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화 〉 375.요랑, 사직서를 제출하다.
"끝났다!"
요랑은 품에 안은 서류더미들을 허공 위로 던지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는 지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간 쌓였던 모든 서류들을 사흘밤을 꼴딱 새고 해치워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슴속에 상당히 벅찬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엄청난 성취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초월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는 요랑이라하더라도 사흘밤낮을 세며 꾸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행위였다.
체력과 마찬가지로 정신력 또한 닳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자신이 해낸 것이다.
어찌 성취감이 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잘거야! 아무도 말리지마! '
그녀는 생각하였다.
이제 스스로에게 휴식을 줄 때가 됐다고 말이다.
월봉 협상에 들어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이어간 그녀였다.
돈을 받는 만큼 더욱더 책임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가던 일들이 드디어 끝났다.
이제 며칠은 놀아도 될 것이다.
요랑은 스스로의 대견함에 감탄하였다.
분명 선우가 당가에 있었다면 잘했다며 마구 쓰다듬어줄 것이다.
'.......근데 선우가 없네'
요랑은 육개월이 다되었음에도 감감무소식인 선우를 생각하며 아쉬움을 느꼈다.
있을 때는 항상 괴롭힘을 당하긴 하였지만 없으니까 허전하였다.
그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금방오겠지.'
드르륵
생각을 마친 요랑은 책상에 있는 서랍장을 열었다.
그곳에는 종이로 싸여져 있는 당과가 몇 개 있었다.
요랑은 그중 하나를 꺼내들고 그대로 핥기 시작하였다.
할짝 할짝
"크흐으으으"
당과를 핥은 요랑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혀에 퍼져나가는 달콤함에 상당한 쾌락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삶이 고단하니까 당과가 달구나."
요랑은 생각하였다.
삶이 고단하니까 당과가 달다고 말이다.
할짝 할짝
그렇게 당과를 핥던 요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가 없으니 당대부인에게 찾아가 쓰다듬어달라고 할 심산이었다.
쿵 쿵
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요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각주님, 저 당감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지마! 바빠!"
순간 불안감을 느낀 요랑은 재빨리 거짓말을 하였다.
"정말 급한 일입니다. 잠시도 안되겠습니까?"
당감은 간곡히 부탁을 하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말해!"
"이게...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일이라.."
당감은 난처한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
할짝 할짝
그 말을 들은 요랑은 당과를 핥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걸 들여보낼까 말까하는 고민에 말이다.
"알았어....들어와."
요랑은 그의 출입을 허가하면서 빌고 또 빌었다.
부디 별일이 아니기를 말이다.
"각주님, 이건 이번 분기 결산 서류입니다!"
탕
당삼은 거대한 서류뭉치를 들고 오더니 그대로 요랑의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서류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살짝 내려놨을 뿐인데도 상당한 진동음이 퍼져나갔다.
할짝 할짝
".........."
당과를 핥고 있던 요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발 별일이 아니길 바랬건만 아무래도 하늘은 자신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는듯 하였다.
"야."
요랑은 당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죽을래?"
"왜..왜그러십니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백마디 말보다 서류 뭉치 한 번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이런 나쁜!"
요랑은 언성을 높이며 고함을 내질렀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류가져왔다고 하면 문을 열어주시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거짓말을 하면 안되지!"
"거짓말이 아닙니다!"
"어쭈? 너 좀 기어오른다? 확 잡아먹어버릴까보다!"
요랑은 살벌한 언행으로 당감을 협박하였다.
"살려주십시오. 각주님. 비상사태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
당감은 비굴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라고 요랑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당가에 있는 그 누구보다 요랑의 고충을 잘아는 이가 바로 그였다.
매번 그녀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그였으니 말이다.
"이번 분기 결산부터는 다른 애들이 계산하기로 했잖아!"
요랑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분명 이번 분기 결산부터는 새로 들어온 재경각의 신입들 선에서 처리하기로 합의된 상태였다.
