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 330.일각 지났어.
쇄애애애애애액
수백 자루의 창들이 선우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비튼다'
선우는 이번에도 창들의 흐름을 그대로 비틀어버렸다.
기존과는 다른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쏟아져내리던 창들이 방향을 바꾸더니 서로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창들은 서로 부딪히며 금속음을 터트렸고 부러지고 힘없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선우의 귓가에는 카랑한 금속음들이 쉴새없이 울려퍼져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푹
이내 부러진 창 한 자루가 땅에 박혔다.
푹 푹 푹
그리고 그 창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창들이 땅에 박히기 시작하였다.
'후우'
선우는 쏟아지는 창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의 창들이 완전히 부러져버린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는 수 백자루의 창을 이용한 이기어창以氣馭槍을 시전하진 못할 것이리라
선우는 천천히 시선을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화가 나는구나."
선우의 시선을 느낀 탓일까
이연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하들의 얼이 담겨있는 무기들을 부숴버리다니 말이다."
"유품가지고 장난질 친거였어? 쓰레기새끼네."
선우는 그런 이연에게 말장난을 하며 도발을 하였다.
"장난질이 아니다. 그들이 못다한 사명을 완수시켜줄 뿐이었지."
이연은 담담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그 사명조차 네놈때문에 이룰 수 없게 된듯 하구나."
"개소리하고 있네."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 책임전가를 한다는 말인가
"입이 험하군."
"네가 험하게 만든다고는 생각 안해봤어?"
"전혀"
"그럼 인생을 다시 되돌아봐. 잘못 산듯 싶으니까."
선우는 한껏 비꼬며 말을 이었다.
"아니, 나는 잘못살지 않았다. 옳게 살았고 앞으로도 이리 살아갈 심산이다."
이연은 팔을 쭉 뻗고 손바닥을 쫙 폈다.
부우우웅
그러자 그나마 멀쩡한 창 한자루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텁
이내 창을 잡아챈 이연은 내력을 운용하였다.
우우우우우웅
그러자 회색빛의 기운들이 창끝에 모여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창날을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보거라. 부하들의 얼을 달래주려고 하지 않느냐?"
이연은 창을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오싹
그 모습을 본 선우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섬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만해도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던 선우였다.
저자의 창속에 담겨있는 기운이 아무리 강맹하다해도 맞받아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는 건곤대나이라는 희대 신공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싹함을 넘어 섬뜩함마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내 선우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회색빛의 창날에는 그의 깨달음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경에 다다른 깨달음이 말이다.
꿀꺽
선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눈에는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얼을 달랜다는게 창날을 회색으로 물들이는 건가? 지옥에 있는 부하들이 보면 통곡을 하겠구만"
선우는 긴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그에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아니, 단순히 색을 물들인 것이 아니다."
선우의 말을 들은 이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 창날에는 부하들의 영혼이 담겨 있다."
"미친놈. 정신에 문제라도 있어?"
"정신은 멀쩡하다. 오히려 더욱더 청명한 느낌이 드는구나."
이연의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쟁터에서 태어나 오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오직 전쟁만을 위해 살아왔다."
이연은 창을 선우에게 겨누며 말을 이었다.
"전쟁은 내게 모든 것을 앗아갔지. 친구도 연인도 동료도 심지어 내 인생조차도 말이다."
창날에 깃든 회색 빛이 더욱더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전쟁터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 오직 그 사명만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려왔다. 오십여년이라는 세월동안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이연의 창에서 창명槍鳴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문뜩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살아남은 자들이 사명을 완수했다는 명예와 높은 직위를 얻게 된 것과는 반대로 이미 전쟁터에서 죽어버린 자들에게 명예는 물론 존재조차 잊혀진다는 사실이 말이야."
이연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불공평하더군. 오직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버렸던 이들이 그렇게 잊혀진다는 사실과 사명을 완수했다는 명예마저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래서 생각을 해봤지 죽은 자들 또한 명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말이야."
이연은 열망에 찬 눈빛으로 창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을 수 있게 되었지. 이미 죽어버린 자들조차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아주 멋진 방법을 말이야."
