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화 〉 368. 북해를 떠나다.
"이것도 실을까요?"
"전부 실어."
연맹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짐을 실기 시작하였다.
다시금 사천으로 떠나기 위해서 였다.
"하하하하 드디어 사천으로 가는구나."
연맹 무사 중 하나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도 좋습니까?"
옆에 있던 다른 무사가 말을 받았다.
"아무렴 토끼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지 않는가?"
"혹시 모르지요. 여우같은 마누라가 엄한 놈과 배를 맞추고 있을지도."
"예끼! 이사람아!"
"하하하하 농입니다."
연맹 무사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피어나 있었다.
무려 한달여만에 출장이었다.
모두 들뜬 기색이 가득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화색의 빛이 피어오른 것은 아니었다.
기뻐하는 이가 있는 반면 슬픔에 적셔져 있는 이 또한 존재하였다.
바로 북궁연 말이다.
꼬옥
북궁연은 선우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이대로 보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아."
선우는 그런 북궁연을 조심스레 불렀다.
"........."
하지만 그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북궁연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선우는 그런 북궁연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꼬옥
선우는 천천히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내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온몸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안가면 안되요?"
북궁연은 무척이나 서글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갈 수는 없어."
......저도 알아요..아는데...자꾸..보내기 싫은 마음이 치솟아요."
북궁연은 슬픔이 잠긴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꾸만...자꾸만..욕심이 생겨요...선우와 이대로 영영 북해에서 살고싶다는 욕심이 말이에요."
".....미안해."
선우는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선우 또한 임신한 북궁연을 놔두고 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사천에는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을 도저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왜 선우가 미안해요..제 잘못인데.."
"...아니야...네 잘못이 아니야..."
선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가면...언제쯤..볼 수 있을까요?"
북궁연은 서글픈 눈동자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년 안에 꼭 다시 돌아올게."
"...정말요?"
북궁연은 그렁그렁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말이고 말고. 내 아이인데,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제일 먼저 안아줘야지."
"...기뻐요."
북궁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선우는 그런 그녀를 더욱 다정하게 안아들었다.
둘은 따뜻하게 체온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입을 맟춘뒤 천천히 타액을 교환하기 시작하였다.
뜨겁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흐음"
그리고 능소화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무척이나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화나요?"
그때 옆에 있던 설향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화가 난다기보단 솔직히 불편하다."
"그런것치곤 조용하시네요?"
"북궁연의 이별이 아닌가? 어찌 본녀가 그런 것을 망칠 수 있겠는가? 비록 마음에 드는 여자는 아니지만 이별의 순간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우웃, 능 언니는 생각보다 어른스러우시네요?"
"생각보다라니? 그럼 지금껏 본녀를 유치하다고 여긴 것이더냐?"
능소화는 충격받은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그런 거 겠죠?"
설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엄하다! 아무래도 그대에게는 본녀의 위엄을 살려야겠다!"
"에이, 언니동생하기로 약조했잖아요?"
"하지만 그대는 가끔 그 사실을 악용하는듯하다!"
"착각이에요. 착각. 화내지 말아요. 당과라도 드릴까요?"
"어린애 취급하지 말거라!"
능소화와 설향은 티격태격하며 입씨름을 이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선우는 북궁연과 다시금 작별을 고하였고 연맹의 무사들과 함께 북해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북궁연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슬픈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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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마차가 눈길을 헤치며 거칠게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착찹한 눈빛으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눈에 봐도 슬픔이 짙게 배어나오는 모습이었다.
"오라버니"
그때 앞편에 있던 설향이 그를 불렀다.
"......응"
선우는 기운이 없이 답하였다.
"어딜 그렇게 멍하니 보고 계세요."
"그냥...밖이 보고 싶네.."
선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답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설향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임신한 정인을 두고 떠난 선우의 심정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마세요. 언니는 잘 버틸거예요."
"하지만....임신하면 이것저것 수발들 사람이 필요하잖아..."
선우는 걱정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 언니는 빙궁주예요. 수발 들 사람은 널렸다구요."
설향은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북해의 지배자라는 그녀가 어디 수발 들 사람이 없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는 그녀였다.
그런데 어찌 저런 걱정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 뿐 아니야."
"또 뭐가 걱정 되는데요?"
"산모는 이것저것 좋은 걸 많이 먹어야하는데 북해에는 자원이 부족하잖아....배라도 곪으면 어떡해?"
"오라버니는 북해빙궁이 무슨 빈민촌인줄 아시나요? 북해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 바로 북해빙궁이에요. 그런 걱정할 필요는 없다구요. 그리고 만일 최악의 상황이 온다해도 연언니가 굶는 일따윈 없을거예요. 늑대라도 잡아먹을걸요?"
"그렇긴 한데.......그래도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미안하네..게다가 다시 되돌아가는데도 반년은 걸릴것 아니야? "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마음이 한쪽이 자꾸 시큰거리네..맥힌것처럼 말이야."
선우는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설향의 끝없는 설득에도 선우는 좀처럼 걱정을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끊임없는 불안감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적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사천에 돌아가야한다는 마음과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북해에 남아야한다는 갈등이 충돌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아."
선우는 다시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우."
그때 귓가에 능소화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응?"
선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포옥
이내 따뜻한 감촉이 얼굴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쓰담 쓰담
그리고 머리에서 능소화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불안해말거라."
능소화는 가슴에 안긴 선우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북궁연은 누구보다 강한 여자이다. 그대가 그렇게 걱정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는 말이다."
