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379.뒤지기 싫으면 안내해.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선우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요랑이 가출을 한다는 말인가
"거짓말이 아니에요. 뭣하면 이분께 물어보세요."
이예설은 옆에 있는 당감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게 진짜야?"
선우는 당감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당감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당감의 확인을 받은 선우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확인을 받긴했지만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요랑이 멋대로 가출할 수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말잘듣고 밥잘먹고 이빨까지 잘닦으며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왜...왜..가출한겁니까?"
이내 정신이 든 선우는 다급히 당감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게.....아무래도.....재경각의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도망간듯 합니다."
"그럴리가! 육부인이 그럴리 없습니다.! 너도 걔가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알잖습니까? 그리고 걔한테 일을 시켜봤자 얼마나 시켰겠습니까!? "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는 도리질치며 입을 열었다.
요랑이 고작 일이 힘들다고 도망갈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요랑은 영물이었다.
일반적인 체력을 가진 인간과 다르게 영성만 꾸준히 섭취한다면 쉽사리 지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요랑이 어찌 서류작업이 힘들어 도망간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요랑은 이제 막 내정을 배우는 처지였다.
그런 그녀가 일을 하면 얼마나 한다는 말인가
"그.....그게....선우님이 없는 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
선우는 이해안된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당감에게 물었다.
"육부인께서 재경각주로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육부인이!?"
선우는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해에 떠나기 전만해도 요랑은 기껏해야 산수좀 할 줄아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어찌 당가의 모든 회계와 세무 자료를 책임지는 재경각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워낙 능력이 출중하여 빠르게 승진한 것으로 압니다."
"허어"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듣고도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작 기초적인 산수정도만 할 줄 알았던 요랑이 재경각주가 됐단다.
이제 막 칼을 잡은 다섯살 배기가 중년의 절정의 고수를 이겼다는 말보다 더욱더 허황되게 느껴졌다.
"무튼 그렇게 재경각주를 맡은 육부인께서는 그간 수많은 일들을 홀로 처리하셨습니다. 사나흘에 한번씩 잠을 자가면서 말이죠, 적어도 다섯 사람분의 역할을 너끈히하였지요. 그리고 저희 재경각은 각주님께 많은 의지를 하였습니다"
당감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을 너무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사람이 할일을 홀로 처리해버리시니 인사부에서 신규 채용을 하지 않게 된 겁니다. 그 결과 재경각주님은 더욱더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게 되었고 자연히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아니 그걸 항의를 안했습니까?"
"물론 항의를 하였습니다. 매번 다음분기에는 신규채용을 확대한다는 말만 해놓고 나몰라라 하던군요. 결국 각주님께서 직접 담판을 짓고 인사부에 있던 신입 몇 명을 추가로 배정 받게 되었는데........."
"무슨 문제가 터진겁니까?"
"전부 일주일만에 도망갔습니다."
"뭐라고요?!"
선우는 놀란듯 되물었다.
당가가 어디라는 말인가
이름난 명성, 빵빵한 월봉, 결혼자금 지원, 정착자금 지원, 휴가비 지원, 노후 연금 지원 등 돈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누구나 들어오길 원하는 최고의 직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일주일만에 그대로 도망을 간다는 말인가
"전문 분야도 아닌 곳에 퇴근도 없이 매일 야근하며 버티려고 하니 막막함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전부 미련없이 퇴사하더군요. 그리고 그 결과 남아있는 재경각원들의 업무는 더욱더 과중되었고 결국 각주님께서 폭발하신듯합니다. 그대로 사직서를 쓰고 나가시더군요."
".................."
당감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현대에 기업에서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 놀라우면서도 요랑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그렇게 미칠듯이 괴로웠을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잠을 자며 업무를 이어간다니
아무리 그녀가 영물이라지만 충분히 지칠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 인사담당자는 누구입니까!?"
선우는 잔뜩 성이난 얼굴로 당감에게 물었다.
".........삼부인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설마하니 금적화가 그렇게 요랑을 혹사시켰을 줄은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따끔하게 혼내야겠어.'
선우는 생각하였다.
나중에 금적화를 따끔하게 혼내야겠다고 말이다.
눈물이 줄줄 새도록 말이다.
"육부인은 어디 있습니까?"
선우는 당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정확한 위치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섬서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
대답을 마친 선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장에라도 요랑을 잡으러갈 심산이었다.
"잠시만요."
그때 옆에 있던 이예설이 그에게 물음을 건넸다.
"왜?"
선우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도 데려가주세요."
"약 먹었냐?"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예설은 엄연히 인질이었다.
그런데 어찌 인질을 외부로 데리고 나간다는 말인가
어불성설한 말이었다.
"육부인을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응?"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저한테 만날 방도가 있어요."
이예설은 자신있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당감님."
선우는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네, 하명하시지요."
"잠시 자리좀 비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당감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그래도 밖으로 나가버렸다.
"개소리 할래? 당가의 추격자들도 제대로 못 찾고 있는 판국에 네가 어떻게 찾아?"
당감이 나가자 선우는 이예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찾을 수 있어요."
이예설은 확신에 찬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녀에게 추종향을 묻혀놨거든요."
".......뭐라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당황한듯 언성을 높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추종향이라니!?'
