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 332.본녀와 척을 질 셈인가?
화르르륵
이연의 혼연이 거대한 불길에 집어삼켜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북궁연은 그 모습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비현실적인 상황이 말이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연의 혼연조차 집어삼킬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길이 어디서 치솟았다는 말인가
이내 북궁연은 불이 뿜어져오는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불길을 뿜어내고 있는 한 여인을 말이다.
타는듯한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
백옥처럼 새햐얀 피부
날이 반듯하게 서있는 오똑한 코
홍시와도 같은 붉은 입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오밀조밀하게 박혀있는 작은 얼굴까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
북궁연은 저 여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능소화."
북궁연은 짤막이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그렇다.
불길을 치솟게 만든 이의 정체는 능소화였던 것이다.
북궁화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바뀌기 시작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북궁연은 이해가 안되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능소화는 분명 내력 한줌 없는 연약한 여인이었다.
손짓 한 번으로 그대로 동사시켜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하디 연약한 여인 말이다.
그런데 어찌 그런 여인이 고작 하루만에 저런 거대한 힘을 가지고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인가
힘이라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수십년 간 고련하고 또 고련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힘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하루만에 말이다.
이해가 될 리 만무하였다.
그렇게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쯤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액
불길에 집어삼켜졌던 혼연이 그대로 불길을 뚫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저 거대하기 짝이 없는 불길로도 중첩되는 혼연의 힘을 감당치는 못한듯 싶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북궁연은 재빨리 설풍을 불러들여 불길을 보조하였다.
그러자 설풍이 불길과 하나가 되더니 이내 어마어마한 화력을 만들어내었다.
화르르르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을 뚫고 나왔던 혼연이 다시금 불길에 집어삼켜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길과 설풍이 잦아들기 시작하였다.
푹
푹
그리고 이내 불길에 집어삼켜졌던 병장기들이 힘을 잃고 하나 둘씩 바닥에 떨어지더니 그대로 꽂혀지기 시작하였다.
소화의 불길과 북궁연의 설풍에 완전히 밀려버린 것이다.
푹 푹 푹 푹 푹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자루의 병장기들이 그대로 땅에 박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연은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그리고 이내 뒤편에서 불길을 거둬들이고 있는 능소화를 바라보았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이연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궁을 나섰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나타나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본녀도 상상도 못하였다. 설마하니 그대가 이렇게 과격한 행동을 할줄은 말이다."
"명을 따를 뿐이지요."
"본녀는 이런 명을 내린 적이 없다만?"
"제게 명을 내리신 분은 폐하입니다."
"이상하구나. 할아버님께서는 그대에게 학살을 명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명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일뿐입니다."
"할아버님께서 그대에게 국경선을 벗어나도 된다고 명하던가?"
"이또한 명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이지요."
"독단이군."
능소화는 차가운 시선으로 이연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을 뿐입니다."
"할아버님이 납득할 것이라고 여기는가?"
"그저 감당할 뿐이지요."
이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 다른 명을 내리겠다. 지금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저들에게 사죄를 하라. 본녀는 더이상 빙정이 필요치 않게 되었고 저들은 본녀의 은인이다."
능소화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쉽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뭐라!?"
"제게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제폐하뿐입니다."
"애초에 빙정을 구하라는 것자체가 본녀를 위한 것이 아니던가!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다는 말인가!"
능소화는 당혹스럽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 사정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그저 내린 명을 수행할 뿐이지요."
이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녕 본녀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능소화는 짐짓 화난듯 언성을 높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요. 군주께서는 제게 명을 내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럴만한 위치에 올라서있지도 않고 말이지요. 오직 폐하만이 저에게 명을 내릴 수 있습니다."
"황족을 능멸하는 것이냐!"
"그저 있는 사실을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이연은 시체처럼 죽어있는 눈으로 능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본녀가 그대를 막는다면 어쩔 속셈이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도 그에 맞춰 대응하는 수밖에."
"본녀에게 창을 들이밀겠다는 것이더냐!?"
때에 따라서는 말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찌 이리도 고집불통처럼 군단 말인가! 지금 그대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른다는 말이더냐!"
능멸이었다.
지금 이연이 하는 짓은 말이다.
그 누구도 황족의 명을 함부로 거역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이연이 대장군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백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이연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들의 사명을 완수시킬 생각입니다."
"실로 추악한 자로다!"
능소화는 화가난듯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어찌 추악하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사명이라는 이름아래 그대의 독단을 정당화시키니 어찌 추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말은 명을 수행하다 죽어간 제 수하들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군주."
"모욕은 그대가 하고 있겠지! 진정으로 그들을 존중한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죽어간 이들에게 사죄를 하라!
"모욕은 군주께서 하고 있습니다. 군인에게는 군인의 법도가 있고 명예가 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어찌 군주께서 멋대로 판단하고 명을 내린다는 말입니까?"
".......그대는 본녀와 척을 질 셈인가?"
능소화는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 윗사람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제 위에는 오직 한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본녀가 그대의 버릇을 고쳐줄 필요가 있을 듯 싶구나."
화르르륵
말을 마친 능소화는 온몸에 불꽃을 치솟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군주."