능소화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비록 성격적인 차이와 선우라는 정인을 공통으로 둔탓에 앙숙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이가 나빴지만 내심 북궁연에 대한 인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가 아는 북궁연은 강하였다.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여자보다 말이다.
그 사실을 선우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오히려 북궁연이 그대를 걱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대는 너무나 연약하니 말이다."
".............."
능소화의 말을 들은 선우는 안심이 되면서도 무언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뒷말은 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하고 말이다.
"그러니 걱정말거라. 본녀가 보기엔 그대의 걱정은 너무나도 쓸데없는 걱정이다. 작디 작은 개미가 거대한 황소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 같구나."
".........."
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순식간에 하찮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걱정할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재빨리 현경에 올라야겠다고 말이다.
"...고마워."
능소화의 품에 안긴 선우는 고마움을 표하였다.
의도치 않게 자존심에 금이 가긴 했지만 그녀만의 위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자신에 대한 애정어린 걱정이 아니겠는가
"아니다. 본녀는 느낀바를 말할 뿐이다."
선우의 감사에 능소화는 손사래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입가에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더욱더 부드럽게 선우의 머릿결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그 감촉이 나쁘지 않은 것인지
얌전히 그녀의 품에 안겨 그 감촉을 즐겼다.
"저기요."
그때 귓가에 설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건가요?"
그녀는 이죽거리듯 말을 이었다.
"본녀가 성에 찰 때까지다."
능소화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언제 성에 차는데요?"
"그건 알 수 없다. 아마 해가 떨어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종일 그러고 있겠다는 거잖아요!"
설향은 언성을 높이며 딴지를 걸었다.
저런 닭살 어린 애정행각을 계속 보고 싶은 의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쯧"
설향은 혀를 찼다.
"소화야..이제 그만.."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부드럽게 능소화에게 말하였다.
"선우! 설향의 불만 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질투하는 것이다!"
"신경 좀 쓰세요!"
설향은 발끈하듯 언성을 높였다.
이내 선우는 능소화를 부드럽게 밀어낸 후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우우...설향, 그대는 질투가 심하다."
그녀는 설향에게 탓하는듯한 눈빛을 쏘아냈다.
물론 그 눈빛을 마주한 설향은 비웃듯이 미소를 흘렸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오라버니"
설향이 선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런데 어떻게 하실거에요?"
"뭘?"
"능 언니에 관한 거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한테 소개부터 해야겠지?"
"당가주께서 가만히 계실까요? 따지고보면 여동생을 뻥차버리고 더 좋은 조건의 여인을 취하신 거잖아요?"
"그 말 취소하거라! 선우는 본녀의 조건을 보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본녀를 사랑해서 만나는 것이란 말이다!"
설향의 말을 들은 능소화가 발끈하며 끼어들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야 실상을 아니까 이해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봉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구요. 더구나 연 언니마저 임신시켰잖아요? 누가봐도 난봉꾼 아닌가요? "
"..........."
설향의 신랄한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은 괜찮을 거야."
선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요? 당가주라면 분명 칠공에서 피를 토하게 만들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해심이 좁은 분이 아니야. 분명 나를 이해해줄거야."
선우는 확신에 찬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는 자신있었다.
애초에 자신이 당가주고 당가주가 자신인데 이해하고 말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냥 넘기면 될 일이었다.
"그럼 당 여협은요?"
"........."
그녀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서윤이 한소리 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혼낼 것이다.
당가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이다.
"..감당해야겠지?"
선우는 자신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말거라! 본녀가 직접 가서 설득하겠노라!"
"그런데 언니."
설향은 궁금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근데 황실로 안돌아가도 되요?"
".............."
그녀의 말을 들은 능소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돌아가는 편이 맞았다.
이연의 부재에 대해 황실에 알려야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황실을 지켜야하였다.
이연의 공백을 틈타 쳐들어올지도 모를 암중의 세력들을 대비하여 말이다.
"사천에 들려 인사만 하고 곧바로 갈 것이다. 너무 걱정말거라."
"아니, 딱히 걱정이 되는 건 아니긴 한데, 황실을 수호하신다는 분이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도 되나 싶어서요."
"그 또한 걱정안해도 된다. 주화입마때문에 원래부터 그리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황제께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시고 호위 병력을 늘렸다."
능소화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합리화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없어도 황실은 무사할 것이라고 말이다.
"너무 태평한거 아닌가요?"
"괜찮다. 아직 황실에서는 이연의 역모에 대해 모른다. 그 소식이 퍼지기 전에 도착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능소화는 태연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그리 큰 위기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니."
설향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오라버니와 헤어지기 싫으세요?"
".....그런것이 아니다! 본녀는 그저 그대가 말한 제대로 된 절차를 밟고 싶은 것 뿐이다!"
"약혼자 강탈 선언이요?"
"그렇게 말하지 말거라!"
능소화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설향은 짓궂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선우는 그저 또 다른 인연을 알게 된 것뿐이다!"
"아쉽네요. 원래 있던 인연들이 슬퍼할테니까요."
"어찌 말을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제가 뭘요?"
설향은 모르겠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이내 마차 안은 두 여인의 말다툼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우는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두 여인이 티격태격하는 광경을 보니 처음 빙궁으로 향하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루하진 않겠네.'
그리고 생각하였다.
되돌아가는 여행길 또한 심심하진 않겠다고 말이다.
이내 선우는 턱을 괸 채 가만히 그녀들의 싸움을 얌전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