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화 〉 367.크나큰 행복.
"클클클, 그래서 누구인가?"
운적자는 지붕에서 선우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물음에 선우는 모르겠다는듯이 시치미를 뚝 떼었다.
떠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장 대협. 연륜을 무시치 말게나. 이 나이에 이르면 보기 싫은 것도 보이게 되는 법이라네."
"예를 들면요?"
"시도때도 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대들의 모습이지."
운적자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화아아아악
".........보셨습니까?"
운적자의 짓궂은 대답을 들은 선우는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다.
그간 벌였던 애정행각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움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본것은 아닐세. 그저 느꼈을 뿐이지."
"............"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숨긴다고 숨겼것만 결국 들켜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자네도 참 난봉꾼이로구만. 사천제일미라고 불리우는 당서윤을 두고 바람 필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할 말이 없습니다."
선우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뭐, 탓하는 것은 그녀일테니 , 나까지 탓할 필요는 없겠지."
운적자는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아, 이제 말해보게나."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가 속에서 앓고 있는 고민을 말일세."
"............"
"이미 알만큼 아는 내가 아닌가? 숨기지 말게나. 비밀을 철저히 지켜줄터이니."
운적자는 재밌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정말 입니까?"
"정말이고 말고 내 원시천존께 맹세하겠네."
"후우.......알겠습니다."
운적자의 단호한 끈질긴 물음에 선우는 포기했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미 알건 다아는 것도 같고 원시천존에게 맹세까지 하니 뭔가 신뢰가 갔다.
답답한 속내를 어느정도 털어놔도 될 것 같다는 신뢰가 말이다.
"일단 올라오게나."
운적자는 지붕을 탁탁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 날엔 달을 안주삼아 한 잔 걸치면서 허심탄회 속풀이를 하는 걸세."
"하아"
선우는 태평한 운적자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세상 진지한데 느긋한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부웅
이내 선우는 운적자가 있는 지붕을 향해 날아들었다.
타탁
털썩
그리고 지붕에 착지한 선우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아, 일단 한 잔 받게나."
자리에 앉으니 옆에 있던 운적자가 술 잔을 건네었다.
"언제 챙겨온 겁니까?"
"오늘은 왠지 객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운적자는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잔을 받았다.
꽤나 나쁘지 않을 속풀이가 될 것 같았다.
***********
"거참, 대단하구만...설마하니 군주와 빙궁주를 동시에 꼬시다니 말이야."
운적자는 놀란듯 되물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신선함이 느껴졌다.
"하하하하...다 잘난 제 잘못이지요."
선우는 취기가 오른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주독을 배출하지 않고 넙죽 넙죽 받아먹다보니 어느새 취기가 오른 모양이었다.
"이런 자네는 술을 먹으면 재수가 없어지는구만."
그 모습을 본 운적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하하 너무 잘나면 재수가 없긴 하죠."
"기분이 좋아 보이는 구만."
"어찌 안좋을 수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달, 독한 술, 그리고 술을 나눌 벗까지 완벽하지 않습니까?"
선우는 취기로 인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거 참 다행이구만."
그 모습을 본 운적자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고민을 토로해보게나."
"............"
"술잔을 나눈지 꽤나 흘렀건만 자네는 딴말만 하는구만."
".......그랬습니까?"
"그랬다네.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나 회피만 하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네."
"...........크흐...역시 도사님입니다. 속을 그렇게 훤히 들여다보고 말입니다."
"자네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심란해하고 있어서 그렇다네."
"............"
운적자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해보게나. 내 수양이 낮지 않아. 무슨 말을 하든 태연하게 반응해주겠네."
"운적자."
그리고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북궁연이 임신을 하였습니다."
"뭐...뭐라!?"
선우의 말을 들은 운적자는 놀란듯 되물었다.
수색대가 빙궁에 도착한 것은 고작 한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혼인도 안한 처자가 한달만에 임신을 한다는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가!?"
운적자는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선우에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든 태연하게 반응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양이 부족한가 보네. 그것보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운적자의 물음을 들은 선우는 얼굴을 슬쩍 붉혔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왜 한숨을 뻑뻑 내뱉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만 하하하하하"
운적자는 알겠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나오십니까?"
"내 일이 아니지 않나?"
"............."
"농일세."
운적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참으로 재미없는 농입니다."
"끌끌, 이러다 한대 맞겠구만."
"잘하면 칠지도 모릅니다."
"봐주게나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다네."
운적자는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쨌든 그런 문제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도 같구만."
"운적 도장께서요?"
선우는 불신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 그런 불신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겐가?"
"운적자는 애는 커녕 여자 손 한번 잡아본적 없지 않습니까?"
선우는 어이없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애는 커녕 여자 손 한번 잡아본적 없는 도사가 무슨 조언을 한다는 말인가
"허허허 것 참 자네는 너무 직설적이구만. 상처 받을 뻔했다네."
운적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좀 받으셔도 됩니다."
"내 비록 총각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인생 상담은 무척이나 탁월한 이라네."
"대체 그건 무슨 근거입니까?"
선우는 의아한듯 물었다.
"이런 종류의 상담을 꽤나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이랄세."
"네?"
"청성에도 애아빠가 수두룩하거든."
"아."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이내 청성이 연애나 혼인이 자유로운 꽤나 세속적인 도문이라는 것을 상기하였다.
그의 말 그대로 애아빠도 심심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모두 처음에는 자네처럼 불안과 걱정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내게 방문했다네. "
"방문 후에는 눈빛이 나아졌습니까?"
"아니,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되어 보이더군."
"그럼 상담을 잘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순리를 어찌 말 몇마디로 바꿀 수 있겠는가?"
"순리요?"
선우는 의아한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자네처럼 걱정을 하게 된다네. 과연 스스로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아버지로서 준비가 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지."