그런 것을 대체 언제 묻혀놨다는 말인가
"예전에 처음 당가로 왔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분들께 흩뿌려놨어요."
"그런거 못 느꼈는데?"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추종향이라니 느껴본적이 없었다.
"천월궁에서 제작한 특수한 추종향은 무색 무미 무취 무해해서 딱히 인식하진 못했을 거예요. 일년만 지나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정도로 무해하니까요."
이예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걸 왜 흩뿌렸는데?"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
"당연히 복수하려고 묻혀놨죠."
이예설은 당당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나중에라도 구출되면 당신네들을 찾아서 일일히 잡아죽이려고 묻혀놨어요."
".....이거 무서운 년일세."
선우는 황당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어째서 추종향을 묻혔는지는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런 사실을 밝히는 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왜 밝히는 거지?"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사실을 밝혀봤자 더욱더 경계받고 의심받을 것이 뻔할텐데
어찌 이런 사실을 밝힌다는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약없는 복수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좀더 나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선우의 물음에 이예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거래?"
선우는 의아한듯 되물었다.
"네, 거래요."
이예설은 도발적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거래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의 도발적인 웃음을 본 선우는 의문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그냥 명령하면 되잖아. 안내해라고 말이야."
"무상으로 도우라는 건가요?"
"맞아. 네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거래라는 것은 동등한 입장이 됐을 때 하는게 거래야. 말좀 섞어주니까 나랑 동급으로 보여? 그런거야?"
선우는 비웃음이 섞인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뭐, 동의는 해요. 확실히 거래라는 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선우의 말을 들은 이예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서 당신이 간과한게 있어요."
이예설은 눈을 반짝이며 선우에게 말하였다.
"그게 뭐지?"
"당신이 지금 무척이나 아쉬운 상황이라는 것을요."
"아쉽다고 내가?"
선우는 어이없다는듯이 말을 내뱉었다.
"기억 안나시나요? 일각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말이죠."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순간 머릿속에 기억이 번뜩하고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과거 선우는 요랑을 일각정도 방치해둔 적이 있었다.
돈을 쥐어준 뒤 요랑을 홀로 객잔에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척이나 끔찍하였다.
용봉지회의 후기지수들은 물론 그들 뒤에 있는 문파들과 척을 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점이라고 불리우는 화경 상경의 고수인 황보강과 주소양과는 직접 싸우기까지 하였다.
다행히 이길수는 있었지만 만약 중간에 음양마를 만나 건곤대나이를 배우는 행운을 얻지 못했더라면 죽음을 면치 못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고작 일각의 실수만으로 목숨이 왔다갔다한 것이다.
선우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지기 시작하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새삼 인지한 까닭이었다.
저번에는 다행히 황보강과 주소양이었지만 이번에는 이재원이나 천마를 끌고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여자를 밝히는 이재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요랑은 절색의 미모를 타고났으니까 말이다.
"야"
선우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이예설을 불렀다.
"왜 그러시나요?"
"안내해."
"그럼 저랑 거래를 해주시는 건가요?"
"아니 이거 명령이야. 뒤지기 싫으면 안내해."
"저 못 죽이잖아요."
이예설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를 죽이면 아버지가 오실텐데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침묵을 하였다.
현경의 경지에 오른 그였지만 아직은 이재원이 무서웠다.
공령지체를 완성하긴 했지만 마음의 검을 세우지 못한 시점에서 그를 맞닥뜨리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똑똑하네."
선우는 이예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뭘요, 항상 듣던 말인데요."
이예설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오줌싸개."
선우는 살벌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혹시 까먹었어?"
"뭘요?"
"작열독말이야."
선우는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 후 독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손바닥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화끈화끈한 열기가 뻗어나갔다.
"이건 저번에 네가 당했던 것보다 열배는 지독한 개량형 작열독이야. 네 어미인 주소양도 이놈한테 당하고 오줌을 지렸지."
선우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거 당해볼래?"
"아니요?"
"그럼 안내하는게 어때?"
"싫은데요?"
"말장난 하자는 거야?"
선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말장난이 아니에요. 작열독에 당하기도 싫고 안내하기도 싫어요."
"안돼, 둘 중 하나를 골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임의로 골라주지."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거래를 하는 거에요."
"지랄하고 있네. 일로와 독으로 지져버릴라니까."
선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도저히 타협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잘 생각하셔야할걸요?"
이예설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제가 작열독에 당해서 기절한다면 어떻게 하죠? 그리고 깨고 나서도 굴복하지 않는다면요? 시간이 지체될텐데요?"
"괜찮아. 너는 분명 기절 직전에 굴복할테니까."
"그건 가정이잖아요. 만약 작열독을 맞다가 제가 백치가 되버리면 어떻게 할건가요? 제정신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리면요? 저와 실랑이를 버리는 사이 어마어마한 사고가 일어나면요?"
이예설은 필사적으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선우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작열독은 변수가 많긴 하였다.
누군가를 조종하는 최면술같은게 아니라 철저히 고통을 주어 공포심으로 조종하는 것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에 미쳐버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였다.
이예설과 주소양의 경우 운이 좋아 미치기 직전에서 멈출 수 있었지만 만약 잘못될 경우 완전히 백치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예설은 그런 그를 불안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