이연은 흥분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무릇 생전 사용하던 병장기에는 주인의 혼이 깃든다고 하지. 난 혼이 깃든 병장기에서 영혼의 조각을 극대화시켜 생전의 힘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광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턱하니 벌렸다.
전혀 믿기지 않는 사실을 전해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반선의 경지에 오른 위대한 이라지만 혼을 다룬다니!?
혼이라는 개념자체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그런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시키고 무기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말도 안돼"
선우는 짤막이 말을 뱉어내었다.
"어째서 말이 안되지?"
"어떻게 산자가 죽은 자의 혼을 다룰 수 있다는 거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 잖아!"
"우습군. 위대한 경지에 다다른 내게 그런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말이다."
이연은 비웃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연조차 거스를 수 있는 것이 바로 현경의 경지이다. 상식이 통할 리 없지 않은가?"
"..........."
"그리고 너도 느꼈을텐데? 제각각의 내력이 담겨 있던 수 백자루의 창들을 말이다. "
"............"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날아든 창들에 담겨 있던 힘들은 균일하지 않고 모두 제각각이었다.
단순히 역량부족이라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듯 하였다.
"나는 그것을 혼연魂連이라고 부른다.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는 넋을 의미하지."
"미친 새끼."
그의 말을 들은 선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죽었으면 그냥 안식하도록 냅둬야지. 죽어서도 싸우게 만들어?"
"그것이 바로 군인의 명예다."
"너 새끼의 이기심이겠지."
선우는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과거 군인이었다.
강제로 다녀오긴 했지만 엄연히 이 년간 국방의 의무를 한 군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분노가 차올랐다.
죽은 이에게 안식을 주지는 못할 망정 명예를 강요하며 한줌의 혼마저 붙잡고 싸우게 만드는 저 이기심을 말이다.
연민이 들었다.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 명예를 위해 죽어서도 고통받는 저새끼의 수하에게 말이다.
"너 같은 야인이 어찌 군인의 명예를 알겠느냐? 그저 칼이나 휘두르며 난동이나 피우는 불순분자같은 놈이 말이야."
이연은 경멸기 가득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랄하네. 모든 사람이 너 같다고 생각하지마. 미친 새끼야. "
"말이 안통하는군. 뭐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서론이 길었던 것 같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지 이 창은 혼연창魂連槍이라고 한다. 내 모든 깨달음이 담겨져 있는 정수지."
그리고는 회색빛 창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과연 수백명의 혼이 담긴 이 창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말을 마친 이연은 그대로 창을 선우에게 내던졌다.
쇄애애애애애액
우우우우,,,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아아아..아아아.
그러자 그가 던진 혼연창魂連槍에서 귀곡성이 울리더니 그대로 선우에게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귓가를 찢어발기듯 자극하는 귀곡성에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었다.
짝
하지만 이내 뺨을 한대 후려갈기고는 정신을 차렸다.
현경에 다라른 이의 정수가 담긴 공격이었다.
넋놓은 상태로는 도저히 받아낼 수 었었다.
선우는 건곤대나이 신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혼연창魂連槍을 곧바로 되돌리기 위해서 였다.
'망할'
하지만 이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혼연창魂連槍에는 그 어떠한 흐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능소화의 흑염黑炎처럼 말이다.
선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용미연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음양조화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였다.
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음양조화기가 휘몰아치더니 이내 용미연검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음양조화기가 스며들자 이내 용미연검이 뻣뻣해지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뻣뻣해진 용미연검에 내력을 더욱더 쏟아부었다.
건곤대나이가 통하지 않는다면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은 없지만 받아내야한다.
여기서 자신이 피한다면 뒤편에 있을 북궁연이 당하게 될터이니 말이다.
우우우우우우웅
용미연검에서 검명이 울리더니 이내 상당한 크기의 강기가 일렁였다.
선우는 일렁이는 강기들로 검을 감싸고 또 감싸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에는 어마어마한 강기가 완전히 둘러지게 되었고 선우는 둘러진 강기들을 검 끝에 응축시키기 시작하였다.
한번...두번...세번...
셀수도 없이 많은 응축을 통해 강기의 부피를 줄이고 또 줄였다.