그런데 별안간 왜 자신에게 이번 분기 결산 서류를 가지고 온다는 말인가
"그만뒀습니다."
"아니 그걸 왜그만둬? 수당이 그렇게 좋은데?"
요랑은 이해가 안된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인력충원에 상당한 금액을 쏟아부은 당가였다.
다른 업종에 비해 두배가 넘는 월봉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도망을 간다는 말인가
"죽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죽긴 왜 죽어!"
"재경각에 들어온 후 이틀에 한번 꼴로 야근시켰더니 그 말을 내뱉더군요."
"그럼 하루는 쉬었다는 거잖아! 뭘 그런 걸로 죽는 소리를 내는거야! 나는 사흘에 한 번잔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
"망할, 이래서 책상물림하면서 곱게 자란 것들이 문제야! 근성이 없잖아! 근성이! 밥도주고 야근 수당에다 일하다 사망하면 사망배상금까지 물어주는 곳을 왜 마다하는 거야!"
요랑은 발끈하며 근성없는 요즘 것들을 탓하기 시작하였다.
"............."
그녀의 말을 들은 당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어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화가 잔뜩 난 그녀의 성질을 돋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다해야한다는 거야?"
요랑은 확인하듯 당감에게 물었다.
"그렇지요?"
"네가 하면 되잖아?"
"각주님, 이거 남아있는 재경각원들이랑 정확히 육등분으로나눈 것입니다."
"아니 스무명을 넘게 뽑았는데 여섯명 밖에 안남은거야?!"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요랑의 말을 들은 당삼은 안타까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짜증나!"
쾅 쾅 쾅 쾅
화가 잔뜩 난 요랑은 책상을 거칠게 내려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화가 잔뜩 났다.
신입들의 집단 탈주로 인해 자신이 맡은 업무량이 가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이제 쉬려고 했는데!'
요랑은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이제는 쉬려고 하였다.
사흘밤낮을 샌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말이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신입들의 탈주가 자신의 안식을 방해하였다.
와락
요랑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하였다.
과연 당가에 있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행복일까라는 생각이 말이다.
당가에는 선우가 없었다.
친근한 이들이 있긴 했지만 업무가 바빠 좀처럼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가에 머무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곳에 살면서 당대부인이나 금적화, 당서윤은 가끔 만나러와도 되지 않을까?'
요랑은 생각하였다.
한적한 곳에 보금자리를 잡은 뒤 가끔씩 놀러오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말이다.
당가에서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월봉을 지급해준다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돈이란 것은 소비를 함으로서 행복을 느끼는 것인데 당가에서의 과중된 업무는 자신에게 돈을 소비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 말이다.
모인 돈은 처소 안에 차곡 차곡 쌓이면서 방을 장식할 뿐 실질적인 재미를 주진 못하였다.
애초에 돈이 있어도 간식을 사먹는데 다쓰는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더이상의 돈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몇 달간 구르면서 당과를 매일 먹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어놓은 상태였다.
그런 자신에게 돈이 의미 있을리가 없었다.
'떠나자.'
요랑은 생각하였다.
이대로 떠나자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떄문이었다.
털썩
요랑은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드르르륵
그다음 서랍장을 열더니 그 안에서 들어있던 종이 한장을 꺼내들었다.
쓱 쓱 쓱
그리고 붓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쓱쓱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사직서辭職書
재경각주, 요랑은 오늘부로 사직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종종 놀러올게요.
대충 글을 적어내린 요랑은 사직서를 그대로 당감에게 던져버렸다.
"각주님!? 이게 뭡니까?"
"사직서야."
"사직서요!?"
당감은 놀란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난데없이 사직이라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응, 오늘부로 퇴사할거니까 말리지마. 재경각주는 너하게 해줄게!"
요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안됩니다!"
요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당감은 다급한 표정으로 그녀를 말렸다.