"............."
"자네만의 고민이 아닐세. 누구나 하는 고민이지. 아쉽게도 내게 그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네. 끊임없이 궁구하고 또 궁구해야하거든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비가 될 수 있을지 말일세."
"......그런겁니까?"
"그렇지, 아마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훗날 자네의 자식이 크게 되었을 때 알 수 있게 될 걸세. 자네가 과연 자식에게 어떤 아비였는지 말일세."
"....그렇군요."
선우는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말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기로 소문난 이라네. 내가 보기엔 자네는 분명 훌륭한 아비가 될 걸세."
운적자는 확신하다는듯이 말을 이었다.
"그거 신빙성 있는 것 맞습니까?"
"아무렴 나만 믿게나."
운적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잔이나 받으시지요."
선우는 피식 웃으며 술을 들어올렸다.
해결은 되지 않은듯하지만 뭔가 털어놓고 보니 후련함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고맙구만."
운적자는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빙궁주에겐 고맙다는 말은 했는가?"
"고맙다는 말, 말씀입니까?"
선우는 당혹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아무런 말도 안한겐가?"
운적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선우에게 되물었다.
"그저 안아주고 토닥여줬습니다."
"쯧쯧, 여자는 그리 잘꼬시는 이가 어찌 그렇게 여심을 모른다는 말인가"
"네?"
"지금 당장가게나."
"어딜 말씀입니까?"
"어디긴 빙궁주가 기거하고 있는 곳이지. 당장 가서 사랑한다고 고맙다고하면서 안아주게나."
"그건 밤이 늦었으니 내일......"
"당장 가게나! 자네의 씨앗을 품어준 여인을 어찌 그리 홀대한다는 말인가! 당장 가게나!"
운적자는 선우를 쫓아내듯 손을 재빨리 흔들었다.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그대로 지붕 밑으로 내려가버렸다.
설마하니 이렇게 갑작스러운 축객령을 내릴지는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백번 잘해도 한 번 못해주면 욕먹는게 사람일세! 특히 기쁠 때 기뻐해주지 않는다면 평생을 욕먹게 될걸세. 어서 가게나!"
운적자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선우는 그런 운적자를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북궁연을 찾아가야할 것 같았다.
**********
쓰담 쓰담
"헤헤헤헤...아가...아가...내 아가.."
북궁연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배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이 뱃속 안에 자신과 선우의 아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행복함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실감이 되지도 않았다.
이십팔년 동안 홀몸으로 살았던 자신에게 별안간 아이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남자와 관계를 한지 고작 한달 정도밖에 안된 시점에서 말이다.
"헤헤헤헤.."
북궁연은 웃음을 흘렸다.
가족이 생긴 것이다.
자신의 핏줄을 이은
정인의 핏줄을 이은
하나 밖에 없는 북해빙궁의 후계자가 말이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아...행복해.."
북궁연은 생각하였다.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똑 똑
그때 귓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북궁연은 얼굴을 슬쩍 붉히며 말을 이었다.
끼이이익
이내 문이 열리고 선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누구인지 묻지도 않는거야?"
".....이렇게 야심한 밤에 찾아올 사람은 선우밖에 없어."
북궁연은 몸을 배배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물어봐. 혹시 모르잖아."
"후후후후"
"왜 웃어?"
"걱정해주는게 귀여워서."
북궁연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
그 미소를 본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짓궂은 반응에 뻘쭘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긴 누가 누구를 걱정해.'
선우는 생각하였다.
아무래도 기를 살리기 위해선 현경에 오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뭔가 수련 욕구가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나저나 왜 왔어?"
북궁연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배가 불러오기 전에 다시금 사랑을 나눌 생각이야?"
"..........."
"미안하지만 거절이야. 선우 네 자지는 너무 커서 아기한테 닿고 말거야. 아기한테 고통을 주고 싶진 않아."
북궁연은 고개를 도리질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정 원한다면 입으로 해줄 수는 있어. 밑보지 못지 않게 입보지도 조임이 강해."
북궁연은 음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연아."
선우는 그런 북궁연은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응.? 뭐가 입으로 해준다고 해서?"
"그거 말고."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아이를 가져줘서."
"............."
북궁연은 선우의 갑작스러운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원하듯 임신을 부탁했던 자신이었다.
멀리 떨어진만큼 많이 볼 수 없으니까
결실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전혀 기대치 않았던 말이었다.
고맙다는 말은 말이다.
그저 자신의 억지에 억지로 맞췄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아이를 가져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울컥
감정이 북받쳐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렁 그렁
그와 동시에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다.
항상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은 매번 지켜지지 않는듯하다.
또다시 눈물을 보이니 말이다.
"연아, 사랑해."
선우는 천천히 북궁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천천히 껴안아주었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꽉 말이다.
"흐극...흑..흑...흑..흐흑...흐윽..."
이내 선우의 품속에서 포근함을 느낀 북궁연이 울음을 터트렸다.
도저히 차오르는 행복감을 버텨낼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내가 바로 기뻐해주지 못했지?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너무 당황했었나봐..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해줘야하는 사람이 나인데...그러질 못했어.. 미안해."
북궁연을 꼬옥 안은 선우는 그녀의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였다.
"흐그극....흐윽...아니야...나는..흐흐흑...네가...지금 말해준 것만으로도...흐흐흑..너무..좋아...선우야...너무 좋아...흑흑..사랑해...너무 사랑해."
북궁연은 눈물을 잔뜩 흘리며 선우에게 몇번이고 사랑을 속삭였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아무래도 좀전에 했던 생각은 틀렸다고 말이다.
있었다.
좀전보다 더욱더 크나큰 행복이 말이다.
북궁연의 고운 얼굴은 눈물과 콧물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미소가 지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