파지직 파지직
그리고 이내 검 끝에는 강기로 이루어진 검환劍環이 형성되었다.
선우는 생각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라고 말이다.
쇄애애애애액
우우우우,,,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아아아..아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연이 던진 혼연창魂連槍이 날아들었고 선우 또한 검환劍環을 내질렀다.
콰콰쾅
이내 혼연창魂連槍과 검환劍環이 맞부딪혔고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나오며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하였다.
파지직 파지직
굉음을 토해낸 혼연창과 검환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대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둘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담긴터라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던 탓이었다.
으득
'크으윽!'
혼연창과 대치를 하게된 선우는 이를 갈았다.
검환조차 쉽사리 우위를 점하지 못할 정도의 거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는 굴하지 않고 더욱더 힘을 주었다.
여기서 밀린다면 끝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는 비명성을 터트렸다.
갑자기 온몸이 갈가리 찢긴 것과 같은 고통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뭐야!이거 왜이래!'
갑작스러운 고통에 놀란 선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몸에는 그 어떠한 상처도 나있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그때 다시금 극심한 통증이 그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였다.
선우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주르륵
집중이 흐트려진 탓일까
검환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하였고 선우의 몸이 뒤편으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였다.
'안돼!'
선우는 정신을 다잡으며 다시금 음양조화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누그러졌던 검환이 다시 기운을 회복하고 혼연창과 대치하기 시작하였다.
으득
'크윽'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금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엄습하였다.
선우는 이를 꽉 깨물고 최대한 고통을 버티기 시작헀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긴 했지만 만약 다시금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그대로 밀려버릴 것이다.
버텨야했다.
어떻게든 버텨서 이겨내야만 했다.
으드드득
선우는 더욱더 입에서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눈에 핏발이 섰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은 끊임없이 몰아쳤고 선우는 괴로움에 피눈물을 흘려야했다.
쾅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선우는 마침내 혼연창을 완전히 튕겨낼 수 있었다.
털썩
하지만 그와 동시에 힘이 빠졌는지 그대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하아...하아..하아..하아.."
선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골랐다.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혼연창을 버텨내느라 제대로 호흡조차 하지 못한듯 싶었다.
"어땠는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연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 백명의 혼이 담긴 창이 말이야."
"대체...어떻게..된거지."
선우는 떨리는 온몸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쥐어짜듯 말을 내뱉었다.
"뭐가 말이지?"
"고통이 느껴졌다. 마치 온몸이 난도질을 당한듯한.."
선우는 끔찍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건 영혼이 상처 입은 것이다."
이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영혼?"
"혼연창은 물리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상처 입힐 수 있는 신비로운 창이지. 네놈은 혼연창에 의해 영혼이 다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직접 경험해봤을텐데?"
".............."
선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호기로운 모습이 어딜갔는지 모르겠군."
이연은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금 손을 뻗어 튕겨나간 창을 끌어왔다.
"꼴을 보아하니 이번 공격은 대응조차 못할 것 같구나."
그리고 왼발을 내밀고 천천히 팔을 젖혀 투창을 던질 준비를 하였다.
"죽거라. 북궁연과 함께 말이다."
쐐애애애액!
우우우우,,,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아아아..아아아.
말을 마친 이연은 다시금 회색빛으로 물든 창을 던졌고 창은 그대로 선우에게 날아들었다.
"젠장!"
그 모습을 본 선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직도 온몸이 덜덜 떨렸고 진정이 안됬지만 그저 억지로 세워버렸다.
이대로 있다간 온몸이 꿰뚫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재빨리 용미연검을 치켜들었다.
다시금 검환을 형성시켜 맞받아칠 심산이었다.
착
그때 갑자기 왼쪽 어깨 쪽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깜짝 놀란 선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백설과도 같은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절색의 여인을 말이다.
바로 북궁연을 말이다.
"일각 지났어."
북궁연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우를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고생했어."
말을 마친 북궁연은 그대로 손을 뻗었다.
솨와아아아아아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는 어마어마한 얼음폭풍이 쏘아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내 혼연창과 얼음폭풍이 부딪히게 되었고 충격파가 온 사방에 퍼져나가게 되었다.