"뭐라구요!"
그녀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발끈한듯 소리를 내질렀다.
팽가련이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본 당주를 모욕하는 것인가요!?"
강하윤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팽가련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모욕은 봉황당주께서 먼저 하셨지요. 어찌 봉황당에서 집법당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한단 말입니까?"
팽가련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무고한 이를 없애고자 좀더 신중한 수사를 권하는 말이 어찌 모욕이 된다는 말입니까!?"
강하윤은 이해할 수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론을 말하였을 뿐인데 어찌 저리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이미 집법당에서 결론 낸 사건입니다. 불복한다는 것자체가 집법당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무슨 사건조사가 사흘만에 종결난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범인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집법당이 그리 판단한 것 뿐입니다! 증인도 확보하였구요!"
"그럼 증인을 데려와보십시오! 제가 직접 물어야겠습니다!"
"살인사건의 증인의 경우 신분을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는 맹법도 모르시나요?"
팽가련은 말도 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원칙적으로 살인사건의 증인의 경우 철저하게 안정을 보장받는다.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고 범인이 잡힐 때까지 집법당의 무인들에게 둘러싸여 안전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증인을 데려오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리 원칙을 그렇게 따지는 사람이 어찌 다른 원칙을 이리도 쉽게 어긴다는 말인가
"............"
그녀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증인의 신분보장은 맹법에 엄연히 나와있는 사안이었다.
강하윤의 성격상 원칙을 지키고자 다른 원칙을 어기는 일은 결코 주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말이 없자 팽가련은 비웃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저 딱딱하기 그지없는 여자의 콧대를 내려앉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과하겠습니다. 증인을 데려오라는 말은 주제를 넘은듯합니다."
강하윤은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팽가련을 바라보며 사과를 하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철회하지 못하겠습니다. 수긍이 안됩니다. 증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수 없지만 고작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수사를 종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확실한 물증이 필요합니다."
강하윤은 진지한 눈빛으로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물증도 없이 심증만으로 범인으로 몰고가는 선례는 없어야한다고 말이다.
아무리 증인이 있다지만 어찌 사건을 증언만으로 결론 짓고 종결시킨다는 말인가
증인이 무조건 맞는 말을 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살인 사건이었다.
오히려 증인인척하며 누명을 씌우는 진범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좀더 확실한 수사를 위해서 말이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강하윤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짜증이 난 상태였다.
끊임없이 딴지를 거는 강하윤에게 말이다.
수사에 불복한다는 것은 집법당의 결정에 불복한다는 것이었고 집법당에 불복한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불복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앙큼한 계집, 자식새끼 하나 만들지 못한 주제에 감히 내게 덤벼?'
본래 팽가련은 강하윤에게 큰 악감정이 없었다.
악감정이라기 보단 무시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부인이라는 위치에 있음에도 자식 하나 생산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덤벼든다고 하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가진 것이라고는 일신의 무력밖에 없는 모자란 계집이 누구한테 덤빈다는 말인가
"저는 그저 옳은 말을 했을 뿐입니다."
강하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그럼 여기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죠. 봉황당주의 말이 정녕 옳은지 말입니다! 봉황당주의 말이 옳다고 여겨지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그녀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
".........."
그녀의 물음에 좌중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원리 원칙대로만 따지자면 강하윤의 말 중 틀린 것은 없으나 굳이 그녀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았다.
청룡당과 더불어 가장 위세가 등등한 백호당과 감찰집단인 집법당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훗"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팽가련은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를 지었다.
강하윤을 대놓고 망신시켰다는 생각에 즐거움이 올라왔기 떄문이었다.
"보셨나요? 아무래도 이곳에 봉황대주의 편은 없는듯 합니다."
으득
그녀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이를 으득하고 갈았다.
설마하니 맹내의 조직들이 이렇게까지 썩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고한 이를 범인으로 모는 것자체 불의가 아니던가
어찌 협을 숭상하는 집단에서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간다는 말인가
"그래도 납득할 수는 없어요! 어찌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범인을 확정 지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범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강하윤은 눈을 번뜩이며 고함지르듯 언성을 높였다.
비록 자신의 편은 없었지만 할말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걱정마세요. 증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녀의 말을 들은 팽가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그건....."
팽가련이 말을 이으려고 한 순간이었다.
"나야."
갑자기 회의실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그 목소리를 들은 회의실 내부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끼이이익
이내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새하얀 백의를 입고 허리에는 멋들어진 검을 비껴찬 미중년이 말이다.
"......맹주."
그 모습을 본 강하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렇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미중년의 정체는 천무맹주 이재원이었던 것이다.
"나라고."
이재원은 강하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가 말입니까."
강하윤은 모르겠다는듯 그에게 물었다.
"증인이 바로 나라고."
이재원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갈무량이 살해되던 그 날 실종되었던 자소령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봤거든."
".........."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거야?"
".........."
그의 말을 들은 강하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증인이었다면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였을 것이다.
상대가 누가되었든지간에 말이다.
꼼꼼히 따질 것이고 꼼꼼히 확인할 것이다.
사람의 원한 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제 죽고 못살던 친구가 오늘은 정말 죽이고 싶은 원수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재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거 마교로부터 무림을 구한 영웅.
천무맹의 맹주.
천하에서 가장 강한 남자.
그 어떤 누구도 그를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천무맹에서 가장 지고한 위치에 서있는 맹주가 어찌 자신의 부하를 죽인다는 말인가
그것도 동경하다 못해 찬양까지하는 청수검협 갈무량을 말이다.
어불성설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거 실망인데? 봉황당주가 나를 의심하다니 말이야."
강하윤이 말이 없자 이재원은 실망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은 강하윤은 고개를 더욱더 아래로 숙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팽가련은 통쾌함이 들었다.
저 건방지기 짝이 없는 여자가 당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맹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강하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말해봐."
이재원은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정확히 어떤 광경을 목격하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올곧은 눈빛으로 이재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년 봐라.'
그 눈빛을 마주한 이재원은 겉으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짜증이 슬며시 올라왔다.
설마하니 강하윤이 저런식으로 말대답을 할 줄은 예상치 못하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