그 모습을 본 이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
말을 마친 그는 다시금 창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일련의 동작따위는 없었다.
그저 마음을 먹었을 뿐인데도
땅에 박혀있던 수천 개의 병장기들이 다시금 공중에 부유하기 시작하였다.
둥 둥
능소화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호기롭게 말하긴 했지만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불꽃이 순간적으로 밀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혼자선 무리다.'
그녀는 생각하였다.
도저히 혼자선 그의 공격을 감당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능소화는 시선을 슬쩍 돌려 이연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시선이 뒤편에 있는 북궁연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능소화와 북궁연은 짧게 시선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이내 서로 고개를 슬쩍 주억거렸다.
일시적인 동맹이 성립된 것이다.
동맹의 의사를 표한 능소화는 곧바로 극양염황마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였다.
화르르르륵
그러자 어마어마한 열양지기가 치솟더니 그대로 불길로 변환되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대로 손을 뻗어 이연을 향해 쏘아보냈다.
커다란 불길이 그대로 이연을 향해 덮쳐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이연은 곧바로 혼연을 쏟아보냈다.
쇄애애애애애애액
수천 자루의 병장기들은 그대로 능소화의 불길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쾅
이내 두 거대한 기운들이 서로 부딪히더니 대치를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크윽!"
이내 능소화가 신음성을 내뱉었다.
혼연을 집어삼켰던 불길들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극양염황마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였지만 소용 없었다.
내력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낼 수 있는 출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명백히 밀렸다.
출력에서 말이다.
능소화는 불길을 내뿜으면서 슬쩍 북궁연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북궁연의 모습을 말이다.
능소화는 답답함이 일었다.
이리도 밀리고 있는데 어찌 도와주지 않고 관망만 한다는 말인가
쇄애애애액
이내 혼연의 힘이 더욱 중첩되었고 능소화의 불꽃이 더욱더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내 그녀의 답답함이 화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뭐하는 것이더냐! 어서 본녀를 돕거라!"
능소화는 수치심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 말을 들은 북궁연은 이연을 향해 그대로 손을 뻗었다.
솨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이내 그녀의 손에서는 어마어마한 얼음폭풍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쇄애애애애애액
그 기운을 느낀 이연은 재빨리 혼연을 두 갈래로 나눈 뒤 한쪽은 능소화의 불길을 다른 쪽은 북궁연의 얼음폭풍을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앙
이내 북궁연의 얼음폭풍과 혼연이 충돌하더니 굉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세 사람은 한 치 양보도 없는 싸움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이연이 만들어낸 혼연과 능소화와 북궁연의 기운들의 합이 엇비슷하기에 나타난 양상이었다.
누구하나 밀리는 이가 없었다.
"크으윽!"
"하압!"
"흐읍!"
세 사람은 각자 신음성을 내뱉으며 힘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온 세상에는 불과 얼음 그리고 창들이 가득차기 시작하였다.
"허어"
한 편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선우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도저히 끼어들만한 여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늘에는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고 얼음폭풍이 휘날렸으며 수천 자루의 창이 날아들었다.
마치 자연재해가 일어나는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선우는 살짝 박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죽을 똥 살 똥 구르고 굴러 화경 상경에 다다른 그였다.
무림에서 절대자 취급을 받으며 천하제이인자 후보로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지고한 경지에 말이다.
그런데 눈앞의 펼쳐진 광경을 보니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공평함을 느꼈다.
어찌 이십여년 동안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 이들이 자신이 무협지 안으로 들어오니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인가
음모론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의심이 들었다.
무슨 음모가 있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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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애애애애애액
솨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세 사람의 기운들은 여전히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를 이어갔다.
아마 능소화가 참전한 덕분에 균형이 어느정도 맞은듯 싶었다.
'흠'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생각하였다.
이러다간 싸움이 끝도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무언가 해야돼!'
그리고 생각하였다.
균형을 이쪽으로 기울일 수 있는 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이다.
선우는 음양조화신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몸속의 혈류를 가속화하였다.
그러자 혈류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면서 신체능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였다.
'이형환위로 목을 자른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연은 북궁연과 능소화를 신경쓰느라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을 노려야한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처럼
저자가 방심하고 있는 그 틈을 찔러들어갈 것이다.
선우는 끌어모은 내력을 용천혈에 흘려보냈다.
그다음 상체를 활처럼 젖혔다.
그리고 일순간 오른발로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내력을 터트린 후 반발력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쇄애애애애액
그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이연을 향해 그대로 쏘아져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검을 뻗었다.
그대로 이연의 목을 꿰뚫을 심산이었다.
이내 그의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
선우는 승리를 자신하였다.
이연이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의 공격을 인식조차 못한 것이리라
쇄애애액
선우의 검이 그대로 이연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끝이다.'
선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쾅
하지만 아쉽게도 선우의 생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날아든 검이 이연의 목 부근에 멈춰섰기 때문이었다.
'뭐야 시발!?'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잘 날아가던 검이 왜 멈춰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온몸에 어마어마한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혼연창을 맞닿을 때처럼 말이다.
선우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