"안되긴 뭐가 안되?"
"각주님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각주님 제발 재고해주십시오."
당감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렸다.
지금 재경각 입장에서 요랑은 절대 놓쳐선 안될 인물이었다.
사흘밤낮을 밤새워도 멀쩡한 체력과 한치의 오차도 허락치않는 뛰어난 계산력과 어떤 서류든 단박에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까지
그녀는 모든 것이 완벽하였다.
가히 내정업무를 하기위해 내려진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
"너는 승진하고 나는 자유를 찾는거잖아! 얼마나 행복한 결말이야!"
요랑은 자신을 붙잡는 당감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하나도 안기쁩니다! 재경각주가 되느니 저도 관둬버릴 겁니다!"
"그럼 너도 이참에 관둬!"
요랑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당감을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다시금 재고해주십시오! 제가 삼부인께 월봉을 더올려달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월봉 인상따위는 필요없어! 나는 지금 행복을 찾아떠나는 거야! 그러니까 말리지마!"
"절대 안됩니다!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됩니다!"
당감은 단호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요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의 의지가 내비치고 있었다.
"그래? 그럼 흙을 넣으면 되겠네?"
그의 말을 들은 요랑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꽈악
요랑은 그대로 당감의 머리채를 잡았다.
"아야야야야야야 각주님! 아픕니다!"
질질
그리고 그대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하였다.
쾅
이내 관상용으로 장식해둔 화분에 다가간 요랑은 그대로 당감의 얼굴을 처박아버렸다.
"커억...각주님!"
당감은 얼굴 가득 느껴지는 흙의 거친 감촉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쾅
"이정도면 돼?"
쾅
"아직도 부족해?"
쾅
요랑은 몇번이고 당감의 얼굴을 흙속에 처박아버렸다.
"충분합니다! 충분히 흙이 들어갔습니다!"
몇번이고 흙속에 처박힌 당감은 다급히 소리를 내질렀다.
"부족한거 같은데?"
당감의 머리채를 들어올린 요랑은 의심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충분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래? 그럼 내 사직서 전달해줄거지?"
"............."
그녀의 말을 들은 당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흙이 부족했나보네."
요랑은 짓궂은 표정을 지은채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바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당감은 재빨리 도리질치며 답을 하였다.
만약 여기서 답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머리가 흙속에 처박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의 대답을 들은 요랑은 마음에 든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머리채를 놓아주었다.
'후우'
당감은 머리를 쥐어잡고 있던 압력이 사라지자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다시금 흙에 처박힐 위기에서는 벗어난듯했기 때문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당감의 머리채를 놓아준 요랑은 그대로 책상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그리고 서랍장을 열고는 안에 있던 모든 당과들을 품안에 넣기 시작하였다.
이내 모든 당과를 챙긴 그녀는 뒤를 돌아 당감을 보았다.
"그럼 나는 간다."
말을 마친 그녀는 성큼 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각주님!"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당감이 재빨리 언성을 높였다.
"왜? 또 흙 먹고 싶어?"
그의 물음을 들은 요랑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아닙니다! 어디 가시는지 여쭤볼까 싶어서..."
요랑의 살벌한 말을 들은 당감은 당혹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어디라....어디로 간다라.."
그의 말을 들은 요랑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었다.
떠나기로 하였지만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은 그녀였다.
"어디든 이곳보단 낫겠지."
이내 결론을 내린 요랑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당삼은 당황스러운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갈지 결정하지도 않고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이제 진짜로 간다. 또 부르면 이번에는 머리 전체를 파묻어버릴거야."
말을 마친 요랑은 그대로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물론 자꾸만 자신을 귀찮게 하는 당감에 대한 경고도 잊지않은 채 말이다.
"..........."
당감은 무어라 더 물어보려고 하였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협박에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이내 요랑은 집무실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버렸다.
당감은 그런 요랑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삼부인에게 깨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